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 - 휴먼 스페이스의 기하학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후루야마 마사오 지음, 김미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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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의 건축물만큼 매력적인 사람, 안도 다다오!

 
'잘 지어진' 건축물은 소중한 문화재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 최근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트라이-볼(Tri-bowl)이 각종 건축상을 휩쓸면서 인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사발 세 개를 세워놓은 듯한 이 독특한 건축물을 나도 직접 가서 보았다.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조형을 위한 예술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독특하고 멋진 건물이었다. 가수 비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며 유명해지기 시작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찾을 때도 외국 관광객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건축 산업도 활발하고 세계가 알아주는 두뇌를 가진 우리이지만, 이렇다 할 건축물이 별로 없는 것이 몹시 아쉬운 부분이다. 건축은 활발하지만 '독립된 개성이 없는 건물들'만 즐비한 거리는 지루하기만 하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요즘 유행하는 건물의 패턴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새로 지어지는 빌딩을 보면, 비슷한 재료, 비슷한 양식이 어쩌면 그렇게 한결 같은지 '요즘은 저런 건물이 유행이구나' 하는 것이 한 눈에 보이니 어지간히 개성이 없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성숙한 사고 방식은 아니지만) 사실 더 안타까운 것은 "일본은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될까?" 하는 점이다. 안도 다다오는 세계가 인정하는 일본의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를 알게 된 것은 '빛의 교회'라는 건축물 때문이었다. 정면 벽에 십자가 모양의 슬릿이 뚫려 있고, 그 틈새를 통해 빛이 들어와 십자가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사진은, 정말이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후에 사진 속 작품이 '빛의 교회'라는 건축물인 것을 알았다. 처음엔 "마치 핀홀 카메라 안에 있는 것처럼 어두움 속에서 떠오르는 눈부신 십자가"(37)를 보고, 환상적인 빛의 마술을 절묘하게 포착해낸 사진 작가의 솜씨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십자가 모양의) 빛이 건축가가 의도한 장치라는 것을 알고, 이름도 모르는 건축가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하는 시리즈(Basic Art Series)를 통해 <안도 다다오>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감사하다. "건축이라는 것은 추상적 공간 구조 안에 자연과 역사, 전통과 사회 등 현실 세계에서 명확하고 투명한 논리로 구성된 구체적인 요소들을 표현하는 작업이다"(표지 앞 날개 中에서)라고 정의하는 안도 다다오는 일명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유명하다. 나무, 돌, 콘크리트처럼 실체가 있는 소재를 좋아하는데, 특히 빛과 콘크리트의 조화가 경이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라고 부른다. 인간미가 거세된 도시의 냉혹함을 상징하는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콘크리트'와 '벽'이라는 소재가 안도 다다오를 통과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콘크리트라는 차갑고 다소 조악해 보이는 재료가 사람들에게 경의로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고 어울림을 지향하는 안도 다다오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 "건축이 '폐쇄된 상자'라는 기본 속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어려운 이상, 하늘은 건축의 내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연 요소이다"(13).

'노출 콘크리트 기법' 외에 안도 건축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먼저, 안도의 건축에는 투명한 기하학이 자리잡고 있다. 안도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제한된 재료를 써서 그 특유의 질감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이다(12). 단순한 기하학적인 구조 안으로 자연을 인도한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안도의 건축은 '벽의 건축'이다. 보통 단절을 상징하는 '독립된 벽'이 그에게는 "부드럽게 비호하는 벽,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벽"이 된다. 또 안도의 건축에서는 자연, 특히 하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늘에 형태를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안도 건축의 매력이다."

후루야마 마사오가 쓰고(아쉽게도 저자에 대한 정보는 없다), 마로니에북스가 출간한 <안도 다다오>는 안도 건축의 특징뿐만 아니라, 안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17살 때 프로복서로 데뷔했다는 이 사람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강인함이 느껴지는 건축가이다. 고독해보이지만 고립되지 않은 삶을 살았고, 고집스러워보이지만 부드러운 강인함을 가진 남자로 보인다. 안도는 현대건축계에서는 특이한 이력의 건축가이다. 학교나 선생이 아니라 경험으로 건축을 배웠다는 그는 인생의 스승은 있지만 건축계에는 스승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고집과 경험이 '안도'만의 세계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천편일률적인 과정과 단계를 거치며 살고 있는 나의 편협한 인생 설계가 그를 통해 좀 더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다. 그를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내 인생도 이보다 더 확장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은 혼자서도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그는 스스로를 '투쟁하는 건축가'(19)로 규정했다고 한다. "그는 20대에 건축을 할 것인가, 혁명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결국 건축을 선택했다"(20). '주거를 바꾸는 것은 도시를 바꾸는 것이며,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다'라고 확신한 그는 건축을 통해 사회를 바꿔가고자 했단다. 그의 그러한 결의는 특별히 지극히 작은 서민 주택이나 집합 주택이 들어서기에 매운 까다로운 지형 조건이었던 곳에 그가 지어놓은 건축물들에 잘 드러난다. 단순해서 강력하면서도 부드러운 안도의 건축은 형태는 단순하지만 공간은 복잡하다. 여백에도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안도는 좁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고, 자연이 건축의 부분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핸디캡을 오히려 예술적 요소로 승화시킨다.

안도의 건축물을 보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긴다. 그의 건축물은 확실히 나의 취향이다. 안도의 건축물을 모아놓고 보면, 안도만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같은 소재, 같은 기법, 같은 구상이 잘못 하면 오히려 식상해질 수도 있을 터인데, 주변 환경(자연)과의 조화라는 지극히 단순한 원리 하나가 그의 모든 작품을 '독립된 개성'을 지닌 예술품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는 머리로만 지은 건축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식의 조작이나 형태에만 관심을 두는 건축을 경멸한다. 안도에게 있어 진정한 건축은 형이상학적인 미학을 표현한 공간이 아니라, 체화된 지혜가 구현된 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안도는 아름다운 건축이나 기술적으로 훌륭한 건축을 추구하지 않는다. 번민과 고통, 공포심을 극복하고 이룬 떳떳한 건축만을 평가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인생을 건 표현만이 숭고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인생은 투쟁의 연속이고, 투쟁만이 감동을 일으킨다'는 안도의 굳은 신념이 깃들어 있다"(7).

그의 건축물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가 매력적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든, 요리이든, 건축물이든 결국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 바로 그 자신(마음)에 대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철학을 가진 건축가가 많아지기를 소망해본다. 그러면 우리 삶이 훨씬 더 풍요로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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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빅 씽 The Little Big Things - 사소함이 만드는 위대한 성공 법칙
톰 피터스 지음, 최은수.황미리 옮김 / 더난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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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소함이 만들어내는 엑설런스(Excellence)!

 
한번은 고급 음식집으로 회식을 간 적이 있다. '궁'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외관에,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직원들과 독특한 화장실 인테리어까지 감탄사가 터져나올 정도로 정성을 많이 드린 곳이었다. 그러나 좋았던 첫인상은 담당 직원들의 사소한 행동 때문에 곧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릇과 그릇이 부딪혀 소리나도록 음식을 내려놓는가 하면, 자신들이 셋팅해 놓은 대로 절대 손대지 말라며 고압적으로 말하는 종업원 때문에 우리는 모두 어이가 없어졌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고, 누가 물어보면 가지 말라고 말리는 곳이 되었다. 음식점 입장에서는 '사소하고 평범한 단체 손님'(?)이었겠지만, 입소문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한 번의 불친절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리라.

<리틀 빅씽>은 너무 사소해서 우리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바로 중요한 성공 법칙이 숨어 있음을 역설하는 책이다. "개인과 조직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 아는 아주 사소한 것, 평범하면서 작은 것, 기본적인 것이다"(51). 친절, 미소, 청결과 같이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간과하게 되는 것들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성공 열쇠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새로울 것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창한 성공 전략을 세우느라, 우리가 그 당연한 '룰'을 사실은 무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리틀 빅씽>은 사소해보이지만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을 '163가지 성공 법칙'으로 정리했다. <리틀 빅씽>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승자가 되려면 남을 앞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과 다른 탁월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이 책에서 말하는 163가지 성공 법칙들은 바로 그 탁월함, 다시 말해 위대한 삶의 엑설런스(Excellence)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견인차이다. 그런 점에서, <리틀 빅씽>은 경영전략에 관한 도서이지만 자기계발서 내지 자기 경영서로도 훌륭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소하고', '평범한' 성공 법칙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적응이 가능하며, 또 적용되어야 할 '기본'이기 때문이다. 건물도, 학업도, 운동도 기초가 부실하면 견고한 탑을 쌓아 올릴 수 없고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처럼, <리틀 빅씽>이 제시하는 기본 법칙을 무시하고서는 어떤 분야든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리틀 빅씽>은 구루들의 거창한 이론에 지나치게 현혹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실제로 백만장자들은 경영 대가들이 말하는 경영 이론의 영역 밖에서 부와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고 있음을 지적한다. "백만장자들은 구체적으로 용접공, 경매인, 고물상인, 이동식 화장실 임대인, 세탁소, 디젤 엔진 수리공, 도로 포장 전문가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현실이다. 이 같은 세상을 경영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백만장자들은 사소해 보이는 일을 통해 용기와 신념으로 기회를 일구어낸 것이다. 이에 비해 자신의 재주만 믿는 MIT의 박사들은 여전히 백만장자의 이웃으로 남아 있다"(67). 백만장자들은 주로 대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용접, 고물상, 이동식 화장실 임대 등을 통해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선한 자극이 된다.

지난 설 명절에 <리틀 빅씽>의 사소한 법칙 하나를 실천해보았다. 그것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팀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작은 핸드크림을 정성껏 포장하여 하나씩 선물을 드렸다. 그 작은 선물에 얼마나 크게 감동을 하시는지 식당에서 만날 때마다 서로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리틀 빅씽>이 제시하는 사소한 성공 법칙은, 당장은 크게 '티'가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과 조직의 미래에 큰 차이가 나게 만들 것이다. 기초, 기본, 토대란 그런 것이다. 

<리틀 빅씽>은 어려운 용어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경영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간결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경영인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지만, 특히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이 읽으면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그러나 경영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자신의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엑설런스'를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참고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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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양육 혁명 - 과잉보호와 소비문화에서 아이들을 살리는 젊은 부모들의 반란
톰 호지킨슨 지음, 문은실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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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모가 게으를수록 아이가 행복해진다!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의 책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에 보면 '계획 수립 프로젝트로서의 삶'이라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개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험한 자유',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불확실성의 생산'은 개인에게 "계획하라! 미래를 손아귀에 쥐고 통제하라! 우연을 피하고 심지어 조정하기까지 하라"는 요구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이 요구에 응하면 삶은 계획을 수립하는 프로젝트가 된다는 것이다. 미래에의 압박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낸다. 

'계획 수립 프로젝트로서의 삶'에서 한국 사회의 부모가 가장 열렬히 매달리고 있는  바로 '자녀 교육'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시(교육) 제도 및 각종 사회 제도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선발'하는 방식이다. 잠재하는 위헙과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부모는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떠안는다. 여기에 과잉보호와 소비문화가 혼합되면서 한국 사회는 '미친 양육'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하나의 진실은 아무리 견고한 계획을 수립한다 해도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에 해당하는 사례를 지금 당장이라도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이상 댈 수 있다. 하나 있는 딸의 멋진 인생을 위해 어릴 때부터 딸을 방송에 출현시키며 부지런을 떨었지만, 결국 딸의 평범한 삶을 받아들여야 했던 이모가 있고. 명문대 출신의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로 치료를 받아야 했던 친구가 있고. 줄곧 전국 1등을 놓치지 않으며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기적 처럼 대학에 떨어진 후,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해야 했던 교회 후배가 있고. 일명 '대치동 엄마'로 살아가느라 아픈 엄마 곁을 편히 지킬 수 없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촌 동생이 있다. 

<즐거운 양육 혁명>은 한마디로 게으른 부모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그들을 놀게 하라는 것이다. 게으른 양육의 최고 핵심 포인트는 자녀와 일을 나누라는 조언일 것이다. 자녀가 할 일을 자녀에게 돌려주라고 말한다. 

저자 소개가 재밌는데, 저자인 톰 호지킨슨은 "천성적 게으름과 동기결여로 사회에 부적응하던 중, 게으름뱅이를 단지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 새뮤얼 존슨에게 감명을 받아" 잡지를 창간하고,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현재는 "영국 데번의 한 농장에서 부인과 세 아이 그리고 말과 토끼, 고양이와 닭과 함께 어우러져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글을 쓰며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게으른 양육'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토대도 탄탄하다. 이 책의 저자가 '게으른 양육'을 주장한 최초의 사람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양육 경험을 사례로 소개하며, 17세기 존 로크와 18세기의 장 자크 루소의 사상으로 자신의 주장을 검증한다. 이 밖에도 "20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자 D. H. 로렌스, 1960년대 교육 사상가이자 서머힐 스쿨의 창립자인 A. S. 닐, 새로운 교육 제도의 실현을 주장한 이반 일리치, '고립된 개인'의 시대를 넘어설 것을 촉구한 바바라 에린라이히 등을 끌어와서 이야기를 풀어간다"(12).

<즐거운 양육 혁명>은 우리 사회의 '미친 양육'을 강력하게 한방 먹이는 책이다. '부모 노릇'에 지친 부모라면 탈출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게으른 양육'은 무엇보다 부모의 내면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아준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어릴 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제대로 된 특기 하나 만들어놓지 못했던 나는, 누가 물으면 우리 부모님은 나를 '방목'하셨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지혜였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게으른 양육과 무책임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두는 것'과 방치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저자는 "게으른 부모가 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자유의 탐닉과 훈육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49)이라고 말한다. "게으른 부모의 사명은 훈육을 그르치는 것을 피하면서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두는 것"인데, 이것이 "현대의 양육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 떼쓰기를 중지시켜 줄 것"이라고 장담한다. 여기서 저자는 아이들이 징징대는 이유를 분석하며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과잉보호하며 소비문화에 젖어 있는 부모들에게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해준다.

과도한 부모 노릇에서 벗어난 게으른 부모가 되라는 말에 자유를 맛보며, 쉽게 '혹' 할 부모들도 많겠지만, 아쉽게도 게으른 부모가 되는 길은 쉽지만은 않다. 돈이 많이 드는 여행을 그만두라는 말은 고맙지만, 부모는 집안에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놀 수 있는 '창의적인' 놀이 계발자가 되어야 한다(물론 설거지도 얼마든지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깨알 같은 조언들이 책에 가득하지만 말이다). 비싼 장난감 대신 친구를 곁에 두라는 말도 고맙지만, 현대 사회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제이다. 

<즐거운 양육 혁명>은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교육 지침서가 아니다. 게으른 양육은 가치관의 문제이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 인생의 목표, 양육 마인드가 뒤집어지는 '혁명'이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 풍조를 거스를 수 있는 신념이 절대적으로 요청되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자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며, 값비싼 학원과 캠프를 다니며 스펙을 쌓아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아도 내 아이만 뒤치지는 것 같은 불안 따위는 치워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자녀가 성공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즐거운 양육 혁명>에 접근한다면, 모순의 덫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횽내 내기도 어렵겠지만, 더 깊은 후회만 남기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이고 싶다. <즐거운 양육 혁명>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대신 '시간제'로 일하며 아이들과 놀아주라는, 다소 극단적인(이상적인 생각을 뛰어넘어) '게으름'(?)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가능해보일지라도, '입시제도'만 바뀌면 부모, 자녀 모두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근시안적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미친 양육'에 대한 반란이 꿈틀거릴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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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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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입시를 앞두고 의학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 의대로 학생들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1년 8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면 올해 의대 경쟁률이 더욱 치열해지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출연진도 호화롭지만, 원작으로 봤을 때 설원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과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밝고 경쾌한 리듬 속에 메마른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줄 진한 눈물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나라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이 많지만, 일본의 것이라고 하면 '서점대상'에 관심이 간다. 책을 파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책이라는 것도 흥미롭고, 가장 팔고 싶은 책을 꼽은 것이라고 하니 그 자체로 재미와 감동이 보장되는 셈이다. <신의 카르테>는 제7회 서점대상에서 2위를 차지한 책이다.

'카르테'(Karte)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기록을 남기는 '진료 카드'를 말한다. 우리에게는 차트(chart)라는 말이 더 익숙한데, 카르테는 독일어라고 한다. <신의 카르테>는 현직 의사가 지방 도시의 일반 병원을 주무대로 하여 그려낸 감동 휴머니즘이다.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시나노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혼조병원'에서 근무 5년째에 접어드는 내과의이다. 지방 도시에 있는 혼조병원은 일반진료에서 응급의료까지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 거점 병원이다.

<신의 카르테>의 저자 나쓰카와 소스케는 현직 의사답게, 괴짜로 통하는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를 통해 지방 병원의 현실을 코믹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래도 될까' 싶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병원에 가기가 겁날 정도이다. 그러나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병원의 숨겨진(?) 진실을 알아가는 묘미가 있다. 주인공이 일하는 혼조병원에서는 산더미 같은 환자들을 내과의 5년차인 주인공과 수련의 두 명이 감당을 한다. 교통 사고 외상 환자를 진료할 때 내과 의사 명찰을 달고 있으면 이를 알아챈 환자가 불안해 하기 때문에, 응급 환자가 발생하는 밤에는 낮과 다른 명찰을 달고 일한다. '응급 의사'라는 명찰이다(13). 만성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이 마을에서는 외과,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모두 '응급 의사' 한 사람이 진료를 한다. 피곤에 지친 의사의 상태는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하는 수준과 흡사하다.

이밖에도 <신의 카르테>는 의사로서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고통, 나날이 진보하는 대학병원에서 일할 기회를 놓고 갈등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특히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의사로서의 자책과 죄책감은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에게도 깊은 성찰을 불러 일으킨다.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비애, 어디로 쏟아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는 주인공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녀석(죽음)은 때때로 잊어버렸을 때쯤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자신감에 도끼를 휘둘러 발밑을 흔들고, 감상이라는 이름이 전혀 건설적이지 않은 생각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89-90). 이것이 뻔한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진솔함의 힘이며, 그것을 극복해가는 주인공의 성찰이 독자에게도 따뜻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슬픈 건 사실이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게 일이야. 하루가 산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즐거울 때가 있으면 힘들 때도 있어"(95).

의학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의 카르테>는 어쩌면 진부한 소재의 뻔한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 저변'에 자리잡고 있지만 사랑스럽고 생동감 있는 주변 캐릭터와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감동 스토리의 구성이 몰입도를 높이면서 이야기에 빠져 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데 '휴머니즘'이 병원을 소재로 한 작품의 단골 주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지만 그곳이야 말로 휴머니즘이 살아 숨쉬는 곳이어야 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 있도 있는 의사는 신의 손을 대신하며, 의사야말로 사람을 사람으로 사랑하는 신의 심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함께 사투를 벌이는 동지들의 간절하고 끈끈한 사랑이 생명의 환희와 진정한 휴머니즘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신의 카르테>에는 긴박한 수술 장면, 어려운 의학용어, 조직 내의 권력과 암투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 저변에 자리잡은 괴짜 인생들이 모여 순박하고 청량한 삶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다. 모두가 옳다고 믿으며 몰려가는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은 까닭에 괴짜 취급을 받고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살아 있다는 것의 작은 행복을 알게 해주는 아름다운 서정시 같은 한 편의 휴먼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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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의 재발견
제임스 패커 지음, 장인식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거룩함은 영성과 도덕성이란 두 기둥에 놓인 아치와 같아서, 두 기둥 중 어느 하나가 가라앉으면 나머지 하나도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143-144).



오늘날에도 거룩함이 중요한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전 세계적인 영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던 제임스 패커가 오늘 우리의 삶에 도전하는 질문이다. 그는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이 거룩함을 이미 한물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46)고 진단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의 거룩함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내 속 생각을 들킨 것 같아 찔끔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은 열망으로 뜨거웠을 때, 내 앞을 가로막는 높은 장벽이 있었다.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말씀, 도저히 넘을 수 없다 생각했던 태산, 그것은 바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돌이켜 보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높은 수준의 '거룩함'에 도달하려는 계획이 애초에 내게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거룩하게 살려는 시도는 수도원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라 치부하는 교만하고 어리석고 게으른 생각이 내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거룩의 재발견>은 스케일이 큰 책이다. '거룩함'에 관한 부분적인 견해들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전체를 조망하듯 '거룩함'을 조망한다. 역사적 줄기를 따라 신앙의 전통을 추적하는 날줄과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씨줄이 교차하며 신앙인들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거룩함'에 관한 진리와 그 본질을 재발견해내고 있다. 제임스 패커는 이 탐구 과정을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성결학교'라 이름 붙이고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성경학교'라 이름 붙이는 이유는 첫째, 기도와 마찬가지로 거룩함에 대해서도 경험 속에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고(18), 둘째, 성결케 되는 법을 배우는 일은 학교에서 교육받는 과정과 유사하며(19), 셋째, 주인과 종, 지도자와 추종자,교사와 학생의 관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는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께서 모든 관계를 조정하시기 때문이다(21). 다시 말해, 거룩이란 삶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분명한 과제이며, 피할 수 없는 도전이며,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표임을 깨우쳐준다.

<거룩의 재발견>은 성경 말씀은 물론, 우리가 구시대의 유물 정도로 취급하는 신앙의 전통 속에서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 유산을 다시 찾아준다. 한 예로, 인간의 죄성과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던 청교도들의 엄격한 태도를 다시 돌아보며 교훈을 되새긴다(171). 요즘 신앙 서적은 성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감각적인 글이 많기 때문에, 제임스 패커의 <거룩한 재발견>은 고지식해보이는 일면도 있다. '거룩'에 대한 그의 고집이 현대 사회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버거운 과제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패커가 딛고 서 있는 신앙의 전통이야말로 복음의 정통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쩜 우리는 이것을 애써 잊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거룩에 대한 제임스 패커의 고집이 다소 고지식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훈이 우리의 양심과 잠든 영혼에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이유는, 현대 사회를 통찰하는 예리한 칼날이 우리가 숨어들 곳이 없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요즈음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설교하고 가르치는 내용은 어떤 것인가? 텔레비전이나 DVD를 통해 어떤 내용이 전달되는가? 거룩함보다 성공이나 긍정적 사고일 것이다"라는 그의 외침이 우리의 양심을 찌른다. "현대 문화는 오만한 낙관주의와 경박한 비관주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오만한 낙관주의는 사람들을 부추겨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과신하게 만든다. 반면 경박한 비관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은 물론 자신의 삶까지 가급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는 그의 분석이 시대를 보는 눈을 뜨게 해준다.

<거룩의 재발견>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거룩한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파기해버린다. "성경 속에서 말하는 거룩함이란 분명히 '세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하나님께서 보시는 거룩함의 본질이라는 점이다"(42). 거룩을 사생활의 차원에서 '나만의 문제'로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었는지 절실히 깨닫는다. 또 하나 <거룩의 재발견>을 통해 특별히 개인적으로 가슴 싶이 새겨지는 영적 교훈은 '위로 성장하기 위해 아래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래로' 자람으로써, 즉 비천하게 낮아짐으로써 예수님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위로' 성장한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188).

"오늘날에도 거룩함이 중요한가?" 당연히 그렇다. 그러나 <거룩의 재발견>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거룩한 생활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시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거룩함의 표준은 최고 수준의 것이며, 거룩한 삶이란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업적이 아닐지라도 '그리스도가 소유하던 덕을 모방하는 삶'(44)까지 자라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최고의 표적과 기사는 언제나 신자들의 변화된 삶이어야 한다"(318).

그러나 동시에 <거룩의 재발견>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거룩한 생활은 무거운 짐이 아니다. 거룩함이란 사랑에 의해 작동되는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거룩함의 뿌리는 언제나 성령님께서 재촉하시는 충동이고, 이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옳은 일을 행함으로써 사랑을 보여주는 단계로 마무리 된다"(165). 

바로 여기에 거룩함의 역설이 존재한다. "신자들이 추구하는 거룩한 삶과 관련하여 한 가지 역설적인 진리는, 거룩한 삶이란 본질적으로 행복의 연속이라는 점이다"(136). <거룩의 재발견>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도전이지만, 동시에 거룩한 열망과 기대감으로 우리의 영혼을 채운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표준은 역설적이게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시 말해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흥분되지 않은가! 이 책은 영적 목마름을 불러 일으킨다. "예수님, 목마릅니다. 오셔서 채워주소서" 외치며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거룩함에 대한 목마름!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과 도덕성 때문에 기독교 안티를 양산해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거룩의 재발견>은 귀 있는 성도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요, 시대적인 사명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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