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가을쯤 성북역 막차시간에 버스로 갈아타고 집으로 가는 길.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이제 출발하려는 버스에 마지막으로 올라탄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남자였다. 흠뻑 젖은 몸에 입술을 떨면서 "아저씨 청량리가요?"라는 능숙하면서도 어색한 한국말.
버스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기사 아저씨도 당황한 듯. "차 끊겼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출발하려던 버스는 계속 멈추어 있었고 모두들 어색하게 그 외국인을 쳐다만 보고 있는 상황.
'우리 집에 가자고 할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래야겠다"라고 생각을 했으나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외국인 아저씨가 어떻게 생각할지보다도 버스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인사를 꾸벅하더니 마지못해 빗속으로 내리는 외국인 아저씨를 보며 나는 그 때까지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던지 아저씨가 내리는 걸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계속 그 고민만 했더랬지.
집에 가는 몇 정거장 동안도 진정이 안 되고 떨리는 마음에 아저씨 걱정은 막상 못했던 것 같다.
상황 종료후에도 부끄러워 사람들 눈치만 살피는 바보 같은 모습이 기억난다.
그날 밤 비는 왜 그리도 많이 오는지... 밤새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우산이라도 드릴걸 하는 생각도 하고, 여자밖에 없는 집에 모르는 사람 안 들이기 잘했다는 생각도 하고.
요즘 말도 못하게 뻔뻔해진 나를 생각해보며 '이젠 어느 정도 극복한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 유효한 컴플렉스다. 티는 안 난다지만 급격히 맥박이 빨라지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건 생기길 그런게 태어났으니까.
5년이 지난 올해 여름 성북역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
이번엔 택시를 못 잡고 서성이는 외국인 관광객이 서 있었다. 이번에도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는 나와 몇몇 사람들은 택시를 정류소에서만 기다리니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외국인도 한 시간째 정류장에 서 있고.
정류장이 뻔히 있는데도 우산을 가지고 길가로 나가서 잡는 사람들도 싫고, 일부러 멀찌감치 서서 손님을 고르는 택시도 싫어서 넋 놓고 서 있었다. 그 때 몇 년 전 외국인 아저씨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용기를 내 외국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가세요? 택시 잡아드릴까요?"(저도 못 잡고 있으면서...)
"한국말 못해요."(물론 영어로. 갑자기 책임감이 막중해진 나는 영어로 질문을 한다.)
"..............웰 아 유 프롬?"(웬 프롬...)
"...............................캐나다..."
".............웨얼 아 유 고우잉.."(원래 하려던 말.)
"인터콘티넨탈 호텔 강남!강남!"(아저씨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 택시 잡아줄게요."(한국말)
"땡큐"
그 때부터 사명감에 불타 20여분 후 강남가는 택시를 잡아 캐나다 아저씨 보내드렸다.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돈 많은 사람이 묵는 곳이라는데...
그 날 집에 와서 아내에게 지난 날의 동남아 노동자 아저씨 이야길 했다. 그리고 그 날의 관광객 이야기.
원래 하려던 말은 외국인 체험담이 아닌 요즘 사람들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