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입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8).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 농민들이 AIDS에 집단 감염된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들이 AIDS에 집단으로 감염된 이유는 매혈(賣血) 때문이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개혁개방이 시작됨에 중국에 새로운 시장이 하나 형성되었다. 바로 피를 사고파는 매혈 시장이었다. 중국 상부의 주도 아래 대대적인 인민들의 매혈 운동이 있었고, 특히 빈민층에 속하는 중국 농촌에서 매혈붐이 창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저자는 매혈로 집단 AIDS에 감염된 ’딩씨 마을’을 배경으로 사랑과 위대한 인성, 생명이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감에 대해 쓰고자 했다고 밝힌다.

<딩씨 마을의 꿈>은 악덕 채혈업자, 즉 매혈 우두머리인 ’아버지’로 인해 독살을 당한 열두살 소년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어버린, 꿈을 거세당한 힘 없는 소년을 통해 말이다.

딩씨 마을 사람들을 매혈에 동원하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에, 학교에서 종을 치고 학교를 지키는 일을 맡고 있어 ’딩 선생’으로 불리는 소년의 할아버지가 나섰다. 할아버지는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물처럼, 피도 샘물과 같이 퍼내면 퍼낼수록 더 왕성하게 생성된다고 설득했고, 일찌감치 미친 듯이 피를 팔아 부자가 되고 있는 이웃 마을로 견학을 다녀온 농민들은 부자가 되는 꿈을 꾸며 팔을 걷어올리기 시작했고, 딩씨 마을에 열 개가 넘는 채혈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때 할아버지의 아들 ’딩후이’도 채혈소를 차렸다. 딩씨 마을은 너도나도 미친 듯이 피를 팔기 시작했다(56).

채혈업자들은 나무로 만든 간판 하나씩 세워 놓고 그 위에 채혈소 이름만 몇 자 쓴 다음 간호사와 회계사만 갖추고서 채혈소 업무를 시작했다. 채혈업자 딩후이는 곧 부자가 되었다. 피를 판 사람들 중에 딩후이 만큼 부자가 된 사람은 없었다.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하고 솜 하나로 세 사람을 소독하도록 한 채혈업자 딩후이는 ’열병’(AIDS)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딩후이에게 피를 판 사람들은 ’열병’(AIDS)에 감염되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맙소사! 자네 아직 살아 있었군?"
또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며칠 동안 머리가 좀 아프기에 열병인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더군."
두 사람 모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
이것이 바로 딩씨 마을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딩씨 마을이 가슴을 졸이며 애타게 기다리는 열병과 세월이었다(26-27).
곧 죽을 것이라는 자각!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가?

딩씨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오늘은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91). 그들이 꿀 수 있는 유일한 꿈은 ’하루라도 즐겁게 보내는 것’이었다. 작가는 <딩씨 마을의 꿈>이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과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8)라고 말한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열병에 감염된 딩량과 링링의 열꽃 같은 ’불륜’을 통해 적나라 하게 드러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생(生)의 절망을 낳고, 생의 절망은 무모한 용기를 낳는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만든다. 불륜도 두렵지 않게 만든다. "살아 있는 동안 며칠이라도 그녀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304). 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새로운 꿈을 낳는다. 그렇게 태어난 꿈은 절박하고 집요하다. "살아 있을 때 며칠이라도 떳떳하게 살고 싶은" 딩량과 링링은 죽을 날이 멀지 않았지만 끝내 소원대로 정식 부부가 된다.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 탐욕은 어떻게 생명을 좀먹는가?

<딩씨 마을의 꿈>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사람은 채혈업자 ’딩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매혈뿐 아니라, 관을 팔고, 음혼을 주선하며 부자의 꿈을 이루어간다. 그러나 이 책의 지독스러움은 딩후이의 탐욕 때문이 아니다. 열병으로 병색이 완연한 사람들이 서로의 것을 도둑질한다. 열병(AIDS)에 걸린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툰다. 죽어서 들어갈 ’관’에 욕심을 낸다. 돈이 있고 권세가 있는 사람들만 관을 쓸 수 있고, 더 좋은 관을 쓸 수 있다.

열병에 걸린 사람들과 공동 생활을 할 때, 그들의 쌀을 훔치기도 했던 ’자오씨우친’은 열병에 걸렸으나 열병 때문에 죽지 않았다. "열병에 걸린 뒤로 지금까지 일 년도 넘게 살았거든. 그런데 왜 죽었냐 하면, 며칠 전에 쌀을 한 자루 가져다가 문 옆에 놓아두었는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집에서 키우던 돼지가 그걸 다 먹어 버렸대. 자오씨우친은 너무 화가 나서 돼지를 쫓아다니며 두들겨 팼겠지. 돼지 등짝에서 피가 날 때까지 패다 보니 그녀도 지쳤던 모양이야. 위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지"(301-302).

살아 있을 동안만이라도 링링과 결혼을 해서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아들 딩량을 위해 ’할아버지’가 나섰을 때, 며느리의 불륜을 용서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이렇게 비난했다. "아주버님도 글을 가르쳤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 못난 연놈들을 위해 뻔뻔스럽게 찾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다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이것을 이용하여 한몫 잡아볼 심산으로 거래를 요구한다. 이혼을 해주는 조건으로 ’오천 위안’을 요구한 다. 아내에게 열병에 발명하자 따귀부터 올려부치며 공동생활을 하는 곳으로 내몰았던 남편은 이혼을 조건으로 딩량의 모든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비록 불륜이지만 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서로를 붙들었던 딩량과 링링보다 더 뻔뻔하지 않은가.

탐욕에 먹힌 생명. 딩씨 마을은 그렇게 시들어갔다. "사람이 죽는 것이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진 것과 같았다. 등불이 꺼진 것과 같았다. 무덤을 파고 사람을 묻는 일이 삽을 들어 마을 어귀에 구덩이를 파고 죽은 고양이나 개를 묻는 것만큼이나 순조로웠다. 슬픔도 없었고 울음소리도 없었다. 울음소리와 슬픔은 말라버린 강과 같아서 소리도 없고 호흡도 없었다. 사람들의 눈물은 맑게 갠 날 허공에 떨어지는 빗방울만큼이나 희박하여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말라 버렸다"(373-374).


<딩씨 마을의 꿈>은 딩씨 마을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딩씨 마을의 꿈>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이야기에서 '네 사람의 꿈'을 따오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관직이 곧 회복될 것을 예고하는 술 맡은 관원장의 꿈, 곧 죽게 될 것을 예고하는 '떡 맡은 관원장의 꿈', 흉악한 흉년을 예고하는 '파라오의 첫 번째 꿈', 흉악한 흉년이 반드시 올 것을 예고하는 '파라오의 두 번째 꿈'이 그것이다. 이 꿈들은 모두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예고한다. 왜 작가는 이러한 장치를 해두었을까?

<딩씨 마을의 꿈>은 서사가 전개되는 중간 중간에 고딕체로 구별하여 '꿈'을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꿈인 듯도 하고, 꿈이 아닌 듯도 하고,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분명 '꿈'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구별됨이라 생각된다. <딩씨 마을의 꿈>은 실제 사건이다. 작가는 그것을 <딩씨 마을의 꿈>이라는 제목 안에 담았다. 딩씨 마을의 비극은 '꿈'에서 시작되었다. 피를 팔아 한몫 챙기겠다는 그들의 꿈이 현실의 비극을 낳았다.  작가는 <딩씨 마을의 꿈>을 통해 '꿈'이 현실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꿈은 현실을 낳는다. 현실은 꿈을 반영한다. 배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키처럼, 인생을 이끌어가는 '꿈'. 탐욕에 먹혀버린 딩씨 마을. 탐욕이 잉태하고, 탐욕을 잉태한 그들의 꿈은 딩씨 마을을 탐욕의 바다로 몰고나갔고, 그들의 꿈은 모두 이루어졌지만, 딩씨 마을은 파선했고, 결국 탐욕의 바다에 침몰했다.

집단으로 AIDS에 감염된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 죽음에 감염되어 있다. 죽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을 알고 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선 우리. 죽음을 눈앞에 둔 우리가 꾸는 꿈은 무엇인가? 딩씨 마을의 꿈과 다른가? 지금 어떤 꿈이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나가고 있을까?


아직 우리가 꿀 수 있는 꿈이 남아 있을까?

<딩씨 마을의 꿈>은 할아버지가 "새롭게 펄쩍펄쩍 뛰는 세상을 꿈"(455)꾸며 끝이 난다. 어쩌면 불멸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 그만큼 생(生)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주고,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딩씨 마을의 꿈>이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을 읽으며 꿈을 꾸어야 하고, 어둠에 갇혀서도 빛을 기대하며,  지독한 환멸 속에서 여명을 발견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리라.

"저는 이미 나이가 예순이 넘었고 여러분들 역시 오늘 얼굴을 마주하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겁니다. 우리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서 다음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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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창조 -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이어령.강창래 지음 / 알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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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자신은 없지만(잘못된 기억이라면 용서하세요!), '이어령' 하면 떠오르는 글이 하나 있다. 그 글은 우리 시대의 대표 지성 '이어령'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이어령 교수님이 독일의 절약 정신에 관해 이런 글을 쓰셨다고 한다. 종전 후, 독일 사람들은 성냥개비 하나라도 더 아끼기 위해 몇 사람 이상 모이지 않으면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절약 정신으로 전쟁 후유증을 극복해내었다는 칭찬과 함께 우리도 본받자는 취지로 글을 쓰신 것 같다. 그런데 글쓴이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분이 이 글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성냥개비 하나를 아끼려고 몇 사람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여러 모로 낭비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담뱃불 좀 빌립시다" 한마디면 끝날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어령 교수님의 논리를 사대주의라고 꼬집었으리라. '이어령' 하면 대단히 유명한 분이고, 높은 자리에 앉아계신 분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데, 그 글은 '이어령'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때는 '이어령'이라는 분이 나쁜 분인가? 왜 의식(!)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어령'을 비판할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던 그때 내 마음에는 '이어령'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분이 세례를 받고, 신앙을 갖게 된 것에 사회가 관심을 보이면서 여기 저기 뉴스로 다뤄지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이어령 교수님의 회심이 반가웠고, 숨겨진 사연이 궁금했다. 회심의 중심에 사랑하는 딸에 대한 절절한 부성이 있음을 알고 '이어령'이라는 분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요즘 이어령 교수님의 신간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이 책 <유쾌한 창조>를 읽었다. 이 책은 강창래라는 인터뷰어를 통해 탄생한 책이다. 이어령 교수님을 인터뷰하기는 했지만 인터뷰 내용을 날 것으로 전하지 않고, 보다 정확하고 진실된 '이어령'을 말하기 위해 인터뷰를 익히고 익혀 숙성시켰다. 질문과 답, 질문과 답으로 이어지는 단순 인터뷰가 아니라, 필요한 자료까지 찾아가며 '이어령'을 탐색해내었다. 가히 '재창조'라고 할만한 작업이다.

<유쾌한 창조>는 많은 지면을 이어령과 김수영의 '볼온시 논쟁'에 할애하고 있다. 당시를 잘 모르고, 그 소문조차 몰랐던 나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얼마나 열정적으로 그 진상을 규명하고자 애쓰는지 그 진심이 느껴져 열심히 읽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편의 논문처럼 논리적이면서 비판적인 이 글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이어령'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형성된 배경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령'을 말하려는 인터뷰어 강창래 님이 왜 이토록 '볼온시 논쟁'을 붙들고 늘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지점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이어령'을 왜곡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일흔일곱의 할아버지가 된 이어령 교수님은 지금 죽을 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하신다. 그것은 죽기 전에 실패할 일 세 가지 때문인데,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와 '창조학교', 그리고 '한국인 이야기'가 그 세 가지이다. <유쾌한 창조>를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어령 교수님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 진심이 날선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인터뷰어 강창래 님에게도 통한 듯하다. 이 책을 통해 예리한 지성 뒤에 유쾌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이어령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지금 죽을 준비를 하고 계시는 교수님의 그 세 가지 꿈이 바로 대한민국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령이라는 분을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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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할머니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오채 지음, 김유대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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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게 '할머니'라는 이름은 아픔이다. 잠귀가 가장 밝다는 이유로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한 방을 쓰며 자랐다. 천식을 앓으셨던 할머니는 늘 기침을 끼고 사셨는데, 어떤 때는 호흡 곤란을 겪을 정도로 심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방으로 달려가 아빠와 엄마를 깨우는 책임을 맡았다. 할머니와 한 방을 쓰는 나는 가족들이 모르는 할머니의 눈물을 알고 있었다. 큰 글씨로 가사만 적혀 있는 찬송가를 읊조리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셨던 할머니는 벽을 향해 돌아앉으셔서 눈물을 훔치는 날이 많았다. 나는 그 눈물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난 고모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먼저 간 자식을 마음에 묻고 남은 생을 멍든 가슴으로 살아오신 나의 할머니. 

할머니의 세월은 온통 서러움이었다. 이런 저런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다 보면 할머니의 이야기의 끝은 꼭, 딸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되고, 가부장적인 할아버지의 기에 눌려 숨죽여 살아온 세월이 원망스럽고, 전쟁과 난리를 겪으며 가난과 싸우며 보낸 청춘에 대한 미련으로 끝을 맺었다. 시대를 잘 만난 우리가 부럽다며 말이다. 옛일을 꼽씹는 일은 할머니의 유일한 소일꺼리였는데, 사춘기를 지나고부터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바쁜 일상 탓도 있지만, 이야기를 듣는 나의 마음도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많이 귀찮았다. 돌이켜보면, 그 일이 할머니께 가장 죄송스럽고 미안하다. 

효자 아들에 효자 며느리의 봉양을 받았지만, 아흔을 넘기고부터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무료한 시간 속에서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흔을 넘기고부터는 작은아버지 댁과 고모 댁도 잘 찾지 않았다. 천식 때문에 기침을 하고 가래침을 뺕으면 손주들이 싫어하는 기색 때문이었다. 오랫만에 집에 오신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너 같은 손녀 없다, 너 같은 손녀 없다"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시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습관이 되어 할머니 냄새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가래침도 더럽다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그것이 그렇게 고마우셨던 모양이다. 

<오메 할머니>를 읽으며 생각한다. 할머니가 얼마나 지독한 외로움 속에 계셨을지, 그것을, 이제야 말이다. <오메 할머니>는 '오메'라는 말을 자주 쓰셔서 '오메 할머니'로 불리는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아들네 집에서 잠깐 같이 살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특이하게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아들네 집에서 키우는 늙은 강아지 '봉지'이다. 봉지는 주인 아들도, 주인 며느리도, 손주 은지까지 모두 자기 일로 바쁠 때에도 오메 할머니와 딱 붙어다니며 할머니의 모든 일상에 함께한다. 봉지는 오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은지에게 공책을 선물로 받고 일기를 쓰며 기뻐하시는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의 서울 친구인 온몸에 예쁜 반지와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반지댁 할머니'와 박스를 주워 어린 손자를 키우며 어렵게 살아가는 '빡스댁 할머니'와 언니 동생하며 그들의 어려움까지 척척 해결해주는 할머니의 오지랖, 은지를 위해 쌈지 돈을 헐어 특별한 생일 빠띠를 열어주는 할머니의 활약상 등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오메 할머니>는 유쾌한 이야기 속에 진한 감동을 남긴다. '어릴 때, 어매가 만들어준 닷짜꾸리'를 기억하는 할머니의 추억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생일을 보내며 십만 원이나 하는 진주 목걸이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할머니의 웃음이, 자기들 어려운 것만 아는 자식들의 원망을 말 없이 듣고 있는 할머니의 침묵이, 엄마 편을 들며 자신을 멀리하는 손주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외로움이, 아파도 늙어서 그러려니 하며 혼자 삭히는 할머니의 아픔이, 나를 울린다.

봉지는 처음에 오메 할머니가 어서 고향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랄 만큼 할머니를 싫어했지만,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오메 할머니'와 깊은 정이 든다. "니가 먼저 갈랑가, 내가 먼저 갈랑가 모리겄다. 요새 자꾸 숨이 가쁜 것이 쪼까 거시기허다잉. 너라도 건강히리. 오래오래." 하신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봉지의 귀에 대고 "더...... 놀다, 온나. 싸묵......, 싸묵......" 할 때에, 할머니를 보내고 봉지가 '끄응, 낑...... 미안해. 병원에 안 가려고 발버둥 친 거......'라고 말하며 마지막 인사를 할 때에, 그때까지 내 눈에서 또로로 굴러 떨어지던 눈물이 그치질 않아, 책을 잠시 덮어두어야 했다. 가족들과의 이별보다 둘도 없는 친구 사이처럼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했던 오메 할머니와 봉지와의 이별이 몹시도 아팠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오메 할머니>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내가 처음 헤아리기 시작한 부모님만큼 나도 나이를 먹고, 내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어가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늙어가는 인생, 그 쓸쓸함에 대해서 말이다. 이 쓸쓸함은 누구도 빗겨갈 수 없다는 것도. 내 할아버지 할머니 인생도, 내 아버지 어머니 인생도, 나의 것만큼이나 절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십대이든, 이십대든, 나이 서른이든, 마흔이든, 오십이든, 육십이든, 칠십이든, 팔십이든, 아흔이든 그 절실함은 똑같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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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 오스왈드 챔버스의 성령론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1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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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만 역사하신다"(15).


그렇게 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나는 이 책에 담긴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문장(표현)과 가르침만으로 이 글을 쓰고 싶다. 나의 말을 섞지 않고 말이다. 영적 진리를 이보다 더 명쾌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확신있게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듯하다. 언제나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은 철저하게 예수가 달린 십자가를 향하여 있고,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성령론'이다. 오순절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신학 공부를 하고, 또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특별히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성령론'이 더욱 궁금했다. 오스왈드 목사님의 가르침을 읽을 때면,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처럼 마음이 뜨겁게 달구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가던 길을 돌이키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런데 나는 제목만 읽고도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령론'에 관한 책인데 제목이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라니! '성령'을 주제로 한 어떤 설교나 가르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메시지이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만 역사하신다"(15).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성령론'은 바로 이 한 문장 안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모든 가르침의 핵심이 들어 있다. "성령은 언제나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가장 절대적인 이유이다"(37).

역사적으로 '성령'이 나타나시는 '현상' 때문에 오해와 비난과 핍박을 당했던 오순절 교단에서는, 전통적으로 성령을 체험하는 성경적 현상과 그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에 주안점을 두고 성령론을 펼쳐온 것이 사실이다. 성령세례와 방언 현상이라든지, 신유와 같은 성령의 능력에 관한 연구 논문이 많다. 그런데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다"(31). 성령을 선물로 받은 증거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라는 것이다! 성령론을 가르칠 때,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는 구절을 근거로 '성도의 유익'을 많이 강조해왔는데,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그 초점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사람이 되는 것을 성도의 '유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성령론'에는 '오순절' 사건을 인류 역사 가운데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보는 관점(33-36) 등 아직 신학적인 논쟁의 여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푯대, 그러나 대부분이 놓치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성령을 어떤 능력으로만 생각할 때 내주하시는 성령에 대한 놀라움을 잃게 된다. 성령 사역에서 많이 간과되는 부분은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점이다"(36). 성령을 사모하는 자마다 그 간절함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진지한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왜 성령으로 세례 받기를 원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52-53).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언제가 '내'가 아니라, '주님'만 바라보도록 영적 시각을 교정해주며,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실 일을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우리 안에 임하시는 성령은 예수님을 위하여 뭔가 '하도록 하는' 영이 아니라 우리로 주님의 완전한 기쁨이 '되게 하는' 영이다"(32). 하나님을 위해 위대하고 성공적인 모험을 하라고 성령 세계를 주신 것이 아니다. 성령 세례를 주신 것은 "오히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서 예수님의 만족이 되라고 주신 것이다"(70).

이 책의 제목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 복음을 쉽게 설명한 '4영리'를 보면,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구원이요, 거듭남이라고 설명한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할 자리, 그리고 예수님을 모셔야 할 자리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성령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의 밑바탕에는 부요가 아니라 궁핍이 있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결단이 아니라 완전한 좌절감이 있다는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은, 그 완전한 좌절감 속에서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자유함을 선물한다! 해방의 기쁨은 얽매인 고통이 클수록 더 벅차오르는 법이다. 이 책은 나의 내면을 변화시킬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주님을 위해 할 일이 아니라, 주님이 내게 이루실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오르게 한다. 이 순간에도 내가 기대하지 않는 방법으로 나의 삶에 침투하실 성령님을 기대한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성령론'은 특별하고 새로운 신학이 아니다.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성경적 가르침이다. 모든 성령론은 바로 이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 누구에게보다 내가 속한 오순절 교단에 필독서로 추천하는 바이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이 말씀 앞에 나의 얉은 신앙을 회개한다. 이 말씀이 중심에 서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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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걷기여행 - On Foot Guides 걷기여행 시리즈
제인 에깅턴.닉 오도넬 지음, 정현진 옮김 / 터치아트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걷기에 완벽한 곳!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비롯하여 제주도 올레길까지 '걷기'를 주제로 한 여행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산티아고 순례의 길은 구도의 걸음을 목적으로 하고, 제주도 올레길은 제주도의 멋과 향을 음미하는 걷기 일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뉴욕 걷기여행>이 제안하는 뉴욕 여행은 '걷기'가 목적이 아니다. 뉴욕 곳곳을 탐험하며 뉴욕을 보다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걷기'라는 아날로그 방식의 여행을 권장하는 것이다. '걷기'를 목적으로 한 여행은 사실 '고행'에 가까운데, <뉴욕 걷기여행>은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는 여행이다. 

사실 많은 외국의 거리는 한 낮에도 혼자 걸어다녀서는 안 되는 위험지역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뉴욕 걷기여행>을 보고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단 지저분하고 위험하기로 악명이 높은 뉴욕 지하철! <뉴욕 걷기여행>은 이렇게 답한다. "그러나 일부 여행자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뉴욕 지하철이 위험하거나 불쾌하지는 않다. 물론 밤 10시가 지나면 지하철 운행 간격도 뜸하고 뉴욕 시민들마저도 야간 지하철 이용을 꺼리므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하지만 적어도 낮 시간 동안은 지하철이 뉴욕에서 가장 빠르고 저렴한 이동수단이다"(17). "이스트 빌리지의 밤거리는 대체로 안전하지만, 늘 그렇듯 조심하는 게 좋다"(144). 조심은 해야겠지만 내가 우려했던 것만큼 뉴욕이 위험하지 않아 보인다.

<뉴욕 걷기여행>은 왜 뉴욕을 걸으며 여행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맨해튼 섬은 주요 관광지 대부분이 몇 군데에 조밀하게 밀집해 있으며, 체계적인 격자형 도로 덕분에 길을 염려도 없다. 더구나 택시 요금이 저렴해서 뉴욕 어디에서나 각 코스의 출발지점까지 쉽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10).

<뉴욕 걷기 여행>은 걸어서 뉴욕을 탐험하는 총 14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미술관이 집결한 박물관 단지 '뮤지엄 마일'을 시작으로,
뉴욕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센트럴 파크',
예술과 공연, 상류층 대저택들과 고급 부티크 등 뉴욕을 쇼핑의 제국으로 만들어주는 '애버뉴'(2개 코스로 나뉜다),
미국 최초이자 최대의 공연 예술 단지인 '링컨 센터에서 케네기 홀'까지,
꺼지지 않는 빛의 향연으로 '위대한 하얀 길'(The Great White Way)이라는 별명을 얻은 '브로드웨이' 일대,
세계 어떤 도시도 넘볼 수 없는 환상적인 맨해턴의 마천루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일대,
예술가와 작가, 혁명적인 반항아들의 소굴이었던 초록빛 보헤미아 '그리니치 빌리지',
역동적인 밤문화와 색다른 외식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2번 애버뉴 일대(이스트 빌리지),
이민사회의 단면과 다국적 문화를 탐색할 수 있는 '이스트 빌리지 일지 일대',
뉴욕 최고의 쇼핑가이자 갤러리가 즐비한 예술의 거리 '소호',
미식가의 길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
뉴욕의 상징 브루클린 다리에서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을 감상하는 해안 산책 '사우스스트리트 시포트'까지
9.11 테러의 상처를 극복하고 재도약을 꿈꾸는 세계금융의 심장 '로어 맨해튼'까지.

<뉴욕 걷기여행>은 뉴욕이 금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예술의 도시, 문화의 도시라는 사실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책을 통해 미리 가본 뉴욕의 거리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양한 미술관이 집결한 박물관 단지 '뮤지엄 마일'인데, "몇몇 박물관은 한때 20세기 백만장자들이 살았던 대저택으로, 아름다운 건축물 자체도 소장품 못지않게 귀중한 예술품"(28)이라고 한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 도시이지만, 뉴욕이 품고 있는 문화 유산과 아름다움과 멋은 세계 어느 도시 못지 않아 보인다. 

<뉴욕 걷기여행>은 항공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실사에 가까운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만나보기 전까지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막연한 환상을 품어왔는데, 지금은 구체적인 뉴욕 풍경과 지도가 마음에 그려진다. 다만, 지도가 페이지 양쪽으로 걸쳐질 때는 가운데 맞물리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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