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미술의 고백 -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칠 현대 미술에 대한 다섯 답안
반이정 지음 / 월간미술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미술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는 중에도 ‘현대미술’은 어딘가 친숙하지가 않다. 세기와 국경을 초월한 옛 미술보다 ‘현대’의 미술이 오히려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나만 그런가?) 게으른 성격 탓에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지만, 현대 미술을 설명하는 글과 책의 도움을 받으려고 몇 번 시도해보았는데 대부분 허사로 돌아갔다. 그들의 입장은 대체로 둘 중 하나였다. 지나치게 심오한 의미를 주어 거부감을 느끼게 하거나, ‘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세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하고 이렇게 쉬운 걸 ‘모르는 나’를 무안하게 하거나.


<<새빨간 미술의 고백>>은 그런 점에서 반가운 책이었다. 저자는 “관념적 용어로 작가의 천재성을 추켜세우”지도 않고, 현대미술은 그저 만만한 것이니 걱정 말라고 무작정 안심시키지도 않는다. 저자가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다섯 개의 창은 ① 패러디 ② 적극적인 사회비판 ③ (소재의) 경량화 ④ 옥(미술관)외 예술 ⑤ 타 장르(특히 미디어)와의 교류다. 이 다섯 항목에 따라 차근차근 2000년 전후의 다양한 작품 60여 편을 소개하는 저자의 설명은, 다정해서 마음이 놓이면서도 감상자가 알면 더 좋을 포인트들을 집어주어 적당한 긴장감을 준다. 무엇보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의문을 가지거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슬쩍 꼬집어, 이 미술평론가도 내 편이구나 하는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은 저자의 특출한 장기였다.




안규철 <흔들리지 않는 방> 2003 (사진은 다른 데서 갖고 왔다. 물론 책 속 도판이 더 좋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삶의 기물들을 각목으로 엮어서 단단히 묶어두고 있다. 흔들림에 대한 저항은 불안전한 현실에 대한 강박증을 반영하며 공황장애를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이다.” (125면. 이건 저자가 인용한 ‘작가의 해설’이다.)


이 꼭지 말미에 저자는 덧붙인다 : 이 작품은 인생의 잠언을 담고 있지만 주재료가 각목인 탓에 제작비는 얼마 안 들었겠네요. 그렇지만 인건비와 노동량은 장난 아니었을 듯하죠? “불안정한 현실에 대한 강박증이 반영”된 게 맞는 듯. 예술도 삶도 이처럼 영원하고 지루한 막노동인지도 모릅니다. (127면)


(아무래도 작품 창작자보다도 저자가 작품에 대해 더 잘 아는듯한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소년 마네킹 셋을 목매단 작품,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목매단 아이들>에 쏟아질 비난에 대해 저자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음의 상처는 어쩔 거냐”고요?

만인의 마음에 위안과 안정을 기약하는 것은 더 이상 현대미술의 과제가 아닙니다. (152면)


나처럼 눈이 어두운 사람도 현대미술의 경향을 짐작하게 하는 책, 아니 그보다, 적어도 현대 미술에 거부감을 덜어주는 책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 

별을 하나 뺀 이유는 : 편집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다. 늘 설명이 먼저 나오고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데 좀 방해가 된다. (물론 매 꼭지마다 신경 써서 작품을 먼저 찾아봐도 되겠지만, 독자를 좀 생각해줬으면 하는 서운함이.) 그리고 전시장의 조형물인 경우 아마도 미니어처로 추정되는 작품들이 많은데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도 아쉽다. 이게 작품을 찍은 사진인지, 아니면 사진 자체가 작품인 건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이 정도 작품들은 유명하니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고양이들은 모르고) 작품 옆에 이런 저런 정보를 싣는 게 보기에 예쁘지 않았다면, 책 뒤에 목록을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왕이면 작가들의 국적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걸. 뭐, 고양이들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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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미술은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많아서 놀라게 되요.
그래서 아마 더 친해지지 못하는것 아닐까요.
이 책 한번 보고 싶네요.

네꼬 2007-05-2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 별로 부담을 갖지 않고 읽어도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더라고요. 전 친해지는 것은 좀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흥미는 갖게 되었어요. : )

2007-05-26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26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어머나, 이렇게 찾아주시다니, 당황스러운 한편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다 이유가 있겠지요. 저는 독자로서 불만이라기보다 서운하다는 뜻입니다. 그냥 제 생각에, 그랬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 ) 좋은 책을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도 정말이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