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필립 그랭베르 지음, 홍은주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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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우정)을 가장한 악연의 덫, 아름다울수록, 간절할수록 더 치명적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똑같은 중량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런 바람을 갖고 있는 것부터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사랑을 하면서도, 상처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얼마 전,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룹 ’2PM’의 일부 팬들이 안티로 돌아서면서, "팬이 안티가 되면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그들은 왜 한때 격하게 아꼈던 대상에게 분노를 쏟아놓고, 과격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가. 통속적이지만, 사랑이 큰 만큼 배신감도 컸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배신이라고 하는가? 내 사랑에 대한 거절? 시간이 흐를수록 가벼워지는 사랑의 중량? 

중학교 시절, 자꾸만 나의 우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과 짝이 되면 조용히 그 짝을 협박해(!) 자리를 바꾸었고, 무엇을 하든 함께 하려 하고, 어디를 가든 함께 가려 했다. 그 친구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 했던 것은 내가 다른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청소시간이었다. 그 친구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물었다. "너, 정말 나를 좋아해?" "응, 좋아해!" 그러자 친구는 마룻바닥에 칠하는 왁스를 내밀며 내게 말했다. "정말 좋아하면 이 왁스를 먹어봐!" 그 이후로 그 친구를 피했던 것 같다. 그 아이가 무서웠다. 나의 마음을 눈치 챈 친구도 생각보다 쉽게 돌아섰다. 길에서 마주쳐도 눈인사조차 하지 않는 차가운 사이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보다도 못한 그런 사이가, 차라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만도 못한 그런 사이가. 

<악연>에서 내가 읽은 것은 서로 중량이 다른 사랑(우정)이었다. 한 사람의 사랑이 시들해질수록, 상대의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되는 사랑. 루는 어린 시절 공원에서 처음 만난 만도와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무엇이든 ’함께’하며, 죽어서도(!) 변치 않을 우정을 약속했다. 

"같이 놀고, 같은 책을 읽고, 첫 경험도 같이 치르면서 숱한 것을 나눴던 우리였지만 나날이 독재처럼 변모하는 우정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 닌느에게도 가비에게도 유일한 존재였고, 그녀들 가슴속의 내 자리를 유지하고자 나름으로 분투했던 내가 이제 만도에게 유일한 존재란 사실은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119).

루는 점점 만도의 우정을 버거워한다. 만도는 여자 친구가 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여자 친구와 헤어진다. 루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루가 자유롭기를 원할수록, 만도는 더욱 견고히 결속되기를 원한다. 결국, 그들의 우정은 루와 만도 모두에게 재앙이 되고 만다.

<악연>의 작가 필립 그랭베르는 소설가이자 정신분석가라고 한다.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끄집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특히 병적인 심리를 그려내는 데 탁월한 듯 하다. 작가는 책에 등장하는 정신분석학 교수의 입을 빌어 "정신질환자는 정신병에 ’걸리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정신질환자이다"(151)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증상은 ’악연’이라고 부르는 것의 결과로 나타날 때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실연이나 절교가 계기가 되어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교수는 악연을 이렇게 정의한다. 

"등 없는 작은 의자가 전부 다리 네 개로 서 있는 건 아니다. 그중엔 다리 세 개로 버티는 것들도 있다. 거기서 다리 하나가 더 없어지면 치명타가 된다"(152).

이 강의를 듣고, 루는 생각한다. "우리가 둘도 없는 친구였던 시간 동안 나는 만도에게 무엇이었나?" 그는 자신이 만도의 광기를 가로막고 있었던 그 무엇이라고 느낀다. 결국, 루와의 절교로 "만도의 고집, 찌꺼기 하나 없이 깨끗한 우정을 간직하려는 강박 관념이 비로소 전모를 드러낸다"(152-153). 바로 악연의 작동으로 말이다.

작가는 만도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이 ’애초부터’ 만도 안에 잠재되어 있던 광기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악연'은 계기이지, 원인이 아니다. 건강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애초부터' 병들어 있던 마음 때문이지, 악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작가가 <악연>을 통해 그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단서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둘을 갈라놓은 건 다른 것, 처음부터 도사리고 있던 어떤 것이었지만 그때는 누구도 그걸 짐작할 수 없었다"(11). 

<악연>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중심은 만도의 일기장에서 깨끗이 지워진 ’한 사건’이다. 그 사건이 진실을 드러냈을 때, 만도가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알게 되었을 때, 아름다운 우정 뒤에 숨어 있는 검은 광기가 우리를 오싹하게 만든다. 

"내가 그 애의 악연이었나, 그 애가 나의 악연이었나?"(205)

악연은 사랑을 걷어내고, 사랑에 달라붙어 있던 어두운 그림자를 불러온다. ’악연’은 사랑했던 사람 모두를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로 만드는 것 같다. 치명타를 입고 상처받은 쪽도 그렇지만, 치명타를 입힌 쪽도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악연’이지 않을까.

<악연>은 기대했던 것만큼 스토리가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면, 장면의 강렬함이 독특한,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두 번쯤 읽으니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 보이는 듯하다. 대수롭지 않던 것들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 사랑(우정)이라 믿었던 인연이 재앙으로 변하는 순간, <악연>이라는 제목이 오싹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랑(우정)을 가장한 악연의 덫, 아름다울수록, 간절할수록 더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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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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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 적을 제합할 계책이 없으니, 운림의 노스님이 일어나셨다.

"내 눈앞에 바다가 있고, 그 바다 건너에 내가 뒤지고 살피고 꿰뚫어봐야 할 왜인들의 나라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이제 이것만이 나의 도입니다(111).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책에 더 가까운, 글로 쓴 다큐멘터리로 읽힌다. 이야기 전개가 상당 부분 역사적 배경 설명과 시대 해석에 기대고 있다. 아마도 ’사명대사’라는 역사적 인물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에게 그 시절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 지식이 그만큼 미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는 탄탄한 역사적 고증과 함께 시대를 비판적으로 읽어냄으로써 사명대사라는 인물의 역사적 활약과 그 의의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문학적 가치는 물론, 역사적이고 학술적인 가치를 동시에 지닌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는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심한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위태로웠던 시절에 조국을 피와 땀으로 지켜낸 숨은 위인이 있다. 공교육의 역사책에서는 한 두줄로 정리하고 마는 인물이지만, 한 작가에 의해 그리고 5년이라는 집필 과정을 거쳐 우리가 다시 찾은 사명대사는 역사와 후손의 마음에 깊고 분명하게 새겨야 할 위인임에 틀림 없다. 한 인물의 충(忠)과 덕(德)이 오늘 우리의 삶을 반성하게 한다. 

작가는 임진왜란의 영향을 이렇게 평가한다. "동아시아 전체를 놓고 봐도, 이 왜란으로 덕을 본 나라가 없었다. 모두가 패전국이었다"(79).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국가가 존립해 있다는 자체가 기적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게다가 일본이 재침략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런 지경에 조선에 기대어 먹고살던 대마도는 당장 식량난에 부딪혔고, 일본 측에서는 계속해서 조선에 통교를 요청해 왔다. 일본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선 조정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내지 못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정이 내놓은 대책은 일본으로 건너가 정세를 살피고, 교린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수행할 대신이 없었다. 바로 이때 천거된 사람이 바로 사명대사, 유정이었다.

억불정책을 펴는 조선에서 승려는 천민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조선의 조정은 국운이 걸린 이 중차대한 사명을 유학자가 아닌, 사명대사에게 맡기려 했을까. 작가는 이달의 입을 빌어 이렇게 설명한다.

"왜국으로 가서 왜인들을 상대하는 일에 사명대사만 한 이가 어디 있겠나.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누구이며, 용기를 가졌다 한들 사명대사만 한 경험과 통찰을 가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사명대사는 일찍이 칼로써 왜를 쳐부순 공도 어떤 장수 이상이거니와 가등청정(加藤淸正: 가토 기요마사)과 강화(講和)를 논할 때도 상대의 속셈을 꿰뚫어 꼼짝달싹 못하게 한 분이야. 게다가 승려 아닌가. 왕명을 받들고 가는 거지만 나중에 명나라에서 뭐라 해도 왕명을 내린 게 아니라 불자로서 도를 행한 거라고 발뺌을 하기도 좋질 않은가. 조선의 고승이 어리석은 왜국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러 간 거로 치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누가 천거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건 탁견이지, 탁견이고말고"(45).

"자기 안위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임금의 무수한 영웅 죽이기와 판단 착오와 우유부단과 결정 번복의 혼란까지 헤치고 나가야 했던"(88) 조선의 조정이 사명대사를 ’외교관’으로 내세운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 국왕의 명을 받아 탐색사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던 사명대사에게 이 일은 또다른 번민의 시작이었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불제자의 태도요 행동이랄 수 있을까? 유교의 경전을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가 승려가 된 몸이 어째서 속세로 돌아와 그곳의 운명에 관여하고 있는 것을까?"(62)

게다가 61세의 고령이었던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떠나는 형편은 당시 국가의 형편만큼이나 비참했다. 국서도 지니지 않고, 관작도 없는 몸으로, 적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110). 맨몸으로 왜국으로 건너가 왜인들과 마음을 열어 교류하는 한편, 기세를 올려 제압해야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만히 뒤를 살펴야 했다. 이 일을 위해 사명대사는 스스로 담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을 구해야 했고, 지략과 계책을 가진 사람을 구해야 했고, 의복과 약재도 스스로 구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정을 힘들게 한 것은 이것이었다. "사명대사 유정이 이끄는 행렬은 그 중에서도 탐정을 하고 교린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임무를 띤 사절이었다. 명을 내린 국왕도 절차를 밟아준 비변사나 예조도 무엇을 어떻게 하고 오라는 정확한 지침을 내려주지 못했다. 모든 게 유정의 몫이었다. 유정을 힘들게 한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183).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는 침략국에 내던져지듯 보냄을 받았던 탐색사 유정의 위태로운 행적을 복원하며, 그렇게 열악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가 일구어낸 외교적 업적의 의의를 새롭게 평가한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늘 우리의 외교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20세기 초 한국을 강점하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을 비롯 동아시아 전역에 진주해 세계 전쟁을 벌이고 패전하던 때까지 각국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당당함은 왜란 때 굳어진 정한론에 그 단단한 씨앗이 박혀 있다"고 논한다(399).

이밖에도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는 국제 정세를 아우르는 임진왜란에 대한 거시적인 평가, 선조를 평가하는 부정적인 시각, 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항왜(降倭)의 존재, 그리고 당시의 일본까지 두루 살피며 읽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기보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까닭은, 비판적인 입장을 지탱할 만큼 지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시대 해석이 큰 공명을 만들어낼 만큼 강렬하고 탁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안일만을 걱정했던 임금과는 달리 자신의 안일을 개의치 않고 온몸으로, 그리고 맨몸으로 적진에 들어가 나라의 자존을 지켜준 사명대사의 탁월한 외교전과 인물됨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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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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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영화 <아바타>보다 늦게 발간된 것이 아쉽다!


<완득이>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창비청소년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제3회 수장작이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싱커>이다. <싱커>는 미래 인류의 이야기를 그려낸 SF적인 미래 소설이다. 

2068년에 봉쇄를 선언하고 지상 세계와 단절한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열대우림을 그대로 재현한 ’신 아마존’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지표면이 빙하로 뒤덮이게 되자,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춘 일종의 대피공간이었던 시안은 지상을 잊은 채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이 이야기는 약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지하도시 시안에서 시작한다"(8).

<싱커>가 그리는 미래 사회는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오늘날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거대한 자본가의 권력과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숨은 음모가 악의 축이다. 사회는 질서와 평화를 가장하고 있지만, 빈부의 격차에 따른 견고한 계급이 태생적인 차별을 불러오며,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점한다. 체제를 견고히 하기 위한 제재와 강제와 탄압,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거짓 평화로 위장된 시안을 뒤흔든다. 인류의 미래를 그리는 미래 소설이지만, 현재 사회와 비교할 때 전복되는 가치는 없다. 발전된 기술만 있을 뿐.

<싱커>가 가상적인 미래 사회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현대인들이 잃어가고 있는 외계(外界)에 대한 공감 능력과 연대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외계(外界)란 ’나’의 밖에 존재하는 ’타인’은 물론, 넓은 의미에서의 자연(생명)을 말한다. 작가는 그 희망을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걸고 있다. 

소설 안에서 ’싱커’(Syncher)란, ’동조자’라는 뜻의 가상 체험 게임을 말한다(25). ’신(新) 아마존’에 살고 있는 동물의 의식에 접속(싱크)하여 그 동물의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게임이다. 동물의 의식에 접속하여 동조된다는 코드가 얼마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아바타>와 닮아있어 그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닌가 오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영화보다 늦게 발간되었지만, 작품이 완성된 것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9월)이었다는 사실이 그런 오해를 충분히 불식시킨다. 오히려 이 책이 영화 <아바타>보다 늦게 발간된 것이 못내 아쉽다! 영화 <아바타>에 쏟아진 열광이 <싱커>의 것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싱커를 하게 된 후로 미마는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깨달았다. 아니, 모든 생물이 서로에게 외계(外界)였다. 지식은 결코 ’이해’가 아니었다"(71).

’싱커’라는 게임을 통해 신 아마존에 존재하는 동물의 의식에 접속하게 된 시안의 아이들은 동물이 느끼는 모든 감각을 똑같이 경험하면서, 자연(생명)에 공감하고 그 경이로움에 눈뜬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본능적인 이해였다. 이러한 이해와 동조는 결국 시안을 위기로부터 건져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칸, 예전에 너와 함께 새들이 날아오른 절벽에서 본 파란 하늘을 잊을 수가 없어. 그때 생각했어. 그걸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내 삶은 더 이상 똑같을 수 없어졌다고. 몰랐다면 모르는 대로 살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달라. 시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면, 나도, 아니 우리도 너와 함께할 거야. 그러니 기다려줘. 알았지?"(237)

시안의 사람들은 더 이상 머리 위에 (진짜) 하늘이 있다는 위안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하늘을 보게 된 아이들은 더 이상 완벽한 시스템에 의해 탄생된 가상의 하늘에 만족할 수 없었다. 가상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그것은 진짜를 모방한 가짜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오늘 우리는 가상 세계에 중독되어가는 청소년들을 걱정하고 있다. 청소년 미디어 중독은 이미 청소년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싱커>는 게임이라는 매개를 통해 생명의 경이로움을 온 감각으로 깨우치는 ’순수한 청소년들’에게서 인류의 희망을 찾고 있다. "쓸모없는 존재로만 여겨졌던 늦둥이들이 시민들의 눈앞에서  기적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239).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무엇보다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게임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않고 희망의 도구로 표현해준 작가 선생님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동조’되어 있다고 말이다!

이 소설은 스토리보다는 소설적 ’설정’에 더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청소년들의 도전과 모험이라는 측면에서 뻔하게 전개될 수 있는 스토리를, 상당히 은유적인 여러 장치와 설정들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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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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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대한 불효만은 할 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그리다.  


노희경 작가가 그려주는 ’어머니상’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자녀를 품어주는 ’어미’일 때가 많다.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에서도 고두심 선생님이 열연했던 ’엄마’는 조금 모자란 듯 어수룩하기만 했다. 그 바보 엄마의 바보 같은 사랑이 우리를 울렸다. 나이가 들고 보니,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한 아버지보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가족밖에 모르고 살아온 엄마의 품이 자식에게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가족을 지켜주는 힘은 언제라도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고, 지친 마음을 품어줄 수 있는 엄마의 손길이었다고.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말기 암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딸이 떠날 엄마보다, ’엄마 없이 살아갈 자신’을 걱정하는 그 두려움을, 나는 알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드라마로 만들어진 대본을 소설로 다시 재구성한 것이다. 평범한 가족 안에서 중년을 맞이한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가족은 그렇게 예기치 않았던 엄마와의 길고 긴 이별을 맞이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던 엄마의 빈자리는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엄마의 손길은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 엄마가 아프게 되자 평온한 가족의 일상과 행복은 여지 없이 깨어진다. 엄마는 가족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터전이요, 기둥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찍고 열흘을 울었다는 나문희 선생님. 나문희 선생님이 ’엄마’ 역할을 맡았던 이 드라마의 한 장면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곧 죽게 될 것을 알게 된 엄마가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에게 이불을 덮어 씌우고 온 힘을 다해 이불을 누르던 장면이다. "어머니, 어머니! 나랑 같이 죽자! 나 죽으면 어떻게 살래? 나랑 같이 죽자! 애들 고생 그만 시키고, 나랑 같이 죽자! 어머니이..."(27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뒷편에는 노희경 작가가 쓴 그녀의 엄마 이야기가 실려 있다. "대학 때 가출한 나를 찾아 학교 정문 앞에서 허름한 일상복으로 서 있던 어머니가 언제나 눈에 밟힌다. 그때도 이후에도 왜 난 그분께 미안하단 말 한마디를 못 했을까"(371). 세련된 정장 차림으로 세단을 몰고와 차 안에서 기다리는 어머니가 아니라, "허름한 일상복으로 학교 정문 앞에 서 있던 엄마"이기에. 배운 것이 많지 않아 다른 욕심은 별로 없어도 오직 하나 가슴으로 자식을 품었던 엄마이기에. 그 엄마를 떠나보내는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애처롭고 또 애처로운 것이리라. 

"지금, 방황하는 사람들, 그대들의 방황은 정녕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어머니가 살아 있는 그 시기 안에서 부디 방황을 멈추라. 아픈 기억이 아무리 삶의 자양분이 된다 해도, 부모에 대한 불효만은 할 게 아니다." (노희경이 쓴 엄마 이야기 中에서)

요며칠 엄마가 기운이 없다 하실 때마다 가슴이 덜컥 덜컥 내려앉는다. 부모를 이미 떠난 보낸 자식들은 이 책을 읽으며 후회와 죄책감으로 가슴을 두드릴지 모르겠다. 아직 부모님이 곁에 있는 자식이라면 안도의 숨을 내쉬겠지만, 언젠가 그분들도 누구나 반드시 가야 하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는 생각에 지레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알로카시아라는 나무를 하나 키우고 있다. 이 나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인생을 생각한다. 줄기가 새끼를 낳듯 제 안에 새로운 줄기를 품었다가 밖으로 내놓는다. 하늘로 뻗은 새로운 줄기가 태어나면, 어미 줄기는 땅으로 휘어지며 말라간다. 그렇게 계속 새로운 줄기가 태어나고 어미 줄기가 죽어야지만 이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라고, 더욱 튼튼한 몸통을 가질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이별을 준비시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의 다른 말일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이별이다. 이별은 찾아오고 우리 인생은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아름다운 이별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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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쇼크 - 부모들이 몰랐던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생각 자녀 양육 시리즈 1
애쉴리 메리먼 외 지음, 이주혜 옮김 / 물푸레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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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극단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앞으로 세상은 이 책을 읽은 양육자 밑에서 성장한 사람과 
이 책을 모르는 양육자 밑에서 성장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난 지금,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어온다면 나는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에게 있어서 양육자의 위력이란 거의 신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모든 부모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신과 같은 영향력을 가졌으나 완벽하게 책임질 능력은 없는 불완전함이 양육의 책임을 더 무겁게 압박한다. 상담을 공부하는 소그룹에서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의 상처가 생각나 섬짓해진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범죄자들이 자신을 그렇게 만든 부모를 원망했던 말들까지 눈앞에 쏟아져내리는 기분이다.

부모의 말 한마디, 부모의 행동 하나가 자녀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또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쇼크’로 다가오는 것은 자녀를 ’위해’ 한 일이 오히려 자녀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노력이 사실은 자녀의 인생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게 될 모든 부모님들에게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그건 몰랐기 때문이지,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이다. 

<양육쇼크>는 지금까지 우리가 ’옳은 양육’이라 믿었던 양육법이 "틀렸음"을 증명해주는 연구 보고서이다. 부모의 칭찬 중독이 오히려 아이의 도전과 모험을 방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고, 잠이 부족한 아이보다 잠을 충분히 자는 아이의 성적과 삶의 질이 훨씬 높으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부모의 강요가 아이를 교묘한 거짓말쟁이로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읽으며 경악하게 될 부모님들이 많으시리라. 형제 자매가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 유아용 비디오의 역기능 등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양육의 상식이 무너진다.

좀 극단적이고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앞으로 세상은 이 책을 읽은 양육자 밑에서 성장한 사람과 이 책을 모르는 양육자 밑에서 성장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연구와 그 결과를 보면, 지금까지 해온 양육법과 이 책이 제시하는 새로운 양육법의 경계가 그만큼 선명하다. ’유아용 비디오’를 본 아기들이 비디오를 보지 않은 아이글보다 어휘력이 훨씬 더 낮다는 논문 발표 이후, 월트디즈니사의 최고경영자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행보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2009년 10월 월트디즈니사가 ’베이비 아인슈타인’ 비디오를 환불해주는 조치를 실시했다. 우리도 이제 지금까지의 양육법을 서둘러 거둬들이고, <양육쇼크>가 제시하는 새로운 양육법을 유통시키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양육쇼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이전의 방법을 계속 고수할 것인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세 가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첫째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가? 둘째는, 받은 재물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셋째는, 맡겨진 자녀를 어떻게 양육했는가?"이다. 자신의 자녀를 잘못 키우고 싶은 부모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의 양육자는 누구라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신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다만,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는가라는 질문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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