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평전 : 시대공감
최열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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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험난한 20세기 예술이 꿈꾸던 '격조(格調)와 고담(故淡)'의 세계를 다잡은 예술가로 우뚝 섰다(249).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가장 즐겨 그린다"(243).

 

 

밀레, 마네, 모네, 세잔, 고갱, 고흐, 고호, 카라바조, 피카소, 클림트, 뭉크, 마티스, 샤걀, 르느와르, 드가 등등 서양의 화가들 이름과 작품은 꽤 열거할 수 있겠는데, 한국의 서양화가 중 이름을 아는 이는 '박수근'이 유일하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생애를 소재로 한 소설 때문이었다. 그를 기억하고 좋아하게 된 것은 '조국의 화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그의 작품과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화가의 사람됨(성품)이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시대공감>은 박수근 평전이다. 기억에 남는 평전이 없는 것을 보니, 내가 누군가의 '평전'을 제대로 읽은 것은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지 싶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불행할수록 더 열광한다고 했던가. 천재화가들의 불행한 삶은 그래서 더욱 예술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힘이 있다. 박수근이 살아생전에 유명세를 누리며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초등학교 공부밖에 하지 못하고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지만,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 박수근. 주류 화가가 아니었기에 당했던 서러움, 그리고 끝내 불행으로 끝나버린 그의 생애. 그런데 '빨래터'라는 그의 작품이 국내 경매 사상 최고 가격으로 낙찰되었다는 것과, 그것의 위작 논란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을까.

 

<시대공감>은 화가 박수근에 대해 에피소드 중심의 단편적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나에게 그의 전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새롭게 알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중 하나는 밀레가 그린 <만종>과 마주치고 후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기를 기도한 소년 박수근의 모습이었다. "밀레는 '내가 그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이 맡은 일에 몸을 바치고 있는 식으로, 또한 그들이 뭔가 다른 것이 되어 보려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러므로 밀레의 그림은 현실과 영원의 경계에 멈춘 영원의 시간이었다. 영웅의 신화가 아닌 태초부터 종말까지 흐름을 멈춘 채 묵묵히 그날의 삶을 이어가는 정지된 역사였다. 모든 비극과 희극의 주제를 지워버린 일상과 늘 그대로인 자연을 하나로 통일시킨 단순함과 진지함 그리고 실직함이야말로 밀레의 위대함이요 아름다움이다"(34). 소년 박수근은 밀레의 세계로 거침없이 빠져들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허리를 반듯이 펴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러한 연출에 숨은 의도가 있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이 허리를 반듯이 펴고 서 있음으로써 땅으로부터 수직의 숭고함을 드러내고 또 고개를 떨어뜨려 고요함을 연출하는 것이다. (...) 박수근은 밀레가 추구하는 바, 일하는 여성의 숭고함과 고요함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특성을 재현한 것이다"(67).

 

<시대공감>은 순박하고 넉넉한 인심을 지녔던 양구순민의 정서가 그의 화폭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한다. "박수근 눈에 들어온 일하는 여성은 바로 밀레의 여인이었고 또 언제나 곁에서 자신을 보살펴 주시던 어머니였으며, 문 열고 나가면 온 마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조선의 아주머니들이었다. 그 여인, 여성, 아주머니들는 롤랑이 지적했듯이 '소박하고 고독한 기도자'였으며, 고흐가 말했듯이 '가장 순수한 인간이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68). 그는 고향의 자연 풍광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절박한 사람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다. 박수근은 문 열고 나가면 온 마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여인들의 모습, 가장 일상적인 생활이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박수근의 그림은 한국스러운 소재, 주제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었다. "지방색 및 풍토색을 낙후한 것들의 증표라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박수근은 초가집과 절구질하는 한복 입은 여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물 캐거나 빨래터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여성 또는 아이 업고 장보러 가는 아낙네가 현대 도시풍속으로부터 뒤떨어진 과거 농촌풍속이며 후진성의 상징이라고 해도 박수근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177).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게으른 기색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아이를 업고 선 소녀건, 옹기종기 모여 들러앉은 사람이건, "심지어 앉아서 쉬고 있는 듯한 노인에게서조차 나태함을 찾을 길이 없다. (...) 일상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고 휴식을 취하면서도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246). 그가 당시에 화폭에 담아낸 한국적 정서를 담은 소재들은 당시의 어떤 화가도 소재로 삼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런 그의 작품은 이제 시대의 초상을 담은 세기의 작품이 되었다. 

<시대공감>은 풍부한 도판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목소리로 박수근의 생애를 이야기한다. 약간의 추측도 포함되어 있지만 객관적인 목소리로 박수근의 생애를 충실하게 따라가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극적인 요소는 없지만 박수근의 생애와 그의 작품 세계를 더 잘 알 수 있어 좋았다. 박수근, 알면 알수록 존경하게 되는 화가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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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김성곤 해설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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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160).

 

'돌아온 탕자'는 이후 행복하게 살았을까. 동구밖까지 나와 자신을 기다렸던 아버지, 무한한 사랑으로 아들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며,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해주는 아버지 집에서 말이다. <홈>,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장편소설은 '돌아온 탕자, 그 이후'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글로리'는 홀로 계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고향 '길리아드'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약혼자의 배신이라는 쓰라린 상처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목사직을 은퇴를 하고 8남매가 모두 떠나고, 아내마저 하늘나라로 가버린 텅 빈 집을 홀로 지키고 있는 아버지 보턴 목사가 글로리를 반기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20년 전에 집을 나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던, 누구도 그가 돌아올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그 집의 유일한 문제 아들 '잭'이 20년만에 아버지와 글로리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 기억 속의 잭은 집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고, 실제로도 오랜 세월 집에 없었다. 그는 왜 떠났을까? 도대체 어디로 떠났던 걸까?"(106) 잭은 왜 집을 떠났다가 또 왜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잭을 둘러싸고 있는 베일은 쉽게 벗겨지지 않은 채, 이야기가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겨우 그 형제를 드러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성질 급한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부터 읽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겠지만(내가 그랬다!), 반전이라기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운 충격을 맛보고 싶다면 마지막 페이지는 아껴두라고 일러두고 싶다.

 

<홈>은 가족이야기, 그리고 종교라는 커다란 주제 외에도 그 가족이 살았던 1950년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 그 중에서도 특히 인종차별 문제를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녹여내고 있다. 이 책이 대작인 이유는 이야기가 제시하는 문제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녹여내는 문학적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쉽사리 문제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아주 천천히 걷는 듯한 이야기 방식이 초반에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얼마 지니지 않아 가랑비에 천천히 옷이 젖어들듯 어느새 이야기에 흠뻑 젖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 잭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치고 고통스럽고 어리둥절할지 몰라도 하느님은 언제나 신실하시지. "집으로 돌아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게 하려고 우리를 방항하게 하시는 거란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160).

 

아버지에게 있어 그 '홈'(집)은 "자신의 삶이 대체로 축복받았다는 사실을 두말할 필요 없이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명백한 실체였다"(16). 그러나 잠깐의 방문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기 위해 돌아온 글로리와 잭에게 그 집에서의 행복은 이미 과거의 일이었고, 오히려 서로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묵은 감정과 상처를 들쑤시는 장소가 될 뿐이었다. 그 집의 유일한 문제아였던 잭의 귀향이 가족들에게 더 없이 반가운 일이면서도 극도의 긴장잠을 자아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근심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깊어 갔다. 남들에게는 효성스러운 자식들이 북적거리는 화목한 가정처럼 보였는지 몰라도, 실상은 달랐다. 모두들 잭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은 잃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게 그들 가족의 진실이었다"(107).

 

상담학을 공부하며 '역기능 가정'에 대해 배울 때, 우리는 농담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가정이 '역기능 가정'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최초의 공동체라는 가정, 그러나 성경 속 가정들은 모두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가정은 가정 안전하고 따뜻해야 할 보금자리이면서 동시에 평생 지고가야 할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불행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회는 가정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천국의 모형이라는 가르침으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견고히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홈>의 작가 메릴린 로빈슨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성경의 가장 유명한 비유 중 하나인 '돌아온 탕자 이야기'(<홈>)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다들 고향 타령을 하면서도 정작 살겠다는 자식은 아무도 없구나"(446). 아버지의 탄식 속에 집의 이중적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 모두에게 집은 돌아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면서, 떠나야 할 곳이기도 하다. 집을 떠나 방황하던 잭은 인생의 벼랑끝에서 자신의 삶이 시작된 바로 그 집으로 돌아온다. "나도 여기 살았다. 그리고 내가 항상 멀리 나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늘 집 가까이에 있었지"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집을 떠나 있었지만, 어쩌면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모든 불행이 시작된 그 집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장소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숙명처럼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한 그곳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으나 배신 당한 글로리도, 실패를 딛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으나 '사회적'인 거대한 반대와 맞서야 하는 잭도, 그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괜찮았지. 그런데 이제야 그게 착각이어다는 걸 깨달았어. 내 힘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여전히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거든. 그래서 내 삶이 시작된 이곳으로 돌아온 거야"(436).

 

<홈>은 아름다운 책이다. 애잔하고 우아하다. 도저히 가족 간의 대화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족 간의 깊은 배려와 다정한 대화가 마음을 울린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 잭. 젊은이들은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고 늙은이들은 세상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 그러니 너하고 나 사이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겠니? 그냥 서로 용납할 수밖에"(154).

 

 

<홈>은 수상경력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작가 메릴린 로빈슨. 역자에 따르면 이 작가는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소설이라고는 딱 세 작품밖에 출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수상경력이나 그녀의 작품에 쏟아진 찬사는 어마어마하다. 그녀의 작품은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과 '지난 25년간 미국에서 발간된 최고의 소설'로 뽑히기도 했고(<하우스키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감명 깊에 읽은 책'으로 꼽기도 했다고 한다(<길리아드>). 나에게는 <홈>이 그녀와의 첫만남이었는데, 지친 날 엄마가 만들어준 향긋한 음식 냄새가 기운을 북돋아주듯 그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나에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올해 읽은 첫 번째 책이고, 최근에 읽은 소절 중 가장 감동적인 책이다.

"이런 날 향기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 말고 되찾은 평안과 안녕을 선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엄마는 늘 그렇게 했다. 심각한 재난이 지나가고 나면 으레 계피가 든 롤빵이나 초코릿 케이크, 닭 요리나 푸딩 냄새로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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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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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건축물을 남겼고, 미켈란젤로도 건축 설계를 한 사실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정약용도 건축설계의 달인이 아니었던가. 건축도 과학이라 그럴까. 학자들과 건축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기만 하다. 특히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조선의 성리학자와 건축이라니. 그것도 '중독' 수준이라지 않은가.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시인이면서 동시에 건축가이기도 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함성호가 우리의 옛집, 그 중에서도 성리학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을 골라 답사한 기록이다. 시인이면서 동시에 건축가인 저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건축물에 시대의 정신이 반영되듯이 성리학적 세계관은 물론, 학자 개인의 삶과 정서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성리학자들의 옛집의 향기가 마치 영겁의 시간 속에 다시 피어오르는 듯하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 집과, 그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과,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9).

저는 집은 건축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다. 집은 손수 지어본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우리 아버지도 자수성가하신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자기 집을 짓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아버지의 평생의 꿈과 지향하는 삶과 당신의 가치관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그 단적인 증거가 바로 거실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던 붙박이 책장이었다. 책들로 가득 들어찬 그 책장을 보며 우리는 아버지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꿈, 좌절, 희망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들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지은 옛집, 저자가 관심 갖는 것은 단순히 옛집이 가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 집은 지은 이의 생각(철학)의 투영, 그리고 그 집과 사람이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이다.

 

 

"거듭 말하지만 조선 건축은 똑같다. 조선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함은 누누이 설명해온 바다. 조선 건축은 지형과 지세를 포함한 지리적 차원에서 얘기되어야 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필요로 한다"(239).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건축을 전공한 학도로서의 전문적인 지식과 시인이 가진 정서가 유감 없이 발휘된 책이다. 정계에서 밀려나 세상에 대한 원망과 마움으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낙향한 이언적에게 하나의 구원 같은 영감을 안겨 준 시 한 편! "낚시 드리워 고기 잡고, 소매 걷어 약초 뜯노라. 도랑 치고 꽃에 물 주며, 도끼 들도 대 자른다. 세수하여 땀 식히고, 산에 올라 주위를 바라본다. 이리저리 바람 쐬며 거니니 내 마음이 흡족하다." 사마광의 <독락원기>에 나오는 이 시 한 구절이 바로 이언적이 지은 독락당의 설계도가 된 사연을 시작으로 '철학으로 옛집을 읽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답사를 다니다가 옛 서적들이 종가의 서고에서 먼지를 덮어 쓰고 있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는 저자는, 고서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어 보인다. 옛 문헌들에서 찾아진 이야기가 이 책에 무게를 더하고, 글맛을 더한다. 저자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직접 지은 집만 골라 답사를 하고, 독락당, 양동 마을과 향단, 산천재, 도산서당, 고산 윤선도, 다산초당, 김장생의 임이정, 팔괘정, 우암고택, 암서재, 남간정사, 윤중고택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 내었는데, 집을 매개로 한 이야기가 어찌나 세밀한지 그 집을 둘러싼 (조선의) 역사의 일부가 밀도있게 재현된다. 성리학자들이 지은 조선 건축, 그 안에 담겨진 상징과 의미를 읽어내는 작업도 매력적이지만, '건축을 매개로 한 역사 읽기'는 역사극이나 역사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특히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줄 듯하다. 다만, 건축 자체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진 조급한 독자에게는 (배경으로 깔리는) 세밀한 역사 이야기가 귀찮을지도 모르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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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트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5 로마사 트릴로지 2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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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트룸(Lustrum)_라틴어. (1) 야수의 동굴 또는 보금자리. (2) 갈봇집. 도락 (3) [문학] 속죄양, 특히 감찰관이 5년마다 행하는 속죄 의식. 5년 주기의 대재계(大齋戒)

 

 

<폼페이>, <로스트라이터>로 잘 알려진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필생의 역작인 로마사 3부작은 "광대한 세계관으로 역사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을 받는다. <루스트룸>은 그 중 두 번째 책이다. <임페리움>을 읽고 <루스트룸>을 읽고 난 지금, 나는 이 책에 쏟아지는 찬사가 허언이 아님을 알았다. 과도한 찬사가 불쾌하게 여겨지는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은 어떤 찬사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역사가 스포"라는 사실이 이처럼 안타까운 적이 없었다. 그의 결국을 알고 있기에 <루스트룸>을 펼쳐 들기 전부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불세출의 영웅이 계속 영웅으로 남아주기를, 언제까지 빛나는 승자이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하지만, 결국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숨죽여 지켜봐야 했다. 그의 비극을 예견이라도 하듯, <루스트룸>은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내장이 모두 파헤쳐진 채 버려진 노예 소년의 시체. 최다 득표의 집정관 당선자로서 원로원의 개회 의식을 주관하는 임무를 맡아야 할 키케로에게 이 사건은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역자는 후기에서 "기사 계급으로 호모 노부스를 거쳐 "국부" 칭호까지 얻었으나, 결국 비극적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잃고 처참한 망명길"에 오르는 키케로의 이야기를 담은 "<루스트룸>이 고전 비극의 전통을 따르기 위해 <햄릿>, 또는 고전 비극의 틀을 오마주한 흔적은 얼마든지 있다"고 해석한다(527-528). 책 다 읽고 역자의 후기를 보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역자의 해석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루스트룸>의 비극이 좀 더 색다른 맛으로 다가올 것이다.

 

 

 

 

"카이사르가 옳을지도 모르겠어. 공화국을 때려 부수고 재건해야 한다고 했거든"(271).

 

 

키케로는 공화정 말기, 허울뿐인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 인물이다. 공화정을 깨부스려는 카이사르와 대결할 수밖에 없는 운명! 영웅들의 야망이 불타오르는 로마의 한복판에서는 "야심가들의 끊임없는 음모, 결탁, 배신"이 겹겹으로 쌓여 최고 집권자마저 안심할 수 없는 극박한 정세가 계속 된다. 불행하게도 키케로는 수차례의 위기를 넘기며 권력의 핵심에 올랐지만 키케로는 그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훨씬 더 힘겨운 싸움에 휘말려야만 했다. 로마 중심가에서 옛 공화국과 작별을 고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격변기, "집정관석 오른쪽이 카툴루스, 이사우리쿠스, 호르텐시우스를 위시한 벌족파들이고, 왼쪽이 인민의 명분을 지지하는 민중파로 카이사르와 크라수스가 대표 인물이었다"(67).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혈족) 벌족파와 민중파의 틈바구니에선 키케로, <루스트룸>은 그의 선택에 따라 로마의 역사가, 아니 오늘 우리의 역사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영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옛 영웅이 사라져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렇게 찬란하게 빛났던 한 영웅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씁쓸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임페리움>에서는 키케로가 거머쥔 집정관이라는 자리가 그 이상 더 찬연할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났으나, <루스트룸>에서는 그 빛이 발하고 만다. 당장 집정관에 대한 묘사마저 이렇게 바뀐다. "집정관. 그건 공직을 사는 만인의 이상이었다. 시대를 구분하는 것도 공식문건과 시금서에 새겨진 주재 집정관의 이름이 아니던가! 하늘 아래 불후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집정관이었다." 이것이 <임페리움>의 분위기였다면, <루스트룸>에서는 이렇게 바뀐다. "마흔셋의 나이에, 군대를 이끌어 대승리를 이룬 적도 없고 위대한 책을 쓴 적도 없다. 집정관에 오르긴 했지만 히브리다를 보더라도 당시에야 개나 소나 다 집정관이 아니던가"(178). 집정관의 임기가 3/4분기에 이를 즈음엔 키케로의 권위는 거의 무에 가까웠는데, 그 누구보다 그가 너무도 가혹하게 느끼는 현실이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한테는 병사들이 있고, 크라수스는 부가 있고, 클로디우스는 길거리 깡패가 있지만, 키케로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언어뿐이었다. "언어로 일어섰으니 언어로 이겨낼 수밖에." 키케로에게는 "증류된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승화하는" 위대한 연설의 힘이 있었다. "물리력과 파렴치함에 있어서라면, 키케로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이나 원로원은 무력을 다투는 곳이 아니다. 이곳의 무기는 웅변이며, 그 누구도 키케로만큼 완벽하게 언어를 제어할 수는 없었다. 20년 동안 회가가 열릴 때마다, 키케로는 거의 매일 기술을 연마해 왔다. 어떤 의미에선 그의 일생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224). 키케로는 공화국에 이바지하는 이 원로의 방식 덕분에 카틸리나와의 싸움에서 몇 년 동안 회자될 대승을 거두었다(<임페리움>). "그는 세치 혓바닥만으로 괴물을 로마에서 내몰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위기에 몰아넣는 것도 그 "빌어먹을 소송", "끊이지 않는 소송" 때문이었다.

 

로마의 반란 세력을 재판정에 세움으로 로마를 대화재로부터 구하고, 시민을 대학살에서, 이탈리아를 전쟁에서 구한 영웅이 된 키케로는 그가 얻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의 정점을 찍는다. "승전 장군이 아닌 사람에게 시민 감사제가 제안된 건 공화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263). 그러나 이제 노인이 되어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루스트룸>의 화자 '티로'는 말한다. "정치에 영원한 승리는 없다. 오직 가차 없는 사건들만 있을 뿐이다"라고. 공화국의 수호자! 공화국 역사상 그 누구도 당시의 키케로만큼 찬미를 받은 이는 없었다. 원로원은 그에게 파테르 파트리아이, 즉 "조국의 아버지" 칭호를 수여했다(294). 그러나 그의 영예도 잠시, 키케로는 그의 말 한마디에 카이사르가 황천행이 될 수도 있었던 바로 그 순간에 망설임으로써, 결국 엄청난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한 우스꽝스러운 일화에서 빚어진 작은 소동이 결국 키케로에게 엄청난 파국을 몰고 오는데, 그에게 최고의 영예의 안겨주었던 사건은 그를 옭아매는 치명적인 덫이 되고, 그가 수많은 명연설을 남기고 수천의 로마 시민들을 대상으로 열변을 토하고, 기나긴 법정 쌍무을 통해 출세의 발판을 마련한 로마의 한복판에서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의 비극은 "삼두 괴물"로 알려지게 될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일당의 결탁 때문이기도 하고, 공화국을 수호하려는 그의 신념과 공화국을 때려 부수고 재건하려는 카이사르와 대결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 때문이기도 하고, 카이사르의 은밀한 제안을 거부하면서까지 공직을 살아오면서 지켜왔던 자신만의 신념 때문이기도 하고, 승리에 도취된 자만심이 스스로 최악의 함정을 팠기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일생의 야심을 이룬 사람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명예와 허형, 신념과 미망, 영광과 자멸 사이의 분별이 종잇장보다도 더 얇았다"(352).

 

 



"우리는 과거 시대를 단순히 우리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시대의 잔광(殘光)에 불과하다면?"_ J. G. 패럴

 

 

결국 옳은 선택이었을까? 카이사르의 은밀한 제안을 거절하고 굴욕적인 권력을 누리기보다 카이사르와 정반대 방향으로 발을 내딛는 키케로. 웅변만으로 최고의 권력자들과 겨루어 빛나는 승리를 거머쥔 그였지만, 겨우 한 줄의 법안만으로 그의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린다. "로마 시민을 재판 없이 살인한 자에게 불과 물을 제공하면 그 또한 사형으로 다스릴 것이다"(488). (사실 그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끝장내버린 이 한 줄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이 법안이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던가. 이 한 줄의 법안이 벽에 나붙은 이후, 사건은 그야말로 급박하게 휘몰아친다.)

 

얻는 것은 쉽지만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던가. 선데이 타임스는 "권력의 매력과 그 위험에 대해 이렇게 훌륭하게 해부한 책이 일찍이 있었던가"라는 평을 내놓았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가장 민주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민주적일 수 없었던 로마의 이면. 로마사에 통달한 작가의 손끝을 통해 로마 역사를 배우고, 정치를 배우고, 권력의 독을 맛보며, 이 비극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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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4 로마사 트릴로지 1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권력이란 정부에 의해 개인에게 부여된 공적이고 정치적인 힘을 뜻하며, 우리는 이를 라틴어로 임페리움이라 칭한다(14).


 

"역사가 스포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역사극을 즐기며 네티즌들이 탄성처럼 내뱉는 말이다. 극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해하지만, 우리는 그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 어떤 세력이 흥할 것인지 망할 것인지, 극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아도 역사를 아는 자는 이미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다. 이것이 역사극이 가진 한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잘 만들어진' 역사극에, 역사 소설에 열광하게 되는 것일까. 답은 <임페리움>에서 찾을 수 있다. <임페리움>은 역사소설의 백미, 로마역사를 다룬 수많은 소설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고 감히 평하고 싶다. 

 

<임페리움>은 로마의 공화정 말기의 역사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그런데 <임페리움>의 주인공은 후에 "삼두 괴물"로 알려진 세 인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영웅 카이사르도 아니고, 동방을 평정했던 장군 폼페이우스도 아니고, 부호로 유명한 크라수스도 아니다. <임페리움>의 주인공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공화국과 로마 시민으로서의 이상을 꿈꾼 남자, 바로 '키케로'이다. 공화정 말기 세기의 영웅들이 벌이는 권력의 전쟁 한복판에서 오직 '연설' 능력 하나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변호사 출신 키케로가 이 대작의 주인공이다. 역자는 저자 로버트 해리스만큼 "키케로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역사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는 어느 역사가에게나 비겁하고 오만하고 음흉하기 짝이 없는 모사꾼이었다(465-466). 그럼에도 <임페리움>은 고대 로마의 위대한 연설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여느 역사가들과 다른 사관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카이사르와 키케로의 (파격에 가까운) "뒤바뀐" 설정 덕분에 <임페리움>이 훨씬 흥미진진하게 느껴질 것이다.

 

<임페리움>은 '속기술'의 창안자로 알려진 키케로의 비서(노예) '타로'의 입을 빌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로마사 최고의 법정싸움이라는 '베레스의 재판'을 시작으로 하는 <임페리움>은 '너무' 리얼해서 이것이 소설임을 잠시 잊기도 하지만, '너무' 섬세해서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역사적 의구심을 동시에 갖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로마 역사를 다룬 역사서나 소설은 등장인물과 설명이 방대하고 어려운 용어들의 난입으로 지루해지기 쉽상이었는데, <임페리움>은 정말 몰입해서, 어떤 역사 소설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한마디로 지루해질 틈이 없었다고나 할까.

 

 

 


 

 

'나는 신인 원로다. 나는 집정관직을 원한다. 여기는 로마다.'(361)

 

 

<임페리움>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가문도, 재산도, 도와줄 군대도 없는, 소위 '비빌 언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일개 변호사가 원로원(1부)을 거쳐, 최연소자로서 당시 로마 최고의 권좌인 집정관(2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로마 법정 역사상 가장 위험한 반 귀족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된 키케로를 통해 폭로되는 (우리에게 민주주의 이상으로 알려진) 로마의 '선거'와 '재판' 제도였다. 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했던 것과는 달리 권모와 술수로 온갖 악취를 풍기는 선거와 재판의 전형적인 악폐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인간의 행동 영역 중에서 그렇듯 가장 고귀한 영혼과 가장 비열한 영혼을 동시에 요구하는"(260) 정치판의 실체가 로마 역사를 통해 정체를 드러내는 듯하다. 권력을 얻는 데 필요하다면 지옥의 최고 악마라도 변호하며, 기소를 날조하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 유권자들을 매수한다. "키케로는 국가를 경영하는 일이라는 게 선거가 없는 틈에 소일거리를 마련해주는 데 불과하다고 농담처럼 투덜댈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면 선거야말로 공화국이 멸망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투표할 때마다 조금씩 병들어간 로마"(340).

 

재밌는 것은 42세의 키케로가 "법이 허락하는 최연소자로서 로마 집정관이라는 지고의 임페리움을 달성"하고, "그것도 가문, 재산, 도와줄 군대도 일천한 '신인'으로 출발해, 백인대의 만장일치라는 전대미문의 절대적인 승리"(458-459)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선거와 재판 제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법의 역사상,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사법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록"될 만큼 뛰어난 키케로의 연설 능력이 선거의 판도를 뒤집고, 재판의 결과를 뒤엎는 광경은 그야말로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그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키케로의 친구가 남긴 한마디가 그의 승승장구에 불길한 기운을 남긴다. "말, 말, 말. 늘 말뿐이로군. 말을 솔짓하게 만드는 자네 재주엔 도무지 한계라는 게 없는 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네의 강점이 곧 약점이 되고 말 걸세. 불쌍하군. 진심이야. 이젠 자네 스스로도 말재주와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야"(249).

 

로마 공화정 말기는 불세출의 영웅이 넘쳐났던 시대라 할 만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귀족은 물론 최고의 권력자들과 대립하며 '언변 능력' 하나로 계속 되는 난관을 헤치며 자신의 야망을 실현해가는 '키케로'! 공화정의 수호자 키케로와 공화정을 깨부수기 위해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는 카이사르! 누가 진짜 영웅인가, 누가 더 영웅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그의 말처럼 역사가 그들을 기억한다는 사실에서 그는 영원한 승리자일 것이다. "후세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티로? 정치가에게 필요한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그거야. 아니, 그들이 우리를 평가하기 전에 우리가 누군지부터 기억하게 만들어야겠지"(462).

 

키케로의 결국을 몰랐다면 키케로의 극적인 승리를 지켜보며 대리만족적인 쾌감에 흠뻑 젖어들수도 있었겠다. 영웅들의 야망이 거세가 타오를수록, 키케로의 승리가 눈부실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권력의 허망한 그림자가 서서히 영역을 넓혀간다. "지금도 두 눈을 감으면 그 한여름 오후의 황금빛을 받던 그들의 얼굴이 선하게 떠오른다. 키케로,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호르텐시우스, 카툴루스, 카틸리나, 메텔루스 형제... 그런데도 그들의 모습과 야심과 심지어 그들이 앉아 있던 건물까지 지금은 온통 먼지로 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다니"(238).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리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역사가 남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세출의 영웅들이 지고의 힘을 놓고 한 판 혈전을 벌이는 <임페리움>은 현대 정치판의 거울이기도 하다. 선거판에서 벌어지는 온갖 술수와 비리의 기술(?)이 한 눈에 보이는 듯하다. '2012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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