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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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점에서 '과연 기독교가 100년이 지난 후에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종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크리스천들이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이며 존경받을 수 있을까?'를 묻고 싶은 것이다"(14).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불길하고 불안한 기운이 가득한 이때에, 직장에 다니는 크리스천들은 "주말이 교회 가지 말라"라는 말을 당연하듯 듣는다는 이때에, 100년의 세월을 철학자로, 신앙인으로 살아오신 김형석 교수님의 책,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를 읽었습니다. 밤새 읽고 나니, 머릿속에 그림이 하나 그려졌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서양인들의 건축 전통을 비유로 사용하여, "누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역사를 건설할까"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서양인들의 건축 전통에 따르면, 일반 가정집은 지하실, 일층 거실, 이층 서재와 침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하실은 주로 창고로 사용하여 물건들을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올려다 쓰고 다시 지하실에 보관합니다. 이층은 잠을 자거나 책을 읽으면서 휴식과 정신적 양식을 얻는 곳입니다. 이에 비하면, 일층 거실은 온 가족의 공동생활 공간으로 함께 머물면서 식사도 하고 손님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가장 많은 활동이 일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김형식 교수님은 여기에 비유하기를, "현대인들은 종일 지하실에서 산다"(193)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돈을 더 많이 벌어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을까에 온갖 정신을 바치고, 경제와 돈, 정치와 권력, 명예와 인기에 목을 매며, 더 많은 시간을 빛이 없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하실에 들어가는 문에는 '욕망과 소유'라는 문패가 붙어 있다"(193)고 폭로합니다.

더불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이층에서만 보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습니다. 경건함은 귀하지만 나만의 경건은 헌신적 의미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홀로 있는 거룩함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향상시킬 수는 있어도 나와 인간, 이웃과의 유대를 단절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194).

이 그림이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좋은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이 비유를 듣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으며, 왜 우리가 지금의 교회를 걱정하는지,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100년 후에는 그 가치와 의미를 완전히 잃고 말지도 모른다는 경고라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확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와 성격이 다르다. 시간과 역사는 일회적이다. 처음이 있고 끝이 있다. 그리고 그 시종 사이에는 역사적 의미가 깔려 있다. 영원히 반복된다면 무의미하지만 일회성이라면 그것은 나름대로 절대적이다. 자연 시간과 역사 시간의 차이는 양적인 것이 아니다. 질적인 것이다"(127).

사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가 왜 이 사회와 인류에 '희망'인지를 깨우쳐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연 질서를 바탕으로 해서 생겨났으나, 기독교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종교가 자연 종교인데 반해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역사의 시작이고 재림은 역사의 종말이며 구원은 역사의 중심이다"(126).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라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자연 시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 시간을 사는 이들은 앞으로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다가올 역사의 사건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 질서를 따르는 개인과 사회는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가치관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역사 속에 사는 개인과 민족은 미래에 대한 도전의식을 갖는다. 역사학자가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과거를 앎으로써 미래를 창조해가야 하기 때문이다"(127-128). 김형석 교수님은 이와 더불어, 미래가 있다는 것은 희망의 약속이며, 그러기에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한 것이라고 깨우쳐주십니다(128).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 자체가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희망'의 종교이며, 따라서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역사를 건설할 역사적 사명을 지닌 것이지요.

김형석 교수님은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먼저 기독교가 버려야 할 것들을 알려 줍니다. 성직자의 권위의식, 신앙적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일을 버려야 하며, 교회의 성장만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주의, 교회 안에서 자족하며 세상 나라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교회주의를 버려야 하고, 폐쇄적인 교리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일갈하십니다. "교리는 우리의 것이지만 진리는 만인의 것이다"(30)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자로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은 인간적 교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있다고 거듭 강조하셨다"(23)는 말씀이 가슴에 새겨집니다. 이 책을 읽고 목회자로서 저의 정체성을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이라는 스스로를 인식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사람으로 표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또 이 책을 통해,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양심과 신앙의 연결점이라고 설명하시는 '인간애'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쉽게 말해,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간을 깊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공부하는 교회,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100년이 지나도 희망을 주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그대로 체화하여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223).

"삶에 하늘나라의 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186).

100년 세월의 지혜를 품은 老 교수님이 주신 말씀 중, 이 한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겨집니다. 주의 뜻을 가지고 일하는 곳에는 하늘나라가 자리 잡는 법인데, 내 마음과 영혼에 하늘나라가 없다면 달리 있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우리가 더 이상 하늘나라를 꿈꾸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김형석 교수님의 책은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무게감이 엄청난 두께로 다가오는 책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풀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안'에만 매몰되면 교회의 현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교회를 현 모습을 바라보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교회의 교회됨을 고민하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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