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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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다이너마이트다

몇 년 전에 제 심령 가운데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 팀 켈러 목사님의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였습니다. 다이너마이트처럼 강력했던 그 메시지를 두란노에서 새롭게 번역한 책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깔끔한 모습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를 통해 "갈라디아서는 다이너마이트다"라고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가 다이너마이트인 것은, 복음이 다이너마이트이기 때문이지요.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제대로 터진다면 우리 삶이 송두리째 변화되는, 다시 말해 완전히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제 삶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비신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비일비재하게 한다"(8)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복음이라고 하면 새가족 교육 대상자에게나 필요한 기초 교리쯤으로 치부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면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교리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가 가장 먼저 벼락 처럼 깨닫게 해주었던 진리는 복음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야 할 '전부'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진수를 우리 심령 가운데 폭발시키는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진리를 아는 기쁨의 책이기도 하지만,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는 아픔의 책이기도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깨달아질 때, 심령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던 그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이 사실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처절할 정도로 아프게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 '나'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는 그런 상태로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복음 안에서 완전한 해방을 선언하며 완전한 자유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는 진리입니다. 무엇보다 선명한  가르침은, 예수님은 우리를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건져주시러' 오신 분이라는 사실과, 복음은 본질적으로 지시나 조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다는 소식이라는
것과, 우리를 구원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할 일은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의 수준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27).



교회에 스며든
'변질된 복음'에 맞서라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라는 건 이미 복음이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주의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비신자가 아니라, '교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충격적으로 일깨웁니다. 왜냐하면 복음에 자꾸만 뭔가를 '더' 하려는 유혹에 시달리는 것은 비신자가 아니라,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비신자에게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복음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일, 그리스도를 제대로 아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사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복음에 헌신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복음을 믿고 있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 책에 담긴 복음의 진리가 이 땅 위에 다시 한 번 강력하게 폭발하기를 뜨겁게 소망합니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복음에 내포된 의미대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꿈꿉니다(10).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인간의 본성에 심히 걸림돌이 된다(5:11-12).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연약하고 죄가 커서
구원에 조금도 보탬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복음은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에게 걸림돌이 된다.
그들은 복음이 배타적이라고 비난한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보수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에게도 걸림돌이 된다.
복음이 '착한' 사람도 십자가 없이는
'악한' 사람만큼이나 구제 불능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이 걸림돌이 됨은
십자가가 모든 자력 구원의 방법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종교"와 "도덕"을 높이 평가한다. 
도덕적 종교가 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십자가만은 걸림돌로 여긴다. 
그래서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박해를 당한다(21절).

십자가는 본래 걸림돌이다!


- 팀 켈러,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 pp.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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