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정의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0
글로리아 웰런 지음, 범경화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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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동네 모든 집의 전기가 일시에 나가 버렸다.
누군가 억지로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몰려들어 왔고,
다짜고짜 오빠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는 수갑을 채워 끌고 가버렸다.
든 것을 뒤엎어 버렸고,
오빠 방은 통째로 비워졌다.
그리고 나서 다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11-13).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최악의 인권 침해 사건이자 정치적 탄압을 그들은 '추악한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렀다. 군부 정권은 좌익 게릴라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무제한의 국가 폭력을 동원하여 무고한 시민들을 불법체포, 납치, 고문, 사살하였다. 정권에 비협조적이다 싶은 사람들을 불순분자로 지목하여 불법적인 체포를 자행한 것은 물론 그 가족들도 납치, 살해햇다. 영유아를 탈취하여 강제 입양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추악한 혹은 더러운'이라는 형용사가 붙게 되었고, 그 탄압의 규모나 성격이 '전쟁' 못지않았다. 추악한 전쟁이 전개되는 동안 아르헨티나에서는 그 누구도 추악한 전쟁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는 공포의 상황이 지속되었고, 구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강제 실종되었다.

평온한 저녁, 가족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오빠 '에두와르도'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동생 '실비아'는 불법 체포된 오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힌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체되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일컬어 '실종자들'이라고 불렀다. 실비아는 오빠 에두와르도가 '실종자'가 되기 전까지는, "어떤 사악한 것도 우리에게 닿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친 채" 세상을 바라보았다(14).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고, 이유 없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항의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그냥 우리 인생이나 잘 살면 되는 거라고 믿으며 말이다. 오빠 에두와르도는 이런 실비아를 이렇게 비난했었다. "실비아, 바로 네 코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그렇게 눈 딱감고 모른 체할 수가 있어? 어쩜 그렇게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지낼 수가 있느냔 말이다. 넌 지금 이 나라가 어떤 시국인지 관심도 없지?"(22) 그런데 이제 실비아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랑하는 오빠가 끌려갔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는 죽음이 넘쳐나는 전쟁터로 전락했고, 사랑하는 오빠가 지금 어디에서 어떤 험악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그녀의 정의>는 동생 실비아와 오빠 에두와르도가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서로의 편지가 서로에게 전달될 수 없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를 향한 '독백'이 된다. "체제에 순응하는 것만이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미덕이라고 믿었던" 실비아는 오빠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국가 폭력에 저항하며 행동에 나섰던 오빠 에두와르도는 불법 감금과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정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오빠를 구출하기 위해 실비아가 계획한 일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오빠를 잡아간 사람의 아들을 유혹하여, 자신의 오빠를 풀어주게 할 속셈이다. 그녀의 위태로운 계획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제목만 보면 당연히 실비아가 주인공이여야 하지만 실비아의 무모함보다는, 그 역시 무모했지만 점점 단단해지는 오빠 에두와르도의 변화에 더 공감이 된다. "난 좀 더 신중했어야 했어. 내 이상과 허영심이 엉뚱하게 얽혀버렸지. 나라가 잘못 돌아간다고 느꼈을 때 나는 뭔가 바꾸는 데에 동참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어. 하지만 용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조용히 몰래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거야. 용이 삼치는 사람들의 목숨만 생각했어. 또 내 행동이 너나 부모님에게 어떤 해가 될지도 고려하지 못했고, 난 아무런 생각 없이 무턱대고 전장으로 돌진하는 병사나 다름없었어"(151).

아르헨티나, 나에게는 월드컵 시즌 때나 한 번쯤 관심을 가질까 말까 한 먼 이웃 나라이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이제야 이 불편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들도 비틀린 체제 속에서 신음했었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구촌에서 자행되었구나,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행되고 있겠지 하는 생각들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생각 사이로,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안도감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실비아의 정의는 그런 사악한 일이 그녀 인생에 직접 닥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역사는, '너'에게 일어나는 불법을 계속 외면한다면 언젠가 그 불법이 자라 '나'(가족)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경보음을 계속 울리는데도, 언제나 우리는 한 발 물러서 있기를 원하니까. 그래서일까. 가족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실비아보다, 무모하지만 행동하는 '에두와르도'의 진심이 더 나를 울린다.

소설로서 <그녀의 정의>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사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클라이맥스에서부터 갑자기 '동화'가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 '동화적 해피앤딩'이 불편한 역사의 사실성과 현실감을 떨어뜨린다고나 할까. 불행한 결말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극적인 요소가 '너무' 극적이라 당황스럽다. 소설적 재미보다는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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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가슴살 요리 60 - 맛있는 다이어트
이양지 지음 / 리스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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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닭가슴살 다이어트를 즐기자!

 

몇 달전, 공부 때문에 운동할 시간을 내지 못했던 남동생이 몸짱으로 거듭나보겠다는 선언과 함께 냉동실을 포장된 닭가슴살로 가득 채웠다. 늘어나는 뱃살이 여지간히 스트레스였나보다. 포장된 닭가슴살은 그대로 렌지에 돌려 바로 먹을 수 있으니 편리했다. 그런데 문제는 렌지에 데울 때마다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것! 렌지에 데울 때, 그리고 데운 후 포장을 열면 조미된 닭가슴살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다. 동생은 냄새는 좀 그렇지만 먹기에는 괜찮다며 나에게도 다이어트 동참을 적극 권유했지만(사실 닭가슴살 살 돈을 타내려는 꿍꿍이다), 난 냄새만으로도 질려버리고 말았다. 

닭가슴살 다이어트로 효과를 본 동생이 다시 포장된 닭가슴살을 냉동실에 가득 채워두고 있다. 누나도 함께하는 것이 어떠냐고 또 유혹을 한다.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 책을 동생에게 건넬 작정이다. 여기에 실린 레시피대로 요리를 해준다면 닭가슴살을 계속 사주겠다는 조건을 걸고 협상을 해야겠다. <닭가슴살 요리 60>은 "맛있는 다이어트"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닭가슴살을 주재료로 하여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 "몸짱을 위한 최고의 레시피"라고 하는데, 정말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책에 실린 요리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마구 자극을 받으니 말이다. 다이어트를 위한 레시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모든 요리가 먹음직스럽고 완성도가 높아보인다.

<닭가슴살 요리 60>은 샐러드, 구이&찜, 한 그릇 요리, 도시락&간식 파트로 나누어 레시피를 담아내었다. "몸짱을 위한 최고의 레시피"답게 매 요리마다 칼로리를 표시해주고 있는데, 1인분에 최저 128kcal(닭가슴살 냉채)에서 최고 543kal(닭가슴살 견과볶음 도시락) 사이의 요리들이다.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이라는 믿음을 주며, 닭가슴살 냉채나 닭가슴살 꼬치구이처럼 평소에도 즐기고 싶은 레시피, 닭가슴살 찹스테이트나 닭가슴살 시금치 샌드처럼 손님 접대용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레시피를 익힐 수 있다.

다이어트는 '즐겨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이어트는 식단 조절이 70% 이상이라고 말한다. 운동보다 식단조절이 다이어트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며, 식단조절 없이 다이어트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다이어트 전문가들마다 아마 자신있게 권하는 음식이 '닭가슴살'일 것이다. 닭가슴살 다이어트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한 가지 음식만 섭취한다는 지루함과 부담감이 있었다. <닭가슴살 요리 60>은 맛있는 음식으로 식욕뿐만 아니라 미각까지 만족시키면서, 맛있는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실천하며 즐길일만 남았다고 믿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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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간다 인도 세계를 간다
중앙M&B 편집부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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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도는 신들과 신앙의 나라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곳이 천국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이 사는 곳은 지옥일까?
그곳을 지옥이라고 한다면, 이곳은 천국일까?(11)

 


 
 

그때부터이다. 내가 인도를 여행하려고 처음 마음 먹은 것은. 혁신의 아이콘 스티븐 잡스가 어렵게 취직한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대학 졸업장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때부터이다. 그때부터이다. 내가 인도를 여행하려고 꼭 다짐을 한 것은.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기에 빠져들며 <황천의 개>를 처음 읽었을 때, 그때부터이다. 후지와라 신야가 들려준 인도 여행 이야기 중에서 '시체 태우는 장면' 부분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처음 그 광경을 봤을 때는 정말 이렇게 해도 상관없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어.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보여줘도 괜찮다는 건가, 하고. 그때까지 내가 자라난 일본에서는 인간이 좀 더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고. 인간의 목숨은 지구보다 무겁다는 말을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 목숨을 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의 목숨이 최우선이라는 과대평가 때문에 과보호와 에고이즘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나약하게 만든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과 시체를 금기로 여기고 철저히 은폐해왔지. 어리석은 선택이었어. (...) 우리는 지나치게 목숨을 과대평가했고, 죽음이 우리 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믿어왔지. 그 믿음이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희석시킨 주범이었어. 부모의 기대와 과보호에 노출된 아이들이 커갈수록 자신의 소중함을 증명하려고 초조해하듯, 현대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 있다는 진실 앞에서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게 된 거야."(후지와라 신야, 황천의 개, p.132)

이후로 나는 살아 있다는 진실 앞에 초조해질 때마다 인도를 생각했다. 강가에 시체가 떠다니고, 떠돌이 개가 시체를 핥고, 사람이 소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나라는 불결한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곳에 가고 싶었다. 죽음과 시체의 금기가 해제된, 그곳에 가고 싶었다. 힌두교인은 생과 사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강, 강가(Ganga) 강에 몸을 맡기는 안도감에 잠기고, 죽었을 때는 어머니에게 안겨 히말라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한다(195). 그 강가(Ganga) 강의 가트로 가장 많은 순례자가 찾아온다고 한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 하셨다. 많은 여행자가 말하기를, 인도를 다녀와야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된다고 한다. 내 주변에도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철든' 사람들이 많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그들이 얻은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순례자의 나라 인도, 구도자의 나라 인도, 동시에 IT 강국이기도 한 인도, 그곳에 가보고 싶다. 그곳에 다녀오면 새털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인도 세계를 간다>는 "해외여행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현지에서 바로 이용 가능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여행 정보지"이다. 랜덤하우스의 <100배 즐기기> 시리즈와 더불어 <세계를 간다> 시리즈를 줄기차게 손에 들고 탐닉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실전' 여행을 위한 모든 정보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여행을 계획하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출국에서 입국까지, 여행 루트 짜기에서부터 예산까지, 예약부터 100배 즐기는 법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서부터 반드시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까지, 여행의 시작과 끝이 여기에 있다. 또 여행지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함께 여행지의 매력을 알게 해주는 소개글을 읽다 보면, 상식까지 풍부해지는 유익이 있다. 지루했던 세계사, 세계지리, 문화와 풍속이 신기하게도 쏙쏙 머릿속에 들어오니 공부가 절로 된다. 예를 들면, 인도는 덥기만 한 나라가 아니라, 크게 3가지 - 우기, 건기, 혹서기 - 로 나뉜다고 한다. 또 인도가 처음은 사람은 겨울(11-2월)이 여행하기 좋다는 깨알같은 정보도 함께 알 수 있다. 건기이므로 우비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이동도 편리하지만, 저렴한 숙소에서는 찬물만 나온다는 사실이나 야간열차를 이용할 때는 침낭이나 담요가 없으면 추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인도 세계를 간다>를 통해 미리 인도 여행를 해보니, "여행은 인생 공부이다"라는 명제를 나도 모르게 갖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여행을 목적으로 해도 좋지만, 나를 비우며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원한다면 인도 여행이 제격일 듯하다. 인도가 처음인 사람은 바로 지금(11-2월)이 여행의 적기라고 하니 몸은 일상에 매여있지만 마음을 매일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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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간다 네팔 - 2011 개정 4판 세계를 간다
중앙M&B 편집부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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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스크리트어로 '눈의 거처'라는 이름처럼 일 년 내내 하얗게 빛나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들! 그 거대한 자연 앞에 압도되어 보고 싶다. 동기 녀석은 이곳에서 연인을 만났다. 그 때문인지 '네팔' 하면 끝없이 펼쳐지는 거대한 설원과 함께 어쩐지 내게는 낭만적인 그림이 먼저 그려진다. 그러나 트레킹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네팔에 꼭 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던 무식한 여행자임을 고백해야겠다. 게다가, 그 유명한 안나푸르나를 비롯하여 솔루, 쿰부, 랑탕 등은 전문 산악인들이나 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라고만 생각했다. 인생은 짧고 세계는 넓고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도 많은데 트레킹을 하지 않는다면 네팔에 꼭 가보아야 할 이유가 따로 있을까?

<네팔 세계를 간다>는 당연히 이유가 따로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여행 초보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인 랜덤하우스의 <세계를 간다> 시리즈는 <100배 즐기기 시리즈>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네팔 여행에 관한 여행 정보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담긴 따끈하고 세심한 정보는 실전 여행에 앞서 '네팔로의 초대' 그 자체였다. "어마어마한 대자연에 압도되고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접하며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동안 어느새 이 나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는 호언장담이 결코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책으로 미리 떠나본 여행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중국, 부탄, 방글라데시,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네팔은 그 모양새가 꼭 이탈리아를 닮았다. 긴 역사 속에서 힌두교와 불교가 융합하여 독특한 문화가 탄생했다고 한다. 동양적이면서도 건축이나 미술이 이국적인 향취를 물씬 풍긴다. 여행자가 네팔에서 가장 먼저 기억하고,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나마스테'라고 한다. 여행가이드 북에도 "안녕하세요", "안녕히가세요" 등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편리한 인사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나마스테는 원래 편하게 일상적으로 쓰는 인사말과는 거리가 멀려 좀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란다. "힌두교인이 시바 신에게 바치는 진언인 '오무 나무지바 야'나 우리나라 불교의 염불에 쓰이는 나무아비타불의 '나무'와 같은 어원에서 온 말로 귀의, 예배, 경계라는 뜻이다. 나마스테라고 할 때는 반드시 양손을 모아서 합장하는 게 예의"(40)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가 풍부한 네팔의 국토에는 30여 개 부족이나 살고 있단다.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문화의 향연! 아직 출발도 하기 전인데, 히말라야에 가려져 예전엔 미처 몰랐던 네팔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네팔로의 초대, 나를 부르는 네팔! 사실 네팔에 꼭 가봐야 할 여러 이유 중에, 가장 막강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네팔에는 현재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4개의 세계유산을 가지고 있다. 4개의 세계유산 중 2개가 문화유산이고 나머지 2개는 자연유산이다. 첫 번째 문화유산은 네와르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카트만두 분지. "카드만두 분지에서는 원주민 네와르족이 시작한 독자적인 문화가 자라났고, 중세의 왕조 시대에는 카드만두, 파탄, 박타푸르 3왕국이 서로 경쟁하여 왕궁과 사원을 건립하였고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은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고 한다. 카트만두 분지 안에 있는 7가지 사적과 사원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가봐야 할 곳은,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에베레스트가 바라다 보이는 셰르파의 고향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이다. 사라르마타는 네팔어로 '세계의 정상'을 의미하는데, 공원 내에는 희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산악 가이드로 잘 알려진 셰파르족이 사는 곳이다. 세 번째는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야생 동물의 치트원 국립공원. 과거 왕가의 수렵장이었고, 그 때문에 열대우림이나 늪지대 등 사람의손을 타지 않은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야생 동물의 보고라고 한다. 코끼리를 타고 인도 코뿔소 등을 보는 정글 사파리는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고. 네 번째 세계적인 유산은 불교 4대 성지의 하나인 붓다의 탄생지인 룸비니이다. 탄생지에 지어진 성당을 중심으로 각국의 사원이 늘어선 성원으로 정비되어 많은 순례자가 찾아온다고 한다. 나처럼 해외 여행을 늘 꿈꾸지만 마음만큼 자주 나가지는 못하는 여행자라면, 이 네 곳 중 한 곳만 다녀와도 큰 만족감을 누릴 수 있을 듯하다.





 
 

다양한 문화만큼 다양한 먹거리가 공존할 것 같은 네팔. 세계적인 요리로 유명한 중국과 인도와 국졍을 접하고 있어 요리에 대한 기대가 큰데, 네팔 요리는 각종 향신료를 사용한 카레 맛이 기본이라고 한다. 인도만큼 고추를 사용하지 않아 별로 맵지 않고 의외로 깔끔하다고. 카트만두에 도시 문명을 쌓아 올린 네와르족은 다른 민족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하고 세련된 식생활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카트만두나 포카라에는 티베트인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이 있어 정통 티베트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하니 먹거리도 네팔에서 놓쳐서는 안 될 핵심 여행 포인트이다.





 
 

<네팔 세계를 간다>는 초보 여행자들을 위한 가이드 북답게 최신 정보는 물론 세심한 정보까지 알뜰하게 담겨 있다. 예를 들면, 택시를 탈 때는 사기 미터기에 주의하라는 경고는 물론 대처 요령까지, 또 이것저것 보고는 싶지만 시간이 없거나 초행길이어서 불안한 사람이면 관광 투어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는 깨알같은 정보와 여행사를 선택하는 요령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네팔 여행이 처음이고, 또 네팔 자유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여행자라면 <네팔 세계를 간다>를 추천하고 싶다. 어디를, 어떻게 다닐까에서부터, 주요 볼거리, 네팔에서 놓치지 않아야 될 것, 여행하는 요령, 쇼핑, 레스토랑, 호텔, 교통수단, 여행자가 주의해야 할 점까지 세심한 구성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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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 파크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1
블레이크 넬슨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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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망쳐 놓았다. 그건 피할 길 없는 사실이었다. 난 인생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평소에 가졌던 모든 기회는 한 번의 실수로 부서졌다. 선생님, 부모님, 수영을 가르쳐 준 수영 강사. 그들이 나에게 쏟아 부은 모든 시간과 노력까지도. 내가 누구였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든, 이제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한 순간에, 눈깜짝할 사이에, 치열한 과거와 눈부신 미래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42)
 

17세 여고생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무면허 운전으로 2명을 숨지게 하고 달아난 혐의이다. 인생이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단 한 번의 실수로 짧은 순간 모조리 박살나고 흐트러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다시 세우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쉬운, 그것이 인생의 이치이고, 또 자연의 이치인 것을, 억울해도 어찌하랴.

<파라노이드 파크>는 단 한 번의 선택(파라노이드 파크에 혼자 가보기로 함), 단 한 번의 인연(처음 만난 아이를 따라),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달리는 기차에 올라탐), 단 한 번의 실수(제때 기차에서 내리지 못함)로 한순간 범죄자가 되어버린 십대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현대판 <죄와 벌>이라 불리운다.

파라노이드(정신병자) 파크, 그곳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12). 위태롭고 불안한 분위기에 걸맞는 이름이다. 보드마니아인 주인공은 친구와의 약속이 틀어진 어느 날 밤, 보드를 타기 위해 파라노이드 파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단 한 번의 불운이 그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짜 고통은 그에게 일어난 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데도 한마디 밝히거나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난 깨달았다. 어디라도 감옥이 된다. 머리가 꽉 막혀 있으면"(162). 엄마는 해결한 힘이 없다. 발만 동동 구르며 걱정할게 뻔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두 분은 지금 이혼 소송 중이다. 부모님마저 망쳐놓을 것이다(41). 두려움이란 놈이 시시각각 심장을 짓누르고, 불쑥불쑥 머릿속을 공격하고, 온 신경을 마비시키고 있는데,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다. 누구에게 얘기해야 할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까. 
 

"비밀이란 사람을 서서히 돌아 버리게 한다. 정말 그렇다. 비밀 때문에 외톨이가 된다. 자꾸만 남들과 멀어진다. 그러다가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151).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죄'가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라고. 우리 인생에도 'Del'(Delete)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워버리고 싶은 날을 말끔히 삭제해버릴 수 있다면. 그러나 불행히도 죄값을 치루기 전에는 내가 지은 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드러나지 않은 죄는 비밀이 되고, 그 은밀한 비밀은 사람과의 단절을 가져온다. 자신을 삼키고 있는 거대한 두려움에서 주인공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먼저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생 처럼 도움이 절실했을 때, 그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것도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울화통이 터졌다. "불쑥 분노가 치밀었다. 십대 청소년을 도와야 한다고 늘 떠벌리던 어른들에게 화가 났다. 청소년을 돕는 프로그램이나 계획은 곳곳에 널려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광고도 한다. 긴급전화나 이런저런 것도 많다. 하지만 과연 효과가 있나? 눈곱만큼도 없다. 나만 해도 그렇다. 진짜 문제가 생겼는데, 심각한 사태에 부딪혔는데, 내가 갈 곳이 있나? 지독하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누구에게 전화하지? 골치 아픈 일이 터져도 손을 내밀 곳이 없다. 누구에게 밝히지도 못한다. 참 답답하다. 그리고 엉터리다. 익명으로 전화할 만한 곳이 왜 없을까?"(65-66) 주인공의 이 독백에서 가슴이 덜컹한다. 익명으로 전화할 수 있는 선! 그것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른들의 무신경함 속에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도 벼랑으로 떨어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오싹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을 한다. "말하면 지가 알겠어요?" <파라노이드 파크>의 주인공이 그 날의 사건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것은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누구도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고였다는 것을! 
 

"지난 몇 달 동안 너와 가끔 마주친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네가 날 지켜주었거든. 왜냐고? 난 널 믿게 되었으니까. 진심으로. 그 정도면 충분했어. 누군가 날 편들어 주고 뒤에서 밀어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만으로도 똑바로 살아갈 힘을 주거든"(196).

주인공은 알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난 죽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시간이 상처를 치료해 줄지는 모르나, 상처를 지워 줄 리는 없다"(174)는 것을. 맞는 말이지만, 주인공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상처를 지우지는 못하지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자유를 선물하는지 말이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일기같기도 하고, 편지같기도 한 형식으로 쓰여졌다. 그는 누구를 향해,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책의 마지막장에서 그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안도했다. 그에게 곧 구원의 문이 열리리라는 희망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다. 도대체 이 녀석 이름이 뭘까? 책을 다 읽고 난 후, 난 주인공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첫 장부터 빠르게 넘기며 훑어보았지만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다. 왜 작가는 주인공 소년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을까. 우연인지 의도적인 장치인지 모르겠지만, 주인공 이름도 모른 채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서 괜히 혼자 뜨끔했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성장소설로 <호밀밭의 파수꾼>에 견주어지며, "죄와 구원에 관한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춘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현대판 <죄와 벌>이라고 한다. 그런데 좀 오버스러운 면이 있다. 평 때문에 잔뜩 기대를 하고 읽어서인지 기대치보다 다소 무게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죄 지은 십대의 불안 심리, 그들의 두려움, 소통의 방식을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지만, "시리도록 아름다운" 감성은 아니지 싶다. 그러나 세계적인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다고 하니, <굿 윌 헌팅>에서 느꼈던 감동처럼 매순간 압박해오는 이 불안한 십대의 심리가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크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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