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느와르 - Café Noi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홍상수, 허우 샤오시엔(이 발음이 맞는 건지 여전히 헛갈림), 김기덕, 심지어 임권택까지 보이는 장면장면들을 보면서 '어 어 그런데 정성일은 어디 갔지?' 라고 의구심을 가졌다.
이 모든 오마쥬, 이 모든 기시감, 그 속살에 정성일은 어디 숨었지?

정성일이라는 이름 석자가 그렇게나 비평가로써 맹위를 떨치지 않았으면,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는 영화였을텐데.
그러나 분명한 사실, 이것은 그 누구의 영화도 아닌 정성일의 영화다.

어차피 그런 오해와 이해와 누명까지 감수하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므로,
정성일의 영화는 정성일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했던가.
다 보여주려고 작심해서인지, 아니 다는 아닐 지라도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컷 해보자는 욕심이 보여서였는지, 영화는 부러 차용했을 문어체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많아 죽겠는데 그래도 다 못하는' 어떤 사람의 갑갑한 심사처럼, 그러나 그 할 말이 많아 죽겠는 심정 만큼은 알아주고 싶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지독하게 깊은 어떤 소년을 바라보는 너그러운 감상으로 보는 이를 묘하게 이끈다.

배우들 역시 각기 그 열정에 지독하게 오염되어 있었는데, 그런 그들의 진지함과 열의에 박수를 쳐줄 망정 어째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이 숭배하는 영화인에 대한 동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는데,
정유미 - 그녀만이 이 어색함과 불편함을 시원하게 날려주는구나.
그녀는 이것이 정성일의 영화든 아니든, 소위 예술영화이든 아니든, 그저 '연기'하는데 집중한 유일한 배우로 보인다.
오래오래 살아남고 오래오래 사랑받을 배우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하는 순간.

입장 전 화장실은 필수, 가능만 했다면 인터미션이 있어도 좋았을 러닝타임 3시간 20분의 영화.
만드느라 고생한 만큼, 보느라 고생해도 그럴만 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려줄 수는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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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3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는 가장 좋은 세 가지 방법은, 첫번째,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보기, 둘째, 영화에 관한 글을 써보기. 셋째,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보기라지요.
키노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1인으로서 이 영화가 무척 궁금했습니다(만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치니 2010-12-31 14:58   좋아요 0 | URL
오, 그랬군요! 셋째,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세 가지 방법을 다 해본 거군요, 정성일씨.
혹자는 '그렇게 남의 영화 잘도 까더니, 그래 니 영화는 얼마나 깔 수 있나 어디 한번 보자'는 심보로 이 영화를 보러 갈 지도 몰라요. ㅎㅎ 이렇든 저렇든 많은 사람들이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Jude님, 올해 안 좋았던 일은 다 버리고 좋았던 것만 소중하게 잘 감싼 채 내년을 맞이해요, 우리. :)

... 2010-12-31 18:00   좋아요 0 | URL
"그렇게 남의 영화 잘도 까더니, 그래 니 영화는 얼마나 깔 수 있나 어디 한번 보자"==> 오호, 갑자기 저도 이런 맘이 생기는 데요? 하핫 --;; 그래도 심하게 까이면 상처받지 않을까요? ^^

치니 2011-01-01 20:38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제가 접한 정성일씨는 상처 잘 받으실 거 같은 이미지였지만, ㅎㅎ 그래도 뭐 어느 정도 각오는 하시지 않을까요.

네오 2010-12-3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진짜 인터미션 없더군여^^; 많이 잡히지 않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한 영화였습니다.

치니 2011-01-01 20:39   좋아요 0 | URL
아, 네오님, 제 서재에 처음 댓글 달아주신 것 같은데 반갑습니다. :)

인터미션이 영화에선 안 되라는 법 없으니까, ^-^;; 몸이 좀 안 좋으시거나 방광이 작은 분들을 위해 고려해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진짜루. ㅋㅋ
네오님이 하셨다는 생각은 어떤 것들인지 궁금합니다.

네오 2011-01-02 13:0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여(인사가 늦어네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여,,댓글 고맙습니다..흠;; 우선 (정성일의 말을 빌려) 즉각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아 이 영화가 남자에게는 절대로 희망을 보이지않고 절망만 보는구나였구 여자에게는 지속적으로 살아야만한다. 어떻게 해서든지,,아마도 이런말이 허용된다면 이 영화는 우리세대의 어린소녀가 다음세대의 성숙한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러니깐 3시간 영화보다는 그를 둘러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너무나 중요하게 보였습니다.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마치 서울이라는 공간, 현대라는 시간안에서 한번 사유해보게끔 한 영화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아마도 저는 이 영화가 위대한 영화는 아닐지라도 제 개인적인 체험에 기대어서 본 연애예찬기록문이었습니다..

치니 2011-01-02 12:44   좋아요 0 | URL
예, 각자의 개인적 체험에 따라 내용이 시사하는 바도 다르게 느껴질 거 같은 영화였어요. 남자와 여자라는 대상을 나누어 각기 희망과 절망을 보게 해준다는 시점이 신선하십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못해봤네요. ^-^; 다만, 저더러 만들라고 해도 못하겠지만, 왠지 정성일씨에게는 영화 속 사족처럼 느껴지는 것들을 조금만 더 다듬어서 다음에는 좀 더 깔끔한 영화를 만들어보시라고 말하고 싶은 장면들이 있었어요. 뭐, 이런 심정이야 관람자의 오만이고요. ㅎㅎ 아무튼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에요.

네오 2011-01-02 12:50   좋아요 0 | URL
치니님의 말씀이 저에겐 큰 가르침입니다..진심입니다^^

치니 2011-01-02 13:11   좋아요 0 | URL
어이쿠야, 그럴 리가요. :)

프레이야 2011-01-0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이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중 마지막 세번째 방법으로 '영화 만들기'에 도전한
영화라지요. 상영시간이 긴 이유도 영화가 말하는 게 그것에 포함되었다고 말할 정도니
더욱 궁금해지는... 보기 전 화장실 필수겠네요, 정말.
정유미 때문에라도 보고싶어지는 영화에요.
치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치니 2011-01-01 20:4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함 보시고 또 좋은 감상평 써주세요.
저는 글쎄, 아직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애매한 리뷰가. 하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

레와 2011-01-0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전 고민하다 일단 패스해두었습니다. ^^;

치니 2011-01-03 17:40   좋아요 0 | URL
하하, 네, 엉클분미 보고 이 영화를 바로 본다면 그것은 고문이 될 지도;;;

산사춘 2011-01-0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3시간 20분짜리로 나왔군요.
키노세대로 살았던 20세기가 떠오르네요.
세심한 평 잘 참고하겠습니다~

치니 2011-01-10 12:03   좋아요 0 | URL
산사춘님 이 영화 보고 리뷰 남겨주시면 디게 재밌겠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