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마지막처럼 대하는 법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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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말하는데, 이 책 한 권으로 우리는 소설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물론, 원한다면) 선사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아는 소재인데다 무겁기까지 한 사건을 끌어들여 이야기를 직조하는 것이 (물론, 어려울 테지만) 이토록 남다른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고,
주인공 오스카의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잊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우리가 (혹은, 나만) 몰랐던 자잘한 상식도 덤으로 갖게 되고,
그 상상력은 이를테면 이런 식: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뉴욕의 모든 베개 밑에서 저수지로 이어지는 특수 배수구를 발명했다. 사람들이 울다가 지쳐 잠이 들 때마다 눈물이 전부 같은 곳으로 흘러가게 되면, 아침마다 일기예보관이 눈물 저수지의 수위가 올라갔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라서, 단순히 이 상상력과 발명의 재기발랄함에 놀라는 것 뿐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즐겁고 감동적인) 착각까지 하게 해주며,
한편 로드무비 같다가, 다른 한편 전쟁영화 같기도 하고, 성장영화 같다가, 애절한 사랑영화 같으면서, 읽는 내내 마치 커다란 스크린에 가득 찬 화려한 인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그대로 ‘보는’것 같은 효과를 주어서 먹지도 마시지도 싸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이야기에만 몰입하게 할 뿐 아니라,
주인공 포함 모든 인물과 풍경을 최대한 완벽하게 묘사하는 ‘디테일’의 힘과 과거와 현재를 독특한 구성으로 넘나드는 자유롭지만 대범한 ‘스케일’이 빚어내는 완벽한 균형의 미를 감상할 기회를 주고,
아아아, 무엇보다도, 눈물을 문자 그대로 쏟아내게 만든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데 눈물과 콧물이 책에 투두둑 떨어지면 책을 망가뜨릴까봐 조심스러워 얼마나 손잔등으로 훔쳐냈는지 나중엔 소매도 반들반들해지고...)

책을 읽고 그 책의 여운 때문에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밤새 뒤척이며 그 안의 내용을 되새기며 마치 내 일처럼 어땠을까 어쩔까 생각하게 된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가깝게는 연평도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어머니들이 떠올랐고, 민간인들의 가족이 떠올랐지만, 멀게는 오래 전 읽었던 ‘안네의 일기’까지 생각나면서, 내가 이토록 무사안위에 빠져도 되는가,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가끔 소망한 것처럼 ‘제발 아무도 안 다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하지 않겠다. 그저, 제발 우리 모두 조금씩 더 서로를 껴안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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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0-12-0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이어폭스 깔아서 쓰시면 됩니다. 저도 순전히 알라딘 때문에 맥북에 파이어폭스 깔았다는 -_-

치니 2010-12-08 12:28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진작 턴님에게 물어볼 걸)

다락방 2010-12-0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세! 전 일부러 띄어쓰기 안하고 쓰신 리뷰인줄 알았어요.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리뷰를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의도된 리뷰이겠지, 하고 말이지요.

별다섯이군요, 별 다섯!! 별 다섯이에요!
이 책은 소장하시는게 좋을텐데요, 치니님. 구간이라 비싸지도 않을거에요.
이 책의 놀라운 점은 말이죠,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도 가끔 꺼내어 아무데나 펼쳐봐도 읽었던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서 눈물이 핑- 돌게 만든다는거에요.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오스카,
자신은 평화주의자라서 선생님의 그곳을 찰 수 없다고 말하는 오스카,
이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치니 2010-12-08 13:07   좋아요 0 | URL
바보스럽지만, 어젯밤 내내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쓸까, 얼마나 기발하게 쓸까 막 그런 생각을 했다구요. 아흑 그런데 오늘 아침 나의 맥북은 윈도우로 넘어가면 완전 절뚝이, 그냥 쓰려니 행 나누기 안되는 맥용 사파리(익스플로러 대신 있는거에요), 혼자 막 좌절하다가 그냥 에라 ~ 하고 썼죠.
(전 사실 행 나누기 안된 글이나 띄어쓰기 무시하는 글을, 아무리 의도적이라 해도 좀 불편해하는 독자라서, 제가 스스로 그런 의도를 갖는 일은 앞으로도 거의 없을 거여요. ㅎ)
그랬더니 역시 턴님이 이렇게 즉각 해결안을 내주시네요, 알라디너 살앙해요! :)

오스카에 대해서라면 몇날 밤을 새면서라도 말할 게 너무 많아요, 다락방님. 으헝헝.

다락방 2010-12-08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치니님께 추천하면 별이 거의 대부분 넷이었던 것 같은데(죽음의 수용소에서도 그렇고 올리브 키터리지도 그렇고) 이 책은 다섯, 다섯이에요.
아 눈물나 ㅠㅠ

치니 2010-12-08 13:06   좋아요 0 | URL
그랬나요? 아 - ^-^;;
이 밑에 리뷰 써놓고 참 거시기하지만요, 올리브는 오스카에 비하면 쨉도 안돼요. 진짜루. 으헝헝.
사실 알라딘에서 가능만 하다면, 별 10개 주고 싶었다구요.

다락방 2010-12-08 13:38   좋아요 0 | URL
이 책 안읽었다고 제가 치니님께 바보라고 그랬던거, 이제 왜그랬는지 아시겠죠? ㅋㅋㅋㅋㅋ

치니 2010-12-08 13:43   좋아요 0 | URL
네네, 이제 완전 알아먹었어요. 지금 H에게도 꼭 읽으라고 쪽지 보낸 참. 이 책 안 읽는 사람들은 다 손해보는 거니까 바보 맞죠. 흐.

레와 2010-12-0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ㅋㅋ;;

꼭 읽겠습니다!! (불끈) ㅎㅎ

치니 2010-12-08 14:0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우리 눈물 많은 레와님, 벌써부터 걱정된다. ^-^;;

2010-12-08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8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디 2010-12-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위에선 '왜 그 슬픈 손바닥 책 있잖아' 라고 불리웁니다. 마음의 준비가 안되서 다시 못 읽겠어요.

치니 2010-12-09 12:52   좋아요 0 | URL
슬픈 손바닥 책...아, 주이님. ㅠㅠ

토니 2010-12-1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바보 한명 추가요! ㅋ 공돈이 생겨 몸에 치장 한번 해보려고 했더니 흠... 또 책을 사게 만드시는 "우리의 치니님". 기대되네요. 전 아직도 백의 그림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네요. 그 책이 주는 따스함에서.

치니 2010-12-09 16:27   좋아요 0 | URL
오, 공돈이 생겼어요? 좋으시겠슴다. :) 책도 사고 치장도 하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