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열쇠 - Sarah’s Key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이러쿵저러쿵 하더라도, 일단은 재미가 있어야 좋은 영화라고 믿는 내게는 지루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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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08-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영화보고 싶어?
지금 남편이랑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이라는 영화 보고 왔는데 재밌어.
좀 거시기한 것도 많긴 하지만 모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는,,ㅎㅎㅎ

치니 2011-08-28 00:56   좋아요 0 | URL
오, 그래요? 제목이 좀 거시기해서 별로일 줄 알았는데. 시간 되면 볼게요 ~ :)
 
이승열 - 3집 why we fail [재발매]
이승열 노래 / 윈드밀 이엔티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막장드라마가 판 치는 가운데 탄탄한 기품과 완성도로 돋보이는 정극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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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11-08-2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곧 이것도 사야겠지요? ㅋㅋㅋ

치니 2011-08-28 00:59   좋아요 0 | URL
검정치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그러나 그 다름이 또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진지하고 엄숙한 음악이랄까요. 아, 글타고 검정치마가 진지하지 않단 건 아니지만. ^-^;; 아무튼 모두가 심각한 건 도리도리하는 이런 시대에, 이런 음악 - 분명 소장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시절이 하수상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시절이 하수상하지 않았던 날들이 어디 하루라도 있었던가 싶다.
우리는 왜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나, 싶어서 무기력한 마음에 가만 되돌아 보면,
허, 참, 어이없게도 더 기만적이고 더 무섭고 더 끔찍한 시절을 거쳐 왔다.
그러나 단순 비교로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보다 나은 순간을 염원하고,
인간은 언제나 가장 이기적인 순간에도 남을 생각하기에,
모자라고 못마땅한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가만 있지를 못하고, 또 책을 읽는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나 궁금해서 역사를 더듬어 확인하고 싶고,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까 싶어서 다른 이들이 제시하는 다른 삶을 들여다 본다.
자발적으로 고른 책이 아니라 둘 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책이지만, 아래 두 가지 책을 읽으면서, '우선 알고 좀 바꾸고 싶은' 내 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책은 예의 '지금 이 꼴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나' 에 대한 궁금증 해소 측면에서 약간의 해답을 주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익히 그러려니 하는 시간과 공간이란 것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되짚고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더듬어 볼 뿐만아니라, 음악과 미술, 수학과 과학,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석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무식한 나로서는 - 특히, 수학! ㅠㅠ 학교 다닐 때 함수와 기하학의 개념이라도 제대로 배워 뒀더라면, 이렇게 깜깜하진 않았을 텐데 - 반절은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독서를 끝내야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근대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나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만 해도, 그 '만들어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깨버려야 하는 구속이 어디까지일까에 대한 생각은 조금쯤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사람이란, 특히 근대의 사람이란, 모두들 양가적 심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 같다. 불편부당한, 내가 사는 이 자리에 굳건히 발을 디디면서 주변 환경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은 마음과 (실상은 그 어디에도 없을) 유토피아에 가까운 휴식처를 기대하는 마음. 매양 툴툴거려 봐야, 대도시에서 자라고 대도시에서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들이 어느날 문득 '아, 단 한 달이라도 좋으니 아무 생각없이 자연 속에서 쉬고 싶다'고 한들, 프로방스로, 아니, 프로방스로 대변되는 조용하고 하루종일 할 일이라곤 먹고 산책하고 책 읽는 정도 밖에 없는 시골이라 치자, 그런 곳으로 갈 마음을 먹기 쉬울까.
여기 정수복 박사님처럼 자유롭지만 약간의 돈은 있는 직업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가능한 건 아닐까.
책 속에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라고 강하게 말해주는 구절을 찾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책장을 넘겼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환경운동가로도 활동하셨다는 저자의 이력 치고는 너무나 반들반들하고 색색 칼라로 장식된 페이지의 면면들이 거슬리기도 했다.
이런 구절을 읽으니, 진짜 얄미워지기까지 한다.

"낮잠, 그건 게으름의 표현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겸손함의 표현이다. 낮잠 시간의 정적은 쫓기는 마음에 여유를 되찾아주며 고단한 삶에 짧으나마 망각의 순간을 부여한다. 여름날의 낮잠이야말로 삶의 질을 높여주는 필수 요소다. 그러기에 프로방스의 낮잠이여 영원하라!"

그래, 삶의 질을 높여야지, 높이고 싶다. 그런데 당장, 그럴 만한 시간과 돈이 없다는 게 우리들의 진심어린 핑계이다. 가만 있자,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까 근대적인 시공간에 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보니, 돈은 그렇다 쳐도 시간 만큼은 만들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손에 쥔 게 너무나도 많은 나머지 그 중 몇 가지만 놓아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송두리째 잊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시간을 낮잠 자는데 쓴다고 해도 당장 굶지는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낮잠은커녕 밤잠 좀 남들처럼 자게 해달라는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이 있는데도 내가 내 낮잠을 챙겨서, 캥기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내 낮잠을 온전하게 즐기는 것이, 그런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길게 봐서 밤잠도 못 자는 노동자의 실태에 도움이 되는 걸까, 그 반대일까. 혼란스럽다.
낮잠 타령은 여기까지 하고, 신념대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차라리 그 생각을 해보자.
프로방스의 휴식을 에찬하기만 하는 줄로 알았던 책이, 어느새 카뮈와 고흐의 생애로 옮겨 가면서 지식인의 책무에 대한 내용으로 꽤 많이 옮겨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좀 묘하다. 여행 관련 서적을 둘로 나눈다면, 여행 그 자체 장소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쓴 책이 있고, 그 떠돌아 다니는 정서와 각 장소에서 자신만이 느끼는 사유에 의미를 두고 쓴 책이 있는데, 이 책은 둘 중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 그래서 때때로 산만하고 때때로 의미심장하며 때때로 재미있고 때때로 재미가 없다. 옳다고도 아니라고도, 좋다고도 싫다고도, 하기 힘든 책. 좀 희한하다)

"카뮈는 '빛과 존재의 행복감과 자유로운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사르트르가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서문을 통해 불의의 폭력은 거부해야 하지만 정당한 폭력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때 카뮈는 침묵을 택했다. 그는 자기 어머니가 탄 버스에 알제리 독립을 위해 던져진 폭탄 사고로 어머니가 죽는 상황을 그리면서 그렇게 얻어진 독립보다는 어머니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중략) 그는 의심과 회의가 없는 완제품의 이념, 도덕, 신념과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회의없는 이념과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그는 십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도그마는 폭력 사태를 불러오고 기계적 평등은 자유를 압살할 수 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렇게 썼던 저자는 뒤 어딘가에서는 또, 지식인이라면 사회의 불의에 맞서야 마땅하기 때문에 부당함과 불의가 있는 한 언제나 핍박 받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정수복 선생이 말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 지식인' (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책 속에서 천명하고 있다)이란, 아마도 카뮈처럼 자유로운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되, 불의에는 맞서며, 모든 종류의 폭력에는 적극 반대하고 그 체험을 예술적으로 승화해서 나누고자 하는 지식인이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그런 경지가 가능한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카뮈가 어머니를 택하는 지점은 이해가 가지만 정수복 선생은 아직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회가 된다면, 이 분의 생각이 좀 더 자세히 설명된 다른 책을 읽어 봐야 할 모양이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글로 주절주절 풀고 있자니, 문득 어제 본 트위터 글이 생각난다.

'노동자에 대한 부당대우에 분노하는 사람도 당장 식당에 가서 종업원을 종 부리듯 하거나, 조금만 느리거나 불친절해도 벌컥 화를 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무리 '대의'를 알아도 결국 일상을 바꾸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 (@hye_si)'

대의,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렇다, 이 글을 리트윗한 김진숙 씨가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쓴 것처럼, 최소한 내가 받고 싶은 대접을 남에게 하는 일상이라도 꾸려야겠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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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6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6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1-08-1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뮈에 대한 얘기도 그렇고 트위터의 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은게 많은데 두서없이 막 떠들어댈 것 같아서 참았어요.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읽었지만 기억이 안 나는데 김진숙씨의 그 말은 참 와닿네요.

치니 2011-08-16 14:06   좋아요 0 | URL
제가 벌써 두서없이 막 떠들었는 걸요, ^-^; 아치 님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한데, 더 얘기해주심 안 돼요? 헤헤.

공지영 씨가 그런 책을 썼군요. 제목때문에 잘 팔렸겠다, 그 생각부터 드는 걸 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에 참으로 목이 말랐었나 봐요.
김진숙씨를 팔로우 하고나서 가끔씩은 '어휴, 완전 도배네 도배, 너무 많이 올려'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얼굴이 혼자 벌개져요. 그 높은 데서 혼자, 책 한 줄 읽지 못하고 있는데 태양열로 충전해서 하는 트윗이, 얼마나 절실할까 - 저 같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거 같아서요. 그리고 그는 와중에 늘 시를 읽습니다. 다른 이들이 트윗에 올린 시를요.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매번 놀라요.

Arch 2011-08-17 11:58   좋아요 0 | URL
'이래야 돼'와 진짜 맘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어긋날 때도 있지만, 정치적인 올바름 내지는 자기나 타인의 도덕률로 감정을 제어하기 시작하면 더 헷갈릴 것 같아요. 저라도 치니님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다만 그럴 때마다 우린 아차, 하는거죠. 아차하다가 에이 모르겠다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계속 아차, 하니까 언젠가 아차하기 전에 좀 더 현명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치니 2011-08-17 13:43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래요, 아차 하는 순간 뒤늦게 깨닫는 걸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조금은 말과 행동에 신중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신념대로 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신이 싫어지기도 하고 다들 그러는데 나라고 뭐 다를 게 있나 자포자기가 되기도 하고 그런 합리화가 또 싫어지고......결국 쫌 불행해지는 것 같아서, 노력해봐야지 싶어요.

차좋아 2011-08-1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복절 날 좋은 친구들과 산행을 했어요.
뒷산에 종종 간다, 너무 좋다, 안 힘들어~ 맛집도 많아~ 당연히 와도 되지, 데리고 와~, 제 말에 솔깃해서 모인 친구와 친구의 친구는 모두 여섯.
저 까지 일곱명이 안개에 덮인 산길을 올랐었지요.
산행은 생각처럼, 생각 그 이상으로 좋았어요.
그리고 맛집에 갔는데 맛집 사장님은 맛집 사장님스럽게 친절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제 일행중 하나가 결국 기분이 나빠서 뾰족한 말로 응수를 하더라구요.
ㅎㅎㅎ 별 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방석을 두 개 깔고 앉은 제 친구에게 사장님이 하나만 깔라!, 고 말하고선 왜 하나만 깔아야 하는지를 장황하게 뒤에서 이야기 하는 게 듣기 싫었던 다소 까칠한 그 친구가 방석 두개 깐게 화낼이이냐! 화를 냈고 저는 난처해서 가만히 있었지요. 고개 숙이고...(아씨 아줌마 왜저래~~ 너는 또 왜그래...)
일행들은 화가 난 친구의 비위를 맞추려고 같이 투덜거렸고 서빙하는 분께도 다소 거칠게 대하더라구요.

맛있다고 끌고 갔는데 음식맛 이야기는 아무도 안하고... 아줌마 이상한 것만 화제로 올랐으니 저는 면목 없고, 좋은 친구들이 분명한데 좀 과하다 싶어서 마음이 불편하고...

그냥 치니님 페이퍼의 끝 자락에서 떠오른 지난 월요일의 풍경이에요 ㅎㅎㅎ

치니 2011-08-18 13:07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그랬던 기억이 나요. 아무리 맛이 좋아도 서비스가 별로면 난 싫어! 라면서 종업원의 태도가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대놓고 뭐라고는 못하는 깜냥이긴 해도) 동행과 수군거리며 싫은 내색을 하곤 했어요. 그러면서도 들어서자 마자 일단 반말부터 해 대고 소리 치며 이것 저것 시키는 아저씨들은 또 왜 그리 싫던지. 이거나 저거나, 밑바닥에 깔린 무시와 대접받고픈 욕망은 비슷할 텐데 말이죠.
어떤 사람은 식당이나 서비스 받는 장소에서 손님이 너무 굽히고 들어가면 외려 무시를 당하고 싼 것도 비싸게 바가지 쓸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라도 조금은 당당하고 지시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하던데, 글쎄요.
전 그래도 진심이 통한다,는 말을 믿고 사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식당 갈 때마다 나한테 잘해주나 남한테 더 잘해주나 곤두세우고, 내가 너무 착하게(?) 굴면 해주려던 서비스도 안 해줄까봐 전전긍긍, 기 싸움 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느니, 그냥 내가 좋게 대하고 똑같은 노동자의 고단함을 알고 대하면 상대도 그걸 알아주려니, 그리 믿고 사는 게 편하다는 결론. :)
 
헤어 드레서 - The Hairdress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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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과 도약과 소수자에 대한 애정이 따스한 웃음은 주지만,진한 감동은 못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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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8-0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네요. 안 보신다더니^^
도리스 되리는 편차가 심한 감독인거 같아요. 어쩌면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감독일 수도. 파니핑크는 정말, 정말 좋았는데

치니 2011-08-01 17:49   좋아요 0 | URL
네, 어떤 영화는 그다지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보게 되고, 어떤 영화는 보려고 기를 써도 자꾸 놓치고 - 인생이 글터라고요. ㅎㅎ
파니핑크는 으흑, 정말 정말 좋죠. 사랑이 남기고 간 것들, 이 영화도요.
별점은 짰지만 도리스 되리의 변덕 혹은 편차가 싫지는 않아요. 그냥 감독도 사람이니까 ~ 이런 생각. 한번 애정을 주면 도로 거두는 일이 거의 없는 치니였습니다용. :)
 
인어베러월드 - In a Better Worl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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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자연이 대한민국에게 경고를 제법 화끈하게 날려 준 하루였다. 언제건 터질 일이었지만, 아무리 목이 쉬어라 생태/환경주의자가 떠들어도 소용 없던 메시지가, 단 몇 시간 안에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지 않더라도) 그저 전기가 나가고 물이 안 나오고 외출이 불가능한 상태로 이어지자, 모두의 마음에 웅변적으로 박혔던 날.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물리적인 대상이 눈앞에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빌 정도의 상황.

그런 자연 앞에 모두가 힘을 합쳐도 마땅할 이 판국에, 우리 인간은 지들끼리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운다.
폭력을 휘두르느냐 아니냐는 둘째 문제다.
우선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사실상 통제불가다.
영화 속 안톤은 비폭력주의자 -폭력이 난무하는 아프리카에서 난민을 돕는 의사로써, 인도주의에 입각해 그 폭력의 원흉인 살인마 빅맨의 다리를 고쳐주지만, 사실상 그에 대한 분노를 자기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주변 원주민들의 '표출해도 무방한' 분노를 통해서 해소한다. 아니, 해소 정도가 아니라 무임승차라 표현해도 좋겠다. 자신은 점잖게 나를 때리는 사람에게 다른 한 뺨을 내줄 만큼, 그리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온다는 것을 아이들 앞에서 과시적으로 보여줄 만큼 인간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남고, 보다 원초적인 본능에 솔직한 사람들의 폭력을 묵과한다. 그럼으로써 그가 정작 심적으로는 가장 자기만족적이고 안전한 테두리 안에 머문다는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도 안톤 자신이 알 게다. 안톤의 모습은 문명화 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 혹은 자고나면 목숨 걱정부터 해야 하는 전쟁통에서 살지 않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 안톤처럼 비폭력주의로 자족한다 해도, 이 세상의 끔직한 상황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만 우리는 진정 평화로운 세상(인 어 베러 월드)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럼 당장 어찌 해야 하는가. 끊을 수 있는 지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곧이 곧대로 더 분노에 찬 아이와 덜 분노에 찬 두 아이를 통해 답을 보여준다. 감독이 생각하는 답 그대로. 화해와 용서와, 더 성숙한 사람들의 인도로, 문제는 일단락 된다. 인 어 베러 월드로 가는 길이 참 정직하고 단순하다. 영화 전반에서 그토록 모순적이고 용서되기 힘들던 의제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과연 수잔 비에르 감독은 영화 속 자기모순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감독은, 아마 길이 남을 명작 만들기 보다는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책무가 본인에게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극의 전개상 약간은 황당하고 성급해보일 수 밖에 없는, 세상과의 화해 모드를 조장하는 엔딩이, 어떤 관객 - 나 같은 - 에게는 엔딩 전까지 느꼈던 영화에의 공감을 확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감독의 선택이 과연 현명했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영화 뿐만 아니라 좋은 예술작품은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질문에 대한 고민을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그 가치가 있음을 설마 감독이 몰랐을까. 아무래도 엔딩이 너무 아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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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7-2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감독이 관객의 수준을 무시한 것이라는 것에 한 표!^^ 좀 아쉽죠 마무리가.
이 영화 보고 생각나는 시가 있었어요. 좀 두서가 없긴 한데, 그냥 떠오르더라구요.
황지우시인의 「뼈아픈 후회」라는 시인데요,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해서한 고난도 /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이 구절이 계속 생각났어요. 그랬어요.

치니 2011-07-28 18:17   좋아요 0 | URL
보셨군요, 굿바이 님도! 그쳐 그쳐, 관객 수준 무시 쪽에 가까워요. 같이 간 18세 아드님 조차도 마무리가 저게 뭥미,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영화 보면서 저런 시를 떠올리는 굿바이 님이라니, 아유우우우! 멋져라. :)
저 시는 저도 기억나네요. 황지우 씨,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한예종 사건은 일단락 된 걸까요.

Arch 2011-07-2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고 저도 보고 싶었는데 결말이 좀 아쉽네요. 안톤의 선택을 보면서 나도 그러고 있지 않나란 생각도 들고.

치니 2011-07-29 12:15   좋아요 0 | URL
네, 결말을 빼면 전체적으로 괜찮았다는 생각이에요. 안톤은 수많은 우리들의 자화상 같아서 보면서 가장 마음이 불편.
사족인데, 저는 암턴 부모 자식 간에는 무조건 솔직한 게 최고다, 이런 교훈도 얻었습니다. ㅎㅎ

chaire 2011-08-2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나서 이상하게 엔딩 장면이 생각나지 않더군요.
어떻게 끝났더라, 이 영화? 계속 의문스러웠는데 이 리뷰를 읽고 나니 이제 알겠어요.
엔딩이 후져서였던 거예요. 역시.

치니 2011-08-27 12:33   좋아요 0 | URL
네, 앞에서 고통스럽던 모든 것들이 엔딩에서는 후딱후딱, 아이들도 급 착해지면서, 마치 손님 왔을 때 제대로 청소 못하고 담요로 훅 덮어 놓는 때처럼, 좀 그랬어요. 그렇게 서둘러 마무리 하지 말고, 그냥 열린 엔딩으로 했음 어땠으려나, 그려봤지만 제가 감독이라 해도 자기 주장의 현실적인 가능성을 영화에서나마 보여주고 싶은 유혹은 참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래서 쿨하게 이해해주기로.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