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구판절판


내가 생각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할'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남성들이 집에서 노동하지 않는 한, 여성에게 사회 진출은 이중의 중노동만을 의미할 뿐이다.-40~41쪽

여성이 자궁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면 성대가 있는 사람은 모두 오페라 가수가 되어야 하는가? 성대를 가진 사람이 가수가 되는 것은 선택과 노력의 결과이듯이, 어머니가 되는 것 역시 개별 여성들의 선택에 따른 문제이다.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또한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반드시 어머니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해부학이 운명'이라는 프로이트의 가정은 여성에게만 해당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미혼이든 비혼(非婚)이든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전제한다. 사실 '생계 부양자 남성/가사 노동자 여성'이라는 성역할 모델은 극히 일부 중산층만의 전형일 뿐, 대부분의 가정에서 여성은 생계 부양자이자 가사 노동자다. 하지만 여성은 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성 임금의 절반을 받고, 남성은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성보다 더 많이 받는다. 잠재적 어머니로 분류되는 여성 노동자는 노동 시장 진입에서부터 임금, 승진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냐, 노동자냐'라는 정체성을 택일할 것을 강요받거나, 택일하지 못할 바에야 둘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50쪽

어머니가 되는 것은 별로 '자연스럽지' 않다. 어느 사회나 10퍼센트 이상의 여성과 남성이 불임이다. 어머니는 여성에게 부과(강요)된 성역할 제도의 산물이지 생물학적인 결과가 아니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여성이 한 일이 아니라 어머니가 해낸 일이다." 등의 말은, 여성은 성역할에 충실했을 때만 사회의 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한다.남성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남성 명사에는 인(人)이 붙지만, 여성 명사에는 녀(女)가 붙는다. 우리말 여성형 지칭에서 유일하게 인자(人字)가 붙는 경우는 미망인(未亡人, 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여자)뿐이다(이 용어는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가 뒤따라 죽는 인도의 사티 풍습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다.)-53~54쪽

성(姓)의 변경은 어머니가 재가했을 때,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성과 잤을 때 발생한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보았을 때'는 성을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성을 가는 것이 엄청난 사건인 이유는 그것이 계급 재생산이라는 가부장제 가족의 근본 질서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이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어머니 여성이 자신에게 일부 종사할 때만 진짜 자기 아들에게 상속이 가능하다. 여성은 늘 가정적인 존재로 간주되고 어머니는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육체 노동, 감정 노동을 수행하지만 정작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없다. 만일 유림의 주장대로 동성 동본 간 금혼이 우생학적 근거에 따라 근친 간 결혼을 방지하기 위해 존속되어야 한다면, 아버지의 성뿐만 아니라 어머니들의 성이 같아도 금지해야 할 것이다.-57쪽

'탈특권화된' 아줌마와 '특권화된' 어머니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성역할에 충실하며 집에만 머무를 때,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을 때 그녀는 나의 어머니다. 하지만 그녀가 욕망을 드러내며 집 밖으로 나올 때, 남의 어머니일 때 그녀는 아줌마다. 그녀가 집에서 내게 밥을 해줄 때는 어머니지만, 그녀 자신이 음식점에서 남이 해준 밥을 먹을 때는 아줌마다. 여성은 평생토록 서비스를 하는 주체이지 받는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여성은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여성이 공공 장소에서 자기 욕망으로 젖가슴을 드러낼 때 그녀는 필시 몸을 파는 여성이거나 '미친 년'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위해서라면 성스럽고 숭고하다.-63~64쪽

이 모든 변화의 '주범'은 여성들의 의식 변화이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엄마처럼 참고 살지 않는다." '집안'일 과 '바깥'일, 육아의 삼중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현모양처겸 커리어우먼'이 되라는 이중 메시지 사이에서 분열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인도인데, 대신 인도는 기혼 여성의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한국 여성들은 자살하느니 이혼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68쪽

페미니즘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조력의 원천이다. 사람들도 소품종 대량 생산 사회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 사회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5학년 남자 어린이가 별 악의 없이,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하느님이 나는 진흙으로 직접 만드시고, 여자는 내 갈비뼈로 만든 거 알아?" 그러자 두 명의 여자 아이들 말이 걸작이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근데 누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니?", "그러니까, 너는 질그릇이고 나는 본 차이나(Bone China)네!" 여성주의는 남자 어린이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 아이들의 재치 있는 대응대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그러한 '다른 목소리'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여성도 남성도 성장시킨다고 믿는다.-70쪽

사실, 한국 사회(남성)은 단 한 번도, 여성을 제대로 '보호'한 적이 없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에 잘 묘사되어 있듯이, 한국 남자들은 여성을 외세에 '팔아먹고', 그것으로 국가를 지속하고 생계를 유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남성 지배 세력은 언제나 '포주'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 조공으로 바쳤던 환향녀(還鄕女)들을 '화냥년'으로 몰았고, 1970년대 초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이 철수하려 하자 기지촌 성판매 여성 '제공'을 조건으로 주둔을 애원했고, 달러를 위해 기생 관광을 장려했다. 심지어 주한미군사령관 부인과 부시 대통령의 부인을 납치, 감금하여 성폭행한다는 <태극기를 꽂으며>라는 '반미 에로' 영화를 만들고 즐긴다.
'군 위안부' 여성들의 생애사 기록들은, 전시 일본군에 의한 강간보다, 귀국 후 한국 남성에게 당했던 구타, 성폭력, 학대가 그녀들에게는 더 큰 상처였음을 보고하고 있다. 이럴 때, 한국 남성과 한국 여성은 같은 '한국인'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가? 한국 남성은 일본과 미국의 피해자이기만 한가?-136 ~ 137쪽

한국 남성에게 성폭력당하면 '개인적인 일'이고, 일본 남성에게 당하면 '민족의 아픔'인가? 성폭력은 가해 남성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폭력이라는 사실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순결한' 피해 여성과 '타락한' 성판매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남성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방식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성매매와 성폭력은, '자발'과 '강제'라는 '반대'현상이지만, 여성의 시각에서는 구별될 수 없는 연속선이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현실이 바로 성폭력과 성매매의 원인이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여성을 남성의 성 권력의 희생자와 '자발적으로 남성의 욕구에 부응한'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누구의 논리인가? 성폭력 피해 여성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모두, 결국은, 남성을 위한 제도의 '희생자'들이다. 나는 일본 우익의 주장대로, 한국 여성들이 '성매매'로 전쟁에 '참가'했다 하더라도, 일본 정부는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며, 당연히 사과,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140쪽

일제 시대 '군 위안부' 문제의 가시화와 역사화는 물론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는 여성의 성 피해가 민족주의의 이해와 일치할 때에만 문제화된 것이기도 하다. 대다수 한국 남성들이 일제 시대 '군 위안부' 경험을, "우리 여성들을 육체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여성은 물론 겨레 전체를 정신적으로 파괴한 민족의 수치"라고 본다. 즉, 전시 성폭력을 여성 인권 침해라기보다는, 여성의 생식 능력 훼손이라 보고 이를 민족 말살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때 여성의 몸은, 남성 집단 간 갈등을 의미하는 '정치'에서, 가장 확실한 동원의 토대로 기능하게 된다.
한국 남성들이 "우리도 일본 여자를 강간하자."라고 심심잖게 말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볼모로 한 남성 정치학의 순환 구조를 보여 준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대한 영토 침략과 정복은, 곧 '자궁 점령'을 의미하게 되고, 일제의 경우처럼, 그리고 한국이 베트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상대방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력이 공식적인 전쟁 정책이 되는 것이다. '군 위안부' 사건은 민족 모순이자, 여성 인권 침해이다. 이 사건을 민족 간 갈등으로만 환원하려는, 한국 남성들의 그 집요한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국 남성들이 한국 여성에게 행하는 성폭력과 성매매는 괜찮다는 것인가?-141쪽

오랜 기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이혼하려는 여성들이 법정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제까지 잘 참았는데, 왜 갑자기 이혼하려고 하는가(남자가 생겼나)?"이다. 하지만 남편의 초기 폭력을 문제삼아도, '참을성이 없다'고 비난받기는 마찬가지다. 흉기를 들이대는 강간범을 만났을 때, 소리쳐야 할까? 빌어야 할까? 잘못 소리쳤다가는 죽을 수도 있고, 잘못 빌었다가는 "너도 즐겼지."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피임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피임 준비를 잘하는 여성은 '선수','걸레' 취급받기 쉽고, 피임을 못해 임신하면 남자에게 부담 주는 '칠칠치 못한 여자'가 된다. 성차별에 저항하는 여자는 나쁜 여자로 찍히고, 가만 있으면, "여성들이 의식이 없어서 문제다.", "딸들아 깨어나라."며 계몽이 덜 된 인간으로 본다. 남성 언어 안에서는, 여성의 저항과 순종 모두 남성 폭력과 성차별의 '원인'이 된다.
경찰서나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의 분노나 강한 감정 표현은 과장으로 의심받고, 침착하고자 애쓰면 피해자답지 못한 인상으로 해석된다. 제주도 도지사 성추행 사건의 피해 여성은 '너무 똑똑한' 것이 문제 해결 과정 내내 비난의 구실이 되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녀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여자가 어떻게 녹음기를 사용할 수 있나, 누구의 사주를 받았나." 따위의 질문을 받았다. 남성의 구미에 맞는 '적절한' 피해자의 태도는 어떤 포즈일까?-143 ~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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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3-1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책 자주 올라오니 슬슬 사야되는건가 싶네요.
흑..살 책은 늘 넘치죠??

ceylontea 2006-03-1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저 다 읽었으니 드릴까요? ^^

2006-03-17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17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3-2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 읽었는데, 리뷰를...못쓰고 있답니다.(쟁쟁한 분들덕에....)ㅎㅎㅎ

ceylontea 2006-03-22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개비님.. 저야 머 원래 리뷰 잘 안쓰던 사람이라 그렇구요.. ^^ 따개비님은 그냥 종전처럼 쓰시는 것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