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집중력 혁명 - 일과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1% 차이
에드워드 할로웰 지음, 박선령 옮김 / 토네이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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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집중력 싸움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집중력을 갖지 못할까?"



나의 집중력은 몇 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산만한 태도가 심해지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때에도 다급해하거나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할 일은 많은데 깊은 생각이나 감정 없이 피상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고조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의력 결핍 성향이 의심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까다로운 일이나 대화를 뒤로 미루려는 한편 쓸데 없이 바쁘기만 한 일로 일과를 채우려는 경향"이 나타나거나, "실제로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과도하게 부담을 느끼는 경향"이 늘고 있는 분들에게도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역시 주의력 결핍 성향이 의심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를 느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급한 일을 눈앞에 두고도 손에 잡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립니다. 일을 하면서도 생각이 이리튀고 저리튀어 하던 일을 멈추고 딴짓을 하는 습관도 생기도 있습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갈수록 한 가지 일에 장시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의력 결핍 치료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라는 이 책의 저자는 현대인들의 이런 성향을 "주의력 결핍 성향"(ADT)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주의력 결핍 성향은 주의력결핍장애나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장애와는 구별됩니다. "ADD(주의력결핍장애)나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유전적인 소인이 있는 반면 ADT(주의력 결핍 성향)는 주변 상황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ADD나 ADHD와 다르다"(14)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주의력 결핍 성향은 내 안에 원인이 있기 보다 주변 상황 때문에 발생하는데, 문제는 그런 상황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에는 갈수록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몰두하고 유혹당하면서 자신을 짓누르는 것들에 얽매이고 지배당하는 탓에 정작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와 목표는 간과하고 방치해 결국 망쳐버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22).


<하버드 집중력 혁명>은 나도 주의력 결핍 성향을 문제를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가진단을 해보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우리가 일터에서 집중력을 잃는 대표적인 6가지를 다루고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2부에서는 "어떤 방해물이 생겨도 대처할 수 있는 집중력을 관리하고 훈련하는 종합적인 계획을 제시"(13)합니다. 한마디로 말히 하버드 집중력 혁명은 일에 집중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입니다. 


<하버드 집중력 혁명>은 주의력 결핍 성향(ADT) 유형을 크게 6가지 정리해서 설명하는데, 화면중독, 멀리태스커, 생각이 이러저리 튀는 아이디어맨, 지나친 걱정, 문제 상황 해결자, ADHD 환자가 그것입니다. <하버드 집중력 혁명>은 이에 대처하는 방법과 집중력을 훈련하는 실용적인 도구와 조언을 제시해줍니다. 집중력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5가지 요소는 기운, 감정, 참여, 체계, 제어입니다.


자기진단 결과 저는 "생각이 이리저리 튀는 경우"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많은데 마무리는 잘 안 되고,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하며, 새 프로젝트의 참신함이 사라지면 금세 지루해집니다. 일터에서도 아이디어가 넘친다는 말을 많이 듣고, 또 그것을 칭찬으로 생각했음으로 그것이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제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그저 똑똑하게 일하면 된다"(23).


그런데 재밌는 것은 집중력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우리는 어떻게든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더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려 할텐데,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더 열심히 일하려 하지 말고 현명하게 일하는 법을 익히라고 조언합니다. 그런데 주의력 결핍 성향을 치료하고 집중력을 훈련하는 이 책의 조언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또 그 방법이 쇼킹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전자기기를 꺼라,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라는 지침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지만 또 지극히 당연한 지시이기도 합니다. 관건은 내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충분히 설득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책은 그것을 충분히 설득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갈수록 주의를 분산시키는 환경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을 장악해갈 때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인지, 왜 집중력 싸움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줍니다. 


요즘 제가 스스로에게 날마다 되뇌이고 있는 사자성어가 하나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손실을 입는다는 뜻의"소탐대실"(小貪大失)이 그것입니다. 늘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산만하게 움직여 다니다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저를 압박해오곤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주변의 너무 많은 가능성이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맘만 먹으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새로운 모험을 시도할 수 있고,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오히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몸이 뇌를 지배한다는 이론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니까 늘 피곤한 상태로 지내는 것도 온전히 집중하는 데 방해 요인이 된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 보면 집중력을 훈련하기 전에 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에 확실하게 집중하는 일이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이 책의 가르침이 산만한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집중력을 훈련하는 적극적인 지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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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데이비드 키네먼 지음, 이선숙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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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안에 청년들의 이탈이 심각하다! 


2012년 통계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는 전체 인구 중 약 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교회 안에서도 청년의 비중이 20-30%는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2011년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 교회에서 청년 비중은 겨우 5% 정도라고 합니다. 2013년 조사는 더 비참합니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8-9명은 교회를 떠난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초토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가에 기독청년이 없다고 합니다. 기독 서클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기독 청년들이 안 보입니다. 청년들의 교회 이탈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일인데도 교회가 막아내지 못한 것을 보면 '속수무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무슨 이유로, 영적으로 가장 적극적이여 할 수많은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믿음 혹은 교회와의 관계를 버리는 것일까요?"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수많은 청년들이 10대를 벗어나면서 교회를 이탈하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현실은 아닌가 봅니다.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는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리서치 그룹이 "18세부터 29세까지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경험한 교회와 믿음에 대해, 왜 교회를 떠나게 되는지, 기독교와 그들 사이에 남아 있는 연결 고리는 무엇인지를 묻고 분석한 결과물입니다(23-24).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만 5천 건에 달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 책은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려줍니다. 동시에 이러한 작업은 "급변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젊은 세다들이 예수님을 신실히 따르도록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던져주는 많은 메시지 중에 가장 큰 울림과 뼈아픈 통찰을 제시해준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긴장 가운데, 격려와 칭찬이 아닌 비판받고 거부당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12)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이유도 가지각색이고 교회를 충실히 다니는 이유도 다양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회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다음 세대의 긴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역동보다는 율법적인 옳고 그름만을 강조하며, 그들이 품는 신앙적 의심에 귀를 기울여주고 답을 찾아주기보다 무조건 금기시하는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이 찾아낸 이유는 여섯 가지입니다. 세상으로부터의 과잉보호, 깊이 없는 믿음, 신앙과 과학의 대립, 성에 대한 태도, 배타적인 문화, 가로막힌 질문이 그것입니다. 보통 교회 안에서 청년부가 부흥하지 못하고, 청년들이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문제를 토론할 때 가장 지배적인 생각 중 하나가 문화의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교회가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곳이 되어 문화의 영향력 앞에 맥을 못추고 있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상투적인 말들, 제멋대로인 성경 해석, 틀에 박힌 외침"이 난무하는 교회 안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청년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삶인지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이 책은 한국 교회 안에도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모든 교회가 읽어야 할 책이며, 또 청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함께 읽고 함께 고민하며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지 못한 무서운 책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사사기를 읽어보면, 신앙전수에 실패했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신앙이 본질을 잃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어쩌면 교회가 세상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 교회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을 교회가 주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는 교회를 떠난 청년들의 신앙이 아니라, 교회를 이끌고 있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이 던져주는 최종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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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설레는 집 도감 -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공간 배치 아이디어 123 집도감 마음이 설레는 집 도감 시리즈 1
X-Knowledge 지음, 박지석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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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즐거운 나의 집을 디자인하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함께 리조트 리모델링을 진행하던 민형(준상)은 유진에게 "결혼하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고 묻습니다. 유진은 민형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집은 서로의 마음이다"고 대답합니다. 또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건축가인 김도진은 사랑하는 서이수에게 "살고 싶은 집을 들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고 묻습니다. 서이수는 "아무도 안 떠나는 집"이라고 대답합니다. 후일, 김도진은 서이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나중에 집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크고 넓고 볕도 잘 들어오고. 아무도 안 떠나는 그런 집"을 말입니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살 집을 그려보곤 하는 걸까요? 아마도 집은 함께 사랑을 표현하고, 가꾸고, 완성시키는 그런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 친구는 결혼날짜를 잡고 결혼식을 올리는 날까지 매일 밤마다 미리 계약해두었던 신혼집을 찾았다고 합니다. 아파트 앞에 차를 세워두고 신혼집을 바라보며 함께할 미래를 설계했던 그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고백합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이라는 책 제목처럼, 친구는 두근두근 설레이는 행복한 꿈을 꾼 것입니다. 


<마음이 설레이는 집도감>은 나의 집을 디자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과 설레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근두근 즐거운 나의 집을 디자인"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집을 지을 때 공간 배치 계획은 그 공간에서 살아갈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반영하는 일이다. 가족과의 소통을 이끌고, 쉼이 있는 공간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생활을 중심에 두고 설계를 해야 한다. 따라서 설계에 앞서 건축주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가족의 생활 방식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에 맞게 공간을 구분해 보는 것이다"(뒷날개 中에서).


한 번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 오백년 살고 싶은 꿈"을 꾸어봤을 텐데요,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은 그런 꿈을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공간 배치 아이디어 123"



<마음이 설레이는 집도감>은 123가지 공간 배치 아이디어를 총 11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1장  조망 좋은 방을 갖고 싶다

2장  실외와 실내를 잇고 싶다

3장  자연 가까이 살고 싶다

4장  목재가 어우러진 집에 살고 싶다

5장  공간을 넓게 쓰고 싶다

6장  깔끔하게 수납하고 싶다

7장  주방을 중심에 두고 생활하고 싶다

8장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싶다

9장  한 집에 오래 살고 싶다

10장  자연친화적으로 살고 싶다

11장  적절한 비용으로 괜찮은 집에 살고 싶다. 

전문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니고, 당장 필요한 책도 아니지만, 제가 집도감이나 인테리어 책자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작은 아이디어의 차이가 생활의 질을 결정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공간이라도 한 두가지 아이디어로 정말 멋드러진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마법처럼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마법에 놀라는 일이 즐겁습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을 보며 가장 관심이 갔던 주제는 "5장, 공간을 넓게 쓰고 싶다", "6장, 깔끔하게 수납하고 싶다"와 "11장, 적절한 비용으로 괜찮은 집에 살고 싶다"였습니다. 당장 절실한 아이디어가 현재의 공간을 넓고 깔끔하게 활용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은 주제에 맞게 설계되고 지어진 실제 집을 모델로 힌트를 얻도록 만들어진 책입니다. 일본의 인기 건축가들의 지은 집답게 아기자기하면서도 아이디어가 돋보는 공간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수록된 사진들이 사이즈도 작고 한 장 뿐이여서 멋진 아이디어가 주는 감동이 확 와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간 배치 포인트'를 잡아낸 이 책 자체가 일본 건축가들을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생활환경을 바꾸기도 하지만, 생활환경이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공간을 활용하는 습관이 몸에 벤 일본인들이기에 이런 아이디어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마음이 설레는 집도감은 인테리어보다는 리모델링이나 직접 집을 설계하고 지으려는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보면 좋을 책입니다. 톡톡 튀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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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비비어의 결혼
존 비비어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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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천국에서 존(남편)과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만 하신다면 이 결혼생활을 계속 하겠습니다'(94).



남편에게 이보다 더 철저히 절망할 수 있을까요. 행복하려고 한 결혼인데 그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존 비비어 목사의 아내이자, 이 책의 공동저자인 리사 사모는 자신들도 결혼생활을 끝장내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며 얼마나 큰 용기를 내었는지 존과 리사 부부는 결혼생활을 위협했던 자신들의 은밀한 죄까지도 숨김 없이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야만 결혼생활의 적나라한 실체와, 또 어떻게 해야 결혼생활의 위기와 고통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연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고, 또 그런 위치에 있어야 할 목사 부부가  부부 사이의 문제를, 특히나 자신들의 은밀한 죄의 문제를 이처럼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결단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가정에 임한 회복의 은혜를 모두와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봅니다. 이 책을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가 더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는 비현실적인 기대와 비전의 결핍 때문이다"(105).
 


결혼에 대한 비유가 재밌습니다. 결혼은 해변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산꼭대기에 오르는 등산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의 사망률보다 이혼율이 약 25배는 더 높다"는 통계가 흥미롭습니다. 결혼생활은 에베레스트 등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려고 하는 결혼인데, 사랑해서 만난 두 사람인데 함께 사는 일이 이처럼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 지적하는 한 가지 원인은, 결혼이 "각 배우자의 결점들을 부각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23). 완벽한 배우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하지만, 곧 서로의 모든 결함들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 결혼생활이며, 서로를 변화시키려고 애쓰기 시작하면서 결혼은 고집 센 두 사람의 전쟁터가 된다는 것입니다(124).


그런데 이 보다 더 문제는, 많은 부부가 사나운 풍랑에 가정이라는 배가 흔들리면 금방 배에서 내리고 만다는 것입니다(24). 존 비비어 목사는 "너무도 많은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는 비현실적인 기대와 비전의 결핍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결혼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 불행하기만 한 결혼생활을 더 지탱하고 이어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비전 없는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전 없는 결혼은 처음부터 실망과 역경을 극복해낼 동력 없이 출발하는 여행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결혼생활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사랑을 지탱하고 있다"(317). 



기혼자나 미혼자나 결혼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왜 결혼을 하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72) <존 비비어의 결혼>은 '결혼'은 바로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결혼을 만드셨음을 가르쳐줍니다. 결혼에 담긴 이 비밀과 신비를 분명히 깨달을 때, 우리는 사나운 풍랑 가운데서도 결혼을 지켜가야 할 당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 비비어의 결혼>은 결혼이란 이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이니 우리는 무조건 결혼을 존귀하게 여겨야 하며, 비전과 목적이 분명하다면 누구나 결혼을 아름답게 가꿔갈 수 있다고 핑크빛 약속을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비현실 기대와 두려움, 과거의 상처와 죄의 문제, 가정폭력, 자*와 음란물 중독 등의 문제와 맞닥뜨리며 결혼을 지키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쳤던 자신들의 고통과 지난했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리사가 존을 용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있는 배우자를 변화시키기 원하며, 가정을 위협하는 배우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고하며 씨름하는데, 하나님의 관심은 오로지 "나"였다는 리사의 고백에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내 내가 깨어졌다.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서 그의 뜻대로 행하시기 시작했다. (...) 내가 존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존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게 할 수 있었다"(130). 그리고 "나중에야 남편을 미워하는 것이 오히려 남편의 변화를 방해한다는 걸 알게 됐다"(138)고 고백합니다.





 

 

 


 



결혼은,

너희가 아닌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 세부사항 하나하나에까지

그분의 영이 깃들어 있다

(말 2:15, 메시지성경)



<존 비비어의 결혼>을 읽으며 회개와 소망을 동시에 품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저런 게 결혼이라면 난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결혼을 가볍게 여겼던 오만함과, 저런 가정도 결혼생활을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의구심을 품었던 오만함과, 저 가정의 최선은 '이혼'이 아닐까  멋대로 판단했던 오만함을 회개했습니다. 동시에 결혼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와 계획을 묵상하며 결혼을 꿈꾸어 보기도 했습니다.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에 분노하며 그런 결혼을 기피하는 성향도 있었는데, 결혼이라는 모험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 즉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섬김과 신앙전수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존 비비어의 결혼>은 (예비) 부부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각 장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한 묵상과 행복한 결혼을 위한 토론 질문이 제시되어 있는데, 예비 부부를 위한 결혼학교 교재로 사용해도 좋고, 부부모임 안에서 나눔 교재로 활용해도 훌륭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겪고 있는 부부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부부가 함께 읽고 나누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이 책을 통해 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합니다. 특히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부부 문제로 고통하고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모든 가정이 교전지역이 아니라, 특별한 연합의 장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책이 새로운 시작과 도전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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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놀라다 - 믿고 싶은 대로 믿던 불신앙을 끝내다
마이크 어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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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놀라 본 적이 언제인가?"



이 책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입니다. 도전적이라 함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쉽사리 지루함을 느끼며,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님 길들이기를 자행하고 있음을 이 책이 폭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라면 자랄수록, 예수님과 동행한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분은 더 커지셔야 한다. 하지만 대개 사정은 정반대다. 나를 포함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교리, 전통, 제도, 정책 등으로 그분을 수축포장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하여 시간이 갈수록 그분은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작아지신다. 하나님 때문에 깜짝 놀라는 일은 줄어들고 그분에게 쉽사리 지루함을 느낀다. (…)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을 길들이는 일은 대부분 그분의 거룩함과 위험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한다"(13).


하나님과 동행할수록 그분이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고 있습니까? 혹시 오래된 연인처럼 예배가 지루해지고 하나님이 뻔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누구보다 목회자들이 먼저 이 책을 읽기 원합니다. 특히 교회부흥을 목표로 목회 일선에서 분투하고 있거나, 반대로 영적 침체에 빠져 있으면서도 사실을 숨긴 채 홀로 죄책감(수치심)과 싸우고 있는 목회자가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 안에 문제의 원인과 해답이 모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기독교가 어떻게 '실재적이고 필수적이며 성경적인 믿음'의 대체물이 되었는지를 다룬다"(14).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과 동행할수록 그분이 더 커지고 신비로워지기는커녕 더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가 첫째로 지적하고 있는 원인은 "소비자 복음에 물든 기독교'입니다. 현대 교회는 마치 상품을 판매하듯이 구매자들의 입맛에 맞춘 복음을 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취감을 약속하는 다른 모든 상품이 그렇듯, 예수님도 성취감과 만족을 선사할 또 다른 상품으로 제시된다"(23). "소비자 복음"이란 예수가 구매자의 욕구를 채우는 하나의 상품이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날카로운 성경적 통찰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확히 '정반대의 일'을 하고 계심을 밝히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정반대로 우리의 삶에 "의도적으로" 역설, 욕구불만, 갈망, 공허감, 이별, 고독, 어려움, 허무감, 상실, 슬픔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상처와 괴로움을 없애주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툭하면 어려움, 긴장, 불확실성을 가져다 주는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행하십니까? 종교라는 틀안에서 우리에게 길들여지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싶은 모든 공식을 깨뜨리시고, 그분의 방식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만을 신뢰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이해하게 하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줄 신학적 공식과 하나님과의 계약을 믿는 것에 만족한다. 예수님은 그 모든 공식을 깨뜨리시고 우리가 아바라 부르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촉구하신다'(72).





 




"우리의 예배를 타오르게 만드는 연료는 바로 신비다"(139).



이 책이 보여주는 날카로운 통찰 중에 가장 심각하게 와닿았던 것 중 하나는,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사고방식의 위험성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 방식이 교회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치명적인 현대 문화라고 일갈합니다. 성과 속의 구분은 "특정한 장소와 시간으로 하나님을 보내 버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실용적인 무신론자"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78-80).


<하나님께 놀라다>는 이처럼 현대 교회가 직면한 문제와 위험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그 대안을 제시합니다. 대안은 단순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헤아릴 수 없는' 분임을 인정하며, 그분의 움직임에 놀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예수 말고는 답이 없다'는 절실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공식 안에서 '믿고 싶은 대로 믿던' 불신앙을 끝내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청하고, 그분을 향해 더 크게 소리치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지붕을 뚫는 사람이 되고 싶다"(162).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매일 놀라게 되기를!"(271)



<하나님께 놀라다>를 읽으며 매서운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아프기도 했지만,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위로를 받았던 한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메마름의 시기를 겪으면서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심, 당혹감에 시달린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어려움이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삶에 정상적인 부분이며,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61). 이 기도 안에 담긴 진심이 나를 울렸습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괜찮음을 가장했던 저의 가면이 벗겨져 나가는 듯했습니다. 바로 지금 저는 영적 메마름의 시기를 지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영적 메마름의 시기는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 나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해주는 하나님의 선물"(57)임을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메마름의 시기가 시작되고 이 책에 이르기까지 저에게 '복음(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예수님을 가두는 종교적 틀을 깨부수는 책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곳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시고 개입하시고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모험과 기대로 가득한 '오늘'을 꿈꾸게 만들어줍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부정하고 터부시 했던 것들을 성경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탄식의 기술"(237)입니다. "탄식하는 시는 우리 문화가 억누르고 부인하길 원하는 현실에 새로운 음성을 들려준다"(248).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아름다움, 강함, 약함을 재정의하여 세상에 해방을 가져다줘야" 할 사명이 예수님의 교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놀라다>는 바알신앙에 물든 혼합종교처럼, 현대 문화에 젖어 능력을 잃어버린 현대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책입니다. 마이크 어 목사님은 예수님의 교회가 싸워야 할 싸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주류 문화가 '불구'라고 여기는 이들을 교회가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고 사랑함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엄연히 살아 계심을 증언해야 한다. (...) 교회는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해방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고 구현해야 한다. 약함이 환영받고,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예언자적 저항문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269).


<하나님께 놀라다>는 앞서도 말했지만, 매서운 회초리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책입니다. 하나님께 동행하는 감격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을 '기독교' 안에 가두어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회개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놀랄 준비가 되었으니까!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끊임없이 놀라고 감탄하게 되기를!"(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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