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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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점에서 '과연 기독교가 100년이 지난 후에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종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크리스천들이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이며 존경받을 수 있을까?'를 묻고 싶은 것이다"(14).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불길하고 불안한 기운이 가득한 이때에, 직장에 다니는 크리스천들은 "주말이 교회 가지 말라"라는 말을 당연하듯 듣는다는 이때에, 100년의 세월을 철학자로, 신앙인으로 살아오신 김형석 교수님의 책,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를 읽었습니다. 밤새 읽고 나니, 머릿속에 그림이 하나 그려졌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서양인들의 건축 전통을 비유로 사용하여, "누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역사를 건설할까"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서양인들의 건축 전통에 따르면, 일반 가정집은 지하실, 일층 거실, 이층 서재와 침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하실은 주로 창고로 사용하여 물건들을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올려다 쓰고 다시 지하실에 보관합니다. 이층은 잠을 자거나 책을 읽으면서 휴식과 정신적 양식을 얻는 곳입니다. 이에 비하면, 일층 거실은 온 가족의 공동생활 공간으로 함께 머물면서 식사도 하고 손님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가장 많은 활동이 일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김형식 교수님은 여기에 비유하기를, "현대인들은 종일 지하실에서 산다"(193)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돈을 더 많이 벌어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을까에 온갖 정신을 바치고, 경제와 돈, 정치와 권력, 명예와 인기에 목을 매며, 더 많은 시간을 빛이 없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하실에 들어가는 문에는 '욕망과 소유'라는 문패가 붙어 있다"(193)고 폭로합니다.

더불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이층에서만 보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습니다. 경건함은 귀하지만 나만의 경건은 헌신적 의미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홀로 있는 거룩함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향상시킬 수는 있어도 나와 인간, 이웃과의 유대를 단절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194).

이 그림이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좋은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이 비유를 듣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으며, 왜 우리가 지금의 교회를 걱정하는지,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100년 후에는 그 가치와 의미를 완전히 잃고 말지도 모른다는 경고라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확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와 성격이 다르다. 시간과 역사는 일회적이다. 처음이 있고 끝이 있다. 그리고 그 시종 사이에는 역사적 의미가 깔려 있다. 영원히 반복된다면 무의미하지만 일회성이라면 그것은 나름대로 절대적이다. 자연 시간과 역사 시간의 차이는 양적인 것이 아니다. 질적인 것이다"(127).

사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가 왜 이 사회와 인류에 '희망'인지를 깨우쳐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연 질서를 바탕으로 해서 생겨났으나, 기독교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종교가 자연 종교인데 반해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역사의 시작이고 재림은 역사의 종말이며 구원은 역사의 중심이다"(126).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라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자연 시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 시간을 사는 이들은 앞으로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다가올 역사의 사건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 질서를 따르는 개인과 사회는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가치관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역사 속에 사는 개인과 민족은 미래에 대한 도전의식을 갖는다. 역사학자가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과거를 앎으로써 미래를 창조해가야 하기 때문이다"(127-128). 김형석 교수님은 이와 더불어, 미래가 있다는 것은 희망의 약속이며, 그러기에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한 것이라고 깨우쳐주십니다(128).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 자체가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희망'의 종교이며, 따라서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역사를 건설할 역사적 사명을 지닌 것이지요.

김형석 교수님은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먼저 기독교가 버려야 할 것들을 알려 줍니다. 성직자의 권위의식, 신앙적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일을 버려야 하며, 교회의 성장만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주의, 교회 안에서 자족하며 세상 나라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교회주의를 버려야 하고, 폐쇄적인 교리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일갈하십니다. "교리는 우리의 것이지만 진리는 만인의 것이다"(30)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자로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은 인간적 교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있다고 거듭 강조하셨다"(23)는 말씀이 가슴에 새겨집니다. 이 책을 읽고 목회자로서 저의 정체성을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이라는 스스로를 인식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사람으로 표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또 이 책을 통해,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양심과 신앙의 연결점이라고 설명하시는 '인간애'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쉽게 말해,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간을 깊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공부하는 교회,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100년이 지나도 희망을 주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그대로 체화하여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223).

"삶에 하늘나라의 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186).

100년 세월의 지혜를 품은 老 교수님이 주신 말씀 중, 이 한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겨집니다. 주의 뜻을 가지고 일하는 곳에는 하늘나라가 자리 잡는 법인데, 내 마음과 영혼에 하늘나라가 없다면 달리 있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우리가 더 이상 하늘나라를 꿈꾸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김형석 교수님의 책은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무게감이 엄청난 두께로 다가오는 책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풀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안'에만 매몰되면 교회의 현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교회를 현 모습을 바라보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교회의 교회됨을 고민하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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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란 : 만능장편 - 집밥을 더 쉽게! 맛있게! 건강하게! 알토란
MBN〈알토란〉제작진.김하진.임성근 지음 / 다온북스컴퍼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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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쉽게, 더 맛있게, 더 건강하게!

수십 가지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만능장 레시피'만 모았다!

몸이 여기 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내오니 매일 먹는 '밥'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긴장감이 생깁니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생활을 오래하다 독립을 하고 보니 매일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일'이 되었습니다. 사 먹자니 식대도 만만치 않고, 서로의 입맛을 고려하여 끼니마다 메뉴를 고르는 것도 피곤해져,건강도 챙길 겸 함께 일하는 동료들끼리 서로 의기를 투합하여 한 번씩 집밥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요리책도 보고 동영상도 검색해보면서 할 수 있는 반찬을 하나씩 늘려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더듬더듬 음식을 만들다 보니 한식은 기본 '양념'만 할 줄 알면 얼마든지 다양한 상차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토란>표 '만능장 레시피'만 준비되어 있다면 요리 초보도 다양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지요.

<알토란> 제작팀에서 펴낸 <만능장 편>은 요리연구가 김하진, 한식조리기능장 임성근 고수의 비법을 담은 만능장 레시피입니다. 두 한식의 대가가 "더 쉽고, 더 맛있게, 더 건강하게"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하니 '집밥'의 고수라도 할 수 있는 우리 머머니도 반가워 하십니다. <알토란>을 즐겨 보시는 어머니에게 "이미 엄마는 뚝딱 뚝딱 한상을 금방 차려낼 수 있는 집밥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데, '알토란'을 왜 보고 계시느냐"고 여줘본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재료' 하나가 맛의 품격을 달라지게 한다"고 하셨는데, 이 책을 보니 어머니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고수의 숨은 비법, 작은 재료 하나가 전혀 다른 요리를 만들어낸다!

요리의 기본 중의 기본은 육수와 양념장이라고 하는데, <알토란> '만능장 편'은 만능 양념장, 만능 전통장, 만능청(만능 마늘청, 만능 양파청)으로 나누어 '다용도 양념장'을 구비해놓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만능장은 소박한 반찬 몇 가지와 찌개 하나만으로도 쉽고, 맛있고, 건강하게 근사한 집밥을 즐길 수 있는 비법입니다.

<알토란>은 재료 하나, 요리 순서의 차이 하나로 전혀 다른 요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알토란>의 '만능장'과 다른 레시피와의 차별점은 고수의 숨은 한 수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만능 찌개장'에 숨어 있는 고수의 '맛의 한 수'는 '차돌박이'입니다. '만능 비빔장'에 숨어 있는 고수의 '맛의 한 수'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두'입니다. '만능 찜양념장'에 숨어 있는 고수의 맛의 한수는 '겨자'이고, '만능 고기 양념장'에 숨어 있는 고수의 맛의 한 수는 '레몬'과 '감초'입니다. '만능 김치 양념장'에 숨어 있는 고수의 맛의 한 수는 '풀국 대신 삶은 감자'를 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능 유자 양념장'은 그 자체로 고수의 비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가르쳐주는 만능장 중에 가장 먼저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만능 유자 앙념장'으로 만든 '삼겹살 조림'입니다.

<알토란>의 '만능장' 레시피는, 요리 초보들이나 또 밥상을 차리는 데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매우 활용도가 높은 레시피입니다. 한 번만 고생해서(?) 만들어 놓으면 나머지는 뚝딱뚝딱이니까요.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당연하게 배달 음식이나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해결했던 나와 이제는 이별하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절약을 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두 가지씩 반찬을 만들다보니 요리가 재미있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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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만나거든 - 현실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야고보의 지혜
박대영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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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이미 받은 구원'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 사이에 엄연한 긴장이 있는 자리이며, 씨를 심을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는 불임의 자리이다. 놀라운 사랑과 능력으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얼마든지 의심하거나 마음이 요동할 수 있는 조건이며, 순쉬운 풍요와 쾌락의 제안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조건이다. 이미 죽음의 자리일 뿐 아니라 믿음을 잃고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엄연한 자리이다. 동시에 광야는 가장 적나라하게 나 자신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이다"(17).

밑줄을 열심히 그으면서 읽다가 밑줄 긋기를 포기한 책입니다. 인상적인 구절,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구절, 뜨거운 도전을 주는 구절, 깊은 통찰이 무지를 깨우는 구절 등을 만날 때마다 밑줄을 긋다가는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정독한 책은 두 번 읽는 읽는 일이 별로 없는데 박대영 목사님의 야고보서 강해집인 <시험을 만나거든>은 야고보서를 공부하며 여러 번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서>라고 하면, 신약의 지혜서이며,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서신서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은 우리의 그러한 앎이 얼마나 피상적인 정보인지를 통렬하게 일깨웁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은 <야고보서>가 신약의 지혜서이기는 지혜서인데 그 지혜는 광야를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지혜임을 읽어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실존의 자리가 곧 광야라는 것, 광야의 길에서 만나는 시험은 우리로 진정한 생명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 그래서 광야를 지나는 순례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 그리고 이 지혜가 곧 '믿음'이라는 것을 깊은 통찰력으로 풀어냅니다.

<야고보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견인해 가는 모티브는 '시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상관 없이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고통과 불편과 역경을 가져다주는 광야를 '악'으로 보고, 광야를 빨리 통과하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이 책은 광야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믿음 안에서 교정되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이 광야야말로 철저히 나밖에 모르는 사람을 철저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형제 야고보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는 말로 흩어져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한 이유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가난, 질병, 곤고와 같은 빈곤과 실패가 곧 광야(시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의 신앙을 뒤흔드는 시험은 번영과 성공의 형태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부한 것, 평탄한 것, 건강한 것이 더 큰 시험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시험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이것이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지혜와 믿음은 바로 그 시험을 다루는 방식을 말합니다.



야고보가 먼저 제시하는 시험이 물리적인 고난이 아니라 돈과 말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말과 돈, 이 두 가지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대체하려는 인간이 하나님 대신 선택해 온 '힘'의 도구이다(60-61).

<시험을 만나거든>은 <야고보서>에서 시험의 두 예로 제시되는 돈(부)과 혀(말)가 어떻게 지혜를 구하는 기도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길이 참는 것'과 '원망하지 않는 것'으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맹세하지 않는 것'과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성경이 담고 있는 진리와 통찰이 얼마나 깊고 깊은 것인지를 깨달을수록 놀라고 또 놀랄 뿐입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을 읽으며, 가장 크게 도전을 받은 부분은 '의인의 기도'입니다. "비 오기를 구하기는 쉬워도 비가 오지 않기를 구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악한 세대, 죄가 관영한 시대가 하나님을 깨닫고 돌아오기 위해서라면 가뭄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의인의 기도이고 믿음의 기도이다"(379).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가 이 의인의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내 욕심, 내 욕구, 내 유익만 챙기려할 뿐, 하나님과 소통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빚어져갈 갈망도 없고,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깨어짐과 차별과 혼돈에 대한 탄식도 없다면, 그것은 엄밀히 말해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은 아주 놀라운 일을 작정하셨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수님의 겸손한 행위를 통해 우리의 교만을 탕감해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인간힘을 다할 때 하나님은 인간이 되기로 하셨다. 우리가 위로 올라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래로 내려오기로 하셨다. 우리가 모든 한계를 대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가장 중한 한계를 택하셨다. 우리가 자아실현을 위해 싸울 때 하나님은 자기의생을 택하셨다. 우리가 목숨을 건지려고 달아날 때 하나님은 죽음을 택하셨다(306).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든 하나님의 선하심과 통치하심을 믿고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자들임을 다시 기억해봅니다. 광야를 걷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나뉨 없는 정결한 마음으로 새로운 가치를 천명하는 일이며, 타협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며,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이며, 절망하지 않고 소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은 그리스도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아니라, 값싼 구원 안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여전히 땅의 지혜, 귀신의 지혜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위로 난 지혜, 하늘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인지, 그 소속을 분명히 밝혀주는 책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진리에,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실존적인 모험을 하도록 도전을 주는 책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결신의 순간이 구원의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이며, 구원은 과정이며, 경주이며, 전투라는 것을 새롭게 일꺠워줍니다. 그리고 광야 같은 우리의 실존 속에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도 뜨겁게 깨닫게 해줍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보다, 하늘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이 더 값지고, 더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교회가 <야고보서>를 다시 읽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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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게리 토마스의 일상영성 1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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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행복보다 큰 것이 딱 하나 있으니 바로 거룩함이다"(474).

이 책은 기적은 원하지만, '거룩'에는 실패하고 있는 교회들을 깨우는 책입니다. 우리는 '거룩'이라고 하면, 저 높은 곳에 위치하여 우리가 감히 닿을 수 없는 초월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하거나, 현대의 사회적 환경에서는 온전한 실천이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하여 아예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경건훈련이나 영성훈련이라고 하면, 오락과 미디어를 멀리하는 '금기'나 기도 몇 시간, 성경 읽기 몇 시간과 같이 '자기계발식'의 훈련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영성생활의 본질은 아니라는 점을 쉽게 간과해버리고 맙니다.

이 책이 말하는 일상의 영성, 뿌리 깊은 영성의 초점은 거룩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아가는 생활에 있습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경건의 경지에 이른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영성 생활이 시작됨을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게리 토마스는 이것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 성취하는 사람은 자신을 주목하게 하지만, 받는 사람은 남들로 하여금 주시는 그분을 인정하게 한다"(27).

게리 토마스는 이러한 영성 훈련의 지혜를 기독교 고전에서 찾습니다. 먼저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영성 훈련의 기초는 주권적 체험이 아니라, 객관적 진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많은 성도가 자기의 영적 상태는 '기분'으로 판단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뜨겁거나 기쁨이 넘치면 영적으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메마르거나 흥분(?)이 사라지면 신앙이 떨어지고 있다고 느끼기 쉬운데, 게리 토마스는 "세상에 개인의 영적 체험만큼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28)라고 경고합니다.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가짜 거룩함을 경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독교 영성은 내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는 것, 참된 거룩함은 겸손으로 나타나는 것, 영적 성숙의 열매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맺혀진다는 사실을 강하게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죄를 그치는 것은 훈련 때문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121).

가장 마음에 깊이 새겨진 가르침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우리의 욕구가 달라지면 거기서 거룩함이 싹튼다는 영적 원리입니다. 게리 토마스는 성경과 고전이 말하는 거룩함이란, 열정의 대상이 바뀜으로써 순전한 덕이 싹트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한마디로, 영성 훈련이란 영적 입맛을 바꾸는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반대는 공로이지 노력이 아니다"(451).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유익을 주는 지혜로운 생활 지침들을 일러주기도 합니다. 고전에서 건져올린 지혜이지만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해 보이는 몇 가지 생활 원리를 정리하면 이런 것들입니다. 유혹이 가장 거센 시간에 자고 영적 기능이 가장 민감한 시간에 일어나는 게 가장 좋다는 것, 지루함을 질색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우상 숭배가 무르익는다는 것, 고요한 생활에 힘쓰지 않고 삶을 과도한 소음과 분주함으로 가득 채우면 하나님의 음성이 뚫고 들어올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일개 병사가 아니라 전체 군대로서 죄와 싸우기를 원하신다는 것(우리는 군대로 부름받았음을 기억) 등이 그것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교회 안에 탁월한 사람은 많은데, 거룩한 사람은 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새 거룩한 삶을 살려는 갈망을 잃어버린 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이 책은 참된 기독교는 참된 변화를 낳는다는 사실을 매섭게 일깨웁니다. [바울은 은혜에 털끝만큼이라도 무엇을 더하는 사람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은혜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마다 이런 내용의 말을 덧붙이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더는 전과 같이 살지 않는다."](96).

이 책은 '경건한 나'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책입니다. 책을 덮을 때,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렘 30:21)라는 말씀이 주는 뜨거운 도전이 영혼에 새겨지는 듯 했습니다. 진부해보이는 주제이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사소해 보이는 모든 '일상'을 기독교 영성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책의 가르침대로 서서히, 꾸준히, 그리고 겸손히 자라가기를 기도하며, 지금은 회개해야 할 때임을 긴박하게 느끼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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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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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여러 빛깔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여러 형태로 우리 삶에 기능한다. 높게는 우리 영혼을 천상과 초월로 인도하고 낮게는 타락과 파멸로 이끈다. 삶에 눈뜨게 하고, 열정과 야망을 불 지피며, 분노와 질투로 미치게 하고 때로는 자기부정에까지 이르게 한다. 다른 가치에 패배하기도 하고 하지만 또한 다른 가치를 짓밟기도 하고, 더러는 자기희생으로 결합하여 더욱 높은 단계로 승화하기도 한다"(451).

<사랑의 여러 빛깔>은 주제별로 세계 각국의 단편들을 정리한 <이문열 세계문학산책> 중 '사랑'을 주제로 한 단편 선집입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기획되었고, 1996년 초판되었다가 2020년 개정판이 다시 나왔습니다. 그중 <사랑의 여러 빛깔>에 수록된 11편의 작품들은 "문학의 프리즘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의 여러 빛깔"(22)을 보여주는데, 젊은 시절의 이문열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세계 각국의 거장들의 작품들이라는 점에서도 저에게는 흥미를 가질 만한 단편 선집이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별>을 제외하면 처음 접해보는 작품들이었는데, <사랑의 여러 빛깔>을 읽으며 사랑은 하나의 감정,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사랑의 여러 빛깔>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은 본디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 하나의 빛깔로 보여지는 사랑도 사실은 그 안에 전혀 상반되는 속성을 품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순수의 절정 같은 어떤 사랑은 너무나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무엇 때문에 도리어 어리석어 보이고(달로 가는 도중에), 애달프고 처철한 어떤 사랑은 상대방이 가학적일수록 그 빛깔이 더 숭고해보이고(슌킨 이야기), "가벼운 살갗의 스침조차 없는" 어떤 사랑은 관념성으로 금기를 초월해 거룩함에 이르며(르네), 이루지 못한 사랑이지만 그 고독한 낙인으로 세상의 한 살이를 견디었기에 그 사랑이 형벌이었는지 축복이었는지 알 수 없으며(임멘 호수),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진행형인 사랑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었기에 한 사랑이 끝났을 때 끊임없이 사랑의 대상을 바꾸었던 사랑스러운 여인의 삶은 기구하다 할 수 없었으며(사랑스러운 여인), 쉽고 가벼운 천박한 사랑에 맞서는 한 여인의 지조는 너무 견고해서 전율과 소름 사이를 오가고(에밀리를 위한 장미), 사랑에 눈 뜰 때 우리의 눈은 멀며(환상을 좇는 여인), 사랑을 꿈꾸지만 깨어나야 하며(별), 사랑은 달콤할수록 잔인하며(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나를 구원한 그 사랑만이 나를 배신할 수 있으며(바니나 바니니), 영원한 맹세는 잊히기 쉽니다(잊힌 결혼식).

우리가 그처럼 사랑에 속기 쉬운 것은 사랑의 이중성, 사랑의 양면성 때문인 듯합니다. 순수는 어리석음과 함께하고, 가학이 있어야 숭고함이 존재하고, 금기는 거룩과 붙어 다니고, 사랑은 형벌이면서 동시에 축복이고, 이별이 있어야 만남이 있으며, 황홀한 전율은 언제든 소름(공포)으로 바뀔 수 있으며, 사랑에 눈을 뜰 때 사랑은 우리 눈을 멀게 하고, 사랑은 꿈과 현실, 달콤함과 잔인함, 구원과 배신, 영원한 맹세와 잊혀짐 속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사랑은 이렇듯 기만적이니 조심해야겠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에 풍덩 빠져 들었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서서히 물들어갔다고도 했으며, 어떤 이는 교통사고를 당한듯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사랑을 귀로 전해 듣기만 했지 빠져 들어보지도, 물들어 보지도, 쿵-하고 사고를 당해보지도 않은 저에게는 여전히 이상 속의 그 무엇이면서 동시에 환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평생 이렇게 사랑을 책으로만 배우고 있는 건, 현실에서 경험되는 사랑의 빛깔이 너무 천박한 탓이라고 변명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이 이처럼 다채로운 빛깔인 것은, 타락으로 사랑의 원형을 잃어버린 우리의 계속되는 시행착오가 아닐까요. 사랑에 속아 더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사랑의 여러 빛깔을 간접 경험해보며 나의 사랑도 여기에 대입해보면서 시행착오를 줄여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그렇게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도 여전히 배우지 못하는 한 가지는 사랑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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