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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뜰 때 ㅣ 장정일 문학선집 5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전 해외 바이어가 온 김에 갖게 된 접대 및 회식 자리에서의 일화.
우리끼리 회식을 한다면, 소주나 맥주 정도겠지만, 바이어가 있는 자리인지라, 그나마 바 한구석에서 위스키를 과감히 시켜, 소위 키핑이라는 걸 해가며 마시는데,
A는 B에게 (근 일년만 쯤일까) 한 잔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따라 주며 이렇게 말한다.
"자 이거 좋은 술이다. 한번 마셔봐. 넌 체질과는 달리, 또 이런 귀족적인 맛을 좋아하는데가 있잖아"라고.
그리고나서, 반농담처럼, 위스키 맛을 우리나라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과연 그 '귀족적'인 체질이란, 문화적 사대주의랑은 다른 어떤것인가, 취향의 귀족성이란 어디서 나타나는가, 그걸 알아볼만한 수준이란 무엇인가, 그런 우습기도 슬프기도 한 단발성 생각에 따른 비아냥스러운 대화가 잠시 오고갔다.
B가 외모나 말투, 행동 등에서 평소 소위 귀족스러움 (유복한 가정에서 고민 없이 자란 정도의 인상 이나마) 을 풍겨주었더라면, A는 그런 말을 내뱉지 않았을게고 (물론, 칭찬도 비웃음도 독려도 아닌 저런 말을 하는 A의 대화방식이 우선 별로다만), 그렇다면, 천민의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든 티가 난단 소리다. 그럴만한 주제도 아니고 배경도 없으면서, 귀족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우스워보인단 소리기도 하겠고,좀 더 티가 안나도록 노력해야 한단 소리기도 하겠다.
자 이제 장정일을 보자.
소년원 경력에 수위를 넘는다고 판단되는 작품의 '저질' 표현 때문에 투옥되기도 하는 등, 소위 세속에서의 이미지가 꽤나 신산하고 강렬한 이 사람.
12살에 아버지가 죽었을 때 "이젠 해방이다!"라고 호기롭게 외쳐버리고 말아서 온 친척의 기함을 들었으며, 19세에는 소년원에 수감되어 소위 볼 꼴 못 볼 꼴 다 보았고 ,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가난을 짊어지고 건물 화장실 청소를 하는 어머니가 믿던 여호와증인을 믿는 척을 한 뒤, 학교를 불신하여 퇴학을 당하고, 엄청난 양의 독서와 습작으로 작가가 된 이 사람.
천민의 생활이라는게 있다면, 이 사람이 그것을 대체로 겪어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타고나길 그랬는지 자라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아무튼 이사람의 정신은 , 그런 피폐하기 짝이 없는 배경에도 불구, 충분히 귀족적이고 비범해보인다.
클래식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돈이 없는데도 매일매일 좋은 음향기기를 판매하는 샵 앞을 기웃거리며,
마이클 잭슨의 빌리지 같이 '혼'이 없는 음악은 쓰레기라서 들어줄 수가 없고,
작품 속 주인공 '나'의 첫번째 여자친구이자 어린 나이에 시인으로 데뷔한 은선이 그러했듯이, 일류 대학에 들어갔지만 개념도 없이 운동권의 시를 따라 쓰기나 하고, 그것으로 정치적인 섞임을 시도하고 무력한 군중이 되기를 자처하는 , 다른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유치한 싸구려 감성에 대해서 더할 수 없이 객관적이고, 냉정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라는 것은 통념적이지 않은 섹스를 통해서나 방출이 되고,
음악과 독서 같은 일인으로 충분하고 어쩌면 일인이어야만 하는 고립된 문화 향유만이 돌파구인 생활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소설로서는 데뷔작인 듯한 <아담이 눈 뜰 때>는 나름대로 치열했던 그만의 청년시절과 버무려져서 90년대식 향수에 젖게 만들기도하고, 최근의 장정일 소설과 비교하자면 너무 유치해서 어이가 없게 만들기도 하는 기우뚱한 불균형의 대표작이다.
나로 말하자면, 이러한 향수가 마뜩치는 않아서 별 재미가 없지만, 최근과 비교해보게 되는 순간, 이 작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가며 자신의 글에 매질을 해왔는지, 느끼는 것만으로도 읽을만한 가치를 주는 작품이다.
최초의 작품에 비해 점점 성의 없고 열등해져가는 , 그야말로 날로 먹는 작가 짓을 뻔뻔히 해가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 시국이더냐.
아무튼 요즘 마포도서관 맛들린 상태에서 발견한 장정일의 삼국지 총 10권, 다음 대출 예상 리스트.
으흑 다 읽을 근력이 되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