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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정의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0
글로리아 웰런 지음, 범경화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9월
평점 :
갑자기 동네 모든 집의 전기가 일시에 나가 버렸다.
누군가 억지로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몰려들어 왔고,
다짜고짜 오빠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는 수갑을 채워 끌고 가버렸다.
더 많은 괴한들이 집 안으로 몰려 들어와 모든 것을 뒤엎어 버렸고,
오빠 방은 통째로 비워졌다.
그리고 나서 다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11-13).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최악의 인권 침해 사건이자 정치적 탄압을 그들은 '추악한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렀다. 군부 정권은 좌익 게릴라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무제한의 국가 폭력을 동원하여 무고한 시민들을 불법체포, 납치, 고문, 사살하였다. 정권에 비협조적이다 싶은 사람들을 불순분자로 지목하여 불법적인 체포를 자행한 것은 물론 그 가족들도 납치, 살해햇다. 영유아를 탈취하여 강제 입양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추악한 혹은 더러운'이라는 형용사가 붙게 되었고, 그 탄압의 규모나 성격이 '전쟁' 못지않았다. 추악한 전쟁이 전개되는 동안 아르헨티나에서는 그 누구도 추악한 전쟁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는 공포의 상황이 지속되었고, 구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강제 실종되었다.
평온한 저녁, 가족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오빠 '에두와르도'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동생 '실비아'는 불법 체포된 오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힌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체되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일컬어 '실종자들'이라고 불렀다. 실비아는 오빠 에두와르도가 '실종자'가 되기 전까지는, "어떤 사악한 것도 우리에게 닿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친 채" 세상을 바라보았다(14).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고, 이유 없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항의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그냥 우리 인생이나 잘 살면 되는 거라고 믿으며 말이다. 오빠 에두와르도는 이런 실비아를 이렇게 비난했었다. "실비아, 바로 네 코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그렇게 눈 딱감고 모른 체할 수가 있어? 어쩜 그렇게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지낼 수가 있느냔 말이다. 넌 지금 이 나라가 어떤 시국인지 관심도 없지?"(22) 그런데 이제 실비아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랑하는 오빠가 끌려갔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는 죽음이 넘쳐나는 전쟁터로 전락했고, 사랑하는 오빠가 지금 어디에서 어떤 험악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그녀의 정의>는 동생 실비아와 오빠 에두와르도가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서로의 편지가 서로에게 전달될 수 없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를 향한 '독백'이 된다. "체제에 순응하는 것만이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미덕이라고 믿었던" 실비아는 오빠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국가 폭력에 저항하며 행동에 나섰던 오빠 에두와르도는 불법 감금과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정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오빠를 구출하기 위해 실비아가 계획한 일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오빠를 잡아간 사람의 아들을 유혹하여, 자신의 오빠를 풀어주게 할 속셈이다. 그녀의 위태로운 계획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제목만 보면 당연히 실비아가 주인공이여야 하지만 실비아의 무모함보다는, 그 역시 무모했지만 점점 단단해지는 오빠 에두와르도의 변화에 더 공감이 된다. "난 좀 더 신중했어야 했어. 내 이상과 허영심이 엉뚱하게 얽혀버렸지. 나라가 잘못 돌아간다고 느꼈을 때 나는 뭔가 바꾸는 데에 동참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어. 하지만 용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조용히 몰래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거야. 용이 삼치는 사람들의 목숨만 생각했어. 또 내 행동이 너나 부모님에게 어떤 해가 될지도 고려하지 못했고, 난 아무런 생각 없이 무턱대고 전장으로 돌진하는 병사나 다름없었어"(151).
아르헨티나, 나에게는 월드컵 시즌 때나 한 번쯤 관심을 가질까 말까 한 먼 이웃 나라이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이제야 이 불편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들도 비틀린 체제 속에서 신음했었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구촌에서 자행되었구나,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행되고 있겠지 하는 생각들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생각 사이로,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안도감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실비아의 정의는 그런 사악한 일이 그녀 인생에 직접 닥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역사는, '너'에게 일어나는 불법을 계속 외면한다면 언젠가 그 불법이 자라 '나'(가족)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경보음을 계속 울리는데도, 언제나 우리는 한 발 물러서 있기를 원하니까. 그래서일까. 가족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실비아보다, 무모하지만 행동하는 '에두와르도'의 진심이 더 나를 울린다.
소설로서 <그녀의 정의>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사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클라이맥스에서부터 갑자기 '동화'가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 '동화적 해피앤딩'이 불편한 역사의 사실성과 현실감을 떨어뜨린다고나 할까. 불행한 결말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극적인 요소가 '너무' 극적이라 당황스럽다. 소설적 재미보다는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