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비비어의 광야에서 -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존 비비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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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만두고 그만 집에나 가야겠어. 하나님이 나를 이 마른 장소에 두셨으니 그분이 나를 꺼내 주시기 전까지는 상황이 변할 리가 없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포기시킨 뒤에야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위해 그런 시간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광야는 실패의 장소가 아닌 승리의 장소로 마련된 것이다. 


갑자기 내 안에서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싸워라!" 그 작은 음성이 내게 필요한 생명의 불꽃을 일으켰다. 그 즉시 나는 이렇게 외쳤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여, 일어나라. 생수의 강이여, 흘러와라. 내 영 안에서 우물물아 솟아나라!"


<존 비비어의 광야에서> 中에서 (186-187)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 광야 광야에서 서 있네." 세상 속에 홀로 버려진 것만 같았을 때, 귀가 닳고 닳도록 들었던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송 가사입니다. 기도할 힘조차 없었을 때, 신음소리를 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을 때, 이 찬양으로 견뎠습니다. 인생의 광야를 만났을 때, 광야가 그리스도인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장소가 바로 광야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삶의 어려움보다 나를 외면하시는 듯한 하나님으로 인하여 마음이 더 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존 비비어의 광야에서>는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라는 고통스러운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오는 광야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광야를 통과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하기 전, 모세를 먼저 보내어 광야를 답사하게 하셨듯이, 하나님은 이 책을 읽을 나와 바로 당신을 위해 '존 비비어'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먼저 광야로 보내어 훈련시키셨다는 확신이 듭니다. 이 현대판 광야 전문가는, 광야를 빨리 통과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고 잘라 말하지만, 광야 자체가 우리 인생의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길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안내합니다.

<존 비비어의 광야에서>는 광야가 어떻게 우리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는지, 하나님은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지, 광야에서 진짜 훈련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열정적으로 가르쳐줍니다. <존 비비어의 광야에서>를 읽으며 우리가 광야에서 많이 오해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존 비비어 목사님은 광야는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된 곳이 아니라 더 강력하게 역사하는 곳이며,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장소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강하게 붙들어야 할 장소임을 일깨웁니다. 사방이 막힌 곳, 길을 놓치고 헤매는 곳이 광야가 아니라, 한마디로 "하나님이 대로를 놓으신 곳이 바로 광야"라는 것입니다. 단, 광야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길로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218)는 것입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하나님이 약속이 더디기만 할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만 같을 때에도 이를 악물고 하나님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길을 아신다는 것, 이 사실이 깨달아지니 제 안에서 광야가 하나님의 임재로 장소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존 비비어의 광야에서>는 광야 훈련을 거친 모세의 모습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합니다. "광야 한구석에서 40년간 훈련을 한 끝에 하나님이 시키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새로운 모세가 탄생했다"(216). 이 한 문장 안에 엄청난 역설적 진리가 숨어 있음을 느낄 때마다 전율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시키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강한가를 묵상해봅니다. 그리고 광야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어지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는 사실을 심령에 새겨봅니다. 이 책은 광야에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을 선명하게 가르쳐줍니다. 광야를 통과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현대판 광야 전문가가 전하는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팁'>을, 이 길을 걷는 모든 지체들과 뜨겁게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시선을 고정하라.

계속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성령으로 주시는 비전을 끝까지 믿으라!

그러면 광야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리라(248).







광야를 지니며 징조나 축복, 풍요, 기사를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32).

하나님의 '공급'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라(61).

광야에 거하고 있어도 시선은 영광을 향하라(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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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일기 세계기독교고전 3
존 웨슬리 지음, 김영운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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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나는 잠시 멈추었다가 "나는 그분이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압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을 것으로 희망합니다." 그는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 자신을 압니까?" 나는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빈말 같아서 두려웠다"(43).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이 하시는 '영성일기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영성일기 쓰기는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날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교회마다 한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각종 훈련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훈련을 받으면 그때는 뜨겁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마음 안에 갈급함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훈련 프로그램을 기웃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제자 훈련에는 유효 기간이 있고, 그 유효 기간이 짧다는 것이 공통된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성경의 시편도 다윗의 영성 일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조나단 에드워드, 잔느 귀용, 아펜젤러, 짐 엘리엇, 허드슨 테일러 등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기'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로 영국 전체를 누비며 18세기 영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중 한 인물로 손꼽히는 존 웨슬리도 성실하게 일기를 기록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CH북스에서 세계기독교고전 시리즈로 발간한 <존 웨슬리의 일기>는 "아직도 26권으로 제본되어 보존되고 있는 웨슬리의 신앙일기"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을 선별하여 4분의 1로 축약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한 분량은 아닙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한마디로 일상에 뿌리박은 신앙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가족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그보다 더 날 것 그대로의 존 웨슬리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위대함' 뒤에 숨은 연약함, 두려움까지 그가 직접 고백하는 목소리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일기>는 그 어떤 위대한 설교가가 남길 수 있는 명설교보다 더 위대한 명설교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자연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 영혼, 우리 영성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복음 안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님을, 매일 믿음의 씨름을 한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어설픈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깨달음 앞에 좌절하기도 하는, 그리스도인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그에게도 "위험이 가까이 있지 않는 동안은 나 자신을 믿고"(62) 살았다고 탄식할 만큼 연약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 고군분투와 오늘의 나의 믿음의 씨름이 겹쳐질 때, 믿음 안에 산다고 하면서도 왜 나의 믿음은 이리도 연약한지, 쓰러지고 넘어질 때마다 자책했던 마음이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이 온당하고 정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86-87).

<존 웨슬리의 일기>는 "온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쳤던, 존 웨슬리의 그 유명한 말의 의미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소리 없이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어떤 해설이나 주석보다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어 그 감동이 배가 됩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자신의 생애를 직접 증언하는 전기처럼 읽어도 좋지만, 묵상집처럼 되새김질을 하며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듯 웨슬리와 교제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를 읽으며, 하루하루 주님과 동행했던 그 힘찬 발걸음 위로 나의 발걸음도 겹쳐지기를 기도해봅니다. 존 웨슬리를 제대로 알려면 그의 일기를 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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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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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미즈호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동생 주민등록증에는 '장기 기증'과 '각막 기증'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동생은 일찍부터 장기 기증과 각막 기증 의사를 밝혀 왔지만, 엄마가 알고 상상만으로도 너무 슬퍼하셔서 엄마의 마음을 설득하느라 스티커를 붙여 기증 의사를 확실히 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세상에는 불의의 사고가 끊임 없이 일어나고 누군가는 뇌사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뇌사가 확인되면 그 사람은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어도 죽은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망성이 없는, 사느냐 죽느냐의 단계를 이미 지났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심장이 저절로 멈추는 것말고,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더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썩어질 육신)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보다 선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 기증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어려움은, 대부분의 경우 장기 기증을 하는 본인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이 의사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의학 드라마 등을 보면, 불의의 사고만으로도 경황이 없고 슬픔에 빠져 있는 가족들을 찾아와 장기 기증 의사를 물어보면 가족들이 관련자의 멱살을 잡으며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장기 기증 의사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잔인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을 이미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니까요.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번에는 이와 같은 장기 이식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보다는 이식용 장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줌으로써 그 아이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봐"(65).

"그 아이가 꿈에 나와 주면 좋을 텐데. … 꿈에 나와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 주면 좋겠어. 이대로 조용히 숨을 거두게 해달라든지, 자신의 몸 일부만이라도 이 세상에 남아 있게 해 달라든지. 그 말그대로 하면 후회도 남지 않을 텐데"(77).

남편과 별거를 하고 있는 가오루코는 사랑하는 딸 미즈호가 무사히 명문 초등학교에 입할 때까지 남편과의 이혼을 잠시 미뤄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입학 관련 부모 면접을 준비하고 있던 가오루코와 남편 가즈마사에게 감당하기 힘든 비보가 전해집니다. 딸 마즈호가 수용장에 놀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미즈호. 미즈호의 부모는 병원에서 아주 어려운 설명을 듣습니다. 미즈호의 죽음을 두고, 두 가지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장사와 뇌사.

<인어가 잠든 집>은 뇌사 상태에 빠진 딸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부모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독자는 뇌사 관련한 일본의 법률과 장기 이식 관련 현실을 알게 되면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의견상 상처가 전혀 없고 그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내 아이가 숨을 쉬고 있는 한 붙잡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닐까 하면서도,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의 광기 어린 집착이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뇌사와 관련해서도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을 두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단계를 이미 지났다고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와 관련한 일본의 법이 세계적으로도 아주 특이하다고 폭노합니다. 일본에서는 뇌사인 경우에도 몇 달 동안 생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뇌사인지 아닌지 당장 판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뇌사 판정 절차는 뇌사인지 아닌지 정식으로 정하는 것인데, 일본에서는 장기 기증을 승낙하는 경우에만 뇌사 판정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장기 기증에 동의하지 않는 한 뇌사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습니다. 판정을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보여주는 일본의 또다른 현실은, 일본에서는 어린아이의 장기 기증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며 해외에서 이식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인어가 잠든 집>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값을 다시 확인해주는 소설입니다. 주제는 무겁지만 몰입감 최고입니다. 뇌사, 장기 기증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련해서 너무 쉽게 뱉어냈던 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자녀를 잃는다는 슬픔 앞에, 살아움직인다는 것의 신비 앞에,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 누구도 교만할 수 없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으며 울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너무 방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이 먹먹해서, 결국 "만일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는 질문 앞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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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여희 2019-03-19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너무길다

신의딸 2019-03-20 13:11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
 
교회 밖 하나님 나라 - 백년 인생이 말하는 예수의 뜻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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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침묵>의 로드리고 신부처럼 긍휼의 사랑 때문에 배교자로 살지 않는 대신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위선자로 살고 있습니다(70).

지난 수년간 교회 안, 예배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마음을 괴롭히던 소리가 있었습니다. '내가 따르려고 했던 예수님의 길이 과연 이 길인가,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교회가 과연 이런 모습이 맞나, 이런 모임 속에 예수님이 계실 리가 없는데.' 순종과 도전 사이에서 수년을 고민하다 교회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길을 따라가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고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또 하나의 교회가 세워지면서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분명 눈에 보이는 건물이 교회가 아닌데,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우리는 자꾸만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는 데 집중하며, 교회를 위한 교회, 교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밖 하나님 나라>는 100년의 세월을 철학자로, 또 예수를 따르는 신앙인으로 살아온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이 이 시대 교회에 남기는 당부입니다. 교수님은 교회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가." "예수님이 당시 서기관들은 버릴 것과 택할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이 바로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버릴 것과 택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책이라고요.

우리 교회는 교회 밖으로 나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179).

<교회 밖 하나님 나라>는 내 교회, 내 교인만 챙기는 낮은 수준의 신앙에서 벗어나, 세상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서 드러내라는 요청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신앙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교회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교회 밖 하나님 나라가 되라"는 요청은 올바르게 사는 길에 대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종교 행위가 우리를 신앙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우

리의 인생관이 되고 가치관이 되어 우리 삶을 이끌 때, 그렇게 사는 우리를 통해 역사와 사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또는 하나님 때문에 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전에는 인생의 목적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았는데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역사의 장래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게 인간의 삶이로구나' 알게 된 것입니다"(72).

김형석 교수님은 교회가 전부라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나라와 민족을 책임지는 자리에 서는 것이 진짜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교회 밖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선명하게 대답합니다. "사람이 신앙을 가진 마음으로 누굴 돕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크리스천이 할 일은 첫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렵더라도 희망을 가져야 하고, 또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건 바로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도록 돕는 것입니다"(144).

"교회가 교회 구실을 못한다면 교회 밖에서라도 기독교는 살아야 한다"(147).

이 말은 인도 선교사로 헌신한 미국의 스탠리 존스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사회와 역사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도, 교회가 주는 만족에 취해 나몰라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교회 밖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인지, 진정 예수를 따르는 교회인지 점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아직은 회개의 기회, 돌이킬 기회가 있다는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귀가 큰 교회 문간에 서서 들어오는 교인들에게 말한답니다.

"어서 와. 여기서 영원히 즐겁게 살아. 절대 교회 밖으로 나오지 마."

무슨 얘기입니까?

교회가 주는 만족에 취하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나서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 김형석, <교회 밖 하나님 나라>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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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주는 온통 너였어 - 마음이 쏟아지던 그날의 밤, 우리의 반짝이는 이야기
명민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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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저의 우주로 초대합니다.

문득 위로가 필요한 날,

누군가에게

가만히 기대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주저 말고 이곳으로 오세요.

- 작가의 말 中에서

향긋한 커피, 엄마의 손, 초록 풀잎과 빗소리, 비 갠 오후의 상큼한 공기, 도심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 창밖으로 천천히 흐르는 구름, 누군가와 나누어 먹는 초콜릿,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꼬리 치며 뛰어오는 우리 강아지, 강변을 달리는 창이 큰 버스, 연필과 지우개와 노트, 논밭 사이로 길게 늘어서 있는 나무, 여행지에서 만나는 노년의 부부, 진한 핫초코, 밤하늘의 별, 윤동주 시인의 시, 오래된 상자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친구들의 편지, 그리고 이 책 <내 우주는 온-통 너였어>. 달달함이 필요할 때면, 생각만 해도, 보기만 해도, 닿기만 해도, 내게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들입니다.

<내 우주는 온-통 너였어>는 달달한 커플의 사랑스러운 일상을 담은 '일러스트 에세이'입니다. 사실 그림만으로도 모든 것을 말해주지만, 읽을 것을 더하니 그림과 나누는 대화가 더 깊어지는 맛이 있습니다. 연애나 달달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 친구의 연애사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것도 다 한때이지 싶다가도, 일찌감치 단념해버렸던 '사랑'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진짜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슬쩍 기대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책을 덮으며, 오래전 읽었던 연애소설의 한 대목을 조용히 되뇌어 보았습니다. "갑자기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내 우주는 온-통 너였어>, 이 책 때문에 다시 한 번 사랑을 믿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내 우주는 온-통 너였어>는 모두가 한 번쯤 꿈꾸어 보는 사랑, 사랑하는 이와 함께 채워가고 싶은 달달한 일상을 따뜻한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어 더 진하고, 더 현실적입니다. 사랑에 빠진 이의 설레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보통의 날들도 이처럼 따뜻하고 충만한 기억으로 아름답게 간직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막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독자에게는 위험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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