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1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입시를 앞두고 의학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 의대로 학생들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1년 8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면 올해 의대 경쟁률이 더욱 치열해지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출연진도 호화롭지만, 원작으로 봤을 때 설원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과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밝고 경쾌한 리듬 속에 메마른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줄 진한 눈물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나라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이 많지만, 일본의 것이라고 하면 '서점대상'에 관심이 간다. 책을 파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책이라는 것도 흥미롭고, 가장 팔고 싶은 책을 꼽은 것이라고 하니 그 자체로 재미와 감동이 보장되는 셈이다. <신의 카르테>는 제7회 서점대상에서 2위를 차지한 책이다.

'카르테'(Karte)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기록을 남기는 '진료 카드'를 말한다. 우리에게는 차트(chart)라는 말이 더 익숙한데, 카르테는 독일어라고 한다. <신의 카르테>는 현직 의사가 지방 도시의 일반 병원을 주무대로 하여 그려낸 감동 휴머니즘이다.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시나노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혼조병원'에서 근무 5년째에 접어드는 내과의이다. 지방 도시에 있는 혼조병원은 일반진료에서 응급의료까지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 거점 병원이다.

<신의 카르테>의 저자 나쓰카와 소스케는 현직 의사답게, 괴짜로 통하는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를 통해 지방 병원의 현실을 코믹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래도 될까' 싶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병원에 가기가 겁날 정도이다. 그러나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병원의 숨겨진(?) 진실을 알아가는 묘미가 있다. 주인공이 일하는 혼조병원에서는 산더미 같은 환자들을 내과의 5년차인 주인공과 수련의 두 명이 감당을 한다. 교통 사고 외상 환자를 진료할 때 내과 의사 명찰을 달고 있으면 이를 알아챈 환자가 불안해 하기 때문에, 응급 환자가 발생하는 밤에는 낮과 다른 명찰을 달고 일한다. '응급 의사'라는 명찰이다(13). 만성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이 마을에서는 외과,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모두 '응급 의사' 한 사람이 진료를 한다. 피곤에 지친 의사의 상태는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하는 수준과 흡사하다.

이밖에도 <신의 카르테>는 의사로서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고통, 나날이 진보하는 대학병원에서 일할 기회를 놓고 갈등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특히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의사로서의 자책과 죄책감은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에게도 깊은 성찰을 불러 일으킨다.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비애, 어디로 쏟아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는 주인공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녀석(죽음)은 때때로 잊어버렸을 때쯤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자신감에 도끼를 휘둘러 발밑을 흔들고, 감상이라는 이름이 전혀 건설적이지 않은 생각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89-90). 이것이 뻔한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진솔함의 힘이며, 그것을 극복해가는 주인공의 성찰이 독자에게도 따뜻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슬픈 건 사실이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게 일이야. 하루가 산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즐거울 때가 있으면 힘들 때도 있어"(95).

의학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의 카르테>는 어쩌면 진부한 소재의 뻔한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 저변'에 자리잡고 있지만 사랑스럽고 생동감 있는 주변 캐릭터와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감동 스토리의 구성이 몰입도를 높이면서 이야기에 빠져 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데 '휴머니즘'이 병원을 소재로 한 작품의 단골 주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지만 그곳이야 말로 휴머니즘이 살아 숨쉬는 곳이어야 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 있도 있는 의사는 신의 손을 대신하며, 의사야말로 사람을 사람으로 사랑하는 신의 심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함께 사투를 벌이는 동지들의 간절하고 끈끈한 사랑이 생명의 환희와 진정한 휴머니즘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신의 카르테>에는 긴박한 수술 장면, 어려운 의학용어, 조직 내의 권력과 암투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 저변에 자리잡은 괴짜 인생들이 모여 순박하고 청량한 삶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다. 모두가 옳다고 믿으며 몰려가는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은 까닭에 괴짜 취급을 받고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살아 있다는 것의 작은 행복을 알게 해주는 아름다운 서정시 같은 한 편의 휴먼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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