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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평점 :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최초의 문호'!
독자의 입장에서 "100여 년 전에 발표된 일본 소설을 읽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를 묻는다면, 문학 속에 등장하는 문학으로 그의 이름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같은 소설 속에서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인데,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을 일본인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하는 최초의 문호로서 이 사람을 모르고는 일본의 근대문학을 말할 수 없다고 하니, 서양 고전에 편향된 우리의 비블리오그라피에 한 자리를 차지해도 좋겠다 싶습니다.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함께 <도련님>은 작가의 초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근대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라고 합니다.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앞 날개 中에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도련님"은 늘 사고를 쳐서 앞날이 걱정인 천방지축 사고뭉치 둘째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사고뭉치 둘째 아들을 조금도 귀여워해 주지 않고, 어머니는 형만 감싸고 돌고, 형과도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매일 "이놈은 제대로 되기는 글렀어!", "네놈은 쓸모가 없어! 쓸모가 없어!"라는 말을 듣고 살지만, 아버지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크게 개의치도 않습니다. 집에서 10년 넘게 일한 '기요'라는 하녀 할머니만이 유일하게 '도련님'을 무척 귀여워해주시는데, 애지중지하며 무턱대고 감싸줄 때면 '도련님'도 기요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기요는 항상 "도련님은 올곧고 바른 성품이에요"(15)라고 칭찬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6년 후 아버지마저 뇌졸증으로 돌아가시고 나자 형은 동생게게 유산을 조금 나눠주고 제 갈을 갑니다. 더 이상 '기요'와 함께 살 수 없게된 '도련님'은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마을(시코쿠) 중학교 수학 교사 자리를 제안 받고 도쿄를 떠나게 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사서 '기요'와 함께 살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말입니다. 그리하여 어설픈 수학 교사 생활이 시작되는데, 그곳에서 그가 얻은 것은 열정적인 교육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교묘한 말솜씨로 자신의 비열함을 가장하고, 친절함 속에 저속하고 야비한 술수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환멸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나쁜 짓 하기를 장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라든가 애송이라든가 하는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103).
주인공은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들에게 별명을 지어 불렀는데 정의감 강한 수학 주임은 '아프리카 바늘두더지', 늘 플란넬 빨간 셔츠를 입고 다니는 음흉한 성격의 교감은 '빨간 셔츠', 빨간 셔츠의 추종자인 미술 교사는 '아첨꾼', 군자 같은 성격이지만 다소 소극적인 영어 교사는 '끝물 호박', 무사안일주의의 교장은 '너구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얻은 별명은 "세상 물정 모르고 의협심에 불타 용감하게 날뛰는 도련님"(237)입니다!
<꿈결 클래식>은 부록으로 '해제'를 실어주는데, 이 작품의 해제는 '이병진' 교수님(세종대학교 국제학부 일어일문학전공)이 맡았습니다. 해제를 통해 이 작품이 "사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에 속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소설"은 "개인의 사사로운 감성을 중시하는 일본 소설 작품들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일본 사소설의 경우는 가공의 세계를 회피하고 작가가 경험한 사실만을 쓰는 것을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했기 떄문에 "작가가 주인공이라는 등식 아래 작가의 실천적 생활상과 고뇌를 허구적인 장치 없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사소설은 "가공의 세계의 주인공이 아닌 작가 자신이 직접 소설에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이야기해 주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인 것"(253)입니다. 사소설에 해당하는 <도련님>이라는 작품도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를 일본과 서양 문명과의 관계에서 성찰한 문학자"(258)라고 평가받는데, <도련님>이라는 작품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도련님은 소년기에서 중학교 교사가 된 시점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자기 동일성 위에 서지 못한 채 외부로부터의 작용에 대한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외발적'인 행동만을 취하는 인물이고, 따라서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젖비린내를 풍기를 청년이다. 소세키는 도련님의 이런 모습을 통해 당대 일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277).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근대화에 대한 회의와 환멸을 그렸어도 변화의 거센 흐름을 막지는 못한 듯합니다. 어쩌면 초기였기 때문에 저항이 더 강렬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그 회의와 환멸 속에 매몰되고 말았으니까요. 현대과학은 '진화론'을 거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도련님> 같은 작품을 보면 인류가 진화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련님>은 일본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한 단편을 축소해놓은 듯 이 안에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갖 술수와 속임수와 비열함과 저속함이 난무하는 이곳이 바로 바른 삶과 교양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것이 대단한 반전이며, 우리 삶의 아이러니입니다.
<꿈결 클래식>은 풍부한 일러스트와 주석, 해제로 작품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어, 다 읽고 나면 좋은 문학 강의를 수강한 듯한 기분 좋은 만족감까지 선물해줍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작가를 알면 작품이 더 잘보입니다. 작가도 시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작가와 시대에 대한 이해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작품을 읽는 일은 다시 인간과 시대를 읽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도련님>을 <꿈결 클래식>으로 읽어야 할 이유를 찾고 싶니다. 그중에서도 <도련님>은 깔끔한 번역과 해제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필력을 느낄 수 있게 해준 번역이며, 일본의 근대문학과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해제라고 칭친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