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김성곤 해설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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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160).

 

'돌아온 탕자'는 이후 행복하게 살았을까. 동구밖까지 나와 자신을 기다렸던 아버지, 무한한 사랑으로 아들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며,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해주는 아버지 집에서 말이다. <홈>,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장편소설은 '돌아온 탕자, 그 이후'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글로리'는 홀로 계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고향 '길리아드'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약혼자의 배신이라는 쓰라린 상처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목사직을 은퇴를 하고 8남매가 모두 떠나고, 아내마저 하늘나라로 가버린 텅 빈 집을 홀로 지키고 있는 아버지 보턴 목사가 글로리를 반기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20년 전에 집을 나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던, 누구도 그가 돌아올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그 집의 유일한 문제 아들 '잭'이 20년만에 아버지와 글로리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 기억 속의 잭은 집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고, 실제로도 오랜 세월 집에 없었다. 그는 왜 떠났을까? 도대체 어디로 떠났던 걸까?"(106) 잭은 왜 집을 떠났다가 또 왜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잭을 둘러싸고 있는 베일은 쉽게 벗겨지지 않은 채, 이야기가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겨우 그 형제를 드러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성질 급한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부터 읽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겠지만(내가 그랬다!), 반전이라기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운 충격을 맛보고 싶다면 마지막 페이지는 아껴두라고 일러두고 싶다.

 

<홈>은 가족이야기, 그리고 종교라는 커다란 주제 외에도 그 가족이 살았던 1950년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 그 중에서도 특히 인종차별 문제를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녹여내고 있다. 이 책이 대작인 이유는 이야기가 제시하는 문제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녹여내는 문학적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쉽사리 문제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아주 천천히 걷는 듯한 이야기 방식이 초반에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얼마 지니지 않아 가랑비에 천천히 옷이 젖어들듯 어느새 이야기에 흠뻑 젖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 잭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치고 고통스럽고 어리둥절할지 몰라도 하느님은 언제나 신실하시지. "집으로 돌아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게 하려고 우리를 방항하게 하시는 거란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160).

 

아버지에게 있어 그 '홈'(집)은 "자신의 삶이 대체로 축복받았다는 사실을 두말할 필요 없이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명백한 실체였다"(16). 그러나 잠깐의 방문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기 위해 돌아온 글로리와 잭에게 그 집에서의 행복은 이미 과거의 일이었고, 오히려 서로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묵은 감정과 상처를 들쑤시는 장소가 될 뿐이었다. 그 집의 유일한 문제아였던 잭의 귀향이 가족들에게 더 없이 반가운 일이면서도 극도의 긴장잠을 자아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근심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깊어 갔다. 남들에게는 효성스러운 자식들이 북적거리는 화목한 가정처럼 보였는지 몰라도, 실상은 달랐다. 모두들 잭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은 잃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게 그들 가족의 진실이었다"(107).

 

상담학을 공부하며 '역기능 가정'에 대해 배울 때, 우리는 농담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가정이 '역기능 가정'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최초의 공동체라는 가정, 그러나 성경 속 가정들은 모두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가정은 가정 안전하고 따뜻해야 할 보금자리이면서 동시에 평생 지고가야 할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불행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회는 가정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천국의 모형이라는 가르침으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견고히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홈>의 작가 메릴린 로빈슨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성경의 가장 유명한 비유 중 하나인 '돌아온 탕자 이야기'(<홈>)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다들 고향 타령을 하면서도 정작 살겠다는 자식은 아무도 없구나"(446). 아버지의 탄식 속에 집의 이중적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 모두에게 집은 돌아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면서, 떠나야 할 곳이기도 하다. 집을 떠나 방황하던 잭은 인생의 벼랑끝에서 자신의 삶이 시작된 바로 그 집으로 돌아온다. "나도 여기 살았다. 그리고 내가 항상 멀리 나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늘 집 가까이에 있었지"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집을 떠나 있었지만, 어쩌면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모든 불행이 시작된 그 집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장소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숙명처럼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한 그곳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으나 배신 당한 글로리도, 실패를 딛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으나 '사회적'인 거대한 반대와 맞서야 하는 잭도, 그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괜찮았지. 그런데 이제야 그게 착각이어다는 걸 깨달았어. 내 힘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여전히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거든. 그래서 내 삶이 시작된 이곳으로 돌아온 거야"(436).

 

<홈>은 아름다운 책이다. 애잔하고 우아하다. 도저히 가족 간의 대화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족 간의 깊은 배려와 다정한 대화가 마음을 울린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 잭. 젊은이들은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고 늙은이들은 세상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 그러니 너하고 나 사이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겠니? 그냥 서로 용납할 수밖에"(154).

 

 

<홈>은 수상경력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작가 메릴린 로빈슨. 역자에 따르면 이 작가는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소설이라고는 딱 세 작품밖에 출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수상경력이나 그녀의 작품에 쏟아진 찬사는 어마어마하다. 그녀의 작품은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과 '지난 25년간 미국에서 발간된 최고의 소설'로 뽑히기도 했고(<하우스키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감명 깊에 읽은 책'으로 꼽기도 했다고 한다(<길리아드>). 나에게는 <홈>이 그녀와의 첫만남이었는데, 지친 날 엄마가 만들어준 향긋한 음식 냄새가 기운을 북돋아주듯 그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나에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올해 읽은 첫 번째 책이고, 최근에 읽은 소절 중 가장 감동적인 책이다.

"이런 날 향기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 말고 되찾은 평안과 안녕을 선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엄마는 늘 그렇게 했다. 심각한 재난이 지나가고 나면 으레 계피가 든 롤빵이나 초코릿 케이크, 닭 요리나 푸딩 냄새로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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