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남들처럼 열심히 응원하는 것도 아니고, 더위를 유독 타는 것도 아닌데, 뭐 하고 다니느라 독서량이 확 줄었나 봤더니, 뻑 하면 손에 쥐는 아이폰과 트위터, 요 두 놈이 은근 활자에 코 박는 걸 막는 주범 같다. 아이폰과 트위터의 장단점은 나중에 또 심심할 때 주절댈 기회가 있겠고, 오늘은 그나마 찔끔찔끔 읽어 온 책들에 대한 짧은 소감이라도 적어두자.
- 나이는 어리지만 천재적이라거나 문단의 악동이라거나 놀라운 신예, 이런 식의 소개가 띠지로 둘러져 있는 책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도는 그다지 낮아지지 않아서, 대체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인간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라는 쓰잘데기 없는 궁금증에 이런 책을 덥석 받아 읽었다.
결국 오랜 시간 감동을 주는 훌륭한 책은, 단순히 천부적이라고 불릴만한 재능으로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눈이 핑핑 돌아가는 명품 브랜드 명은 하나도 못 외웠다.
- 특집 기사나 어려운 비평 같은 건 휙휙 넘겨버리고 대뜸 시랑 소설 난부터 읽었다. 시는 여전히 잘 읽히지 않는다. 내가 문제인가 요즘의 시가 문제인가, 물론 내가 문제일 것. 시는 늘, 나중에 읽어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은, 여타의 창작물에 비해 쫓기는 기분이 덜한 것이기에 스스로 시가 잘 읽혀질만큼 열려 있을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한다.(그런 때가 잘 오진 않더라만!)
소설 중에는 김애란과 공선옥의 연재물을 읽었는데, 공선옥의 그것은 지난 번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아서 재미가 덜 했지만 목표점에 다가가는 동안의 끈기와 결의가 돋보였고 김애란의 그것은 위의 <헬> 작가에게 느낀 엷은 실망감과 겹친다. 재기발랄, 이라는 수사는 작가에게는 그닥 칭찬이 되지 못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 아직 3분의 2 정도 읽었으니 소감을 말하기 애매하다만, 어차피 얼렁뚱땅 쓰기로 했으니 일단 지금까지 읽은 것만 두고 말하자면, 에이 김용철 변호사 별로 매력이 없다.
비교 대상이 될 같은 기준이 없기는 하지만, 그냥 법조계 비리를 다뤘다는 점만 두고 보면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이 훨씬 재미있고 의미도 크게 다가왔다는 생각.
삼성 식구들의 귀족적이고 사치스러운 생활의 일면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한다든가(비리와 관계가 없지는 않지만 이건희와 홍라희가 어느 옷 브랜드와 시계 브랜드를 착용하는 지는 정말 관심 밖이건만) 하는 부분은 삼성 이야기를 정사가 아니라 야사로 추락 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기사나 보도자료와 그다지 구분이 안 되는 장황한 설명이 좀 지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생각. 모르고 비판하는 것보다는 알아야 그래도 떠들 자격이 있단 생각에 좀 꾸역꾸역 읽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삼성을 생각' 해야지, 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