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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스테판 말테르 지음, 용경식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조지 오웰은 개인의 고통보다는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이며, 권력의 공포와 현실을 진지하게 그리고 독창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작가다"(280).
이 책은 조지 오웰이야말로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인물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은 어느 책에서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작가의 문학적 소재는 그가 살았던 시대가 결정한다. 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소란스러운 혁명의 시대에는 그렇다." 그러니 조지 오웰의 작품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 따로 떠어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조지 오웰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삶을 추적하는데 작가 조지 오웰로서만이 아니라, '에릭 블레어'라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특별히 시대의 도전에 그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자세히 읽어볼 수 있습니다.
소심하고 병약한 아이였던 에릭 블러어가 "돈의 역할과 사회적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의 운명"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자녀를 부유한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보내서 견디게 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짓은 없을 것이다.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의식한 아이는 희생양이 되는데, 어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31). 억압과 폭정은 일찍부터 그의 삶의 이슈가 됩니다.
그리고 인도 경찰이 된 에릭은 인종차별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곳에서 영국 제국주의와 첫 만남을 갖게 되는데, 자신의 일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은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심으로 확장됩니다. "나는 경찰에서 근무했다. 즉, 나는 전제군주제의 기계설비 심장부에 있었던 거다. 더구나 경찰은 제국의 가장 저급한 일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제공하는데, 더러운 일을 직접 하는 것과 그 열매만 따먹는 일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98). 제국주의의 경찰로 자신이 하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에릭은 이때부터 행동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자신의 양심과 싸웁니다. "내가 벗어나고자 했던 것, 그것은 단지 제국주의만이 아니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의 온갖 형태였다. 나는 진정한 잠수를 해서, 핍박받는 사람들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과 함께 그들의 전제군주와 맞서 싸우고 싶었다"(117).
어린 나이(대여섯 살)에 작가라 되리라는 걸 알았으며 글쓰기를 좋아했고 글쓰기를 원했던 에릭은 자신의 글쓰기에 정치적 목적이 있음을 자각합니다. "불공정함의 상징적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고", "작가가 분담해야 할 참여 의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181)입니다. 이후, 에릭은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을 위해 봉사하며, 필요하다면 전투복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여 총상을 입기도 하며, 참여하는 폭로자로서 작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전업작가의 삶은 늘 돈에 쪼들렸고 늘 당장 먹고살 돈이 다급한 형편이었습니다.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고도 일이 잘 풀렸던 것은 아닙니다. "직업 작가로, 때로는 교사로, 필요에 따라서는 '빈민'으로 살며" 하루 세 시간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늘 전투적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외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불안해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시대에, 이런 문제에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항상 그 문제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206).
"나는 생각한다. 작가의 첫째 의무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잘 보존하는 것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시의적절하지 않다"거나 이런저런 불길한 영향력을 "본의 아니게 행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거짓말을 하고 사실을 은폐하거나 주관적인 감정을 왜곡하도록 강요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와 병행해서, 나는 완전히 비정치적인 문학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특정한 입장에 서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거나 바람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271-272).
조지 오웰은 그 시대 안에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았던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고난 천재라기보다 고집스러운 노력파였고, 말이 앞서기보다 참여하는 폭로자였기에 그의 작품이 더 진실되게 와 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조지 오웰에 대해 알고 그의 작품을 읽는다면, 작품을 통한 그의 메시지가 더 강력하게 울려퍼질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책 쓰기를 권하는 사회처럼 보입니다. 개인의 다양한 경험들이 책으로 출판되고 있고, 또 책 쓰기를 권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글쓰기 자체의 장벽이 높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피로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적어도 책을 낸 작가로 행세하기 전에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작가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시대의 작가가 필요한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유산인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