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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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뉴욕에 도착한 날, 뉴욕 중심 한복판에는 쌍둥이 빌딩이 없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제가슴도 그 빈자리로 퀭하니 불어오는 바람에 아직도 저릿한데, 하물며..

 

오스카의 상처는 911테러로 아빠를 잃었다는 자체보다, 마지막 순간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자신으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분노는 그날 빌딩으로 날아 든 비행기가 아니라, 끝내 울리는 전화를 받지 못한 자신에게 향합니다.

"그런 얘기를 꼭 해야겠니?"
"네."
"지금?"
"네."
"왜?"
"제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넌 내일 죽지 않아."
"아빠도 그 다음 날 돌아가실 줄은 모르셨죠."
"너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빠한테도 일어나지 않을 거였어요."

소설의 다른 한축인 오스카의 할아버지의 이야기 역시, 해야할 말을 표현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날 밤 네 어머니와 난 내가 돌아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었어, 마지막 같지가 않았어, 난 애나에게 마지막으로 키스한 적이 있고, 우리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보았고, 마지막으로 얘기를 했지, 왜 모든 것을 마지막처럼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가장 한스러운 것은 미래를 너무 많이 믿었다는 거야"

긴 시간을 돌아온 할아버지와, 앞으로 긴 시간을 살아가야 할 오스카에게 남긴 할머니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첫장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그날 "세계의 창"에서 낙엽처럼 떨어지는 사람들을 거꾸로 되돌리는 사진을 넘기다가 그만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습니다.

어린 오스카에세 '무거운 부츠'를 신기고 아직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를 건드린 작가의 음흉한 의도가 괘씸하지만 ,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로 상처를 다독여 주었으니 용서해 주기로 하죠. 원점으로 돌릴 수 없다면, 잘 아물게 치유하는 길 밖에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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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 거기 있니, 있다면 내가 꼭 안아줄게
    from 음... 2010-12-08 14:22 
    감히 말하는데, 이 책 한 권으로 우리는 소설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물론, 원한다면) 선사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아는 소재인데다 무겁기까지 한 사건을 끌어들여 이야기를 직조하는 것이 (물론, 어려울 테지만) 이토록 남다른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고, 주인공 오스카의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잊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우리가 (혹은, 나만) 몰랐던 자잘한 상식도 덤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