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오리진의 회복 - 처음이 좋았더라
도은미 지음 / 두란노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개역개정 번역에서는 "다스리며"를 "경작하며"로 번역했는데, 아보다는 경작하다는 단어가 아니다. 이는 아보다를 잘못 이해한 번역이다. 이 '경작하다' 때문에 '지켜라'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에덴동산 안에서 무엇을 경작하며, 누구로부터 또는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는 말인가? 아보다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에덴의 생활 언어다(17).

<가정, 오리진의 회복>은 굉장히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책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은 '가정'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곧 가족의 창조이기 때문"(7)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을 풀려면 창세기에 담긴 가정에 대한 풍성한 언어와 뜻을 알아야 하는데, 저자는 이를 위해 창세기 2장 15-17절을 중심으로 에덴의 비밀을 풀어줍니다. 에덴의 비밀을 푸는 4가지 열쇠는 히브리어 '아보다'(다스리다), '멜라카'(일), '라다'(다스리다), '샤마르'(지키다)입니다. 

<가정, 오리진의 회복>이 파격적이라 함은, 우리가 얼마나 에덴을, 가족을, 하나님의 창조를 오해해왔는가를 이 책이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4개의 히브리어 '아보다', '멜라카', '라다', '샤마르'가 그 증거입니다. '아보다', '멜라카', '라다', '샤마르'는 우리가 성경, 아니 적어도 창세기의 메시지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충격에 빠뜨립니다. 또 오해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뜻)을 받아들여 왔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보다'는 "킹십이나 으뜸을 의미하는 룰 오버의 '다스리라'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경영하는 의미"(16)입니다. 이 책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아보다는 창조 시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대로, 모든 창조가 아담의 아보다 때문에 백 퍼센트, 그 존재답게 잘 살게 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보다는 필히 수고한 만큼 '너'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무조건적인 섬김이다. … 아보다는 순수한 섬김의 언어요, 지극히 철저하게 '너'를 위한 온전한 서비스를 의미하는 생활 언어다. 이것이 아보다다"(19). 우리 성경에 '다스리다', 또는 "경작하다"로 번역된 '아보다' 하나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들어 있음을 이 책은 뜨겁게 가르쳐줍니다. 

<가정, 오리진의 회복>이 도전적이라 함은, 결국 창세기의 비밀, 에덴의 비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가족의 모습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족의 모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결국은 섬기다, 수고하다, 사랑하다, 하나 되다로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섬기다, 수고하다, 사랑하다, 하나 되다의 수준이 아닙니다. 이 책에 보면 도박 중독에 빠진 남편(아버지)과의 이혼 문제로 상담을 했던 가정의 이야기가 나오는데(129-137), 그 가족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위기 청소년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가정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고 회복을 위해 노력을 해도, 그 아이들을 돌려보낼 가정이 병들어 있으면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사회 문제는 가정 문제로 귀결되고, 가정이 회복되고 바로 세워지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정, 오리진의 회복>은 이러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 진리가 너무도 심오하고 오묘해서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입니다. 

<가정, 오리진의 회복>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닙니다. 쉽게 소화되는 책도 아닙니다. 어떤 주장들은 신학적인 논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을 만큼 파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동안 한국 교가 놓치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환기시켜주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담긴 메시지를 분명히 깨닫는다면 회복되지 않을 가정이 없을 듯합니다. 그 일은 이 책을 읽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목회자들이 먼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왕이 백성을 다스리듯
종적이며 존재적 차이를 내는 다스림을 행세하신 적이 없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다스림은
언제나 아보다로 사람과 함께하며,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라다는 함께 살기 위함이요,
하나 되기 위함이요, 곧 가족이 되기 위해 내려오심을 뜻한다.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보다 한다. 섬긴다. 수고한다. 사랑한다. 하나 된다. 가족한다.
그 '가족하는 것', 그것이 아보다 하시는 하나님의 핵심이요,
에덴의 비밀 코드다.

- 도은미, 가정, 오리진의 회복, p.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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