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소설로 읽는 20세기 수학 이야기 에듀 픽션 시리즈 7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살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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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20세기 수학 이야기

 
허무하다! 수학 교사였던 스테파노스가 오늘 새벽 그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그의 절친이었던 미카엘 이게리노스에게 전해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학 교사인 스테파노스는 왜 죽었는가? 그의 죽음이 미카엘 이게리노스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많은 물음을 남겨둔 채,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스테파노스와 이게리노스의 인연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그런데 이 이야기는 좀처럼 클라이막스에 도달하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 본론이 시작되나 싶은데, 이야기는 마지막 몇 장을 남겨두고 클라이막스에 이르고(심지어 그것이 클라이막스인지도 몰랐다), 마지막 한 통의 편지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되고 만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내내 조바심을 치다 순간 맥이 빠져 버렸다. 그러니 '20세기 유럽을 사로잡은 지성인들과 예술인들이 총출동한 지성적인 스릴러'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조짐이라도 보이면 일단 우거지상을 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쳐다보는"(99) 독자라면, 이 책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해주고 싶다. 지겨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렵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공식을 암기하고 기출 문제를 풀어대느라 '수학'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갖게 되었지만, 이제라도 '수학'이라는 학문의 과학성의 매력을 새롭게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살인을 부르는 수학공식>이라는 제목은 이 책이 '살인사건을 둘러싼 스릴러'일 것이라는 힌트를 제공한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알집으로 압축 파일을 풀 듯, 마지막 한 통의 편지에서 모든 압축이 풀어지며 끝나 버리고 만다. '스릴러'의 묘미를 느낄 새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스테파노스라는 수학 교사가 '살해당한 동기'를 이해하는 것이 이 스토리의 관건이다.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형사가 찾아내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단서는 '살해 동기'였다. ('해제'에도 밝히듯이) 이 모든 것은 한 수학자가 '왜'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동기를 이해하기 위한 '긴' 여정인 것이다.

파리에서 열린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힐베르트 교수는 "23개의 난제를 던지면서 수학계를 이끌어갈 학자들과 수학도들을 자극했다." 바로 그 자리에 살해된 스테파노스와 미카엘이 있었다. 스테파노스는 '힐베르트의 문제'라고 일컬어지는 난제 중에 특별히 두 번째 문제에 대단한 자극과 도전을 받는다. 그것은 "산술체계 공리의 완전하고 무모순적인 특성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의 해법이 공리계의 폭넓은 평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19세기 수학자들은 수학을 더 확실하고 완전한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완전한 공리적 체계에 대한 연구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힐베르트는 "연구할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수학 문제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44). 그러나 한 편에서는 "풀지 못한 난제들이 과학의 살아 있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더 이상 풀어야 할 문제가 없다는 것은 독립적인 발전 가능성의 결여나 멸종을 보여 주는 전조"(42)라고 여긴다.

수학의 영역에서 풀 수 없는 문제란 없다면서 답을 찾으라고 도전하는 힐베르트, 공리계에 모순이 없음을 증명하겠다는 스테파노스, 그리고 불가능한 해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만이라고 주장하는 미카엘! 과연 누구의 '믿음'이 옳은 것으로 판명날까. 그것이 곧 수학의 미래였고, 수학 그 자체였다. 

이 책은 '진실(진리)'에 대한 하나의 '믿음'이 어떤 집착과 광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가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한 집단의 집요한 싸움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집단을 종교단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엇에 대한 '굳센 믿음'을 가졌을 때, 그 믿음을 가진 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믿음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아닐까. 믿음이 강할수록 반대 사실에 대한 거부감도 커지기 때문에 만일 그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는 편집증 같은 망상으로까지 발전되기도 하는 것이다(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타진요'나 '상진세' 카페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살인을 부르는 수학공식>은 피타고라스학파 내에서 피타고라스의 철학 체계를 그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사실(논리)이 발견되었을 때, "과학의 종말이 왔다고 허둥대며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발견된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 자체가 벌써 그들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 책이 전하는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다. "그것이 어떻든 간에 나는 한동안 공부했던 역사를 통해 과학적 진실은 절대 숨길 수 없으며 어떠한 속임수에 의해서도 중단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288). 우리가 절대 왜곡하고 은폐할 수 없는 진실이 과학적 진실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역사적 진실까지 어떤 거짓과 속임수도 언젠가는 결국 폭로되고 만다는, 진실(진리)은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만은 깨어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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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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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위업, 보여지는 명분, 알려진 사실, 드러나는 행동 뒤에 숨은 검은 속내를 폭노하다!
 

우리나라에 콩쥐팥쥐가 있다면 서양에는 신데렐라가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동서양에 서로 닮은 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새삼 흥미롭게 느껴진다. <울프 홀>은 16세기 튜더 왕조의 '헨리 8세 스캔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책을 읽을수록,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기도 한 '숙종 스캔들'이 겹쳐진다. 두 '왕정 스캔들'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왕과 왕의 여자들, 왕을 차지하려는 여인들의 암투, 아들(왕세자)을 얻고자 하는 명분, 그들을 둘러싼 치열하고 잔혹한 권력 다툼, 비열한 음모와 적의에 찬 계략과 누군가의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결말까지, 게다가 이 화려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두 왕 모두 꽤 유능한 왕으로 평가받는다는 것, 왕의 사랑 하나로 왕의 아내가 된 궁녀(시녀), 그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오르려 기회를 엿보는 인물까지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 역사는 수직으로 뿐만 아니라, 수평으로도 돌고 돌며 반복되는 것인가 보다. 

두 왕정 스캔들 모두 자주 영화와 드라마(미드)로 만들어질 만큼 이야기꾼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것은 '왕정 스캔들'에 걸맞는 화려함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가 그야말로 '드라마틱' 하기 때문이리라. '숙종 스캔들'을 하면 단연 '장희빈'을 떠올리는 것처럼, 16세기 튜더 왕조를 배경으로 한 '헨리 8세의 스캔들'에서는 총 여섯 명의 아내 중에 그의 두 번째 아내였던 야망에 찬 '앤 불린'이 단연 주인공감이라 할 수 있다. <울프 홀>은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의 결혼을 무효로 하고 앤 블린과 결혼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숙종 스캔들'과 '헨리 8세 스캔들'의 차이가 있다면, 숙종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둘 권리를 가졌으나, 헨리는 오직 한 명의 아내를 두어야 했다는 것이다. 최고권력자에게 종교가 부과한 이러한 제약은  눈엣가시처럼 성가신 것이었지만, 그의 양심을 찔렀고, 동시에 정치 권력의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합법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었다.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해방이라는 대과업을 이룩한 위인 '링컨'이 왜 남북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정치적인 속사정을 알았을 때 배신감을 느꼈던 것처럼, <울프 훌>에서도 역사적 위업의 숨겨진 속셈이 폭로된다. 헨리 8세는 수장령으로 '성공회'라 일컫는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며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가 알고보면 단지 자신의 첫 번째 아내와 합법적으로 '이혼'하기 위해서였다는 숨겨진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이자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그냥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정지해놓고 살펴보듯 장면마다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섬세하다. 그러나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이 툭툭 끊어진다. 마치 중요 장면만 따다가 모아놓은 듯한 인상이다. 이야기 진행 과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문장 문장은 멋있는데 전체적으로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그러나 역사적 배경과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배경 지식을 가지고 읽는다면, <울프 홀>의 함축적인 서술, 섬세한 문체 안에 담긴 문학의 맛과 멋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울프 홀>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헨리 8세' 스캔들에서 그동안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던 '토머스 크롬웰'이다. 왕에게 중매를 잘못 선 죄로 참수 당하는 비극적인 인물이지만, <울프 홀>에서는 미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정치 권력의 정점에 서기까지 근대 권력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발길질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간신히 기어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정치 권력의 최상층에 오른 직후, 오랫만에 휴식을 갖기 위해 '울프 홀'로 떠날 계획을 세우는 데서 막을 내린다. 아버지에게 맞아 쓰러진 첫 장면에서 그는 배로 밀면서 앞으로 기어갈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가. 아버지가 뱀장어라고 욕하든, 버러지라고 욕하든, 뱀이라고 욕하든 신경 쓰지 마.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를 자극하지 마"(20). 기어서라도 조금씩 앞으로 밀고나가며, 자기보다 높은 권력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가려운 곳을 대신 긁어줄 실력까지 갖춘 '그'는 그렇게 '푸주한 집 개'에서 왕의 오른팔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울프 홀>은 역사적 위업, 보여지는 명분, 알려진 사실, 드러나는 행동 뒤에 숨은 검은 속내를 폭노하고 있는데, 영국의 역사까지 바꾼 그들의 속셈이 알고 보면 사사롭기 그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어쩌면 앞으로도), 인생을 이끌어가고, 역사를 이끌어가는 수레바퀴의 동력은 참으로 사사로운 것에 기인하고 있는 듯 하다. 어떠한 거창한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파헤치고, 파헤치고, 또 파헤치고, 계속해서 파헤쳐 들어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이기적인 욕망 한줌인가. 때때로는 우리는 스스로(인간)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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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생물 이야기 - 상상을 초월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개정판 이상한 생물 이야기
하야가와 이쿠오 지음, 데라니시 아키라 그림, 김동성 감수, 황혜숙 옮김 / 황금부엉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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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생물보다 글쓴이의 독특한 정신세계가 더 튀는 책.
아이들에게 선물하지 마세요!

 

일본에서 '이상한 생물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는 이 책을 만났을 때, 나의 첫 번째 충격은 "이런 생물이 있을리 없어"라고 외칠 만큼 괴상한 생김새를 가졌거나 요상한 생태 습성을 가진 생물과의 만남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 책과 맞닥뜨린 나의 첫 번째 충격은 이 책의 '설명' 방식이었다. 책의 소재나 판형, 그리고 본문 서체 크기를 봤을 때, 당연하게 나는 이 책이 아동을 위한 도서일거라 제멋대로 생각을 해버렸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내용이 '성인 버전'이다. 첫 생물과의 만남에서부터 당황스럽게 그지 없다. 동해와 태평양의 난류 해역에 서식한다는 "집낙지"을 들어보자. "암컷은 체내에 남겨진 여러 수컷의 페니스 다리로 수정을 한다. 이러한 집낙지의 생태는 비아그라를 챙겨 먹고 각종 '페니스 강화 훈련'에 밤낮 없이 열을 올리는 남자들에겐 실로 바짓가랑이를 움켜잡고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프로이트적 악몽이 아닐 수 없다"(12). 

그 모양이 온천장 마크와 비슷해서 일본에서는 '여관'의 은어로 쓰이기도 했다는 "물구나무해파리"에서는 "여관 앞에서 옥신각신하는 남녀의 모습은 아직 연인들에게 수줍음이란 것이 존재하던 시대의 풍경이 아닐까"(40)라는 설명과 함께 여관 앞에 선 남녀의 모습까지 삽화로 등장한다!

로맨틱한 빛의 춤사위가 수많은 여성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는 "바다반딧불"에서는 "황홀한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그녀를 멋진 레스토랑으로 안내해서, 칵테일을 한 잔 먹인 후"(96)라는 설명이 말줄임표로 끝난다. 도대체 무엇을 상상하라는 말줄임표인지 대략난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육체적 관계는 없다", "여고생을 좋아하는 중년의 아저씨"라는 표현까지, 책 전체에서 민망하고 불쾌한 표현들은 대략 이정도지만 아무리 분량이 적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유머와 위트로 넘겨야 할까. 글쓴이의 수준이 의심스러울 만큼 상당히 불쾌한 농담이다.

위의 내용들을 제외한다면, <이상한 생물 이야기>는 백과사전식의 딱딱함을 벗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체 설명 방식이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동족을 집어삼키는 "갯민숭달팽이"를 보고,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들의 삶은 늘 굶주림과 시기심 그리고 공포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36).

이 책에서 만난 가장 이상한 동물은 '지옥의 흡혈 오징어'라는 학명이 붙여졌다는 "흡혈박쥐문어"(112)이다. 상상 속에나 존재할 것 같은 모습이지만, 상상이 빚어낸 생물이 아니기에 더 신기하다. <이상한 생물 이야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얼마나 무수한 생물이 지구상에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이상하다기보다 신비롭다. 이와 같은 생명의 신비를 접할 때마다, 지구가 자신만의 것인양 생활하는 인간의 교만함을 반성하게 된다.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생물들의 모습이 일러스트라는 것이다. 컬러판 사진으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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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 걷기여행 -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
녹색연합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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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과 수도권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반면, 환경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걸을 만한 좋은 길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도 충분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길, 주변의 작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수평형 걷기를 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역사, 문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그 길을 우리가 무관심으로 지나쳐 버리고 있을 뿐입니다. 바로 서울의 대표적인 생태길, 서울성곽길 얘기입니다"(8).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서울이 성곽에 둘러쌓인 수도라는 사실을 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경북궁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싼 성곽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서울을 그릴 때도 그런 그림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었다. "남산 등허리에는 6백년 전에 쌓았던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정도로 한결같이 지금의 그 자리"를 지켜온 성곽의 존재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말이다.

<서울성곽 걷기여행>은 빌딩 숲을 헤치고, 우리의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는 서울의 성곽길을 다시 찾아주고 있다. 걷기여행의 열풍이 한창인 가운데 서울에도 다양한 역사, 문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걷기 좋은 길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서울성곽길은 남산 - 낙산 - 백악산 -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18.6킬로미터의 서울성곽을 따라가는 길(14)이다. 이 책에서는 총 4코스로 나누어 '서울성곽 걷기여행'을 추천한다. 

1코스 남산은 숭례문에서 장충체육관까지 약 6킬로미터로 4시간 소요, 2코스 낙산은 장충체육관에서 혜화문까지 약 5.5킬로미터로 3시간 소요, 3코스 백악산은 혜화문에서 창의문까지 약 5.5킬로미터로 3시간 소요, 4코스 인왕산은 창의문에서 숭례문까지 약 6킬로미터로 4시간이 소요되는 길이다. 현재 서울성곽은 3분의 2 정도가 복원되었고 지금도 계속 복원 중(16)이라고 하는데, 서울 성곽길 각 코스는 최소 5킬로미터 이상으로 대체로 산을 오르내리는 길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또 하나, 3코스는 군사시설이 밀집되어 있어 출입하기 전 신분 확인받아야 하니, 잊지 말고 신분증을 필수품으로 챙겨야 한단다.

그런데 이 책은 여행 서적이라기보다 문화유적 답사기 같은 느낌이 강하다. 서울 성곽의 역사는 물론 공법이나 재료, 형태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은 성곽길이 방치되고 있거나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우매함에 대한 쓴소리도 담아내고 있다. 무조건적인 찬양 일색이 아니라, 애정에서 나오는 쓴소리는 이 책이 서울 성곽길에 대한 얼마나 깊은 애정으로 쓰여졌는지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중 "자연스러운 생태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물론이고 그 일대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도 힘을 모아야 했으나 그러지 못해"(85) 서울의 보물이자 동시에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청계천' 복원 이야기가 너무도 아쉽다. 인왕산과 백악산의 원래의 물줄기가 콘크리트로 된 주택가를 만나며 모두 하수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지금 청계천에 흐르고 있는 물은 인공적으로 끌어온 것이라는 사실이 참 씁쓸하다. 이제까지 아름다운 하천을 되살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서울 성곽길을 따라 걷는다면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가치와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 있을 듯하다. 역사의 발자취와 오늘을 돌아보는, 배움이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이 되리라. <서울성곽 걷기여행>은 걷기여행으로 다져지는 건강 이외에도, 의식까지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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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이론 수능편 1
박상준 지음 / 잉글리시비주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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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이론>을 고등학교 때 알았더라면 최소한 영어 공부로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었을 텐데 억울하다! '품사 문법'이 아니라, '문장 문법'이 필요하다는 이 책의 외침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하다. 대학원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독해가 필수이고, 토플이나 텝스에서도 독해 비중이 높기 때문에 회화보다는 독해를 공략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품사 문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 문장이 주어지면, 일단 품사별로 분해를 하고, 그 분해 조각을 퍼즐 맞추듯이 우리나라 어순에 맞게 배열하는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 <퍼즐 맞추기식 영어 해석이 허약 체질을 만들었다>는 한마디에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20년이 넘는 내 영어공부를 이 책은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영어단어를 이용한 일종의 한국어 퍼즐 게임!"

현재 한국에서건, 유학을 가서건, 학위를 위한 공부에서는 '원서를 읽어내는 능력'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문장 독해는 대학 진학을 위한 '수학능력' 평가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 생활의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고등학교 때 그 기초를 다져야 할 분야이다. 그동안 내가 배운 최고의 독해 비법은 미국식 어순에 익숙해지는 것이어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평면적 사고였는지 내 머리속에 그려지는 미국식 어순의 그림만 생각해보아도 짐작이 된다. <해석이론>을 통해 기존의 영문법과 전혀 다른 개념의 '문장 문법'과 '영어가 정보를 결합하는 방식' 등을 새로 익혀야 한다는 사실에 허탈감도 느끼지만, 몇 년을 매달려도 완전정복을 외칠 수 없었던 영문법의 늪에서 드디어 탈출구를 발견한 기쁨도 크다!

<해석이론>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간에 나도는 많은 '비법'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해석이론>은 1957년 노암 촘스키의 언어학혁명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언어학'에서 영문 독해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해석이론>은 단순한 비법서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영문법을 재정립해내었다. 

 

 


이 단순한 도식 하나가 영어문장에 대한 이해를 전혀 새롭게 해준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이 도식을 보고 난 후, 나는 일부러 긴 영문장을 찾아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전에는 막막하기만 했던 긴 영문장의 구조가 단순해지는 마법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다. 이 도식 하나만 잘 기억하고 있어도 영문장의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아직 수능은 끝나지 않았지만, 수능이 목전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이제야 발견한 수능생들은 많이 안타까울 듯하다. 이 책은 현재 영어 독해를 아주 잘하는 사람(학생)일지라도 다시 꼭 참고해야 할 책이라 생각된다. 전국의 영어 선생님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영문법을 이 책으로 다시 공부해야 하지 않나 싶다! "현재 우리 영문법은 100년도 더 전에 영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품사 문법의 아류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현실에 화가 난다! 역사학자들이 자신들이 '배우고 익힌' 지식과 그것을 통한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어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해석이론>이 외면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에는 깨끗하게 인정하고 옳은 것을 받아들이는 탄력과 융통성이 이 나라의 많은 수험생을 구하고, 영어의 늪에 빠진 인재들을 구할 것이다.
   
<해석이론>은 '영어'라는 언어가 단어를 연결하는 방식, 정보의 연결 방식에 나타나는 권력관계, 3가지 원리로 4개의 구(명사구, 형용사구, 동사구, 문장구)를 만드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설명 방식도 다이나믹 해서 영문법이 지루하지 않게 다가온다. 4권으로 구성된 <해석이론>으로 열심히 공부한 후, 영문장을 이해하는 눈이 완전히 떠지면 저자를 찾아가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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