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드 파크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1
블레이크 넬슨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망쳐 놓았다. 그건 피할 길 없는 사실이었다. 난 인생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평소에 가졌던 모든 기회는 한 번의 실수로 부서졌다. 선생님, 부모님, 수영을 가르쳐 준 수영 강사. 그들이 나에게 쏟아 부은 모든 시간과 노력까지도. 내가 누구였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든, 이제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한 순간에, 눈깜짝할 사이에, 치열한 과거와 눈부신 미래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42)
 

17세 여고생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무면허 운전으로 2명을 숨지게 하고 달아난 혐의이다. 인생이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단 한 번의 실수로 짧은 순간 모조리 박살나고 흐트러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다시 세우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쉬운, 그것이 인생의 이치이고, 또 자연의 이치인 것을, 억울해도 어찌하랴.

<파라노이드 파크>는 단 한 번의 선택(파라노이드 파크에 혼자 가보기로 함), 단 한 번의 인연(처음 만난 아이를 따라),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달리는 기차에 올라탐), 단 한 번의 실수(제때 기차에서 내리지 못함)로 한순간 범죄자가 되어버린 십대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현대판 <죄와 벌>이라 불리운다.

파라노이드(정신병자) 파크, 그곳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12). 위태롭고 불안한 분위기에 걸맞는 이름이다. 보드마니아인 주인공은 친구와의 약속이 틀어진 어느 날 밤, 보드를 타기 위해 파라노이드 파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단 한 번의 불운이 그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짜 고통은 그에게 일어난 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데도 한마디 밝히거나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난 깨달았다. 어디라도 감옥이 된다. 머리가 꽉 막혀 있으면"(162). 엄마는 해결한 힘이 없다. 발만 동동 구르며 걱정할게 뻔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두 분은 지금 이혼 소송 중이다. 부모님마저 망쳐놓을 것이다(41). 두려움이란 놈이 시시각각 심장을 짓누르고, 불쑥불쑥 머릿속을 공격하고, 온 신경을 마비시키고 있는데,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다. 누구에게 얘기해야 할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까. 
 

"비밀이란 사람을 서서히 돌아 버리게 한다. 정말 그렇다. 비밀 때문에 외톨이가 된다. 자꾸만 남들과 멀어진다. 그러다가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151).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죄'가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라고. 우리 인생에도 'Del'(Delete)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워버리고 싶은 날을 말끔히 삭제해버릴 수 있다면. 그러나 불행히도 죄값을 치루기 전에는 내가 지은 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드러나지 않은 죄는 비밀이 되고, 그 은밀한 비밀은 사람과의 단절을 가져온다. 자신을 삼키고 있는 거대한 두려움에서 주인공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먼저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생 처럼 도움이 절실했을 때, 그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것도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울화통이 터졌다. "불쑥 분노가 치밀었다. 십대 청소년을 도와야 한다고 늘 떠벌리던 어른들에게 화가 났다. 청소년을 돕는 프로그램이나 계획은 곳곳에 널려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광고도 한다. 긴급전화나 이런저런 것도 많다. 하지만 과연 효과가 있나? 눈곱만큼도 없다. 나만 해도 그렇다. 진짜 문제가 생겼는데, 심각한 사태에 부딪혔는데, 내가 갈 곳이 있나? 지독하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누구에게 전화하지? 골치 아픈 일이 터져도 손을 내밀 곳이 없다. 누구에게 밝히지도 못한다. 참 답답하다. 그리고 엉터리다. 익명으로 전화할 만한 곳이 왜 없을까?"(65-66) 주인공의 이 독백에서 가슴이 덜컹한다. 익명으로 전화할 수 있는 선! 그것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른들의 무신경함 속에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도 벼랑으로 떨어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오싹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을 한다. "말하면 지가 알겠어요?" <파라노이드 파크>의 주인공이 그 날의 사건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것은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누구도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고였다는 것을! 
 

"지난 몇 달 동안 너와 가끔 마주친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네가 날 지켜주었거든. 왜냐고? 난 널 믿게 되었으니까. 진심으로. 그 정도면 충분했어. 누군가 날 편들어 주고 뒤에서 밀어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만으로도 똑바로 살아갈 힘을 주거든"(196).

주인공은 알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난 죽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시간이 상처를 치료해 줄지는 모르나, 상처를 지워 줄 리는 없다"(174)는 것을. 맞는 말이지만, 주인공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상처를 지우지는 못하지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자유를 선물하는지 말이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일기같기도 하고, 편지같기도 한 형식으로 쓰여졌다. 그는 누구를 향해,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책의 마지막장에서 그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안도했다. 그에게 곧 구원의 문이 열리리라는 희망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다. 도대체 이 녀석 이름이 뭘까? 책을 다 읽고 난 후, 난 주인공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첫 장부터 빠르게 넘기며 훑어보았지만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다. 왜 작가는 주인공 소년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을까. 우연인지 의도적인 장치인지 모르겠지만, 주인공 이름도 모른 채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서 괜히 혼자 뜨끔했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성장소설로 <호밀밭의 파수꾼>에 견주어지며, "죄와 구원에 관한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춘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현대판 <죄와 벌>이라고 한다. 그런데 좀 오버스러운 면이 있다. 평 때문에 잔뜩 기대를 하고 읽어서인지 기대치보다 다소 무게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죄 지은 십대의 불안 심리, 그들의 두려움, 소통의 방식을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지만, "시리도록 아름다운" 감성은 아니지 싶다. 그러나 세계적인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된다고 하니, <굿 윌 헌팅>에서 느꼈던 감동처럼 매순간 압박해오는 이 불안한 십대의 심리가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크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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