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색칠놀이 공룡 미로찾기
박수영 그림, 최화정 글 / 작은서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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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놀면서 공부해요!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고 계신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주 한 번씩 7-8세 아이들 4-6명과 40분 정도 놀아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춰 놀아주고 싶은데, 아이들의 관심과 주의를 끄는 일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매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아이들과 함께 보내다 보니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주제와 놀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주제는 바로 '공룡'이요, 공통적으로 흥미를 보이는 놀이는 '그림그리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공룡미로찾기>를 보며 "바로 이 책이다" 싶었습니다! "유레카!"

그동안 제가 아는 공룡 이름은 '티아노사우루스'밖에 없었는데, <공룡미로찾기>를 가지고 아이들과 게임을 하며 갈리미무스, 스티라코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프테라노돈, 아파토사우루스와 같은 어려운 공룡 이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와 놀아주는 어른이 공룡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흥미를 보입니다. 




        


                                                                                                                            

<공룡미로찾기>는 공룡 그림 안에 그려지 '미로찾기'가 주게임이긴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공룡 스티커를 똑같이 생긴 그림자에 붙이며 퀴즈를 풀어 볼 수도 있고, 공룡이 사는 마을을 꾸밀 수도 있습니다. 또 미로찾기가 끝난 후에는 공룡을 예쁘게 색칠하며 색칠놀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놀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룡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육식공룡, 초식공룡, 잡식공룡은 어떤 공룡인지, 또 각각의 공룡의 특징은 무엇인지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습니다. 공룡의 재미있는 별명도 알 수 있는데, 가장 사랍고 무서운 공룡으로 '폭군왕'으로 유명한 공룡의 이름은 무엇인지, 또 새처럼 깃털이 있으며 '알도둑'이란 이름을 가진 공룡은 누구인지 퀴즈도 낼 수 있답니다. 

<공룡미로찾기>는 한 장씩 뜯어내서 즐길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명이 함께 놀기에도 좋고, 또 미로찾기를 할 때 가운데 제본 부분이 불편한 점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살 아이와 정말 재미있게 미로를 찾으며 놀았는데, 놀이를 할 때는 사진을 못 찍게 해서 작품 사진만 남겼습니다. 미로를 찾을 때 막힌 곳으로 잘못 가면 왔던 길을 지우개로 지워주는 역할을 제가 맡았었거든요. 그만큼 아이들을 몰입을 해서 집중력을 키워주기에도 좋은 놀이 책입니다.
다른 주제의 시리즈도 무척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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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오리진의 회복 - 처음이 좋았더라
도은미 지음 / 두란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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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번역에서는 "다스리며"를 "경작하며"로 번역했는데, 아보다는 경작하다는 단어가 아니다. 이는 아보다를 잘못 이해한 번역이다. 이 '경작하다' 때문에 '지켜라'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에덴동산 안에서 무엇을 경작하며, 누구로부터 또는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는 말인가? 아보다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에덴의 생활 언어다(17).

<가정, 오리진의 회복>은 굉장히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책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은 '가정'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곧 가족의 창조이기 때문"(7)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을 풀려면 창세기에 담긴 가정에 대한 풍성한 언어와 뜻을 알아야 하는데, 저자는 이를 위해 창세기 2장 15-17절을 중심으로 에덴의 비밀을 풀어줍니다. 에덴의 비밀을 푸는 4가지 열쇠는 히브리어 '아보다'(다스리다), '멜라카'(일), '라다'(다스리다), '샤마르'(지키다)입니다. 

<가정, 오리진의 회복>이 파격적이라 함은, 우리가 얼마나 에덴을, 가족을, 하나님의 창조를 오해해왔는가를 이 책이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4개의 히브리어 '아보다', '멜라카', '라다', '샤마르'가 그 증거입니다. '아보다', '멜라카', '라다', '샤마르'는 우리가 성경, 아니 적어도 창세기의 메시지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충격에 빠뜨립니다. 또 오해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뜻)을 받아들여 왔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보다'는 "킹십이나 으뜸을 의미하는 룰 오버의 '다스리라'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경영하는 의미"(16)입니다. 이 책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아보다는 창조 시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대로, 모든 창조가 아담의 아보다 때문에 백 퍼센트, 그 존재답게 잘 살게 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보다는 필히 수고한 만큼 '너'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무조건적인 섬김이다. … 아보다는 순수한 섬김의 언어요, 지극히 철저하게 '너'를 위한 온전한 서비스를 의미하는 생활 언어다. 이것이 아보다다"(19). 우리 성경에 '다스리다', 또는 "경작하다"로 번역된 '아보다' 하나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들어 있음을 이 책은 뜨겁게 가르쳐줍니다. 

<가정, 오리진의 회복>이 도전적이라 함은, 결국 창세기의 비밀, 에덴의 비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가족의 모습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족의 모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결국은 섬기다, 수고하다, 사랑하다, 하나 되다로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섬기다, 수고하다, 사랑하다, 하나 되다의 수준이 아닙니다. 이 책에 보면 도박 중독에 빠진 남편(아버지)과의 이혼 문제로 상담을 했던 가정의 이야기가 나오는데(129-137), 그 가족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위기 청소년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가정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고 회복을 위해 노력을 해도, 그 아이들을 돌려보낼 가정이 병들어 있으면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사회 문제는 가정 문제로 귀결되고, 가정이 회복되고 바로 세워지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정, 오리진의 회복>은 이러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 진리가 너무도 심오하고 오묘해서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입니다. 

<가정, 오리진의 회복>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닙니다. 쉽게 소화되는 책도 아닙니다. 어떤 주장들은 신학적인 논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을 만큼 파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 한국 교가 놓치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환기시켜주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담긴 메시지를 분명히 깨닫는다면 회복되지 않을 가정이 없을 듯합니다. 그 일은 이 책을 읽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목회자들이 먼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왕이 백성을 다스리듯
종적이며 존재적 차이를 내는 다스림을 행세하신 적이 없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다스림은
언제나 아보다로 사람과 함께하며,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라다는 함께 살기 위함이요,
하나 되기 위함이요, 곧 가족이 되기 위해 내려오심을 뜻한다.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보다 한다. 섬긴다. 수고한다. 사랑한다. 하나 된다. 가족한다.
그 '가족하는 것', 그것이 아보다 하시는 하나님의 핵심이요,
에덴의 비밀 코드다.

- 도은미, 가정, 오리진의 회복, p.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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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이르는 신학 - 사랑이 결핍된 시대를 위한 대안
권혁빈 지음 / 두란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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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그분을 통해 흘러가며, 결국 그분에게로 집약된다. 그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이 메마른 시대의 유일한 소망이다. 나는 그것이 신학의 역할이라 생각한다(19-20). 

청년부 목장에서 소그룹 나눔을 할 교재를 찾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 세워지는 청년부 목장이라 우리의 신앙고백(믿는 바)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성경적 진리 안에서 신앙의 뼈대를 튼튼하게 세우면서도, 복음의 은혜가 그 뿌리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교재를 원했습니다. <사랑에 이르는 신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교재라는 확신이 듭니다. 

<사랑에 이르는 신학>은 조직신학의 주제(신론, 기독론, 성령론, 인간론/죄론, 교회론 등)에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을 대입"하여 풀어낸 결과물로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사랑'으로 성경을 관통하는 "사랑의 신학"이라 할 수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듯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며, 따라서 삶의 본질도 사랑일 수밖에 없으며, 이 사랑이 결핍된 상태가 바로 죄이며, 사랑의 절정인 십자가 사랑만이 사랑이 결핍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사랑의 영이신 성령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에 이르게 하신다는 진리를, 날카로운 신학을 견지하면서도 성경을 사모하고 읽고 배우는 성도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따뜻하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분명 조직신학 책이면서도 설교처럼 예화나 간증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그 진리에 다가가기 쉽도록 신학적 통찰을 잘 녹여 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귀한 진리를 담고 있어도 그 자체가 넘지 못할 장벽이 되어 마주 서 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신학서적도 많은데,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죽을 자가 아니라 부활하실 분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로 십자가를 지셨다. 그는 절망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십자가를 지셨다. 그분이 지신 십자가는 결코 예수님을 움츠러들게 하거나 좌절하게 하지 않았다. 믿음의 삶은 언젠가 승리할 것을 알뿐만 아니라 지금 승리자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정체성의 능력이다. 내가 승리할 것을 알기에 오늘의 낮아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276).

기본적으로 글을 참 잘 쓰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문장들이 많은데, "존재함은 곧 사랑함이다"(27)라는 첫 메시지부터 아주 강렬합니다. '사랑의 영'(성령론) 파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성자 예수님이 계시하시고, 성령님은 우리로 그 사랑을 알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다시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이며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진리로 나아간다"(329). <사랑에 이르는 신학>이 딱 그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통해 다시 사랑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나'가 참 '나'라는 사실 또한 기쁘게 깨닫게 해줍니다.

<사랑에 이르는 신학>은 거대한 책입니다. 진리를 담은 책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고, 성경 전체를 꿰뚫으며 관통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고,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답을 담았다는 뜻에서 그러하며, 우주와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을 설명해준다는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믿음의 지체들과 차분하게 다시 읽고 나누며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진리로 승부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 따르는 청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 교회는 사회와 시대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교회의 존재는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낼 때만 의미를 갖는다. 더 가지려는 것에 도취되어 온통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상에서 크리스천은 나누고 섬기며 사랑해야 한다(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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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六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에드워드 호퍼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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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렸다가 그치고
불었다가 그치는
밤의 고요

- 오쓰지

이것은 일본 고유의 시, 하이쿠입니다. 하이쿠는 5 · 7 · 5의 17음(音) 형식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입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1년 열두 달 매일 명화와 함께 시 한 편을 묵상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 시화집입니다. 그중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는 6월의 시화집입니다. 그리고 오쓰지의 저 하이쿠는 6월 26일의 시입니다. 요즘 한창 러시아 월드컵 때문에 밤의 열기가 뜨거운데, 승리에 연연하며 속을 태우다 아침을 맞이한 기분이 딱 저 하이쿠 속의 고요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입속으로 소리 죽여 발음해 봅니다. "내렸다가 그치고 불었다가 그치는 밤의 고요."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중 6월은 윤동주 시인 외 17명의 시인들의 시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로 "현대 미국인의 삶과 고독, 상실감을 탁월하게 표현해 내 전 세계적으로 열렬하게 환호와 사랑을 받는 화가"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화집에는 약 45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데 눈에 익은 작품이 많습니다. 시화 함께 유명한 명화를 감상하는 맛이 있는 시화집입니다.

6월을 노래한 6월의 시들은 마음과 하루와 인생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듯합니다. 봄처럼 사뭇 곱기도 하고, 여름처럼 볕이 비눌처럼 빛나기도 하고, 가을처럼 숲 향기가 숨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겨울처럼 공포에 떨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6월입니다. 영원한 청춘을 노래하듯 영원히 밝고 영원히 개인 날의 6월은 그렇게 고요히 머물다 고요히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는 호퍼의 그림 때문인지 6월의 시들은 시간이 정지된 듯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라는 뒤표지의 문구를 가만히 음미해봅니다. 시화집을 감상하다 보면 시가 그림을 해석하고, 그림이 시를 해석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루하루가 시처럼 다가왔다가 아름다운 명화처럼 남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를 모두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그중에서도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라는 제목을 가진 10월의 시화집이 무척 궁금합니다. 10월의 시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와 함께 시를 감상하도록 꾸며져 있는데, 10월 11일의 시와 10월 11일의 그림을 먼저 만나보고 싶습니다. 나의 생일 시와 생일 명화를 확인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나의 생일 시와 생일 명화를 확인하러 서점에라도 나가봐야겠습니다.




6월이 오면, 인생은 아름다워라! _ 로버트 S.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날이 저물도록
향기로운 건초 속에 사랑하는 이와 앉아
잔잔한 바람 부는 하늘 높은 곳 흰 구름이 짓는,
햇살 비추는 궁궐도 바라보겠소.
나는 노래를 만들고, 그녀는 노래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건초더미 보금자리에,
아름다운 시를 읽어 해를 보내오.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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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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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다이너마이트다

몇 년 전에 제 심령 가운데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 팀 켈러 목사님의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였습니다. 다이너마이트처럼 강력했던 그 메시지를 두란노에서 새롭게 번역한 책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깔끔한 모습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를 통해 "갈라디아서는 다이너마이트다"라고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가 다이너마이트인 것은, 복음이 다이너마이트이기 때문이지요.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제대로 터진다면 우리 삶이 송두리째 변화되는, 다시 말해 완전히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제 삶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비신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비일비재하게 한다"(8)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복음이라고 하면 새가족 교육 대상자에게나 필요한 기초 교리쯤으로 치부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면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교리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가 가장 먼저 벼락 처럼 깨닫게 해주었던 진리는 복음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야 할 '전부'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진수를 우리 심령 가운데 폭발시키는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진리를 아는 기쁨의 책이기도 하지만,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는 아픔의 책이기도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깨달아질 때, 심령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던 그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이 사실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처절할 정도로 아프게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 '나'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그런 상태로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복음 안에서 완전한 해방을 선언하며 완전한 자유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는 진리입니다. 무엇보다 선명한  가르침은, 예수님은 우리를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건져주시러' 오신 분이라는 사실과, 복음은 본질적으로 지시나 조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다는 소식이라는
것과, 우리를 구원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할 일은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의 수준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27).



교회에 스며든
'변질된 복음'에 맞서라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라는 건 이미 복음이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주의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비신자가 아니라, '교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충격적으로 일깨웁니다. 왜냐하면 복음에 자꾸만 뭔가를 '더' 하려는 유혹에 시달리는 것은 비신자가 아니라,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비신자에게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복음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일, 그리스도를 제대로 아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사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복음에 헌신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복음을 믿고 있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 책에 담긴 복음의 진리가 이 땅 위에 다시 한 번 강력하게 폭발하기를 뜨겁게 소망합니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복음에 내포된 의미대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꿈꿉니다(10).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인간의 본성에 심히 걸림돌이 된다(5:11-12).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연약하고 죄가 커서
구원에 조금도 보탬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복음은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에게 걸림돌이 된다.
그들은 복음이 배타적이라고 비난한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보수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에게도 걸림돌이 된다.
복음이 '착한' 사람도 십자가 없이는
'악한' 사람만큼이나 구제 불능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이 걸림돌이 됨은
십자가가 모든 자력 구원의 방법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종교"와 "도덕"을 높이 평가한다. 
도덕적 종교가 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십자가만은 걸림돌로 여긴다. 
그래서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박해를 당한다(21절).

십자가는 본래 걸림돌이다!


- 팀 켈러,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 pp.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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