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내가 굳이 말 할 일이 있을까 싶어서 읽어보지 않았드랬다. (제목 그대로의 내용만 있기야 하겠냐마는, 단순한 치니는 책 고르는 방식이 이 수준이다.)

그런데, 오늘, 아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일은 없지만, 읽었으나 읽었다고 할 수 없는(차마 양심 상), 그런 책들이 종종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근 그렇게 읽다 치워 버린 -_- 책들이 떠오르면서, 마치 남들이 다 맛있다는 음식을 나만 제대로 맛 보지 못하는 특이하거나 무감각한 입맛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삭이지 못하고, 이렇게 괜히 끄적거린다.  

우선, 이 사람이 유명한 패션 잡지의 에디터라는 배경을 알고도 이 책을 읽는게 아니었다. 그 잡지에 이 사람이 올린 글들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있고, 그래서 이런 책도 나온 모양인데...나로 말하자면, 그 잡지를 읽어 본 적도 없고, 이 분의 다른 책이나 기고문을 읽어본 적도 없다. 

우선 이 사람이 넓게는 문화 전반, 좁게는 생활 속 패션과 욕망에 대해 대처하는 자세를 이해하는 것은, 수십년 된 옷도 잘도 걸치고 다니며 패션계의 변화 같은 것에 평소 완전 무감한 나 같은 이에게는 참으로 고역이었다. 예컨대, 명품에 대한 입장만 봐도 그렇고, 앤티크에 대한 사랑만 봐도 그렇다. 그런 명품 브랜드 중 몇은 모두가 아는 네임밸류를 지닌 터라 들어는 봤지만, 뭐든 관심 없는 건 금방 까먹는 내 주제에 여기 나오는 그 온갖 유명(하다는) 브랜드들의 이름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이 되고 말거니와, 앤티크는 아무래도 돈 있고 외로운 사람의 사치라는 생각을 가지고 가구란 모름지기 실용도가 최선이라 생각하는 내가! 이런 내용들을 따라잡기란 애당초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아저씨, 왜 이렇게 수사가 많은지. 원래 글 쓰는 스타일이 그런건지, 소비 욕구를 가진 문화인과 물신론자 사이에서 애매하게 변호인의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 그런건지, 아무튼 읽다가 오리무중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쇼핑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 같이 쇼핑 거부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라 휙휙 넘기고 말았는데,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으니, 해외 면세점에서 사는 물건들은 카드 할부가 안되어서 사고 싶어도 눈물을 머금고 못 사는 경우가 있다는 대목. 의심 쩍어서 다시 이 책의 출간 년도를 보니 1년 정도 전인데...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면세점 물건을 사고, 한국에 돌아와 할부를 신청한 바 있다. 이렇게 모든 쇼핑 노하우에 빠삭한 아저씨가 그런 것도 모르다니, 본의 아니게 약점을 보이시는게 차라리 귀엽기도 하다만, 자기 글에 대해 사실 여부도 철저히 검열하지 않고 책을 냈다는 점에서 감점 요인이 된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도대체 저 책을 왜 샀냐 라고 물어볼 지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 고백하자면, 사실 내가 읽자고 산 것이 아니고 명품 브랜드 회사에 면접 보러 가는 친구 때문에 이 책이 도움 되지 않을까 하고 샀다. 세태를 좀 알아야겠지 않나 해서. 그런 목적만 가지고 읽는다면 세태는 좀 읽힌다만, 순수하게 독서에서의 감흥을 기대하고 읽는 분들에겐 비추라는 결론이다. 

 위 책에 비하면 자못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이 책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케이스에 속한다. 

저자의 자서전과 같은 이야기라기보다는 저자가 읽은 책들에 대한 리뷰, 그리고 그런 리뷰 속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아포리즘 정도를 기대했었기 때문.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책은 중반까지 계속 자서전 투다. 

솔직히 이 책으로 처음 대하는 저자의 어린 시절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데다가, 저자가 그토록 열망하고 읽었다는 소설들은 대부분 내가 모르는 추리소설이나 SF물이었던 것. 

그래도 중반 이후 읽다보면 이제는 내가 아는 책들도 나오겠거니, 하면서 읽으려고 눈을 꿈벅여봤지만 도서관 반납일은 다가오고, 흥미도는 올라가지 않아서 포기. 다음에 혹시 이 저자의 다른 책을 만나면 그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은 들었지만, 아마 게을러서 안할 게 뻔하다. 

이런 독후를 적고 나니, 나에게 책이란 정말 오락거리로써의 역할이 가장 크구나 싶다. 한마디로, 재미없으면 말짱 꽝. -_-;; 이런 태도가 근시안적인 독서습관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겠다 싶어서 은근 반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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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9-01-1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재미 없으면 말짱 꽝. 그런데 독서는 근시안적으로 즐거워하는 데서 시작해야 멀리 갈 수도 있는 것이니 반성은 말아 주세요. 치니님이 이정도에 반성하시면 전 고백성사 봐야 돼요.

다락방 2009-01-14 09:13   좋아요 0 | URL
저도 네꼬님과 같아요. 이정도에 반성하시면 저는 유배생활 떠나야 해요 -_-

치니 2009-01-14 11:54   좋아요 0 | URL
하핫, 역시 네꼬님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남까지 위로해주는 솜씨가 최고에요.
말씀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놓이는 걸요.

다락방님, 역시 우리는 같은 꽈였군요. 헤헤.

2009-01-13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4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1-1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저도 즐거워서, 재밌어서 독서해요. 무언가 목적이 있지도 않고 말이죠. 그래서 역시 재미없으면 꽝, 이고 지루해도 꽝, 이어요. 저도 근시안적인 독서습관에 편애라기 보다는 편식이 심한 독서를 하고 있답니다. 하핫 ;
:)

치니 2009-01-14 11:57   좋아요 0 | URL
네, 즐겁지 않으면 재미있지 않으면 인생 그까이꺼 뭐 있겠습니까. (이제 마구 베짱 부리는 치니)
저 역시 편식이 심해서 고쳐보려 했는데, 안 그래도 되려나 슬그머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2009-01-14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9-01-17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충걸 아저씨 책. 저도 사놨는데. ㅎㅎㅎ
아직 못보고 있긴 하지만, 재밌겠지, 하면서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음. 그런데 재미가 없군요. 털썩.

치니 2009-01-17 16:50   좋아요 0 | URL
'재미가 없다'라고 단언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웬디양님은, 쇼핑에 관심이 있고 나만의 물건을 갖는 즐거움이랄까 그런 걸 아시는 분이니까 저와는 달리 재미있으실 수도. ^-^


라로 2009-01-22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흑 오픈북 재미없으셨어요??????
전 넘 재밌었는데,,,ㅎㅎㅎ막 공감가고 막 재밌고 그래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ㅎㅎ
전 책을 읽을 때, 그러니까 가끔 오픈 북과 같은 책을 읽을 땐 굉장히 주관적이 되나봐요,,,
뭐 제가 원래 자서전적인 책을 좋아라 하기도 하지만...암튼 저 왔어요~.ㅎ

치니 2009-01-22 12:46   좋아요 0 | URL
사실, 오픈북을 찜 해둔 건, 나비님이 언젠가 강력 추천 페이퍼를 쓰셔서 였어요.
^-^ 그래서 기대가 너무 컸거나, 제가 작가가 언급하는 책들을 죄다 모르기 때문이거나 (-_-;;), 자서전 류에 요즘 관심이 별로 안가서...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큰 재미를 못 느낀거죠.
암튼,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기뻐요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