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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라틴어 수업>은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한동일 신부님이 "2010년 2학기부터 2016년 1학기까지 서강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초급, 중급 라틴어' 수업 내용들을 정리한 것"(5)입니다. 한동일 신부님의 <라틴어 수업>은 "타 학교 학생과 교수들, 일반인들까지 청강"을 하러 올 정도로 화제를 모은 명강의였다고 합니다. 이미 죽은 언어라 실용적(?)인 면에서도 효용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라틴어 수업에 그토록 사람들이 빠져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동일 신부님은 스스로 이렇게 진단합니다. "학생들은 이 강의를 단순한 라틴어 수업이 아니라 '종합 인문 수업'에 가깝게 느꼈던 겁니다. 강의에서 라틴어뿐만 아니라 라틴어를 모어로 가진 많은 나라들의 역사, 문화, 법 등을 비롯해 그로부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다보니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었습니다(22).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 아니라, 사고의 틀이며, "그 시대를 상징하고 그 시대의 가치관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매개"(240)이기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어는 로마 제국이 패망한 뒤에도 근대 이후까지 유럽의 모언어로 기능하며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때문에 한동일 신부님은 라틴어 실력을 키우는 데에 수업의 목표를 두지 않고, 라틴어를 매개로 "라틴어를 모어로 가진 많은 나들의 역사, 문화, 법 등을 비롯해 그로부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종합 인문 수업을 진행한 것입니다. 한동일 신부님은 "학생들의 머릿속에 책장을 하나씩 만들어주는 것이 수업의 지향점이었다"(23)고 밝힙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머릿속에 '책장'을 마련하는 작업은 이 책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며, 사실 그것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29)라고 강조합니다.
Dilige et fac quod vis.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한동일 신부님의 <라틴어 수업>은 질문으로 끝납니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질문을 던져주는 수업인 셈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어디에 서 있나요?
그곳에서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무엇을 희망하고 있습니까?
나는 매일매일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남은 생 동안 간절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틴어 수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장영희 교수님'의 수업을 떠올리게 합니다. 장영희 교수님이 '문학'을 매개로 했다면, 한동일 신부님은 '라틴어'를 매개로 하고 있으며, 장영희 교수님이나 한동일 신부님이나 강의를 통해 우리를 이끌어가고 싶었던 궁극적인 목적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 앞이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결국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일 신부님은 "학문을 한다는 것은 틀을 만드는 작업이며,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라틴어 수업>은 경직되고 닫힌 사고의 틀을 흔들어놓습니다. 이것은 사고와 가치관의 노예가 되어 살지 말라는 엄한 경고이자, 따뜻한 격려이기도 합니다. 한동일 신부님은 "공부는 무엇을 외우고 지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걸음걸이와 몸짓을 배우는 것"(181-182)이라고 정의합니다. "나만의 걸음걸이와 몸짓을 배우는 것"이라는 표현이 책을 읽어갈수록 가슴 깊이 박히듯 파고들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기보다 나를 향한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보여지는 성과에 집착하고 좌절하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얼마나 고단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아졌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길, 내가 원하는 길, 내가 확신하는 길을 가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변명을 하고, 조급해하고, 불평했던 나의 어리석고 연학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소 뜬금없는(?) '라틴어' 수업에 열광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라틴어 수업>은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공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며, 그것을 생각하는 방법이었는데, 공부하라고 공부하라고를 지겹도록 강요하면서도 지금까지 정작 누구도 그것을 속시원해 알려준 적이 없다는 것을 반증해줍니다. <라틴어 수업>은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참으로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 삶인지를 조용하게 '보여주는' 수업입니다. 한동일 신부님의 강의를 더 듣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