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페리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4 로마사 트릴로지 1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권력이란 정부에 의해 개인에게 부여된 공적이고 정치적인 힘을 뜻하며, 우리는 이를 라틴어로 임페리움이라 칭한다(14).


 

"역사가 스포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역사극을 즐기며 네티즌들이 탄성처럼 내뱉는 말이다. 극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해하지만, 우리는 그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 어떤 세력이 흥할 것인지 망할 것인지, 극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아도 역사를 아는 자는 이미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다. 이것이 역사극이 가진 한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잘 만들어진' 역사극에, 역사 소설에 열광하게 되는 것일까. 답은 <임페리움>에서 찾을 수 있다. <임페리움>은 역사소설의 백미, 로마역사를 다룬 수많은 소설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고 감히 평하고 싶다. 

 

<임페리움>은 로마의 공화정 말기의 역사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그런데 <임페리움>의 주인공은 후에 "삼두 괴물"로 알려진 세 인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영웅 카이사르도 아니고, 동방을 평정했던 장군 폼페이우스도 아니고, 부호로 유명한 크라수스도 아니다. <임페리움>의 주인공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공화국과 로마 시민으로서의 이상을 꿈꾼 남자, 바로 '키케로'이다. 공화정 말기 세기의 영웅들이 벌이는 권력의 전쟁 한복판에서 오직 '연설' 능력 하나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변호사 출신 키케로가 이 대작의 주인공이다. 역자는 저자 로버트 해리스만큼 "키케로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역사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는 어느 역사가에게나 비겁하고 오만하고 음흉하기 짝이 없는 모사꾼이었다(465-466). 그럼에도 <임페리움>은 고대 로마의 위대한 연설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여느 역사가들과 다른 사관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카이사르와 키케로의 (파격에 가까운) "뒤바뀐" 설정 덕분에 <임페리움>이 훨씬 흥미진진하게 느껴질 것이다.

 

<임페리움>은 '속기술'의 창안자로 알려진 키케로의 비서(노예) '타로'의 입을 빌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로마사 최고의 법정싸움이라는 '베레스의 재판'을 시작으로 하는 <임페리움>은 '너무' 리얼해서 이것이 소설임을 잠시 잊기도 하지만, '너무' 섬세해서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역사적 의구심을 동시에 갖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로마 역사를 다룬 역사서나 소설은 등장인물과 설명이 방대하고 어려운 용어들의 난입으로 지루해지기 쉽상이었는데, <임페리움>은 정말 몰입해서, 어떤 역사 소설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한마디로 지루해질 틈이 없었다고나 할까.

 

 

 


 

 

'나는 신인 원로다. 나는 집정관직을 원한다. 여기는 로마다.'(361)

 

 

<임페리움>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가문도, 재산도, 도와줄 군대도 없는, 소위 '비빌 언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일개 변호사가 원로원(1부)을 거쳐, 최연소자로서 당시 로마 최고의 권좌인 집정관(2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로마 법정 역사상 가장 위험한 반 귀족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된 키케로를 통해 폭로되는 (우리에게 민주주의 이상으로 알려진) 로마의 '선거'와 '재판' 제도였다. 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했던 것과는 달리 권모와 술수로 온갖 악취를 풍기는 선거와 재판의 전형적인 악폐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인간의 행동 영역 중에서 그렇듯 가장 고귀한 영혼과 가장 비열한 영혼을 동시에 요구하는"(260) 정치판의 실체가 로마 역사를 통해 정체를 드러내는 듯하다. 권력을 얻는 데 필요하다면 지옥의 최고 악마라도 변호하며, 기소를 날조하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 유권자들을 매수한다. "키케로는 국가를 경영하는 일이라는 게 선거가 없는 틈에 소일거리를 마련해주는 데 불과하다고 농담처럼 투덜댈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면 선거야말로 공화국이 멸망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투표할 때마다 조금씩 병들어간 로마"(340).

 

재밌는 것은 42세의 키케로가 "법이 허락하는 최연소자로서 로마 집정관이라는 지고의 임페리움을 달성"하고, "그것도 가문, 재산, 도와줄 군대도 일천한 '신인'으로 출발해, 백인대의 만장일치라는 전대미문의 절대적인 승리"(458-459)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선거와 재판 제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법의 역사상,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사법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록"될 만큼 뛰어난 키케로의 연설 능력이 선거의 판도를 뒤집고, 재판의 결과를 뒤엎는 광경은 그야말로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그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키케로의 친구가 남긴 한마디가 그의 승승장구에 불길한 기운을 남긴다. "말, 말, 말. 늘 말뿐이로군. 말을 솔짓하게 만드는 자네 재주엔 도무지 한계라는 게 없는 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네의 강점이 곧 약점이 되고 말 걸세. 불쌍하군. 진심이야. 이젠 자네 스스로도 말재주와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야"(249).

 

로마 공화정 말기는 불세출의 영웅이 넘쳐났던 시대라 할 만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귀족은 물론 최고의 권력자들과 대립하며 '언변 능력' 하나로 계속 되는 난관을 헤치며 자신의 야망을 실현해가는 '키케로'! 공화정의 수호자 키케로와 공화정을 깨부수기 위해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는 카이사르! 누가 진짜 영웅인가, 누가 더 영웅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그의 말처럼 역사가 그들을 기억한다는 사실에서 그는 영원한 승리자일 것이다. "후세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티로? 정치가에게 필요한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그거야. 아니, 그들이 우리를 평가하기 전에 우리가 누군지부터 기억하게 만들어야겠지"(462).

 

키케로의 결국을 몰랐다면 키케로의 극적인 승리를 지켜보며 대리만족적인 쾌감에 흠뻑 젖어들수도 있었겠다. 영웅들의 야망이 거세가 타오를수록, 키케로의 승리가 눈부실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권력의 허망한 그림자가 서서히 영역을 넓혀간다. "지금도 두 눈을 감으면 그 한여름 오후의 황금빛을 받던 그들의 얼굴이 선하게 떠오른다. 키케로,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호르텐시우스, 카툴루스, 카틸리나, 메텔루스 형제... 그런데도 그들의 모습과 야심과 심지어 그들이 앉아 있던 건물까지 지금은 온통 먼지로 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다니"(238).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리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역사가 남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세출의 영웅들이 지고의 힘을 놓고 한 판 혈전을 벌이는 <임페리움>은 현대 정치판의 거울이기도 하다. 선거판에서 벌어지는 온갖 술수와 비리의 기술(?)이 한 눈에 보이는 듯하다. '2012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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