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소설로 읽는 20세기 수학 이야기 에듀 픽션 시리즈 7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살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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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20세기 수학 이야기

 
허무하다! 수학 교사였던 스테파노스가 오늘 새벽 그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그의 절친이었던 미카엘 이게리노스에게 전해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학 교사인 스테파노스는 왜 죽었는가? 그의 죽음이 미카엘 이게리노스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많은 물음을 남겨둔 채,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스테파노스와 이게리노스의 인연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그런데 이 이야기는 좀처럼 클라이막스에 도달하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 본론이 시작되나 싶은데, 이야기는 마지막 몇 장을 남겨두고 클라이막스에 이르고(심지어 그것이 클라이막스인지도 몰랐다), 마지막 한 통의 편지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되고 만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내내 조바심을 치다 순간 맥이 빠져 버렸다. 그러니 '20세기 유럽을 사로잡은 지성인들과 예술인들이 총출동한 지성적인 스릴러'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조짐이라도 보이면 일단 우거지상을 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쳐다보는"(99) 독자라면, 이 책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해주고 싶다. 지겨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렵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공식을 암기하고 기출 문제를 풀어대느라 '수학'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갖게 되었지만, 이제라도 '수학'이라는 학문의 과학성의 매력을 새롭게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살인을 부르는 수학공식>이라는 제목은 이 책이 '살인사건을 둘러싼 스릴러'일 것이라는 힌트를 제공한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알집으로 압축 파일을 풀 듯, 마지막 한 통의 편지에서 모든 압축이 풀어지며 끝나 버리고 만다. '스릴러'의 묘미를 느낄 새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스테파노스라는 수학 교사가 '살해당한 동기'를 이해하는 것이 이 스토리의 관건이다.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형사가 찾아내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단서는 '살해 동기'였다. ('해제'에도 밝히듯이) 이 모든 것은 한 수학자가 '왜'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동기를 이해하기 위한 '긴' 여정인 것이다.

파리에서 열린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힐베르트 교수는 "23개의 난제를 던지면서 수학계를 이끌어갈 학자들과 수학도들을 자극했다." 바로 그 자리에 살해된 스테파노스와 미카엘이 있었다. 스테파노스는 '힐베르트의 문제'라고 일컬어지는 난제 중에 특별히 두 번째 문제에 대단한 자극과 도전을 받는다. 그것은 "산술체계 공리의 완전하고 무모순적인 특성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의 해법이 공리계의 폭넓은 평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19세기 수학자들은 수학을 더 확실하고 완전한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완전한 공리적 체계에 대한 연구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힐베르트는 "연구할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수학 문제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44). 그러나 한 편에서는 "풀지 못한 난제들이 과학의 살아 있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더 이상 풀어야 할 문제가 없다는 것은 독립적인 발전 가능성의 결여나 멸종을 보여 주는 전조"(42)라고 여긴다.

수학의 영역에서 풀 수 없는 문제란 없다면서 답을 찾으라고 도전하는 힐베르트, 공리계에 모순이 없음을 증명하겠다는 스테파노스, 그리고 불가능한 해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만이라고 주장하는 미카엘! 과연 누구의 '믿음'이 옳은 것으로 판명날까. 그것이 곧 수학의 미래였고, 수학 그 자체였다. 

이 책은 '진실(진리)'에 대한 하나의 '믿음'이 어떤 집착과 광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가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한 집단의 집요한 싸움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집단을 종교단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엇에 대한 '굳센 믿음'을 가졌을 때, 그 믿음을 가진 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믿음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아닐까. 믿음이 강할수록 반대 사실에 대한 거부감도 커지기 때문에 만일 그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는 편집증 같은 망상으로까지 발전되기도 하는 것이다(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타진요'나 '상진세' 카페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살인을 부르는 수학공식>은 피타고라스학파 내에서 피타고라스의 철학 체계를 그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사실(논리)이 발견되었을 때, "과학의 종말이 왔다고 허둥대며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발견된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 자체가 벌써 그들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 책이 전하는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다. "그것이 어떻든 간에 나는 한동안 공부했던 역사를 통해 과학적 진실은 절대 숨길 수 없으며 어떠한 속임수에 의해서도 중단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288). 우리가 절대 왜곡하고 은폐할 수 없는 진실이 과학적 진실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역사적 진실까지 어떤 거짓과 속임수도 언젠가는 결국 폭로되고 만다는, 진실(진리)은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만은 깨어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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