일요일의 석간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아무래도 내가 좀 비뚤어진게 틀림없다.

그리고 나의 그러한 비뚤어짐에는,

모든 이상 성격이 그러하듯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아, 대체 뭐가 그리 비뚤어졌냐고?

가족, 그놈의 가족 이야기 말이다.

그저 좀 대중적이거나 좀 진부한 플롯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책을 폄하하게 되는건 아니라는 자각이 든다.

아마 내가 조금만 덜 단단하게 꼬였어도,

가족에 대해 조금만 더 너그러운 시각을 견지하고 있어도,

아니 대놓고 말해서, 가족에게서 조금만 덜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고 있다면,

책의 내용 때문에 다른 모든 점들은 눈에 안보이는 이런 편협한 독서로 일관하진 않았을거란 자각.

 

아무튼지간에,

나는 평소에도 신문을 안 본다.

신문에 난 걸 모른다고 해서 쪽팔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끔찍하거나 더럽거나 복잡하거나 상업적이기만 한 활자들의 아우성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 세상은 원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뉴스로 차고 넘치기 때문이란게,

내가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이유.

(물론, 가끔 딩동하고 신문 구독을 강요하는 아저씨들에게 이렇게 긴 썰은 풀지 않지만.)

따라서,

이 작가  시게마츠 키요시의 대중에 대한 눈높이 맞추기 zone에 나는 끼어들기 어렵다.

(아무리 봐도 이사람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감동적으로, 그러나 무겁지는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저녁 8시반의 일일 드라마 형으로 눈높이를 맞춘것만은 분명하다)

제목이 벌써 [일요일의 석간]이고, 실제로 그 단편은 일요일에 가족과 동참 할 수 없는 명퇴 위기의 중년 남자의 애환을 , 그리고 그것을 가족간의 사랑으로 풀어가는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평소에도 신문 안 읽는 내가,

일요일의 석간에 대한 행간의 의미를 알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부러 내용은 차치하고, 문장의 재미만을 돋보이게 내세워주는 단편은 없는가 하고 눈을 부라려도 봤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명품은 없었다.

'오우토키의 연인'  정도가 소재에 있어서 신선하다고, 그래서 이 사람도 한 때는 참 재미있는 단편을 썼었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주긴 했다.

 

아 , 쓰고나서도 찝찝하다.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선 제로인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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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i 2006-03-28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말이죠, 한때. 저도 이 작가 한때는 좋았는데 하고 책 보다말고 던지게 될 때가 참 기분이 묘해집니다. 사람들 만나서 달리 할 말없어 그저 옛날 이야기만 지겹게 되풀이 해대다가 그땐 그랬어 하고 맥없이 웃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죠. ^^;

치니 2006-03-28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네 맥없어요. 맥 없기도 하고, 새삼 내 감성이 메말랐나 싶기도 하고.

sudan 2006-03-29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일도 굳은 일도 가족의 사랑으로 헤쳐나간다 컨셉에는 저도 잘 공감을 못해요. 언젠가 빌려 읽은 조카의 동화책은요, 모두 함께 즐거워하면서 곰 사냥을 나갔다가 막상 곰을 만나고는 기겁을 해서 집으로 달려와서 현관문도 잠그고 방문도 잠그고 안락한 침대위에서 저들끼리 ‘다시는 곰 사냥을 나가지 않겠어’하고 결심하는 가족이 주인공이었어요. 저 살던 동굴에서 열심히 가족들을 쫓아왔다가 혼자 남겨져서 되돌아가는 곰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이기적인 가족들 같으니! 라고 꽤나 욕을 했다죠.(저 혼자 생각에는 작가는 가족이 아니라 곰의 뒷모습에 애정을 담았던 게 아닌가 싶은데, 꿈보다 해몽인걸까요?) 아. 그리고 저도 신문 잘 안 읽어요.
치니님 글 읽으면서 맞아, 맞아, 나도 이런 소설 싫어(읽지도 않아 놓고는)라고 혼자 신난 수단. 크크.

Fox in the snow 2006-03-29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슬쩍 손들어 봅니다. 동지만난 듯 해서. 근데 저보다 더 짜시네요.후후..그래도 제가 치니님보다 덜 메말랐나봐요. 전 별 4개주었다구요^^;

치니 2006-03-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아 저도 그 그림책 있었어요, 아이에게 사주었던 기억.
저도 그 당시 그게 가족의 화합 내지는 사랑을 그린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어쩐지 작가의 의도가 명확하게 짚어지진 않는, 하지만 그림은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신나해주시니, 저도 덩달아 신나요. 써놓고 찝집했는데 ㅋㅋ

Fox in the snow님 , 이 책을 읽던 중간에 '촌스럽게..'라는 제목의 님이 쓰신 서평을 다시 읽어보았었어요. 정말 고개가 많이 끄덕여졌죠. 사실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구요 ^-^;;; 하지만! 그래도 별 3개 -_-; 밖에 안되는 저의 좁다란 마음이 부끄합니다.
 
엄지 손가락의 기적
루이스 새커 지음, 이진우 옮김 / 사람과마을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주말은 한달에 한번 , 재수가 좋으면 주중에도 저녁시간을 보내기도 해서 두번.

시이소오를 타듯이 서로의 균형을 잘 맞춰가면서

게임의 룰을 깨뜨리지 않고 지내온 지난 몇년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그림 같다.

하루라도 못보고 산다면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이전의 생각이 상당한 착각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와도,

아이에 대한 사랑이 모자라는가 하는 죄책감 보다는 도리어 이 편이 훨씬 잘 맞는 거였음을,

그래서 우리의 결정은 제법 현명했음을 기특해 하는 심정이 되곤 한다.

각자의 자리를 잘 지키면서 서로를 알맞게 보고 지내는 것이 좋다 라는 생각이,

가족 이외의 어떤 관계에도 맞다면,

가족에게도 그것은,

아마 맞는것인 건가보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았었던 시절, 드문드문 생각했었다.

해주고 싶다고 다해주지는 말자,

가장 해주고 싶은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이 매칭 될 때에만,

그것을 하자 라고.

그 중의 하나는 역시 책 , 이다.

좋은 책을 알려주고픈 마음만큼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아이는 다행이 책 읽는 행위를 짐 스러워하지 않는다.

 

알라딘에서 아이 또래에 관련된 책들을 보면, 반드시 클릭을 하게 되는 내 손을 거쳐 나름 엄선된 책들 중의 하나인 이 [엄지손가락의 기적].

솔직히 읽는 내내 나 자신이 뿌듯했다.

리뷰만 보고, 그것도 대충 보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 수준이나 책 수준이나 둘 다 모른다) 골랐는데도 이토록 재미있고 누구의 수준에도 딱 맞는 책이라니!

므흣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어쩌면 , 아니 잘하면,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지는 [낙천성]을 갖추고 살게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

언제나 어이 없는 것에 탓을 하고 - 스탠리가 옛날 옛적 선조인 돼지도둑 고조 고모부를 탓하는 것으로 모든 불운을 간단히 견뎌내듯이 - ,

언제나 남들에게 말하면 자칫 우스워지기만 하는 나만의 感으로 기대고 있는 기적 같은 희망,

따위 들 때문에 말이다.

 

내가 읽는 부분이 어디인지 옆에서 수시로 물어보는 ,

그에 답할 때마다 괜시리 득의만만한 웃음을 짓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하는 기쁨의 최고조는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주말은,

썩 좋은 릴랙싱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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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3-26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사의 맥락과 닿아 있는 이야기이고, 얼마간 넘겨 짚으며 읽는 것인데도, 어쩐지 고개를 끄덕끄덕.

치니 2006-03-2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 저 조금 전 나무님 글을 읽고 아주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댓글을 남길까 하다가 왠지 쑥스러워서 말았다죠.
에헤 지금이라도 가서 남겨야짐.

sudan 2006-03-26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잘 보내셨나봐요.
해가 깊숙이 들어오는 방안에서 굴드의 클라비아를 들으면서 자다 깨다 봄 낮시간을 보내고 나니, 낼은 또 월요일이여요..

치니 2006-03-2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오붓하고 충만한 시간이었어요.
으흑 낼은 월요일 ... 하지만 , 힘 냅시다 ~ ^_^

mooni 2006-03-2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책감없는 사랑이 좋아요. (죄책감을 의식하는 사랑은 의무에 헌신에, 희생에 박탈에, 골치아픈 소리들 뿐이라.) 행복한 광경이라 보기 좋군요.

삼월의 마지막 주, 활기차게 시작하세요. ^^

치니 2006-03-2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하연님, 서재 사진 바꾸셨네요. 덩달아 봄내음 맡아봅니다. ^-^
죄책감과 사랑, 흠, 한번 생각해 볼 문제군요.

로드무비 2006-03-2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바로 사렵니다.
마구마구 땡기네요. 땡스투!^^

치니 2006-03-2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네, 로드무비님이 좋아하실 거 같아요. 후회하지 않으시리란 생각. ^-^

Fox in the snow 2006-03-2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면서 나중에 꼭 아이와 함께 읽어야지 했답니다. 이런 책 만나면 정말 흐믓해요. 스스로 뿌듯하고.

치니 2006-03-2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ox in the snow 님의 서재에서 컨닝해서 읽은거라죠. 아시겠지만. 헤헤.
안그래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구,
다시 한번 읽어도 서평 정말 어쩜 그리 잘 쓰시는지요. 또 놀라고 왔었습니다.
 
피버 피치 -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해보면 언제나 나는 강박증 적인 것을 피하고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그래서 스포츠 경기 (축구도 물론 포함)에 광적으로 집단 행동을 하면서 자신의 강박증을 애국심이나 정의감 같은 걸로 포장하는것에는 분노에 가까운 반감이 들기도 했다.

내가 그래도 된다고 믿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음악에 관련된 것들일테고, 그건 아마도 음악은 집단 강박에 빠지기보다는 '혼자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서 였을거다.

그러나 그조차도 [들국화]와 [김장훈]을 열심히 보러 다니던 한 시절을 생각하면 꼭 맞는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들국화]가 이 책에서의 '세련되고 화려한' [첼시]나 [토튼햄]이라면,

[김장훈]은 '미련하고 거칠고 후회할 행동도 하는' [아스날]일게다.

그들의 음악적 개성은 논외로 하고, 또 그들의 언론 플레이도 논외로 하고, 팬 층과 팬 질(?)로 봤을 때의 말이다.

[들국화]의 팬들이 우아한 VIP석에 앉아서 고매한 인격을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공연을 즐기는, 그리고 당시에 트윈폴리오나 양희은, 김민기 가 아니면 한국 가요라고는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대학문화가 만들어낸 어이없는 우월주의를 가진 류가 더 많은 편이라면,

[김장훈]의 경우는 주로 유치하다거나 음악적 재능이 없다는 욕을 들어가면서도 꿋꿋이 무대와 노래를 자기 인생의 모토로 삼으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왠만한 것은 불사하는 모습에 감동하는 사람들이며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자유당식 공감대가 주류여서 스탠딩 공연에서 굳이 뒤쪽 의자에 쭈그리고 앉았는 나를 소 닭 보듯 하거나 욕 하는 팬들이 더 많을 것이 거의 분명하니까.

그런데 나는 그 두 가지에 골고루 푹 빠졌던 시절을 가졌다.

무엇을 너무 좋아해서 미치는 것,

이렇게 써놓기만 해도 그 자체가 무조건 참으로 매력적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어느 정도 일탈을 꿈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도 맹물 같고 지리한 삶이 구역질 나고 타파해야 할 무엇이니 , 공연을 가지 않으면 몸살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그 와중에도 제 깐에는 이성적이랍시고 냉소적 비평으로 친구들과 수다판을 벌이기도 한 적도 많았다.

어쩌면 내가 미치게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했던 행동들 역시,

닉 혼비가 부모의 이혼 후 트라우마를 풀어내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 것이 축구인 거 마냥,

그렇게 내 트라우마로 올 것들을 대비하기 위한 무엇을 좋아한 것 뿐일게다.

또 그렇게 우회하여 나름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작은 일탈을 감행하고 살았던 시절에 대한 감미로운 향수도 무시할 수 없는 내 안의 감성 축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닉 혼비의 아스날 사랑과는 비교 조차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사람은 강박증 정신병 환자니까. 나는 정신병 환자가 될 순수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와 같은 섬세하고 예리한 감수성도 지니지 못했으니,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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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3-20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무언가에 버닝하는 건 좋아요.
들국화는 저도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어렸을때라 '우월주의' 이런건 잘 몰랐고, 주변에 들국화 좋아하는 친구들도 없어서 알아주는 이 없이 혼자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김장훈이라니. 귀여우세요.)

치니 2006-03-21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대략 짐작되는 나이로 생각하면 주변에 들국화 좋아하는 친구들 찾기 힘드셨으리라 봅니다. ㅋㅋ 저도 '우월주의'라고 그때는 생각 안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은근 그렇드라...헤헤 뭐 그런거죠.
심지어 들국화 당사자들도 그런 기분이 없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하니까요.

김장훈도 그분의 상당한 나이를 보신다면, 귀엽다고만은 못하실겁니다. 크으.
김장훈이 정말 가난했던 시절에 좋아했었으니까요.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공부에 취미가 없을 뿐더러 , 열심히 하는 공부는 더욱 젬병인지라 그런가 몰라도,

소설책을 볼 때에도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로 쓴 것을 읽으면 재미가 없다.

빡빡한 무언가가 시야를 가리는 거 같기도 하고, 일일히 모르는 단어나 의미를 각주 같은 것으로 체크 하며 읽는 것은 , 왠만해서 하기가 싫어 부러 가벼운 책을 골라 잡기도 한다.

이런 내 성향에는 [달려라 아비]가 별 5개인 게 당연하다.

딱 아는만큼 쓴 소설을, 딱 아는만큼 알아차리는 것이 아주 편안한 단편집.

그 중에 문학적 완성도 따위가 떨어지는게 있을런지도 모르겠다만,

자신이 천착해 온 것이나 겪어내는 것에만 매진하여 글로 푸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보이는 건 아무래도 사실이다.

혼자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주변이래봐야 어쩌면 수 없는 나가 똑같이 존재할 거 같은 편의점 만큼이나 도식적이고 패턴화 되어 있을 건 뻔한데,

그것들 속에서 새로운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끌어내기보다는

선선하게 받아들이고 자근자근한 상상력들을 요리조리 포스트잇처럼 붙여 놓은건

조악하다기보다는 아기자기하고 달콤하다.

이건 역시 재능이다.

재능이 있는 (혹은 꽤 대단해보이는) 사람이 욕심을 많이 내지 않는걸 보는 것이 편안한 ,

이것이 이, 얼핏 매우 발랄해보이는 단편집의 가장 큰 장점이겠다.

글자 하나하나가 일일히 눈에 쏙 들어오고, 이해력의 수치가 120프로 올라가는 것도 그러한 장점 때문일테지.

어린 나이와 첫 작품집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재기발랄'이라는 단어가 썩 어울릴만큼의 가벼움은 이 작가의 영역 안에서 크게 자리를 잡는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그저 달리기만 하는 아비, 너무 달려서 돌아오지 않는 아비, 그런 아비가 여전히 어딘가에서 신나게 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낙천,

자신을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린 아비가 어느날 수족관에 나타나도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아비가 실종되었다고 믿는,

그러한 고집.

아무리 커다란 트라우마가 덮쳐와도, 거기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오기. 내지는 내공.

차라리 그것을 가지고 놀아보겠다는 엉뚱한 의지.

가족이라는 것을 굴레 삼기보다 수없는 '나'가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있듯, 가족 구성원 역시 그렇게 내버려두는 대범함.

이런 김애란은 귀엽다.

고집스러운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가 떠오르고, 사뭇 동정하기보다는 씩 웃으며 어깨를 툭 쳐주고 싶다.

다음 작품도 당연히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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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3-1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애란이라는 이름은 낯이 익어요. 요즘 한창 뜨는 작가인가보죠? '딱 아는만큼 쓴' 소설이라는 말에 끌려서 저도 이 책 주문하려고요.

(추가) 주문 완료. ^^

치니 2006-03-12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문 듣고 사서 읽었으니, 아마 한창 뜨는거 맞는거 같아요, 무슨 상도 탔던 거 같구.
수단님은 아마 재미나게 읽으실 거 같습니다 ^-^ (뭘 근거로 이리 생각하는 진 저도 모르겠으나...)

sudan 2006-03-12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도 제가 재미있게 읽을 것 같아요.(요즘 지나치게 유식한 책만 읽느라 머리에 쥐나고 있다는 게 근거라면 근거죠.)

토니 2010-03-1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뜩 기대했던 탓인지 깊게 실망한 책입니다. 호흡이 짦아서 그런지 빈번한 콤마와 도치법 때문인지 읽으면서 아주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말할 때 "난 별로"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 댓글을 미뤘습니다. "아비"와 저는 궁합이 안맞나 봅니다.. 여기 까다로운 독자 한명 추가요!

치니 2010-03-19 13:45   좋아요 0 | URL
김애란은, 그렇죠 잔뜩 기대했다가는 실망시킬 구석이 있어요. :)
저는 아예 기대없이 데뷔작을 읽었어서, 아마 이런 리뷰를 쓴 모양이고요.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그래, 어쩌면 산다는 것은, 계속 자신이 외롭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과정에 불과할 뿐인지도 모르겠다.그리고, 어쩌면, 외롭다고 느낄 때조차도, 나만 그렇지는 않다는, 다른 사람들도 꼭같이 그러하다는 점에 위안을 받기에 죽지않고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없이 나약한 우리들.

우리에게는 사랑,기쁨,미움,번뇌,증오,화 와 같은 감정들 아래에 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장판처럼 끈끈하게 깔려 있어서,

모든 것을 걷어내면 쓸쓸하고 외로운 그림자만 남는 공허함을 견뎌낼 힘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 작가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단순한 고마움이 아니다.

그러한 공허함을 자신이 소설이라는 명제 하에 온통 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외로운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나무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글귀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울림처럼 느끼게 되니.

결국 나는 그저 외로운 사냥꾼에 불과한 주인공들을 보면서 , 슬프면서도 어느새 안도감이 섞인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벙어리 싱어처럼 내 말을 모두 이해해주고 그 앞에서 가히 온전하다고 할만한 평화를 느끼게 해주는 인간은 사실 없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헛짓거리를 한다고 해도 그에게 삿대질을 할 권리가 있는 인간도 없다.

실은 싱어 역시 허상과도 같은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벽 앞에서 꼼짝 못하고 휘둘리는 한없이 외로운 인간형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어쩌면 우리는 그 사람의 깊숙한 외로움 같은 것은 자꾸 외면하고 내 이야기를 계속 들어달라고 조르고 싶은지도.

그래서 읽는 동안 내내, 감히, 싱어와 같은 이를 찾아다니기보다는 아주 조금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싱어를 닮고 싶은 욕망이 잠시 잠깐 드는 것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럴 깜냥이란 절대 안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어차피 거짓된 행위가 다반사인 일상에 거짓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유혹은 꽤 강해지고 만다.

나를 보기만 해도 마음의 평화가 오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래서 내 외로움의 두께가 한웅큼 더 쌓인다 해도 상관 안할 그런 사람이 어디 하나라도 있다면, 하는 욕심. 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욕심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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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3-1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외롭다고 대놓고 드러내는 소설은 안 땡기는걸요..
(이 서재 오면 마음의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안하긴 해요. 헤헤.)

치니 2006-03-1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리뷰가 이 모양이라 그렇지, 외롭다고 대놓고 드러내는 소설은 아니에요.
읽어보시면 아실테지만, 안 땡기면야...^-^;;
편안하시다니, 마음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