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의 인간력
나채훈 지음 / 바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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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직은 일반적으로 가부장적 가족형이나 군대형 조직이 많아 보인다. 
조직 안에 ’우두머리’가 있고, 그 밑으로 서열 배치가 이루어진다.
커뮤니케이션은 보통 ’명령하달’로 이루어지며, 
’우두머리’의 명령이 곧 법이 되고, 명령에 대해서는 
절대 복종이 원칙이요, 예절이며, 조직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미덕으로 받아들여진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다 귀국한 한 지인이 한국 사람들은 만나면 
일단 내가 이 사람보다 ’위’인가, ’아래’인가를  먼저 따지는 습관이 있고, 
그렇게 상, 하가 정리되었을 때 
비로소 관계가 안정을 찾는 듯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러한 가부장적 가족형, 군대형 조직의 병폐 중 하나는
상, 하 간에 커뮤니케이션, 즉 대화나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아랫’ 사람은 ’윗’ 사람에게 업무에 관련 된 회의석상에서조차
충고나, 직언이나, 조언이나, 반대의견이나, 건의사항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잘못 말했다가는 찍히기 쉽상이고, 그렇게 찍히면 결국 나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요즘 젊은 세대의 조직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런 풍토가 암묵적인 조직 분위기로 살아있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조직 문화가 동양적인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게
<정관정요의 인간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관정요>라는 책을 사전으로 찾아보니,
중국 당나라의 오긍이 지은 책으로,
태종이 가까운 신하들과 정관 시대에 행한 정치상의 득실에 관하여 
문답한 말을 모아 엮은 것이라고 한다. 

그 옛날에 임금과 신하가 정사를 서로 논하며 문답을 하는데,
임금의 질문에 답변하는 신하들의 지혜롭고 소신 있는 대답이 놀랍다.
최고 지도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소신껏 조언과 충언과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신하들의 태도와 또 그것을 귀담아 듣고 수렴하는 임금의 태도가 놀랍다.

<정관정요의 인간력>은 태종과 신하들의 이와 같은 대화를 바탕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조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이상적인 모습과 
국가경영 또는 조직경영의 원리를 법칙화해내고 있다.
(책은 인간관리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이 말이 싫다.)

<정관정요의 인간력>이 전하는 핵심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흥망은 지도자와 부하의 공동 책임이다!"
지도자 한 사람만 잘나서는 조직이 흥왕할 수 없다.
현명한 지도자는 부하의 진가를 알아보아야 하고, 
조직에서는 공정한 인사가 모든 일의 시작이며,
인물평가는 치우침이 없이 정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정하지 못한 리더나 감정적인 평가가 판을 치는 조직이 순탄하게 작동할리 없다.

또한 "바른말 하는 부하가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그런데 부하들이 침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리더의 책임인 것이다. 
달콤한 조언만을 귀담아 듣고, 따르는 리더에게 충직한 부하가 나올 수 없다.
저자는 "부하를 충신이 아닌 양신이 되게 하라"고 하며,
"소금과 매실의 역할을 하는 사람과 사귀어라"고 충고한다.
(이 문장의 깊은 의미는 책을 읽고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조직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내게 가장 큰 깨우침을 준 것은
"부하에게 완벽함을 구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부하의 잘못이나 결점을 늘 정확하게 짚어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그저 내 성격이라고 합리화하고 그건 내 스타일이라고 고집했던 일이 부끄러워진다.

<정관정요의 인간력>은 한 편의 사극을 보는 듯 하는 재미와
지혜가 담긴 우화를 읽듯이, 고전을 읽으며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어 다른 리더십 이론서들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으며,
잔잔한 감동과 함께 깨우침을 얻을 수 있어 좋았다.


"군주는 배에 비유되고, 백성은 물에 비유된다. 
물은 배를 떠가게 할 수도 있고, 물속으로 가라앉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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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괴짜가 세상을 움직인다 - 모방이 넘치는 가라오케 자본주의에서 혁신적 개인과 기업으로 살아남기
요나스 리더스트럴러.첼 노오스트롬 지음, 조성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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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괴짜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책의 제목만 보고 한참을 오해했다. 기발하고 때로는 엉뚱하다 못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세계적인 괴짜들의 창조세계를 '유쾌하고 가볍게' 즐겨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 수준이 상당하다. 가볍게 읽을 책이 아니었다.

저자 '요나스 리더스트럴러'와 '첼 노오스트롬', 이름도 어렵도 낯익지도 않은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로 정평이 나있으며, 차세대 경영학 리더로 꼽히는 인물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창조적인 괴짜'이다. 자신들의 강연을 '공연'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연단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좌중을 압도하는 특별한 강연으로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마치 저자들이 눈앞에서 실제로 '프리젠데이션'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상당한 유머 수준과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내용의 핵심을 놀랍게 축약하고 있는 한 컷 한 컷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을 시각화해주면서 학습효과와 함께 재미를 더하고 있다. (곧바로 와닿지 않는 서구적인 사고 방식의 표현도 다소 눈에 띄지만) 번역의 힘인지 메시지를 담은 문장들도 멋지다.

저자들의 시각은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이다. 크게 보면 현대사회의 흐름과 작동 원리를 분석해서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고, 좀더 미세하게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현상을 수평적인 관점으로 분석하고, 또 그러한 사회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을 읽어내는 나침반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저자는 우리가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의 시민으로 살고 있임을 깨우쳐주는데,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은 "상업적 영감으로 빛나는 은하수"뿐 아니라, "어둠침침한 도랑"을 함께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는 '가라오케 자본주의'이라고 이름 붙였다. 가라오케 술집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화려한 조명 아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노래이다! 가라오케 클럽은 제도적으로 모방을 허용해주는 장소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모방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저자는 모방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현금'과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가라오케 클럽에 입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것인지 말이다. 저자가 이 비유를 통해 전달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자본과 능력은 자본주의 사회에 입장하는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성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라오케 클럽 안에서 기업과 개인은 '타인을 모방하느냐 아니면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느냐'에 사이에서 궁극적인 선택을 내려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모방하지 마라." "혁신하라." 이것이 이 책이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이다.

왜 혁신이 중요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화' 되어가는 바로 그 개인이 '거대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자본과 능력이 있는 한, 기술은 우리가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고 노래했는데, 지금 바로 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세상의 규칙을 바꾸는 것은 이제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이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분열과 사라져가는 사회 자본은 우리 모두에게 개인적인 제도 혁신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힘은 규칙을 준수하는 자(룰테이커)에서 규칙을 깨뜨리는 자(룰브레이커)와 규칙을 창조하는 자(룰메이커)에게로 옮겨지고 있다." 지금은 재능 있는 '개인들'이 움직이는 독점자들이다. 자본가들이 울고 있다. "유능한 개인들에게 인질로 잡히고, 까다로운 고객들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한가지 희망적인 전망은 이것이다. 이제는 '창조적인 개인'이 세상을, 시장을 지배하는 중심이다. 오늘날의 희소 자본은 '자본'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창조적 괴짜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상상력과 재능을 지닌 '개인'이, 개성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것이, 다름을 보여 주는 것이 현대적인 기업과 생활의 중심임을 보여준다. 지금은 기괴하고 놀라우며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이제 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마음껏 개성을 표현하라! 무한한 상상력이 빚어내는 다름과 차별, 이제 이것이 성공 자원이다. 

<창조적인 괴짜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현재와 미래 사회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책이다. 시장의 흐름과 작동 원리를 읽고, 사회의 변화를 읽고, 무장하여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준다. 녹녹치 않은 내용이었지만 알차게 꾸며져 있어 유쾌하고 뿌듯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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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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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중적인 공포는 때로 ’횡포’가 된다. 

두려움의 강도가 ’공포’로 변하면 그 두려움을 방어하기 위한 공격성이 튀어나오는데, 대중이 발산하는 집단적인 공격성은 공포심을 적개심으로 변질시킨다. 여기에 매스미디어까지 가세를 하면 정보는 공포를 ’조장’하고, 이성은 공포를 ’과장’하여, 대중의 적개심은 겉잡을 수 없이 맹렬해진다. 이 맹렬한 적개심의 화살이 특정 대상에게 집중될 때, 집단적인 광기가 나타나고 ’사회적인 횡포’가 자행되기도 한다.

<보이 A>는 "영국 범죄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슬픈 사건으로 기록된" 실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국인들을 경악케 한 것은 두 살된 남자아이를 끔찍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 열 살밖에 안 된 십대 소년들이었다는 것이다.  <보이 A>는 이중 한 소년이 복역을 마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실제 사건에서는 살해된 아이가 '두 살난 남자아이'였다고 하는데, 작가는 '열 살난 여자아이'로 설정을 바꾸었다. 그리고 매스미디어가 그 사건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여준다. "죽기 전에도 천사의 모습에 가까웠던 한 여자 아이의 실제보다 미화된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서 이 물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요절은 죽음을 미화했다. 안젤라 밀턴도 어린 나이에 살해됨으로써 사람들의 눈에 완벽한 인간으로 미화되었다. 현대사회가 낳은 순교자로 비춰졌다"(304).

이 천사 같은 소녀를 살해한 소년이 '잭'이란 이름으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석방 소식은 언론에도 알려졌다. 언론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 대중들에게 알려 대중 스스로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그의 행방을 뒤쫓았다. 적어도 내 이웃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언론은 끊임없이 그를 찾아내 대중들에게 '위험'을 알리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잭'의 과거는 들통나고 만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하는 바람에 언론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그는 '사회적인 영웅'이 되었으나, 그가 과거에 어떤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려지면서 그는 또다시 사회로부터 '감시'의 대상이 되어, 결과적으로는 '격리'되고 만다. 

<보이 A>를 읽으며 언론과 대중의 공포와 적개심을 '횡포'라고 해석하는 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 때문이다. 마치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사회는 '사형에 처해 마땅한 자'의 범죄 행위만 '보지만', 책은 독자에게 그 범죄자의 (보이지 않는) 숨겨진 사연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어' 독자를 설득하듯이, <보이 A>도 소년 A가 그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보여주고', 복역을 끝내고 평범하게 살아보려고 고투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의 사고는 보여지는 '한 단면'에 의해서 결정된다. 어떤 단편을 보느냐에 따라 선택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전지한 신'이 아닌 이상 A에서 Z까지를 모두 고려한 '통합적'인 사고는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이 책의 목차는 A에서 시작해서 Z로 끝난다). 문제는 우리의 인식이 대중적으로, 사회적으로 조장되고 과장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잭은 아홉 달만 어렸어도 무죄였다. 살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 CIA가 세상을 정말로 변화시킬 수도 있었던 체 게바라를 무참하게 살해하는 것은 왜 정당화되었을까?"(304-305) 

인간은 누구도 '절대 선'일 수 없고, 또 누구도 '절대 악'일 수 없다. 짝이 있어야지만 탈 수 있었던 노아의 방주에 짝을 지어 올랐다는 선과 악은 바로 내 안에도, 또 사회 속에도 공존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겸손하고 조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내가 '신'을 믿고 의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리(절대 기준)는 결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CCTV 천국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려 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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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고기 쉽게 찾기 호주머니 속의 자연
노세윤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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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민물고기 안내 도감,
엄마의 추억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민물고기


’호주머니 속의 자연’이라는 예쁜 시리즈 이름을 가진 <민물고기 쉽게 찾기>, 대부분 자녀를 위한 학습도서로 구입을 하는데 나는 환갑을 넘긴 엄마를 위해서 선택했다. 언제부터인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그날 낮에 유선방송을 통해 보았던 ’민물낚시’ 이야기를 하신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한 번도 낚시를 가신 일이 없는 엄마이다. "엄마 ’민물낚시’ 방송이 재밌어?"라고 물으니, 하루 종일 무료한데 방송에서 민물고기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고 하셨다. 늘 북적북적 대던 집이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형제들이 독립을 하고, 사십 년 넘게 살던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오고, 직책을 맡았던 교회 봉사도 은퇴를 하시고, 어느 날 텅비어 버린 집안에서 엄마는 홀로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계셨다.

택배로 <민물고기 쉽게 찾기>를 받아들었을 때, 어렸을 때 엄마가 처음 사주신 컬러판 백과사전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집을 줄여 이사를 한 후, 어린 우리도 눈치가 있었는지 엄마에게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서 외판원 아저씨가 마루에 펼쳐 놓은 책들을 구경하며 좋아하는 우리를 한참 보고 계시던 엄마가 그 비싼 백과사전 전질을 덜컥 외상으로 들여놓으셨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아저씨 설명에 흔들리고, 컬러판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보기 좋으셨던 것 같다. <민물고기 쉽게 찾기>는 그때 보았던 백과서전처럼 다양한 민물고기 사진이 있고, 설명이 붙어 있다.  

엄마의 반응이 궁금해서, 정시에 퇴근을 하자 마자 엄마에게 책을 보여드렸다. 책 속에 민물고기 사진을 보시는 엄마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TV에서 봤던 것도 있다며 아는 민물고기가 나올 때마다 좋아하신다.  저녁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엄마와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담수어 생태 사진 작가이신 노세윤 선생님이 민물고기를 찾아 전국의 강과 하천을 답사하셨다고 한다. 서식지를 발로 뛰며 직접 찍으신 사진은 사진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투명하고 선명하다. 팔닥거리며 곧 뛰어오를 듯이 선명한 민물고기 사진은 마치 맑은 계곡 물속을 직접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민물고기 쉽게 찾기>는 한반도 휴전선 이남의 담수역과 기수역에 서식하는 물고기 총 130종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을 직접 담고 있지는 않지만 민물고기를 통해 부모님 시대의 추억까지 몰래 담아내고 있었다. 엄마는 민물고기 사진과 설명에 덧붙여 엄마의 추억까지 꺼집어 내어 설명해주시기 시작했다. 어떤 민물고기 이름은 엄마가 어렸을 때 부르던 이름과 달랐고, 엄마가 살던 고향 어디에 가면 어떤 민물고기가 많고, 또 어디로 가면 어떤 민물고기가 많았는지를 들려주셨다. 엄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숲이 우거져 그늘진 곳에 아주 맑고 찬 물이 빠르게 흐르는 곳에서 민물고기를 보았던 팔닥팔닥거리는 추억과 흥분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하셨다. 

민물고기와 함께한 엄마의 추억 이야기에 오랫만에 엄마와 앉아 정말 긴 이야기를 나누며, 쉴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보며, 마음으로 얼마나 많이 죄송하다고 고백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민물고기 쉽게 찾기>를 보며 자녀를 위한 교육 도서로 정말 최고라는 생각을 먼저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 만큼이나, 엄마도 설명을 읽으며 "오! 그렇구나. 그렇구나!"를 연발하신다. 민물고기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는 것이 신기하신가 보다. 체형별로 민물고기를 구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는 아주 감동을 하셨다. 부모님에게도 학습을 위한 책이 여전히 흥미롭고, 또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는 성인 자녀가 몇이나 있을까. 엄마가 외롭지 않기 위해 독립을 미루며 엄마 얼굴을 아침, 저녁으로 보고 사는 나도 무심했고, 몰랐으니 말이다. 

<민물고기 쉽게 찾기>는 민물고기가 사는 자연 환경을 설명해주며, 사진과 지역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며 이번 여름 휴가를 계획하기도 했다. 특별히 만경강 하구의 탁 트인 푸른 바다와 시원하게 흐르는 푸르고 넓은 강, 그리고 녹지가 어우러진 작은 사진(45)에 마음을 동시에 빼앗긴 우리는 오래도록 감탄했다. 

<민물고기 쉽게 찾기>는 민물고기를 연구하는 전문서적이면서도 어류학 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고 있어서 지겹지 않게 공부하며 읽을 수 있었다. 컬러판 백과사전처럼, 살아 움직이는 민물고기를 직접 촬영하여 살아 있는 민물고기를 관찰하며 그 생명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부위별 특성 사진과 함께 필요한 설명에 따라 일러스트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민물고기의 형태와 색깔, 생활과 먹이, 분포 및 생태적 특징 등이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으면서 민물고기에 대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또 필요하고 궁금한 질문을 빠르게 찾아볼 수도 있다. 

오랫만에 엄마와 함께 공부하며, 어려운 살림에 덜컥 비싼 백과사전을 사주셨던 엄마의 은혜에 이렇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민물고기 쉽게 찾기> 이 책은 내게 너무도 특별했다. 엄마의 추억과 함께한 우리나라 민물고기와 생태가 아름답게, 그 시절 그때의 무공해 아름다움 그대로 우리 자녀세대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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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타라
조정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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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타라, 타라, 타라, 타라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덤덤하게 "부도났어"라고 그녀의 남편이 말했을 때, 얼굴에 대고 내뱉어진 담배 연기처럼 끈적한 공기가 내 얼굴을 향해 훅- 하고 숨을 쉬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 좀 더워도, 지금 좀 끈적거려도, 이 밤 잠을 자지 못해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빠르게 읽었다. 소설이 아닌데 뒷 이야기가 궁금했다.

불편한 손님이 내 집, 내 방 안에 들어와 앉아있을 때처럼, 어서 그 손님이 가주기를 바라는데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안절부절하며 책을 읽어도 그녀의 불행은 좀처럼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악스럽지도 못한 이 여인이 백화점으로 나가 청소부 일을 시작하고, 밤청소를 하며 그렇게 석달을 살고, 강남의 고급 보석 매장에 매니저로 일한지 14개월째가 되어도 그녀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그녀의 신분도 상승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오히려 현실감을 잃어간다. 몽유병자처럼 꿈 속 세상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듯 말이다.

습관처럼 올라탄 버스 안에서 문득 혼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봤다면, 무거운 몸을 이기지 못해 깜빡 졸다가 낯선 거리에서 깨어나 봤다면, 춥고 어둡고 고통스러운 거리에서 꾹꾹 눌러온 서러움을 이기지 못해 닥치는 대로 그악을 떨고, 신을 향해 악다구니를 써본 적이 있다면, 가로등 빛에 어스름 형체가 잡히는 눈송이가 "바람에 자기를 전부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옹골차게 견디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타라, 타라, 타라, 타라......"라는 음성을 듣고 있는 이 여인을 모른 척 홀로 두고 그렇게 돌아서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글을 이성으로 분해하지 못할 것이다. 

완전무결한 플로리스등급의 다이아몬드를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 그녀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 삶의 현실감을 되찾아간다. 그러나 앞으로 성급하게 나아가지 아니하고,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삶의 뿌리에서부터 아직 정답을 알 수 없는 삶의 현재로 훑어 올라온다.

조정은의 수필 <그것을 타라>를 읽고 나는 그녀를 흉내내고 싶어졌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내 안에 있었으나 표현할 줄 몰라서 잃어버린 그 생각의 조각을 그녀에게서 찾았다. 내 마음이 여기에 있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어제의 일을 떠올리면서 칠칠찮은 자신이 누추해져 속을 끓이느라 목적지를 놓치고 허둥대다가 지각을 한 날, 또 그런 자신이 마뜩찮아 하루 종일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나는 왜 이럴까만 되뇌었다.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 자신을 다잡느라고 하루를 허비했다. 정작 소중한 순간은 몽땅 놓치는 줄도 모르고, 누가 왔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곤 했다. 어디 그런 날이 하루 이틀인가. 맨 날 반복되는 일상이 그 지경이다. 어느 한 순간 있는 그대로 다가오는 현상을 아무 조건 없이, 내 얄팍한 경험의 해석 없이, 그냥 받아들여 본 적이 있었던가. 언제 한 번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만난 적이 있던가"(84-85). 

하루 종일 시달리면서도 덜미를 잡지 못했던 생각의 꼬리,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도움을 받고 싶었던 문제의 실체, 내 안에 고여 있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리 저리 출렁거리는 감정의 파도, 그것을 대신하여 담아내준 그녀를 통해 나는 오랫만에 조금 숨을 쉬었다. 일기를 쓰려다 의미 없는 낙서만 하고, 편지를 쓰려다 하얀 백지처럼 머릿속이 하얘질 때,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녀가 걸어가는 그 생각의 길을 따라 걸으며, 나도 그녀의 말을 흉내내어 마음을 표현해내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녀처럼 내 마음을 열고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고 싶어 옹알옹알 옹알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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