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5
노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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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노자의 <도덕경>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과연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지혜의 길잡이이기도 하였다. 가히 '천 년의 사상'이고, '삶의 지혜'이자 일종의 '잠언'이다(7).

지식은 많은데 답답할 정도로 미련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것이지요. 선하고 도덕적인데 그다지 지혜롭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지혜란, 지식과도, 심지어 선함(도덕)과도 다른 그 무엇인 것이지요. 평생 지식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살아보니 사는 데에는 지식보다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하는 대답 앞에 지식은 무력해지더라고요. 무조건 착하게 사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제는, 지식을 가르쳐주는 데는 많은데 지혜를 가르쳐주는 데는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도덕경>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이 동양의 지혜이고, 보이지 않는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구나!"

거둬들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확장시켜야 한다.

약화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없애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흥하게 해야 한다.

빼앗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줘야 한다.

이것을 일러 '미묘한 조짐'이라 한다.

유약함은 강함을 이긴다.

물고기는 연못을 떠날 수 없으며,

국가의 형벌과 정책은 백성들에게 가벼이 적용하여 위협해서는 안 된다(126-127).

<도덕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지식에 역행하는, 역설적인 진리가 주는 통쾌함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극에 이르면 반전하게 된다"(128는 <도덕경>의 가르침을 보면, 거둬들이는 데에만 혈안인 사람들에게 거둬들이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힘을 뺏아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약화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강하게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없애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흥하게 해야 한다니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상식, 일반적인 이치와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도덕경은 이런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장 완전한 것은 결핍된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쓰임은 끊어짐이 없다.

가장 충만한 것은 비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굽은 것처럼 보이고,

가장 교묘한 것은 서투른 것 같으며,

가장 뛰어난 웅변은 어눌한 것처럼 보인다.

청점함은 소란함을 이겨내며, 한기는 열을 이긴다(157).

우리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이기고, 단단한 것이 부드러운 것을 이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경>은 그러한 지식을 뒤집습니다. 마치 눈에 보이는 현상밖에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근본을 보라고 재촉하는 것 같습니다. 서양사람들이 볼 때, 노자의 <도덕경>이야말로 가장 동양적인 철학, 동양적인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헬레니즘적 지식에 물든 우리에게 노자의 <도덕경>은 전혀 다른 인생길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노자는 우리에게 '물'처럼 살라고 초청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약하고 약한 것은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에는 물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249-250).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더불어 살아갈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대지성에서 나온 <도덕경>은 지금까지 번역되어 나온 그 어떤 책보다, 고전을 날 것 그대로 읽는다는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들 수 있을 정도의 해설도 붙어 있지만, 원문을 해치지 않습니다. 한자를 몰라도 음역이 되어 있어, "대성약결, 기용불폐. 대영약충, 기용불궁.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이런 식으로 운율을 맞춰 음미해보는 재미도 있는 책입니다. 자세한 해설이나 현대적인 적용이 붙어 있는 다른 책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도덕경>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현대지성의 클래식 시리즈를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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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유기견을 입양하다 에프 그래픽 컬렉션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말라 프레이지 그림, 신형건 옮김 / F(에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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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변장한 하나님이다.

이 책은 마치 이런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웃들은 모두 변장한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처럼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신령하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즐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느님, 유기견을 입양하다>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일상을 즐기는 다양한 하느님이 등장합니다. 잠에서 깨 커피 한 잔을 들고 사과나무 밑에 앉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퍼뜩 행복하다고 느끼는 하나님, 미용 학교에 갔다 네일케어에 푹 빠진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손을 좋아했고, 새들의 날개만큼이나 섬세한 손가락 뼈마디에 감탄을 하곤 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또 보트를 타고 물 위에서 보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하나님,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하나님, 일주일 동안 오직 케이블 티브이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가 카드 한 벌을 가지고 찾아온 천사 가브리엘과 4주 동안 줄곧 포커를 치는 하나님, 좋아하는 컨트리 음악 가수에게 팬레터를 쓰고, 길 잃은 개를 입양하는 하나님도 등장합니다. 그분도 누군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하고, 밤에도 자신의 발을 따뜻하게 해 줄 존재가 필요하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하느님, 유기견을 입양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닮은꼴이라는 사실이 아닐까요? 모든 생명,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창조론에서 보면,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신)과 닮은꼴로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저자는 평범한 이웃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내었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변장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합니다.

어렸을 때, 제게 중요했던 질문 하나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였습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 저 광활한 우주 속 어디? 우리의 마음속에? 늘 그것이 궁금했었는데, 이 책은 하나님은 바로 내 옆, 내 삶 속에 계시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습니다. 잠에서 깨 사과나무 밑에 앉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퍼뜩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좋아하는 일을 만났을 때, 아름답다고 느낄 때,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을 때, 삶의 환희를 느끼는 순간에, 누군가를 위해 화를 주체할 수 없을 때, 돌봄을 통해 돌봄을 받을 때, 이러한 순간에 우리 곁에 계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느님, 유기견을 입양하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깊은 감동이 튀어나오며,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감상이 가능한 책입니다. 당신이 읽는다면,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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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인문학이다 - 설교자의 그릇 키우기
김도인 지음 / 두란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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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들리는 설교를 하셨다(36).

<설교는 인문학이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들리는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청중에게 들리지 않는 설교는 "청중을 무시하는 설교"요, 이런 설교는 "청중에게 무시를 당한다"(55)는 일갈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들리지 않는 설교' 때문에 출석이 반토막 난 교회를 보았습니다. 명문대 출신인데다 박사학위도 있고 평소에는 말도 꽤 잘하는 분이신데, 그분이 강대상에만 서면 교인들은 도무지 무슨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들리지 않으니 설교를 듣는 것이 고통이라는 호소까지 나왔습니다.

설교는 신학과 문학의 연결이다(16).

청중에게 들려지는 설교를 하라는 것은 소통하는 설교, 다시 말해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교를 하라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과 청중의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작업인데, 많은 목회자들이 청중은 도회시한 채 성경을 해석하는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설교는 인문학의 옷을 입어야 하며, 설교자들에게는 인문학적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문학적 훈련이라 함은, 인문학적 독서에 힘쓰고, 논리력을 키우고, 설교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 반전을 주거나 엇박자 문장을 만드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흔히 무엇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많이 해보는 것이 최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설교만큼은 무조건 많이 한다고 해서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더 좋은 설교, 들려지는 설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방향을 잡아주는 키와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을 읽는 훈련(하나님의 마음 읽기,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마음 읽기, 설교를 듣는 청중의 마음 읽기)을 하라는 가르침에서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잘 들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과 마음과 청중이 연결되는 일이 더 많아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합니다.



설교의 내용은 신학이다.

그래서 바른 성경해석을 해야 한다.

그다음엔 청중이 설교를 들을 수 있도록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청중에게 들리도록 하는

일련의 작업인 인문학으로 옷을 입히는 것이다.

- 김도인, <설교는 인문학이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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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예수 - 이슬람, 공존과 평화를 위한 기도
타리프 칼리디 지음, 정혜성.이중민 옮김, 박현도 감수 / 소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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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무슬림 예수>는 "이슬람 문학(경전과 고전) 속에 나오는 이사(<꾸란>에 나오는 예수의 아랍어 이름)의 어록과 이사 관련 이야기를 모은 것"(4)입니다. 다시 말해, 이슬람 문학 속에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예수의 말씀과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예수에 관한 스토리나 행적보다 예수의 어록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무슬림 복음"이라고 부릅니다(13). <무슬림 예수>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슬림도 예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모아 서구 독자에게 내놓는 이유는 아랍 이슬람 문화권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슬람의 예수 이미지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예수를 대단히 존경하지만 그 신성은 인정하지 않는 종교 전통에서는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예수의 흥미로운 모습을 전해줄 것이다"(13).

독자들은 <무슬림 예수>를 통해 <성경>의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와 상당히 닮은 듯하면서도 또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예수의 초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 책(자료)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에 역사적, 신학적 차원에서 화해를 도모하는 데에 유효적절한 자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17).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공통점이 많아도 결정적인 하나의 차이가 기독교와 이슬람의 사이를 영영 갈라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꾸란>은 십자가형을 부정하고 유대인이 실제 예수를 죽였다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가 하나님께 승천한 일이 예수가 예언자임을 증명해준다"(28)고 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이슬람의 주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성경과 극명하게 대립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뿌리요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꾸란>은 예수의 수난보다는 신비로운 탄생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31)는 것입니다.

<무슬림 예수>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책을 통해 둘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확인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가 우리의 구원자(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모든 족속에서 예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은 제게 무슬림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할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단초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무슬림이 전하는 예수가 아니라, 무슬림이 이해하고 있는 예수를 통해 무슬림을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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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기술 - 단단하지만 홀가분하게 중년 이후를 준비한다
호사카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상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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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기술!

요즘 거리에 서서 건물들을 올려다 보면, '요양원'이 없는 건물이 없을 정도로 요양원이 많이 보입니다. 제가 일하는 건물에도 2개층이 치매 환자를 위한 '요양원'입니다. 주말이면 면회를 오는 가족들로 북적거리지만, 평일에는 아무 할 일 없이 누워 계시는 어르신들을 뵈면 (너무 죄송스럽게도) '소망이 없는 삶'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 '나이 듦'에 관하여 절로 생각이 많아집니다.

최근에 나이 듦에 관하여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다른 한 권이 '나이 듦'에 관하여 개념적 사고를 전환시켜 주는 책이라면, 이 책 <나이 듦의 기술>은 정신신경과 의사로 일해온 저자가 노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지혜를 전하여 주는 자기계발서입니다.




<나이 듦의 기술>은 아주 전형적인, '일본스러운'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계명처럼 메시지를 요약한 목차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목차만 읽어도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모로 "읽기 편한 책"입니다. 그렇다고 목차만 읽어서는 설득력이 없겠지요? ^^ 내용도 보통 2페이지 정도이고, 아무리 길어도 3페이지를 넘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으며 '나이 듦의 기술'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전하는 <나이 듦의 기술>은 작은 생각의 변화, 작은 행동의 변화들입니다. 그러나 작은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는 실천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일 것입니다. 이 책이 가르쳐주는 노하우 중 인상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지간한 일에는 감격하지도 않고, 설레는 일도 별로 없는데, 노년을 즐길 수 있는 노하우 중 하나는 별것 아닌 일, 너무나 당연하게 지나치는 일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의식적으로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무엇 하나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내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무사 신사쿠의 말을 전하며, "텔리비전 단어 퀴즈 프로그램을 보며 마음속으로 참여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일러줍니다(30).

적어도 자기만큼은 자기를 좋아해줄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도 매일이 즐거워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권하며, "이런 일에 서툴다면 아침에 일어나거나 밤에 자기 전에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일을 일과로 삼아보자"(39)고 조언합니다.

<나이 듦의 기술> 중에 가장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일기 쓰기'입니다. 하루에 하나 새로운 발견이 노화를 막는다고 말하는 저자는 일기 쓰기가 매일 그 날이 그 날 같은 무료한 일상에서 "새로운 일이나 대상과의 만남"(42)을 놓치지 않고 찾아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습관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답답한 일상을 좋은 일이 가득한 날로 바꿔주는" 마법의 일기 묘책도 하나 일러주는데, 그 묘책은 바로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고 일기의 첫머리를 시작하는 것(47-48)입니다.




이 책은 이 밖에도 다양한 <나이 듦의 기술>을 전수해주고 있습니다. 목표 숫자가 있으면 흥미가 계속된다, 상대방을 '주연'으로 받들며 대하라, 가장 빠르고 쉬운 기분 전환법은 집 정리라는 조언도 열심히 챙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는, "운명에 행복한 복수를"이라는 챕터였습니다. 거기에 보면 당뇨병 합병증으로 하루걸러 투석을 받아야 하는 지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지인은 운명을 불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즘은 투석을 하는 사람도 여행을 다니며 살 수 있어"라며 오히려 밝다. '투석까지 해가며 살아있으니 남들보다 2배는 즐겨야 공평하지 않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223). "아무리 괴로운 운명이 엄습해와도 그 안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운명에 대한 복수"라는 것입니다.

<나이 듦의 기술>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나아가 인생 2막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러 비법들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 덕분에 마음가짐 하나가 운명에 행복한 복수를 하고, 인생의 끝을 더욱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이전 보다 조금 더 눈이 떠진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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