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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베러월드 - In a Better Worl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제는 자연이 대한민국에게 경고를 제법 화끈하게 날려 준 하루였다. 언제건 터질 일이었지만, 아무리 목이 쉬어라 생태/환경주의자가 떠들어도 소용 없던 메시지가, 단 몇 시간 안에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지 않더라도) 그저 전기가 나가고 물이 안 나오고 외출이 불가능한 상태로 이어지자, 모두의 마음에 웅변적으로 박혔던 날.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물리적인 대상이 눈앞에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빌 정도의 상황.
그런 자연 앞에 모두가 힘을 합쳐도 마땅할 이 판국에, 우리 인간은 지들끼리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운다.
폭력을 휘두르느냐 아니냐는 둘째 문제다.
우선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사실상 통제불가다.
영화 속 안톤은 비폭력주의자 -폭력이 난무하는 아프리카에서 난민을 돕는 의사로써, 인도주의에 입각해 그 폭력의 원흉인 살인마 빅맨의 다리를 고쳐주지만, 사실상 그에 대한 분노를 자기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주변 원주민들의 '표출해도 무방한' 분노를 통해서 해소한다. 아니, 해소 정도가 아니라 무임승차라 표현해도 좋겠다. 자신은 점잖게 나를 때리는 사람에게 다른 한 뺨을 내줄 만큼, 그리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온다는 것을 아이들 앞에서 과시적으로 보여줄 만큼 인간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남고, 보다 원초적인 본능에 솔직한 사람들의 폭력을 묵과한다. 그럼으로써 그가 정작 심적으로는 가장 자기만족적이고 안전한 테두리 안에 머문다는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도 안톤 자신이 알 게다. 안톤의 모습은 문명화 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 혹은 자고나면 목숨 걱정부터 해야 하는 전쟁통에서 살지 않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 안톤처럼 비폭력주의로 자족한다 해도, 이 세상의 끔직한 상황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만 우리는 진정 평화로운 세상(인 어 베러 월드)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럼 당장 어찌 해야 하는가. 끊을 수 있는 지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곧이 곧대로 더 분노에 찬 아이와 덜 분노에 찬 두 아이를 통해 답을 보여준다. 감독이 생각하는 답 그대로. 화해와 용서와, 더 성숙한 사람들의 인도로, 문제는 일단락 된다. 인 어 베러 월드로 가는 길이 참 정직하고 단순하다. 영화 전반에서 그토록 모순적이고 용서되기 힘들던 의제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과연 수잔 비에르 감독은 영화 속 자기모순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감독은, 아마 길이 남을 명작 만들기 보다는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책무가 본인에게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극의 전개상 약간은 황당하고 성급해보일 수 밖에 없는, 세상과의 화해 모드를 조장하는 엔딩이, 어떤 관객 - 나 같은 - 에게는 엔딩 전까지 느꼈던 영화에의 공감을 확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감독의 선택이 과연 현명했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영화 뿐만 아니라 좋은 예술작품은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질문에 대한 고민을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그 가치가 있음을 설마 감독이 몰랐을까. 아무래도 엔딩이 너무 아쉬운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