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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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건축물을 남겼고, 미켈란젤로도 건축 설계를 한 사실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정약용도 건축설계의 달인이 아니었던가. 건축도 과학이라 그럴까. 학자들과 건축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기만 하다. 특히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조선의 성리학자와 건축이라니. 그것도 '중독' 수준이라지 않은가.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시인이면서 동시에 건축가이기도 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함성호가 우리의 옛집, 그 중에서도 성리학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을 골라 답사한 기록이다. 시인이면서 동시에 건축가인 저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건축물에 시대의 정신이 반영되듯이 성리학적 세계관은 물론, 학자 개인의 삶과 정서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성리학자들의 옛집의 향기가 마치 영겁의 시간 속에 다시 피어오르는 듯하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 집과, 그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과,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9).

저는 집은 건축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다. 집은 손수 지어본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우리 아버지도 자수성가하신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자기 집을 짓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아버지의 평생의 꿈과 지향하는 삶과 당신의 가치관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그 단적인 증거가 바로 거실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던 붙박이 책장이었다. 책들로 가득 들어찬 그 책장을 보며 우리는 아버지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꿈, 좌절, 희망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들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지은 옛집, 저자가 관심 갖는 것은 단순히 옛집이 가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 집은 지은 이의 생각(철학)의 투영, 그리고 그 집과 사람이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이다.

 

 

"거듭 말하지만 조선 건축은 똑같다. 조선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함은 누누이 설명해온 바다. 조선 건축은 지형과 지세를 포함한 지리적 차원에서 얘기되어야 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필요로 한다"(239).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건축을 전공한 학도로서의 전문적인 지식과 시인이 가진 정서가 유감 없이 발휘된 책이다. 정계에서 밀려나 세상에 대한 원망과 마움으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낙향한 이언적에게 하나의 구원 같은 영감을 안겨 준 시 한 편! "낚시 드리워 고기 잡고, 소매 걷어 약초 뜯노라. 도랑 치고 꽃에 물 주며, 도끼 들도 대 자른다. 세수하여 땀 식히고, 산에 올라 주위를 바라본다. 이리저리 바람 쐬며 거니니 내 마음이 흡족하다." 사마광의 <독락원기>에 나오는 이 시 한 구절이 바로 이언적이 지은 독락당의 설계도가 된 사연을 시작으로 '철학으로 옛집을 읽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답사를 다니다가 옛 서적들이 종가의 서고에서 먼지를 덮어 쓰고 있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는 저자는, 고서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어 보인다. 옛 문헌들에서 찾아진 이야기가 이 책에 무게를 더하고, 글맛을 더한다. 저자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직접 지은 집만 골라 답사를 하고, 독락당, 양동 마을과 향단, 산천재, 도산서당, 고산 윤선도, 다산초당, 김장생의 임이정, 팔괘정, 우암고택, 암서재, 남간정사, 윤중고택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 내었는데, 집을 매개로 한 이야기가 어찌나 세밀한지 그 집을 둘러싼 (조선의) 역사의 일부가 밀도있게 재현된다. 성리학자들이 지은 조선 건축, 그 안에 담겨진 상징과 의미를 읽어내는 작업도 매력적이지만, '건축을 매개로 한 역사 읽기'는 역사극이나 역사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특히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줄 듯하다. 다만, 건축 자체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진 조급한 독자에게는 (배경으로 깔리는) 세밀한 역사 이야기가 귀찮을지도 모르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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