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별 일 다 겪게 되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아니, 오늘도  그날이었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 지하철에서 가발 쓴 아저씨에게 토를 했던 장면을 보면서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을 해 봤었는데 오늘 난 미리 생각한 대로 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처럼 머리 통에 좌르르~ 쏟아내지는 않더라. 다만 머리에서 발 끝까지 뿜었을 뿐이다. 
난 <테스>를 읽고 있었고 내가 책에 빠져 있을 때 그 망나니는 먹은 안주를 입 안 가득 물고 삼키고 물고 삼키고 물고 삼키고...... 그리고 엄청난 압력으로 뿜어져 나왔다. 아플정도로  

입 안에 물고 있던 음식물을 한 차례 뿜어내고는 나머지는 지하철 바닥에 게워냈다. 
모두 도망갔고 나와 내 양 옆의 남녀만이 자리에 그대로 않아서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봤다.
 
망나니였다. 그렇게 뿜어내는건 망나니 밖에 없다.

테스를 다시 펼치기 두렵다. 

왼편의 여자는 기억이 안난다. 오른편의 남자는 욕을 했다. 망나니에게 하는건지 어느 운수 나쁜날에게 하는건지 어쨌든 욕을 했다. 엽기적인 그녀의 그 대머리 아저씨 같이 혼자 욕하고 분해했다.
나는... 나는 미리 생각했었던대로 토사물을 닦아냈다. 도망가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볼꺼리는 없었다.   

망나니의 친구는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난 보지도 않았다. 책을 휴지로 닦아냈고, 얼굴을 닦았고 가방을 닦았다. 머리는, 머리는 손 드러워질까봐 손도 안댔다. 아니다 휴지를 펼쳐서 큼직한건 집어냈다. 사과 껍질 같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잔 토사물은 그냥 뒀다. 그렇게 머리에 오꼬노미야끼를 얹은 채 집에 왔다. 동생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동생이랑 동생 남자친구는 웃껴 죽는다. 나도 웃기다.

'잘 어울린다'라는 말은 그런일이 내게 일어난게나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난 원래 별 일이 많이 생기니까. 정말이지 기도 안 찬다. 

머리를 감는데 머리 위 토핑이 손에 느껴졌다. 토할뻔했다. 지하철에서도 괜찮았는데 목욕을 하면서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참으려고 숨을 들이마시자 들이마신 만큼의 구역질이 올라온다. 또 들이 마셨다.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우웩! 다행히 속이 비어 있어서 위액만 조금 밷어냈다. 바가지로 목욕물을 떠 입을 행구고 한 바가지 더 퍼서 반 바가지 마셔버렸다. 기도 안찬다.  

테스를 어디 쯤 읽고 있었더라?? 2부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였다. 테스가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결혼도 못하고 몸만 망쳐왔다고 혼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머리의 토사물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 결국 일어났다. 기도 안찬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갈 수는 없었다. 나는  토사물과 함께 현장에 있었다. 출입문 옆에 기대어 사고 현장을 바라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사람들은 의외로 무심했다. 그리고 빨랐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찰칵'소리에도 사람들이 쳐다도 안 본다. 아! 망나니와 친구는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내렸다. 미안하단 소리 열 번도 더 한 망나니 친구는 세상에서 제일 길었을 한 정거장이었을 거다.  

망나니의 친구가 사죄같은 사과를 할 때 나는 조용히 토사물을 닦았고 주변의 시선을 조심히 관찰했고, 상상했던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했던 대로 대처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고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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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7-25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옆의 여자가 토한 적이 있어요. 근데 그 여자는 뿜지 못하고 입에 물고 있었는데, 저는 그러자마자 황급히 일어났고, 여자 입에서는 계속 새어 나오고. 그런데 그 앞에 있던 여자가 휴지를 꺼내서 주더라고요. 발에 조금 묻은 것도 닦아주더라고요. 저는 너무 부끄러워졌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같은 일을 겪어도, 저는 또 황급히 피할 것 같아요. 차좋아님 글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했으니까.

차좋아 2010-07-25 15:59   좋아요 0 | URL
피할 수 있었으면 저도 피했겠죠. 책에 머리 처박고 있어서 사고 후에야 알았어요. 뿜자 마자는 이게뭐지? 하고 놀라기만 했었어요. 한 번 뿜고 이후에 바닥에 게워 낼때야 상황 이해...ㅠㅠ 정말이지 망나니 지 칼에 물 뿜듯이 뿌~!!하고 붐었어요. 아마 웬디양님도 맞아보면 다 포기하게 될껄요 ㅋㅋㅋㅋ

위 글에 토를 삼키는 장면은 제가 본게 아니라 아마 그랬을 것 같은 내가 보지못한 진실의 장면이랄까... 역류하는 음식물 지가 삼키고, 삼키고, 더 삼키면 더 세게 붐어내잖아요.ㅎ 아마 그랬을 거에요.

멜라니아 2010-07-25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부족 사람들의 심성이 곱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굿바이님은 누구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고
지금 시작하지 않은 책부족 유메미루님도 굿바이님 보다 더하게 착하고
그러다 다시 향편님의 기가차게 별일을 보니 버금가기 어려운 착한 남자네요.
웬디양은 재빨리 피한다고 하였는데, 그건 지하철을 많이 타 본 사람의 재빠름이겠지요?
눈치 빠른 건 민정이도 비슷하고, 저도 아마 미리 도망갔을 거에요.
토하는 거는 자기가 하는 게 아예 낫지
남이 한 토사물, 남이 하는 토 장면. 우웩우웩입니다

그러면 지하철 바닥 보다 차좋아님의 머리 위에 거의 모든 찌꺼기가 내려 앉은 거에요?
오늘도 테스를 읽기가 힘드시겠네요,

차좋아 2010-07-25 16:05   좋아요 0 | URL
제 머리에 소복이 내려앉은 건 아니구요 머리부터 발까지 위에서 아래로 한번 '푸우~~' 하고 붐은거에요. 제가 망나니라한건 꼭 망나니 물 뿜 듯이 뱉어내서 망나니라한거에요.ㅋㅋ 꼭 그런 의미 아니기도 합니다만...
테스 다시 볼 페이지에 토가 촘촘히 묻어있는데 흑.... 그래도 꼭 읽을게요 헤헤 도망 못간 건 예측을 못해서입니다. 착해서가 아니에요 흑

하여간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후애(厚愛) 2010-07-2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곳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짜증이 나려고 해요.
제 서재에 놀러오세요. 이벤트 하는데 참여해 주세요.^^

차좋아 2010-07-25 16:05   좋아요 0 | URL
아!! 곧 가서 참여할게요^^^

Alicia 2010-07-2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향편님 어쩐일이래요ㅜㅜ 언짢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시고.
저같으면 난리를 쳤을 겁니다. 어쩔줄 몰라 더듬거렸을지도 모르고요.
어제 서울가서 불라 들르고 싶었는데 애들이 너무덥다고 불라까지 가기도 힘들다고해서,
그냥 명동에 있었어요.
좋은날 즐거운 얼굴로 다시 만나요^^ 오늘은 최고로 자미난 하루 보내시구요!

차좋아 2010-07-25 16:08   좋아요 0 | URL
별로 언짢지 않아요. 재밌지 않아요? 뭃론 그 때는 망연자실했었지만, 그 망연자실 자포자기한 나도 웃기고, 이렇게 또 이야기할 꺼리 생겨서 재밌고... 전혀 그런거 없어요.ㅋㅋ
어제만큼 스펙타클하지는 않지만 오늘도 역시 즐겁다는...
알리샤님도 즐거운 하루~~

다락방 2010-07-25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핑이 만져졌다니! 으윽. 저 완전 눈 앞에 그 모습이 그려져요! 정말 구역질이 났을거라고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와요. 이제는 좀 개운하십니까? ㅎㅎ

차좋아 2010-07-25 22:54   좋아요 0 | URL
윽!! 또 생각하니 저도 '욱'ㅋㅋㅋ
집에 와서 머리에 촘촘히 박힌 토핑을 손으로 만지기 싫어서 샤워기로 헹궜거든요. 그리고 비눗칠을 하는데 거품으로 머리를 비비기가 두렵더라고요. 남은걸 같이 문지른다고 생각하니 말이죠.ㅋ
일생에 한 번즘 있음직한 일인거 같아요 조만간 다락방님에게도 ㅋㅋㅋ 아 농담입니다.헤헤

hohoya 2010-07-2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향편님이 당한 봉변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도 망나니가 되어버렸습니다.
웃음을 참다가 참다가 뿜었습니다.
남의 불행에 이렇듯 웃어본 것도 실로 오랜만입니다.

차좋아 2010-07-26 23:10   좋아요 0 | URL
헤헤헤 오늘 테스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바로 그 페이지부터요.. 잘 말랐어요. 책도 건더기도 ㅋㅋㅋㅋ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음식물 파편이 아니라 다른 파편이 그렇게 예고 없이 들이 닥치는 세상이니까요. 그렇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도 했고요.

불행이라면 불행일텐데 불행하지는 않아요 헤헤 침잠된 일상엔 약간의 자극도 필요한거 같습니다.

호호야님이 웃으셨다니 완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