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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 패권국가 중국은 천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마틴 자크 지음, 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본격적인 어메리칸 드림이 활개를 치던 시절에 태어났다.
그런 시절의 분위기에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는진 모르겠으나, 두 오빠 중 하나는 10년 넘게 미국생활을 했고 나머지 하나는 미국으로 넘어가 15년이 넘은 지금도 여태 거기 살고있다.
곁에서 구체적으로 그 안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게 미국에 대한 환상은 초장부터 없었다.
청교도적인 개척 정신이 실제로는 인디언을 말살한 폭력적 지배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는 꼬락서니가 엄청 미웠고 다른 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대단한 척 유세 떠는 것, 멍청한 겉모습 뒤에 숨어있는 '머니 이즈 에브리싱' 사상도 꼴보기 싫었다.
그래도 영어를 무조건 공부해야 했고 미국을 무시한 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야 맞는 시절을 오래 견뎠다. 그렇다,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는 죽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논리가 당연시 되었다.
미국에 대한 비호감이 어느 정도 사적인 경험과 취향에 따른 것이라면, 중국에 대한 감정은 먹는 음식에 장난치는 사기행각을 주로 보여주는 국내 뉴스에 따라 좌지우지 되었고 짧지만 불신을 조장하기엔 충분했던, 내가 무역업에 연관된 업무를 할 때 보여준 중국인의 모습에 의해 역시 좋지 않게 조성되어 왔다. 그 뿐인가, 베이징의 그 숨막히는 공기와 미친듯이 질주하는 차와 자전거의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 상하이 삐까번쩍하는 호텔 뒤에서 손을 내밀고 한 푼이라도 동전을 받으려고 애쓰던 거지들의 모습, 자연을 마구 훼손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개발의 명목 하에 이루어지던 대대적인 공사들, 달라이 라마를 통해 대변되던 티벳에 대한 비인간적 조치, 올림픽 때 안면근육이 마비될 정도로 정형화 된 웃음을 지으며 선수들 뒤에 서 있던 도우미 여성들의 작위적이고도 안쓰러운 대국가 봉사활동...등등, 뭐 하나 선진국이 다 되었구나 라고 느낄 만한 요소는, 개인적으로 거의 전무했다.
그래도 높은 경제 성장율과 위안화 가치 상승, 중국어를 배우려는 열풍, 눈 깜박할 새에 온통 메이드 인 차이나로 점철되는 상품들, 미국에게 꼼짝 못하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세를 주무르는 외교력을 문득 문득 확인하면, 뭔가 서늘하게 감지되는 두려움이 솟기도 했다.
그래서 읽었다. 정말, 중국이 세계 1위 강대국이 되는 날이 올 것인가, 온다면 언제인가, 그 때는 또 지정학적으로 약세이고 분단의 현실을 안고 사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대비할 수 있기는 한 건가, 아니 이미 대비하고 있는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책은 상세하고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복 설명이 많아서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저자는 애당초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건 시간 문제일 뿐 그 당위성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에, 전제에 대한 반박 외에 특별히 반박할 만한 억지는 없다(고 보여지지만, 내가 중국문화를 잘 안다고 볼 수 없기에 정작 중국인 대다수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지는 모르겠다).
서구 민주주의가 반드시 최선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은 자성과 통찰을 보여주고 중국과 유럽, 중국과 미국, 중국과 일본의 관계 역학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시종일관 객관적이고, 데이터의 적절한 인용으로 저자의 신중한 예측에 지지를 보낼 만도 하다.
그런데 한국은? 아시아의 용 중 한 마리로 표현되곤 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책 속에 그다지 많이 기술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마틴 자크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인 나라, 앞으로 중국에게 순순히 조공할 나라 정도로 보일 뿐, 분단국가이며 중국과 마찬가지로 5천년 역사 속에 민족주의가 팽배한 국가라는 점이 그다지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심정적으로 무관심하고 먼 나라인 듯하다. 뭐, 그럴 만도 하다. 한 권의 책에 모든 국가를 샅샅이 비교해 놓을 순 없으니 순위에서 밀린 것일 뿐. 그러나 다 읽고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니까 나는 어째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아서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그저, 큰 그림을 다른 시각으로 그린 걸 봤으니 나만의 시각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고민이나 잠시 해볼 뿐.
그냥, 화성에서 외계인이 유에프오 타고 들어와서 지구를 침공하고 우리들 중 원하는 사람만 다 화성으로 데리고 간다고 하면, 거기나 따라가볼까, 엄한 상상이나 하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