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파편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7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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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이 등장하지 않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



<아르센 뤼팽 전집> 일곱 번째 시리즈 <포탄 파편>에서는 주인공 아르센 뤼팽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르센 뤼팽이 등장하지 않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 뭔가 아이러니합니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아르센 뤼팽은 언제쯤 등장을 할까? 남자 주인공 폴 들로즈가 아르센 뤼팽과 관련이 있는 인물일까? 그의 아내 일리자벳이 아르센 뤼팽과 관련이 있을까? 의문의 남자 헤르만 소령이 혹시 아르센 뤼팽은 아닐까?" 별별의 추측을 다했습니다. 그동안 아르센 뤼팽의 궤적이나 신출귀몰한 양상을 살펴봤을 때, 충분히 "신분 위장"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그런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야기가 중반부를 넘어갈 쯤 아르센 뤼팽이 딱 한 번 등장합니다! 미궁에 빠진 남자 주인공에게 나타나 사건의 연결고리를 풀어주고 홀연히 떠나는 인물로 말입니다. 아르센 뤼팽은 뭔가 다른 일로 무척 바빠보입니다!


왜 <포탄 파편>에서는 아르센 뤼팽이 등장하지 않을까요? 그건 아마도 이 책의 스토리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실제로 프랑스는 전시 중이었으므로, 늘 공권력을 조롱하며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둑"의 활약을 그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게다가, 이어지는 8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아르센 뤼팽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국 프랑스를 위해 일하는 대단한 애국자이기도 합니다! 7편 <포탄 파편>이나 8편 <황금 삼격형>에서 작가 모르스 르블랑이 특별히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장교, 대령, 대위, 또는 상이용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이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 그리는 것을 보면, <포탄 파편>의 탄생은 애국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포탄 파편>은 한마디로 전쟁 로맨스입니다! 폴 들로즈와 엘리자벳은 오늘 아침 막 결혼식을 올린 행복한 신혼부부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기 위해 오르느캥 성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그 성은 엘리자벳의 아버지가 아내를 잃고 꽁꽁 닫아두었다가, 딸의 결혼지참금으로 준 것입니다. 세상은 전쟁에 대한 소문과 징집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폴 들로즈는 아내 엘리자벳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한 엄청난 비극을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여행 중이었던 폴 들로즈는 어느 한적한 숲 속 공터에 있는 예배당에서 뜻밖에 독일 황제와 마주쳤고, 곧이어 황제가 만나기를 원한다는 전언을 들고 찾아온 부인과 다툼을 벌이다 아버지는 그 부인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그런데 누군가 아버지 살해와 관련된 모든 사실들을 완벽하게 지워버렸고, 오직 폴 들로즈만이 자신의 기억 속에 그날의 사건을 각인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폴 들로즈와 엘리자벳이 오르느캥 성에 도착해 엘리자벳의 어머니가 그려진 초상화를 본 순간, 그들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초상화 속의 여자가 바로 폴 돌로즈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이었기 때문입니다!


폴 들로즈는 오르느캥 성이 독일의 작은 마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숲으로 난 지름길을 통해 아버지가 살해되었던 예배당과 공터를 발견하고 경악합니다. 이로써 엘리자벳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더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폴 들로즈는 그곳에서 한 괴한에게 공격을 받는데, 괴한은 "H, E, R, M."이라고 새겨진 단도를 떨어뜨린 채 달아납니다. 


순수했던 어머니(등드빌 백작부인)가 남편 폴 들로즈의 아버지를 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엘리자벳, 아버지를 살해한 여인의 딸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폴 들로즈는 서로 괴로워하는데, 결국 동원령을 받고 폴 들로즈가 입대함으로써 이별하게 됩니다. 비극적 운명 앞에 정신이 혼란해진 폴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임하며 혁혁한 공을 세워가는데, 아버지를 죽인 여자, 오르느캥 성의 초상화 속 여자, 엘리자벳의 어머니인 헤르민 당드빌과 너무나 닮은 정체 불명의 인물에게 계속 공격을 받습니다. 폴은 그 정체 불명의 인물이 독일의 '헤르만 소령'이라는 걸 알아내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오히려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엘리자벳의 어머니 헤르민 당드빌은 정말 폴의 아버지를 살해했는가? 헤르민과 너무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계속해서 폴을 공격하는 헤르만 소령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아버지가 살해되던 날 독일 황제는 왜 그 숲속에 있었을까? 포탄 파편에 남아 있는 엘리자벳이 포탄에 맞아 죽었다는 증거처럼 엘리자벳은 정말 독일군에게 살해당했는가? 


<포탄 파편>은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합니다. 사건의 연결고리가 막바지에 가서야 확 풀어지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쓰인 작품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조극 프랑스를 위해 작품으로 독일군과 싸우는 작가의 애국심을 즐기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괴도 뤼팽의 신출귀몰한 모험담이 아니라, 전쟁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라는 점이 색다른데, "무기여 잘 있거라"나 "진주만"과 같은 수많은 전쟁 로맨스가 이 작품에 빚을 지고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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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니엘로의 날개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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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작은 마을에서 열세 살 소년이 학교를 그만두고 목공 일을 시작한다. 무섭게 들이닥친 삶의 무게가 버겁기만 한 소년과 따뜻하고 왁자지껄한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떤 순간에도 꿈을 잃지 않는 곳이다. 나폴리 하늘보다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의, 아련하고 천진난만하며 순수한 성장기를 이야기하는 소설"(뒷 표지 中에서).



여러분이 처음 마주한 세상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미소짓는 얼굴이던가요? 우락부락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나요? 한 입거리도 안 되는 만만한 놈이었습니까?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흉악한 놈이었습니까? 친구처럼 다정하던가요? 다짜고짜 패대기를 치지는 않았나요?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별을 보고, 똑같은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보고 있어도, 우리에게 열리는 세상은 제각각입니다. <라파니엘로의 날개>는 처음 그 문을 열고 세상에 들어선 열세 살 소년의 일기입니다. "좀더 나은 학력으로 세상에 나가기를" 원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학교 구경조차 하지 못한 아이들이 일을 하러 다니는 동네에서 그래도 그는 5학년까지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에리코 선생님의 목공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그의 하루는 한 입처럼 삼켜지고, 그를 둘러싼 세상은 소년이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속도로 너무도 빠르게 변해갑니다. 소년은 어리둥절하지만 세상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갑니다.



하루는 한 입이야.

하루는 짧으니 열심히 일하자는 얘기다.

나는 그에게 '말씀만 하세요.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7)




 




소년은 첫 출근을 기념하여 아버지가 선물해준 부메랑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닙니다.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진 부메랑은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저녁마다 신의 산에 올라 부메랑을 들고 근육을 단련시킵니다. 언젠가는 무거워 날지 못하는 부메랑을 멀리 날려보낼 것입니다. 목공 일과 부메랑을 들고 근육을 단련시키는 일이 소년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 단순한 일과가 반복되는 가운데, 소년은 에리코 선생님에게 본격적으로 목공 일을 배우고, 느닺없이 그의 삶에 뛰어든 마리아를 통해 성에 눈 뜨고, 구두수선공 라파니엘로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꺼져는 어머니의 생명과 아버지의 삶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보며 소리 없이 성장합니다. 그러니까 반복되는 일상과 사랑과 우정과 고난이 그를 '자라게 해준 것'입니다.



나폴리에서는 서둘러서 커야 한다는 돈 지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인 채 달린다.

(233)




 




어릴 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성장해야 한다고 하지만, 맹목적인 사랑은 필연적으로 나약함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신의 선물은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사랑의 절정인 것처럼 말입니다. <라파니엘로의 날개>는 우리가 짊어진 고난의 짐 안에 '날개'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년이 라파니엘로가 짊어진 곱추등 안에 날개가 감추어져 있음을 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날개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것은 고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고난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비상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튼튼한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날아오를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참된 '성장'의 의미일 것입니다. 



이제 부메랑은 깃털리 달린 날개나 다름없다. 
나는 팔을 번갈아 가며 200번씩 던지는 연습을 했다. 
그러고도 나는 지치지 않았다. 나는 던지기 선수다. 
나는 온힘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189)


<라파니엘로의 날개>는 굉장히 아름다운 글입니다. 문장 자체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리듬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냅니다. 과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작가 다운 작품입니다. 저자 에리 데 루카는 1950년에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났고, 열여덟 살에 로마로 이주하여 기계공, 트럭운전사. 미장이로 일했으며, 스무 살에 쓴 소설을 1989년 마흔 살의 나이에 출간했을 때 그는 여전히 미장이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의 진짜 성장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이 작품은 110년 전통의 '프랑스 페미나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페미나상의 권위를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라파니엘로의 날개>를 통해 같은 세상, 같은 하늘 아래 살지만, 전혀 다른 환경, 전혀 다른 삶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한 소년의 인생을 읽었습니다. 경험은 다르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빠, 엄마의 인생은 과거, 내 인생은 현재, 아이들의 인생은 미래라고 생각했던 도식이 깨지는 경험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으며, 함께 과거에 기대어 있고, 미래는 없는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


어제란 

이미 기록하고 둘둘 말아버린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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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튀니지 - 일곱 빛깔 지중해의 조용한 천국
권기정 지음 / 상상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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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빛깔 지중해의 조용한 천국!



여행을 책으로만 다닌다며 동생에게 놀림을 받고 있지만, 내가 사는 지구가 얼마나 다채로운가를 알게 되고,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 싶은 여행지를 가슴에 품는 일도 제법 괜찮은 일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꿈꾸는 것만으로도 누구에겐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말하여지지 않은 아름다운 비밀 하나 가슴에 품은 듯해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 시리즈는 제 가슴에 작은 불꽃 하나는 전해주는 비밀스러운 친구 같은 책입니다. 알지 못했던 세상을 열어주고, 그곳을 꿈꾸게 해주니까요! 





 





"그러나 이곳은 다른 북아프리카 지역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이슬람 지역이지만 일찍부터 개방정책을 시행한 덕분에 '북아프리카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특별한 곳이다"(22).



이 책을 통해 만나본 "지금 이 순간의 튀니지"는 한마디로 정말 독특한 곳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튀니지를 왜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그리고 다리는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라고 하는지 알게 되는데, 73년이나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흔적에, 지중해 날씨에, 그러면서도 사하라 사막이 국토의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또 흑인이 적다는 것에(아랍인과 토착민민 베르베르족의 혼혈이 대부분), 그리고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라는 것에, 로마의 유적지까지 "전반적으로 프랑스식 문화와 아랍식 문화가 섞여 특이한 문화적 다양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입니다. 한반도의 2/3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 작은 나라가 왜 세계인들에게 주목을 받은 아주 매력적인 관광지인지 알 듯합니다.









내가 튀니지에 가봐야 할 이유!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매우 서구적이며, 스스로는 유럽인이 인정하지 않는 유럽인이라 생각하는 튀니지, 뿐만 아니라 Sand(사하라 사막), Sun(이글거리는 태양), 그리고 Sea(지중해 해변)을 튀니지 가진 자연의 축복 3S(29)이라고 하니, 튀니지는 아프리카 땅에 있지만 아무래도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기분은 들지 않을 듯합니다.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로망을 가지신 분들은 오히려 튀니지를 피하셔야 할 듯! 


대신 제가 이 책에서 찾은 튀니지에 꼭 가봐야 할 이유 4가지는, 첫째, 튀니지 특유의 파란색인 튀니지안 블루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튀니지의 산토리'라 불리는 시디 부 사이드, 둘째, 로마의 원형 경기장보다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1979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거의 2천 년 전에 지은 경기장이 아직까지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엘젬 원형경기장, 셋째,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스타워즈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호텔 시디 드리스, 그리고 네 번째는 어릴 때 선생님이 들려주신 영화 이야기 때문에 늘 동경의 대상이었던 바로 그 '사하라'에 가볼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튀니지>를 통해 미리 가본 튀니지는 영화 속 한 장면으로 풍덩 뛰어드는 기분을 느끼게 해줄 정도로 영화 촬영지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스타워즈 촬영지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튀니지의 오래된 전통 토굴집이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는 것", "영화 속에서 외계인의 집으로 나온 이곳이 실은 인류의 오래된 주거 형태라는 사실"이 저자에게 만큼이나 내게도 무척 신기했으며, "까마득히 먼 미래의 모습을 담은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곳을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한 감독의 혜안이 감탄스럽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179-180)!





 




"금아 피천득 선생은 '돈이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추억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고 했다. 비록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흔적을 따라 이렇게 여행을 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있으니 어쩌면 나도 내 삶의 부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235).




삶은 여행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한 곳에 붙박히지 않은 나그네처럼 자유롭게 살아야지, 단촐한 가방 하나 메고 다니는 여행객처럼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또 낯선 땅, 낯선 곳에서, 낯선 만남을 기대하는 여행자처럼,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은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는 새날이라는 기대로 가슴을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시리즈는 제가 꿈꾸는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게 해줍니다. <지금 이 순간>은 단순한 정보(가이드)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가 녹아 들어 있습니다. 낯선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 순례자처럼 고독한 길을 떠난 이들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이렇게 누군가에서 낯선 땅을 소개하고, 꼼꼼하게 인도하기 위해서 그들은 또 얼마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을까 하는 상념에 젖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홀연히 떠나 여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내보기도 합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와 가까이 지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느릿느릿한 세계여행"을 꿈꾸는 저는 <지금 이 순간>과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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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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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최초의 문호'!



독자의 입장에서 "100여 년 전에 발표된 일본 소설을 읽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를 묻는다면, 문학 속에 등장하는 문학으로 그의 이름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같은 소설 속에서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인데,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을 일본인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하는 최초의 문호로서 이 사람을 모르고는 일본의 근대문학을 말할 수 없다고 하니, 서양 고전에 편향된 우리의 비블리오그라피에 한 자리를 차지해도 좋겠다 싶습니다.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함께 <도련님>은 작가의 초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근대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라고 합니다.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앞 날개 中에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도련님"은 늘 사고를 쳐서 앞날이 걱정인 천방지축 사고뭉치 둘째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사고뭉치 둘째 아들을 조금도 귀여워해 주지 않고, 어머니는 형만 감싸고 돌고, 형과도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매일 "이놈은 제대로 되기는 글렀어!", "네놈은 쓸모가 없어! 쓸모가 없어!"라는 말을 듣고 살지만, 아버지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크게 개의치도 않습니다. 집에서 10년 넘게 일한 '기요'라는 하녀 할머니만이 유일하게 '도련님'을 무척 귀여워해주시는데, 애지중지하며 무턱대고 감싸줄 때면 '도련님'도 기요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기요는 항상 "도련님은 올곧고 바른 성품이에요"(15)라고 칭찬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6년 후 아버지마저 뇌졸증으로 돌아가시고 나자 형은 동생게게 유산을 조금 나눠주고 제 갈을 갑니다. 더 이상 '기요'와 함께 살 수 없게된 '도련님'은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마을(시코쿠) 중학교 수학 교사 자리를 제안 받고 도쿄를 떠나게 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사서 '기요'와 함께 살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말입니다. 그리하여 어설픈 수학 교사 생활이 시작되는데, 그곳에서 그가 얻은 것은 열정적인 교육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교묘한 말솜씨로 자신의 비열함을 가장하고, 친절함 속에 저속하고 야비한 술수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환멸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나쁜 짓 하기를 장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라든가 애송이라든가 하는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103).   


주인공은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들에게 별명을 지어 불렀는데 정의감 강한 수학 주임은 '아프리카 바늘두더지', 늘 플란넬 빨간 셔츠를 입고 다니는 음흉한 성격의 교감은 '빨간 셔츠', 빨간 셔츠의 추종자인 미술 교사는 '아첨꾼', 군자 같은 성격이지만 다소 소극적인 영어 교사는 '끝물 호박', 무사안일주의의 교장은 '너구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얻은 별명은 "세상 물정 모르고 의협심에 불타 용감하게 날뛰는 도련님"(237)입니다! 



<꿈결 클래식>은 부록으로 '해제'를 실어주는데, 이 작품의 해제는 '이병진' 교수님(세종대학교 국제학부 일어일문학전공)이 맡았습니다. 해제를 통해 이 작품이 "사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에 속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소설"은 "개인의 사사로운 감성을 중시하는 일본 소설 작품들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일본 사소설의 경우는 가공의 세계를 회피하고 작가가 경험한 사실만을 쓰는 것을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했기 떄문에 "작가가 주인공이라는 등식 아래 작가의 실천적 생활상과 고뇌를 허구적인 장치 없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사소설은 "가공의 세계의 주인공이 아닌 작가 자신이 직접 소설에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이야기해 주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인 것"(253)입니다. 사소설에 해당하는 <도련님>이라는 작품도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를 일본과 서양 문명과의 관계에서 성찰한 문학자"(258)라고 평가받는데, <도련님>이라는 작품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도련님은 소년기에서 중학교 교사가 된 시점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자기 동일성 위에 서지 못한 채 외부로부터의 작용에 대한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외발적'인 행동만을 취하는 인물이고, 따라서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젖비린내를 풍기를 청년이다. 소세키는 도련님의 이런 모습을 통해 당대 일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277).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근대화에 대한 회의와 환멸을 그렸어도 변화의 거센 흐름을 막지는 못한 듯합니다. 어쩌면 초기였기 때문에 저항이 더 강렬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그 회의와 환멸 속에 매몰되고 말았으니까요. 현대과학은 '진화론'을 거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도련님> 같은 작품을 보면 인류가 진화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련님>은 일본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한 단편을 축소해놓은 듯 이 안에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갖 술수와 속임수와 비열함과 저속함이 난무하는 이곳이 바로 바른 삶과 교양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것이 대단한 반전이며, 우리 삶의 아이러니입니다.


<꿈결 클래식>은 풍부한 일러스트와 주석, 해제로 작품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어, 다 읽고 나면 좋은 문학 강의를 수강한 듯한 기분 좋은 만족감까지 선물해줍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작가를 알면 작품이 더 잘보입니다. 작가도 시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작가와 시대에 대한 이해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작품을 읽는 일은 다시 인간과 시대를 읽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도련님>을 <꿈결 클래식>으로 읽어야 할 이유를 찾고 싶니다. 그중에서도 <도련님>은 깔끔한 번역과 해제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필력을 느낄 수 있게 해준 번역이며, 일본의 근대문학과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해제라고 칭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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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의 고백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6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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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뤼팽의 탄생?



아르센 뤼팽 전집 6권 <아르센 뤼팽의 고백>은 9편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르센 뤼팽에게도 셜록 홈즈의 '왓슨'과 같은 친구가 있는데, 왓슨처럼 존재감이 빛나지는 않습니다. 1권에서 그의 존재가 이미 알려졌지만 본격적인 등장은 6권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뤼팽이 그때그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서 각 부분을 정리해 전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모리스 르블랑 작가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르센 뤼팽의 고백>은 바로 뤼팽의 그 '왓슨' 같은 친구가 뤼팽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총 9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아르센 뤼팽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마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6권에서 뤼팽은 미스테리한 사건 현장에 투입되어 날카로운 논리와 명석한 추리로 사건의 전모를 밝히며 문제를 해결하는 명탐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그러니 이번 일을 통해 또다시, 범죄를 발견하려면 사실에 대한 조사나 관찰, 추론이나 이성적 고찰 따위의 허튼 짓거리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단 사실을 알았다네.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바로 직관이네 …. 지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직관 ….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이 아르센은 그 둘을 모두 겸비하고 있지"(36).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다면 1인이 다수의 역할을 해내는 것보다 다수가 1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리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뤼팽이지만, 과도함을 넘어 병적일 정도의 자만심이랄까, 근자감이랄까, 자아사랑은 한결 같으며, 로맨티스트적인 면모도 한결 같습니다. 다만, 너무 많은 여인들과 '자주' '쉽게' 사랑에 빠지고 추문을 뿌리고 다니니 매력이 좀 반감되는 역효과도 납니다(저에게만 그럴수도 있지만 ㅠㅠ). 아무튼 알면 알수록 전무후무한 캐릭터인 것만은 확실하며, 영웅인듯 영웅아닌 영웅같은 독특한 캐릭터의 원조라 할만 합니다.


지나치게 정확하고, 매우 치밀하며, 이토록 놀라운 선견지명을 자랑하는 뤼팽이지만,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의 영원한 적수 가르마니 경감을 우습게 만드는 못된 습관을 자제하지 못하는 악동이기도 합니다. 사실 가르마니 경감은 뤼팽의 적수라기 하기에는 많이 모자란데, 그는 뤼팽의 적수라기보다  오히려 뤼팽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뤼팽만의 매력이기도 할 것입니다. 가르마니 경감이 뤼팽에게 보내는 찬사를 들어보면, 그는 이미 뤼팽의 적군이 아니라 아군입니다. "가르마니는 다시 한 번 뤼팽의 놀라운 능력을 가늠해보았다.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나 지금껏 이토록 뛰어난 통찰력과 예리하고 명민한 정신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141, 붉은 실크 스카프).


단편을 좋아하는 저에게 6권은 지금까지 읽은 아르센 뤼팽 전집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호흡이 긴 전편들보다 더 '추리문학'답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6권은 <아르센 뤼팽 전집>이 왜 정통 문학가들이 호평한 추리문학의 걸작이라고 하는지 그 진가를 확인하게 해준 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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