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니엘로의 날개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작은 마을에서 열세 살 소년이 학교를 그만두고 목공 일을 시작한다. 무섭게 들이닥친 삶의 무게가 버겁기만 한 소년과 따뜻하고 왁자지껄한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떤 순간에도 꿈을 잃지 않는 곳이다. 나폴리 하늘보다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의, 아련하고 천진난만하며 순수한 성장기를 이야기하는 소설"(뒷 표지 中에서).



여러분이 처음 마주한 세상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미소짓는 얼굴이던가요? 우락부락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나요? 한 입거리도 안 되는 만만한 놈이었습니까?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흉악한 놈이었습니까? 친구처럼 다정하던가요? 다짜고짜 패대기를 치지는 않았나요?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별을 보고, 똑같은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보고 있어도, 우리에게 열리는 세상은 제각각입니다. <라파니엘로의 날개>는 처음 그 문을 열고 세상에 들어선 열세 살 소년의 일기입니다. "좀더 나은 학력으로 세상에 나가기를" 원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학교 구경조차 하지 못한 아이들이 일을 하러 다니는 동네에서 그래도 그는 5학년까지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에리코 선생님의 목공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그의 하루는 한 입처럼 삼켜지고, 그를 둘러싼 세상은 소년이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속도로 너무도 빠르게 변해갑니다. 소년은 어리둥절하지만 세상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갑니다.



하루는 한 입이야.

하루는 짧으니 열심히 일하자는 얘기다.

나는 그에게 '말씀만 하세요.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7)




 




소년은 첫 출근을 기념하여 아버지가 선물해준 부메랑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닙니다.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진 부메랑은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저녁마다 신의 산에 올라 부메랑을 들고 근육을 단련시킵니다. 언젠가는 무거워 날지 못하는 부메랑을 멀리 날려보낼 것입니다. 목공 일과 부메랑을 들고 근육을 단련시키는 일이 소년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 단순한 일과가 반복되는 가운데, 소년은 에리코 선생님에게 본격적으로 목공 일을 배우고, 느닺없이 그의 삶에 뛰어든 마리아를 통해 성에 눈 뜨고, 구두수선공 라파니엘로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꺼져는 어머니의 생명과 아버지의 삶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보며 소리 없이 성장합니다. 그러니까 반복되는 일상과 사랑과 우정과 고난이 그를 '자라게 해준 것'입니다.



나폴리에서는 서둘러서 커야 한다는 돈 지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인 채 달린다.

(233)




 




어릴 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성장해야 한다고 하지만, 맹목적인 사랑은 필연적으로 나약함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신의 선물은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사랑의 절정인 것처럼 말입니다. <라파니엘로의 날개>는 우리가 짊어진 고난의 짐 안에 '날개'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년이 라파니엘로가 짊어진 곱추등 안에 날개가 감추어져 있음을 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날개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것은 고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고난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비상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튼튼한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날아오를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참된 '성장'의 의미일 것입니다. 



이제 부메랑은 깃털리 달린 날개나 다름없다. 
나는 팔을 번갈아 가며 200번씩 던지는 연습을 했다. 
그러고도 나는 지치지 않았다. 나는 던지기 선수다. 
나는 온힘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189)


<라파니엘로의 날개>는 굉장히 아름다운 글입니다. 문장 자체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리듬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냅니다. 과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작가 다운 작품입니다. 저자 에리 데 루카는 1950년에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났고, 열여덟 살에 로마로 이주하여 기계공, 트럭운전사. 미장이로 일했으며, 스무 살에 쓴 소설을 1989년 마흔 살의 나이에 출간했을 때 그는 여전히 미장이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의 진짜 성장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이 작품은 110년 전통의 '프랑스 페미나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페미나상의 권위를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라파니엘로의 날개>를 통해 같은 세상, 같은 하늘 아래 살지만, 전혀 다른 환경, 전혀 다른 삶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한 소년의 인생을 읽었습니다. 경험은 다르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빠, 엄마의 인생은 과거, 내 인생은 현재, 아이들의 인생은 미래라고 생각했던 도식이 깨지는 경험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으며, 함께 과거에 기대어 있고, 미래는 없는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


어제란 

이미 기록하고 둘둘 말아버린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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