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창조 -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이어령.강창래 지음 / 알마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자신은 없지만(잘못된 기억이라면 용서하세요!), '이어령' 하면 떠오르는 글이 하나 있다. 그 글은 우리 시대의 대표 지성 '이어령'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이어령 교수님이 독일의 절약 정신에 관해 이런 글을 쓰셨다고 한다. 종전 후, 독일 사람들은 성냥개비 하나라도 더 아끼기 위해 몇 사람 이상 모이지 않으면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절약 정신으로 전쟁 후유증을 극복해내었다는 칭찬과 함께 우리도 본받자는 취지로 글을 쓰신 것 같다. 그런데 글쓴이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분이 이 글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성냥개비 하나를 아끼려고 몇 사람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여러 모로 낭비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담뱃불 좀 빌립시다" 한마디면 끝날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어령 교수님의 논리를 사대주의라고 꼬집었으리라. '이어령' 하면 대단히 유명한 분이고, 높은 자리에 앉아계신 분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데, 그 글은 '이어령'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때는 '이어령'이라는 분이 나쁜 분인가? 왜 의식(!)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어령'을 비판할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던 그때 내 마음에는 '이어령'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분이 세례를 받고, 신앙을 갖게 된 것에 사회가 관심을 보이면서 여기 저기 뉴스로 다뤄지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이어령 교수님의 회심이 반가웠고, 숨겨진 사연이 궁금했다. 회심의 중심에 사랑하는 딸에 대한 절절한 부성이 있음을 알고 '이어령'이라는 분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요즘 이어령 교수님의 신간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이 책 <유쾌한 창조>를 읽었다. 이 책은 강창래라는 인터뷰어를 통해 탄생한 책이다. 이어령 교수님을 인터뷰하기는 했지만 인터뷰 내용을 날 것으로 전하지 않고, 보다 정확하고 진실된 '이어령'을 말하기 위해 인터뷰를 익히고 익혀 숙성시켰다. 질문과 답, 질문과 답으로 이어지는 단순 인터뷰가 아니라, 필요한 자료까지 찾아가며 '이어령'을 탐색해내었다. 가히 '재창조'라고 할만한 작업이다.

<유쾌한 창조>는 많은 지면을 이어령과 김수영의 '볼온시 논쟁'에 할애하고 있다. 당시를 잘 모르고, 그 소문조차 몰랐던 나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얼마나 열정적으로 그 진상을 규명하고자 애쓰는지 그 진심이 느껴져 열심히 읽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편의 논문처럼 논리적이면서 비판적인 이 글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이어령'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형성된 배경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령'을 말하려는 인터뷰어 강창래 님이 왜 이토록 '볼온시 논쟁'을 붙들고 늘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지점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이어령'을 왜곡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일흔일곱의 할아버지가 된 이어령 교수님은 지금 죽을 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하신다. 그것은 죽기 전에 실패할 일 세 가지 때문인데,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와 '창조학교', 그리고 '한국인 이야기'가 그 세 가지이다. <유쾌한 창조>를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어령 교수님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 진심이 날선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인터뷰어 강창래 님에게도 통한 듯하다. 이 책을 통해 예리한 지성 뒤에 유쾌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이어령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지금 죽을 준비를 하고 계시는 교수님의 그 세 가지 꿈이 바로 대한민국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령이라는 분을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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