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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영화 <아바타>보다 늦게 발간된 것이 아쉽다!
<완득이>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창비청소년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제3회 수장작이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싱커>이다. <싱커>는 미래 인류의 이야기를 그려낸 SF적인 미래 소설이다.
2068년에 봉쇄를 선언하고 지상 세계와 단절한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열대우림을 그대로 재현한 ’신 아마존’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지표면이 빙하로 뒤덮이게 되자,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춘 일종의 대피공간이었던 시안은 지상을 잊은 채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이 이야기는 약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지하도시 시안에서 시작한다"(8).
<싱커>가 그리는 미래 사회는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오늘날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거대한 자본가의 권력과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숨은 음모가 악의 축이다. 사회는 질서와 평화를 가장하고 있지만, 빈부의 격차에 따른 견고한 계급이 태생적인 차별을 불러오며,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점한다. 체제를 견고히 하기 위한 제재와 강제와 탄압,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거짓 평화로 위장된 시안을 뒤흔든다. 인류의 미래를 그리는 미래 소설이지만, 현재 사회와 비교할 때 전복되는 가치는 없다. 발전된 기술만 있을 뿐.
<싱커>가 가상적인 미래 사회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현대인들이 잃어가고 있는 외계(外界)에 대한 공감 능력과 연대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외계(外界)란 ’나’의 밖에 존재하는 ’타인’은 물론, 넓은 의미에서의 자연(생명)을 말한다. 작가는 그 희망을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걸고 있다.
소설 안에서 ’싱커’(Syncher)란, ’동조자’라는 뜻의 가상 체험 게임을 말한다(25). ’신(新) 아마존’에 살고 있는 동물의 의식에 접속(싱크)하여 그 동물의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게임이다. 동물의 의식에 접속하여 동조된다는 코드가 얼마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아바타>와 닮아있어 그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닌가 오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영화보다 늦게 발간되었지만, 작품이 완성된 것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9월)이었다는 사실이 그런 오해를 충분히 불식시킨다. 오히려 이 책이 영화 <아바타>보다 늦게 발간된 것이 못내 아쉽다! 영화 <아바타>에 쏟아진 열광이 <싱커>의 것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싱커를 하게 된 후로 미마는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깨달았다. 아니, 모든 생물이 서로에게 외계(外界)였다. 지식은 결코 ’이해’가 아니었다"(71).
’싱커’라는 게임을 통해 신 아마존에 존재하는 동물의 의식에 접속하게 된 시안의 아이들은 동물이 느끼는 모든 감각을 똑같이 경험하면서, 자연(생명)에 공감하고 그 경이로움에 눈뜬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본능적인 이해였다. 이러한 이해와 동조는 결국 시안을 위기로부터 건져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칸, 예전에 너와 함께 새들이 날아오른 절벽에서 본 파란 하늘을 잊을 수가 없어. 그때 생각했어. 그걸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내 삶은 더 이상 똑같을 수 없어졌다고. 몰랐다면 모르는 대로 살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달라. 시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면, 나도, 아니 우리도 너와 함께할 거야. 그러니 기다려줘. 알았지?"(237)
시안의 사람들은 더 이상 머리 위에 (진짜) 하늘이 있다는 위안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하늘을 보게 된 아이들은 더 이상 완벽한 시스템에 의해 탄생된 가상의 하늘에 만족할 수 없었다. 가상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그것은 진짜를 모방한 가짜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오늘 우리는 가상 세계에 중독되어가는 청소년들을 걱정하고 있다. 청소년 미디어 중독은 이미 청소년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싱커>는 게임이라는 매개를 통해 생명의 경이로움을 온 감각으로 깨우치는 ’순수한 청소년들’에게서 인류의 희망을 찾고 있다. "쓸모없는 존재로만 여겨졌던 늦둥이들이 시민들의 눈앞에서 기적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239).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무엇보다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게임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않고 희망의 도구로 표현해준 작가 선생님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동조’되어 있다고 말이다!
이 소설은 스토리보다는 소설적 ’설정’에 더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청소년들의 도전과 모험이라는 측면에서 뻔하게 전개될 수 있는 스토리를, 상당히 은유적인 여러 장치와 설정들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