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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느와르 - Café Noi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홍상수, 허우 샤오시엔(이 발음이 맞는 건지 여전히 헛갈림), 김기덕, 심지어 임권택까지 보이는 장면장면들을 보면서 '어 어 그런데 정성일은 어디 갔지?' 라고 의구심을 가졌다.
이 모든 오마쥬, 이 모든 기시감, 그 속살에 정성일은 어디 숨었지?
정성일이라는 이름 석자가 그렇게나 비평가로써 맹위를 떨치지 않았으면,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는 영화였을텐데.
그러나 분명한 사실, 이것은 그 누구의 영화도 아닌 정성일의 영화다.
어차피 그런 오해와 이해와 누명까지 감수하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므로,
정성일의 영화는 정성일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했던가.
다 보여주려고 작심해서인지, 아니 다는 아닐 지라도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컷 해보자는 욕심이 보여서였는지, 영화는 부러 차용했을 문어체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많아 죽겠는데 그래도 다 못하는' 어떤 사람의 갑갑한 심사처럼, 그러나 그 할 말이 많아 죽겠는 심정 만큼은 알아주고 싶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지독하게 깊은 어떤 소년을 바라보는 너그러운 감상으로 보는 이를 묘하게 이끈다.
배우들 역시 각기 그 열정에 지독하게 오염되어 있었는데, 그런 그들의 진지함과 열의에 박수를 쳐줄 망정 어째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이 숭배하는 영화인에 대한 동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는데,
정유미 - 그녀만이 이 어색함과 불편함을 시원하게 날려주는구나.
그녀는 이것이 정성일의 영화든 아니든, 소위 예술영화이든 아니든, 그저 '연기'하는데 집중한 유일한 배우로 보인다.
오래오래 살아남고 오래오래 사랑받을 배우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하는 순간.
입장 전 화장실은 필수, 가능만 했다면 인터미션이 있어도 좋았을 러닝타임 3시간 20분의 영화.
만드느라 고생한 만큼, 보느라 고생해도 그럴만 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려줄 수는 있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