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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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이제야 당신을 위해 울었습니다. 
이제라도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읽으며 어설픈 애국심 따위는 버리려고 했다. 나라를 잃고 비참하게 버려진 삶이 어디 그녀 하나뿐이었는가. ’조선의 마지막 황녀의 삶’이라는 타이틀에는 관심이 갔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기억은커녕 존재했었는지도 모르는 처음 듣는 이름의 옹주, 나라의 운명이 그녀만의 비극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냉정한 시선으로 읽으리라, 작정했다. 

물었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406)

조국은 그녀를 기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국과 운명을 같이 했다. 그녀에게 닥친 운명은 분명 한 여인의,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조선의 황녀’로 태어났으나 그녀는 ’조선 왕가의 마지막 핏줄’이 되었다. 그녀는 철저히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살았다. 명을 다한 조선의 황녀로 산다는 것은 일본의 허락 없이는 이름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끊임없는 일본의 감시와 간섭 속에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독살이라는 것을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함을 의미한다. 조국에서 살 자유도 없음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날 자유도 없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조선의 황녀’였기 때문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살았고,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해야 했다. 조선의 황녀였기 때문에 말이다. 

조선의 황녀였기에 그러한 삶을 살았지만, 조국은 그녀를 지킬 수 없었다. 조국이 이런 저런 탓을 하며 그녀를 잊었듯이 그녀도 조국을 잊고 차라리 그저 한 여인으로 살았으면 좋으련만, 이 가여운 여인은 끝내 조국을 품고 살았다. 자신이 ’조선의 황녀’임을 놓지 않았다. <덕혜옹주>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시련은 조국을 잃은 것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것도, 보고 싶은 어머니 곁에 가볼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강제로 결혼하여 일본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바로 자신의 핏줄이었다. 일본이 그렇게 짓밟고 파괴하려 했으나 그 고결한 영혼 깊은 곳에 숨어 고이 간직되어 오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일본인도 될 수 없고 조선인도 될 수 없는’ 그 딸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일본 땅에서 일본인의 아내로 살지만, 조선의 황녀임도 놓을 수 없고 자신의 딸도 놓을 수 없었던 덕혜옹주는 자신의 정신을 놓아버렸다.

일본인 남편은 결국 그녀를 버렸다. 패망한 일본도, 해방을 맞이한 조국도 모두 그녀를 잊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국보다 오히려 원수들이 그녀에게 더 관심을 가졌으나, 그들이 잊어버리자 누구도 기억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덕혜옹주는 그렇게 15년 간 정신병동에 감금되었고, 결국 그녀의 딸도 그녀를 버렸다.

"그녀는 한 여인이기 이전에 조선의 황녀였다. 지금은 일본의 볼모가 되어버린 황녀. 그는 일본이 조선을 삼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일본이 그녀를 볼모로 삼지 않았다면."(171)

"삶은 원칙도 없고 배려도 없다. 사납게 휘두르는 운명의 갈퀴를 막을 힘"(306)은 누구에게도 없다. 높은 지체를 타고난 사람이나, 천하게 태어난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운명이 덕혜옹주에게만 유독 가혹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국을 잃은 자들에게는 사랑도 사치"(171)라고 하지만, 멸망한 나라의 황녀에게는 존재 자체가 사치였다. 

한 여인이기 이전에 조선의 황녀였던 덕혜옹주가 차라리 나라님이라도 원망할 수 있는 힘없는 백성이었다면, 그녀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겨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조선 황녀의 억울한 삶을 목격하고도 도대체 누구에게 이 안타까움을, 이 분노를 쏟아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양심이, 내가 타고난 이 민족의 피가 어설픈 애국심을 허락하지 않으리라 도리질을 했던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피 끓는 절규를 한다. 내가 온전히 디디고 사는 바로 이 조국의 이름으로(!)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 마지막 황녀의 비극적인 삶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내가 조선의 옹주로서 부족함이 있었더냐."
"옹주의 위엄을 잃은 적이 있었더냐."
"나의 마지막 소망은 오로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403)

’나라를 잃고 비참하게 버려진 삶이 그녀 하나’뿐은 아니지만, 덕혜옹주는 해방 후에도 우리가 미처 다 찾지 못한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며, 그 치욕의 역사를 딛고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민족 긍지의 상징이다. 작가 권비영의 <덕혜옹주>는 우리가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며, 민족의 긍지를 세워나갈 역사의 한 자락을 우리 손에 다시 쥐어주었다. 덕혜옹주 홀로 싸워 지킨 ’조선 황녀의 위엄’을 찾아주었다. 그녀를 잃어버리고, 그녀를 잊어버린, 우리는 이제야 그녀를 위해 울고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녀를 기억해야 하리라. 대한민국 후손의 이름으로 덕혜옹주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선물하는 일, 우리의 기억 그곳에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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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축지법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의 카피라이터가 전하는 성공과 사랑, 그리고 크리에이티브의 비밀
송치복 지음 / 부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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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은 책을 만나는 일에 성공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들어보면, 큰 기대 없이 ’우연히’ ’그냥 한 번’ 시도해본 것이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고백을 종종 듣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우연히 읽은 이 책에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예감한다.

카피라이터 송치복, 그가 <성공의 축지법>을 썼다고 한다. 카피라이터다운 책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성공’에 목말라 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자극하면서도, 가야 할 거리를 단박에 뛰어넘을 수 있는 ’축지법’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흔들고 있었다.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서든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상품을 ’포장’하는 사람 아닌가. ’그가 말하는 <성공의 축지법>이라면 욕구를 자극하고, 심리를 이용하는 유혹의 기술?’ 카피라이터에 대한 선입견으로 <성공의 축지법>까지 속단하였다가 제대로 한방 맞았다.

축지(縮地)는 곧게 할 축(縮)에 땅 지(地)잖아요. 축지법(縮地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둘러가지 않게 ’지름길과 그 길을 효율적으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지 느닷없이 하늘을 훨훨 날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88).

그의 책을 속단한 어리석음은 나의 자격지심이었으리라. 성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스스로의 불만족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안에 무조건적인 비판과 대상 없는 분노를 만들고 있었다. 하나씩 꿈을 접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가 되니 배배꼬이기만 한다. 이런 것이 바로 패배자 의식인가 보다.

온 국민이 열광했던 한마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마케팅 신화라는 전설을 남긴 ’지하 150미터 암반천연수로 만든 맥주’, 한 기업을 우리나라 대표 브랜드로 만든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처음으로 정치인을 응원하게 만들었던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이것이 모두 이 책의 저자 송치복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나와는 다르게!)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시작이 심상치 않다. 오십 살이 되고 삶을 뒤돌아본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일은 하는 일마다 성공했으나 삶은 가는 곳마다 아팠습니다." 마음이 자라지 않는 50소년은 주저 없이 길을 떠나면서 같이 가자 한다. 갑자기 동지의식에 사로잡힌 나는 그를 따라 길을 나섰다. 

저자 송치복 선생님(이제 내게는 선생님이다!)은, 본질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상품의 본질, 소비자의 본질, 상황의 본질 등이 그가 광고를 만들 때 물고 늘어지는 지점이고, 그가 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모든 일의 해결 방안이 본질 안에 있다고 믿는다. (앞날개 중에서)

<성공 축지법>, 이 책은 본질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사람 마음의 본질, 이치라는 우주와 만물의 본질을 밝힌다. 그 본질로 인간을 꿰뚫고, 인간사를 꿰뚫고, 세상사를 꿰뚫는다. 그리고 그 안에 작동하는 돈과 권력, 그리고 사랑, 비지니스의 원리를 심플하게 읽어낸다.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던 이치이고 이론이다. ’성공’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복잡한 세상을 한 줄 그림과 한 줄 문장으로 슥삭슥삭 그려내는 그의 명쾌함에 나는 스스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송치복 선생님, 그는 함부로 덤벼서는 안 되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개인적으로는 <창조의 축지법> 중에서 ’이론과 허구의 창조’를 통해 흐릿했던 시력이 원래의 시력을 되찾은 느낌이고, 잠자던 생각이 깨어난 기분이 들 정도로 시원하고 신선했다. 그동안 허구와 진짜도 구분하지 못하고 바동거렸던 허구의 바다에서 건져진 기분이랄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잘못 든 길에서 헤매다가 비로소 진짜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허구는 손에 쥘 도구이지 살아야 할 바다가 아니다"(120). "먼지를 터는 방법은 가짜를 깨닫는 것입니다. 허구(Fiction)가 허구(虛構)임을 알아야 합니다"(208).

사람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하는 명문장은 얄팍한 유혹의 기술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짧은 몇 마디 말이 날카로운 가르침이 되어 심장에 박힌다. 혼자만 알기 아까운 지혜를 몇 문장 옮겨 적는다.

날지 못하는 새는 살 수 있어도
걷지 못하는 새는 살 수 없다(66).
닭은 날지 못해도 살 수 있지만 다리가 부러진 독수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언뜻 보면 걷는 것보다 나는 것이 더 훌륭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생존에 더 중요한 능력은 걷는 능력입니다. 무슨 일이나 기본이 중요한 이유입니다(67).

강물은 좌로 우로 굽어지지만 결국 바다로 간다(109).
질 것 같으니까 지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길 것 같으면 오히려 이기기 싫어합니다. 이겨서 잃은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바위를 굴려 버릴 힘이 있기에 바위를 피해갑니다. (...) 바다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바위를 굴리거나 나무를 뽑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110).

희망 찾지 마라.
살고 있는 것이 희망이다.

서두르지 마라. 
끝을 알지 않느냐(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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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경영 블로그 - 성공적인 미래를 위한 자기경영의 결정판
동시야 지음, 김수연 옮김, 정쯔 그림 / 미다스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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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사상의 정수를 만나다!


역시 중국이다. 평소 존경하는 석학으로 피터 드러커의 이름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중국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컸나보다. 피터 드러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중국의 인민대학교 출판부에서 ’피터 드러커 100주년 기념 특별판 인민대학교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였다고 한다. 피터 드러커의 권위자를 주임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모였고, 대표집필은 중국내 젊은 피터 드러커 전문가로 이름이 높은 인민대학교의 동시야 선생이 맡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책이 바로 <피터 드러커의 경영 블로그>이다.

역시 중국이라는 말로 시작한 것은, 중국에서 출판된 책들을 만날 때마다 ’배움’에 참 거침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경영학’을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던 피터 드러커에게 배운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사회의 기업경영, 그 뿌리를 배운다는 말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이나 글의 내용을 보면, 그들이 밝힌 기획 의도대로 ’가볍고, 즐겁게, 알차게’ 읽을 수 있는 ’피터 드러커 에센셜 특별판’이라는 설명에 수긍이 갈 것이다. 꼭 필요한 이론과 사상을 대중들에게 ’진심으로’ 알리고 보급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나 할까. 아무튼 "교육한다면 이들처럼"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민족 중국인들, 그러면서도 배움에는 한없이 겸손하고 거칠 것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자본주의의 폐해로 무너져가는 청소년들의 정신 교육을 위해 기독교적 가르침도 적극 수용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중국인들을 다시 보게 되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도 그들의 학문하는 자세와 방법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감탄을 넘어 그들에 대한 두려움마저 생긴다.

<피터 드러커의 경영 블로그>는 피터 드러커의 방대한 저작을 통합적인 시각에서 꼼꼼하게 분석, 분류하여 가르침의 정수를 뽑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놓았다. 그의 사상과 이론의 핵심, 즉 그에서 배워야 할 점을 간추려 간결하게 정리해놓은 모범생의 핵심 노트 같다. 피터 드러커의 경영이론이 자기개발서나 지혜자의 잠언처럼 읽힌다. 

피터 드러커는 그 자신이 최고의 지성이면서 동시에 실천하는 지식인이었 듯, 이 책은 그처럼 사고하고, 그에게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서 직접 활용이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다. 내가 아는 피터 드러커는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했던 사람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하고 놀라운 통찰력은 그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데에 그 비밀이 있다. 이 책도 매장마다 질문을 던지고 있다. 피터 드러커처럼 사고하여 현장에 적용하라는 의도일 것이다. 여기 수록된 질문들은 기업경영뿐 아니라, 자기경영을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엉뚱하게 피터 드러커의 가르침 자체보다 중국인들의 학문하는 방식에 감흥을 더 많이 받았지만, 번쩍 정신이 든다. 아무쪼록 피터 드러커처럼 우리도 ’공격적’으로 공부하고, 배운 것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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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예수
디팩 초프라 지음, 이용 옮김 / 송정문화사(송정)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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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기란 왜 그처럼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것일까?]



두 가지 예수, 그리고 제3의 예수가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체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여 세상의 지탄을 받아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외부적인 지탄만큼이나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도 여러 형태의 ’제자 훈련’이 실행되고 있으며, 나름의 삶의 자리에서 몸부림 치고 있을 것으로 안다. 

디팩 초프라의 <제3의 예수>도 거기서 출발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나를 묻고, 과연 교회가 그 가르침의 원형을 간직한 조직체인가에 의문을 던지며 정당성을 제고한다. 물론, 그가 이러한 도전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원래의 예수를 믿기 좋게 변형시켰다는 혐의를 부과한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훌륭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조롱한다.

디팩 초프라는 현재 우리에게는 두 가지 측면의 예수 그리스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피와 살을 지닌 ’역사 속의 예수’요, 다른 하나는 생존한 적이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기독교 교리로 다듬어진 ’이론적 예수’이다. 그런데 이 두 예수 뒤에 ’제3의 예수’가 존재한다. 


예수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 본성을 일러주었다.

먼저, 예수는 누구이고, 그는 어떤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디팩 초프라는 예수가 행한 가르침은 실제로 더 혁명적이고 동시에 오묘하다고 말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도 따르려고 하면, 예수가 남긴 유명한 말씀 대부분은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황금율을 문자 그대로 따른다면? 새계명을 문자 그대로 따른다면?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나치게 혁신적이어서 따르기 힘든데, 과연 이것이 예수의 의도였는가? 디팩 초프라는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변하지 않는 한, 예수가 한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예수는 새 시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간 본성에 대해 일러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세상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원했고, 인간의 본성이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신비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신-의식(God-Consciousness)’을 지닌 제3의 예수

디팩 초프라가 말하는 제3의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를 가르친 혁명적인 스승이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왕국에 속해 있었고, 하나님과 예수 사이의 친밀함은 의식의 차원에서 더욱 완전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예수는 구름 위 하나님의 거처에서 내려온 적이 없으며 또 권좌의 오른편에 앉기 위해 그리로 돌아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디팩 초프라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든 것은 ’신-의식(God-Consciousness)’이었다고 말한다. ’신-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하나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이 바라는 행동과 같음을 알고 있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스승인가? 구세주인가? 

디팩 초프라는 예수를 ’스승’으로 만들었다. ’신-의식’을 지닌 제3의 예수는 ’신-의식’의 경지에 도달한 성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디팩 초프라는 그런 예수의 제자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을 타협적으로 수용하고, 의도적으로 감추었다고 비난한다. 기독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탈바꿈’을 적절히 바꾸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이 알고 있는 통속적인 예수는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칠 스승으로 왔는가? 예수는 인간이 어떠한 행위와 삶으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늘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맞다. 그러나 내일 다시 시도할 것이고, 노력할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도달해야 할 목표를 준 일이 없다. 우리를 해방했을 뿐이다. 그리고 동행을 약속하셨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예수를 스승이 아닌, 구세주로 먼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를 구세주로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이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다. 예수의 가르침은 오직 예수를 구세주로 만난 그리스도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다. 

<제3의 예수>, 그를 따른다면 예수가 말한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그대도 실천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았는가 보다 먼저 예수가 누군인가를 분명히 알기 원할 것이다.


<제3의 예수>의 가치

교회의 역사와 함께 도그마화 되어온 예수를 제거하고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어오고 있다. 분명히 역사에 존재하며, 함께 숨 쉬는 인간으로 존재하며, 갈릴리 바닷가를 함께 거닐며 가르침을 주었던 랍비 예수! 그 생생한 예수의 역사를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의 전통에 갇히지 않고, 절충되기 전의 그 가르침의 원형을 탐구하는 시도가 신선한다. 예수를 ’한 사람’의 구도자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가르침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을 전혀 모르는 성도들이나 비신앙인들은 비판적으로 읽기 힘든 서적이지만, 특별히 성경적 가르침을 전하는 최일선에 있는 현장 목회자들은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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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세계박물관 - 하룻밤에 만나보는 세계적인 박물관 탐방과 기행 단숨에 읽는 시리즈
CCTV 지음, 최인애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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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세계의 박물관!


인류의 보물상자, 박물관! 아마도 ’세계의 박물관 여행’을 평생의 로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세계의 박물관 여행’이라는 테마는 내게도 꼭 이루고 싶은 인생 소망 중 하나이다. 매년 신년 계획을 세울 때면, 올해 목표에 빠짐없이 적어넣게 되는 박물관 탐방, 꿈꾸는 것만으로도 설레인다. 발도장을 직접 찍으며 박물관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눈앞에서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비용이나 시간, 기타 여건이 여의치 않아 당장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나는 오늘도 책을 통해 사전 탐사를 한다.

<단숨에 읽는 세계 박물관>은 바로 나와 같은 꿈을 꾸며, 사전 탐사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CCTV에 방영되었던 것을 다시 책으로 엮은 것인데, 세계 박물관을 탐방하며 수집한 정보와 사진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사진 자료는 박물관 자체가 아니라,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들의 사진이다. 사실 박물관 여행을 꿈꾸는 나에게는 박물관 자체의 모습도 좀 보여주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시실 내부의 모습은 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겠지만 말이다.  

<단숨에 읽는 세계 박물관>은 총 3개의 파트로 나누어, 세계의 박물관을 돌아본다. 첫 번째는 노선은 ’세계 5대 박물관’ 탐방이다. 세계 5대 박물관을 돌아보는 코스는 루브로 박물관, 대영 박물관, 메트로풀리탄 박물관, 에르미타슈 박물관, 자금성 박물관의 순이다. ’이 교수님’이라는 분과 ’임 교수님’이라는 두 분의 고고학자의 박물관 경험담이 대담형식으로 이루어지며 설명을 이어간다. 두 분의 대담이 두서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다소 아쉽지만, 모두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짧은 지면의 한계를 이해한다. "대영 박물관의 입장료는 얼마일까?" 이 교수님의 질문이다. 순간적으로, ’세계적인 박물관이니 그 입장료도 꽤 비싸겠지’라고 직잠했다. 이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국립박물관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대영 박물관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 5대 박물관’에 이어지는 두 번째 여행 노선은 ’세계의 주요 박물관’ 탐방이다. 한국 국립민속박물관의 포함하여 전 세계 스물세 곳의 유명 박물관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노선은 ’세계의 유명 미술관’ 여덟 곳을 돌아본다. 각 박물관의 주요한 특징, 주요 전시품, 작품 설명, 전시 방식, 그리고 관람 노하우, 박물관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간력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어떤 곳은 도시 자체가 고대의 유적을 간직한 하나의 박물관인 곳도 있고, 세계의 문화 유산이 모아진 영국의 박물관 같은 곳은 침략의 흔적이 보이고, 유명 수집자들로부터 기부를 받아 세워진 박물관도 있다. 세계의 박물관은 그야말로 인류의 보물 상자가 답게 유적, 유물, 세계적인 예술작품, 풍습, 다채로운 생활상 등 무궁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보물이 가득하다.

<단숨에 읽는 세계 박물관>를 읽고 가보고 싶은 박물관의 우선순위를 조금 수정했다. 반드시 가보고 싶은 루브르 박물관 다음으로 가보고 싶은 곳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다. 뉴욕의 중심부인 맨해튼 월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5번가에 월가보다 더 비싼 ’거리’가 있다고 한다. 바로 박물관 거리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1870년에 건립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있는데, ’서반구 최대의 종합박물관’이라고 한다. 세계 각국의 문화, 예술, 과학, 종교와 관련된 유물 및 예술품을 300만 점 가량 소장하고 있으며 엄청난 전시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특히 기원전 15년에 세워진 이집트 신전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고, 1988년에 한국관을 설치, 400여 점의 한국 미술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단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가보고 싶은 곳이 나에게는 가장 이국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집트 박물관’이다.

<단숨에 읽는 세계 박물관>을 읽으며 한 가지 반성하게 되는 것은, 1945년 처음 문을 열었다는 ’한국 국립민속박물관’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75년 경복궁 내로 이전했다고 하는데, 경복궁을 그리 많이 다녔는데 왜 나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없을까?

소설이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듯이 누군가는 박물관에 있는 보물을 도둑질 하려 하고, 누군가는 세월과 환경에 맞서 보존하려 노력하고, 누군가는 소유권을 주장하려 하고, 누군가는 빼앗으려 한다. 세계 박물관 여행을 꿈꾸는 나에게 <단숨에 읽는 세계 박물관>이 전하여 주는 교훈은, 그 의미와 가치를 모른다면 박물관 여행은 경박한 눈요기 여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세계 박물관이 담고 있는 그 의미와 가치를 알아보는 눈부터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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