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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만필
황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어차피 내 맘이다, 독서는.
모르긴 몰라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집이 좀 셀거다.
누구와 함께 해야만 하는 , 빼고 더하고 서로 협력하여 움직여야 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에 비하면, 고집도 세고 취향에 대한 확신도 강할거다.
혼자 읽고 혼자 키득대고 혼자 눈물 흘리고 혼자 좋아하고 혼자 싫어하고, 그야말로 혼자 놀기의 정수가 독서 이겠으니 그렇다.
누가 읽으래서,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게 아니라 저런 혼자 놀기의 재미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사랑하게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독서로 하는 혼자 놀기의 재미가 그토록 유별난 이유 중 하나는 상상의 나래를 책 속에서 마음껏 펼치는 데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조선시대 어떤 가난한 선비 집안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아씨가 실상은 장난꾸러기 엽기 삐삐 같은 면모도 보여주면서 오종종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자신도 그 주변인물 중의 하나 쯤으로 설정하는데에 이 할랑한 산문집은 조금도 더하거나 모자람이 없다.
날개라도 단 듯이 훨훨 날아다니게 하고, 찰랑찰랑 수면 밑에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라앉게도 해준다.
그러면서, 귀여운 아씨가 감염시키는 순수 바이러스에 마음을 활짝 열고 감염되기만 하면 잠시나마 지상 최고의 낙천주의자, 휴머니스트가 될 수 있다.
책에 밑줄을 긋지는 않기 때문에, 내 저주 받은 건망증을 탓하지 않기 위해 두고 두고 기억하고 친한 이들에게 써먹고 싶게 공감되는 이야기는 접어놓기 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황인숙씨와 유사한 행동을 일삼는 인물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일게다.
낄낄, 유쾌하게 웃으면서,
행동하는 것이나 일상의 소소한 감성들이 참 많이 닮았는데 이름까지 닮은 황모양도 떠올리고, 눈물이 너무 많고 다정도 병인냥 해서 고생하고 겨울에 태어나서인지 유난히 추위를 잘 타며 이런저런 잔병치레가 많은 여린 홍모양도 떠올린다.
칠칠치 못한 실수에 기억력 젬병인 모습은 물론 나 자신을 떠올리게 하며... 오랜만에 아주 마음 편한 웃음을 머금고 본 책.
누구에게든 선뜻 권하고 싶다. (아래 강유원씨처럼 공부가 안되는 책은 무조건 사양하시는 분들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