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 구약설교노트 세계기독교고전 62
찰스 H. 스펄전 지음, 김귀탁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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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설교자들은 목발에 의지해서 설교를 합니다. 그들은 남이 준비한 설교를 거의 읽어 내려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절름발이 작업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은 지팡이가 필요하고, 필요할 때 가끔 의지하곤 합니다. … 이제 나는 이 지팡이를 자신의 설교 여행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합니다(5).

목회자에게 설교 준비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만, 설교 '준비'만큼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설교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설교를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목회 일선에서 이러한 사실을 경험하고 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양질의 꼴을 양들에게 먹이기 위해 서울에서 큰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의 설교집을 구입하여 그 목사님이 설교하신 그대로 열심히 말씀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양질의 꼴'을 먹인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나타나 "이 닭털도 뽑지 않고 닭 잡아 먹는 놈아"라고 꾸짖으시더랍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그 일화가 기억나는 건, 설교를 준비하며 양심의 찔림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구약설교노트>는 이러한 설교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책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 정리한 노트가 아니라, 스펄전 목사님이 직접 일선의 설교자들을 돕기 위해 이 설교 노트를 준비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괴로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스펄전 목사님은 이 책은 "설교자들의 게으름을 조장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설교자들의 "지친 열심을 자극"하기 위한 설교노트라고 강조합니다.

이런 까닭에, <스펄전 구약설교노트>, <스펄전 신약설교노트> 모두 완성형 설교문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의 바른 이해를 돕고, 더 깊은 묵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많은 인용구들을 모아놓기도 했고, 주제에 맞는 예화를 제시한 본문도 있으며, 해석과 생각을 동시에 정리할 수 있도록 메시지들을 나열해 놓았습니다. 성경의 목록을 따라 백과사전식으로 정리되어 있어 본문에 따라 설교의 내용(묵상의 포인트)을 참조할 수도 있고, 제목을 보며 설교 주제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스펄전 구약설교노트>, <스펄전 신약설교노트>로 구성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노트는 '분주한 종'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펄전 목사님이 계속해서 경계하는 한 가지는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메시지를 설교하는 행위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그것이 "상대방의 예언을 훔치는 것만큼이나 악한 일"(7)이라고 경고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경고를 기억하며 이 설교노트를 활용한다면, 이 설교노트를 준비한 스펄전 목사님의 기도대로 말씀을 전하는 기쁨, 설교자에게 임하는 성령님의 특별한 도우심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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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 현장에서 분투하는 청년사역자를 위한
양형주 지음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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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있는 청년사역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청년사역을 하며 세대가 다르다는 말을 뼛 속 깊이 체험하는 중입니다. 2년 전, 교회를 개척하고 청년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설레임이 가득했습니다. '청년들의 아픔과 고민에 귀 기울여주고 그들의 현실에 깊이 공감해주는 친구가 되리라. 안전이 아니라 부르심을 따라가는 청년들을 세워가리라.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불타오르는 공동체를 경험하리라.' 그런데 현장에서 느끼는 깊은 좌절은, 내가 과연 전문성이 있는 청년사역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었습니다. 나의 능력치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세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양형주 목사님의 <청년사역>이 눈에 띄었던 건, "청년이 없는 청년부를 세워간 현장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청년이 한 명도 없는 교회에서 시작해 2천 명에 이르는 청년 공동체를 세웠다는 경이적인(?) 부흥의 스토리도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청년이 없는 청년부를 위한 청년사역 지침서(?)는 존재하지도 않"(13)은 현실을 어떻게 돌파해냈는지 그 동력이 궁금했습니다.




청년사역은 이론 전문가가 아니라 현장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249).

<청년사역>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유익이 있다면, 공동체를 어려워하는 청년들을 공동체로 세워가는 비결을 배운 것입니다. 청년들의 필요에 집중하고 그것을 돕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청년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파악하는 일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변방에서 출발한 청년사역은 청년들의 고민을 공감하고 긍정하는 데서 시작했다. … 어떻게 하면 청년들의 고민을 긍정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먼저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 보라"(122-123).

이밖에도 청년들의 예배는 어떻게 기획해야 하는지, 리더는 어떻게 세워가야 하는지, 청년 세대의 선교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새가족 전도와 양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청년들의 정체성에 어떤 도전을 주어야 하는지, 무엇보다 청년사역자로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청년사역>은 전문성과 함께 청년사역 현장에 대한 이해, 그리고 청년사역자로서 열정을 더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청년 사역의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30명 미만의 소규모 공동체, 30-100명의 중규모 공동체, 100-300명의 대규모 공동체, 500-2,000명 초대형 공동체까지 청년 공동체의 규모에 따라 현장에서 적용하고 검토하고 활용해볼 수 있는 사역의 패턴을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있습니다.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준 한마디는 "어떤 순간에도 설렘을 잃지 말고, 청년사역의 현장에서 우직하게 버텨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사역으로의 부르심을 확인하며, 더 깊은 고민 속에 다시 가슴을 뛰게 하는 책입니다. 청년사역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청년사역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청년사역을 생각하면 설레고 흥분되는가? 평생 후회 없이 하고 싶은 사역이고, 이 길을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가? 설렘을 구하라. 그렇다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나라의 설렘이 주변에 매력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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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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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 것도 없지만 잘하는 것도 딱히 없는,

잘생기지 않았는데 개성 있게 생겼다기엔 한 끗이 부족한,

못돼 처먹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절 착하다고 할 수는 없는,

아주 애매한 선상에 위치한 인간,

이른바 과도기적 인간,

나쁘게 말하면 그냥 좀 찌질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 박정민, 쓸 만한 인간 中에서

배우 박정민은, 순전히 글 때문에, 순전히 글만으로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몇 안 되는 사람,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저'에게 '박정민'은 연기 잘하는 '국민 배우'이기도 하지만,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는 '인기 작가'이기도 하지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와 부쩍 친해진 느낌이 들고, 마치 우리끼리만 아는 그 무엇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친밀감은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모두 찾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처음 영화 <동주>를 보고 반했고, 그의 책 <쓸 만한 인간>을 읽고 또 반해서, 그후 그가 나왔거나, 나온 작품은 아마도, 거의, 모두, 챙겨보았을 것입니다. 섬세하고 반듯하고 개구지고 유머러스한 성품이 글의 결에 잘 나타나 있듯이, 그의 연기의 결에도 잘 나타나, 나는 영화 <변산>을 보고 그에게 또 한 번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만난 <쓸 만한 인간>을 또 읽고 또 반하고 말았네요. 그때도 재미 있었는데, 다시 읽어도 무척 재밌습니다. 책 읽을 내내 웃고 있었는지 다 읽고 나니 얼굴 근육이 아프더라고요. 그런데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순박한 글 안에 담긴 어떤 진심이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평범하지만 소중한 우리네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찌질하다의 반대말이 뭔가.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 행복하시라.

- 박정민, 쓸 만한 인간 中에서



별 수 없었다.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 박정민, 쓸 만한 인간 中에서

<쓸 만한 인간>은 웃겨서 읽기 힘든 책입니다. 웃느라 얼굴 근육이 아프거든요. 공부도 잘했고, 연기도 하고, 글도 쓰고, 피아노도 치고, 랩도 하고, 이번 책에서는 그림까지 그린 이 '쓸 만한 인간, 박정민'이 가진 가장 위협적인 '스킬'은 '연습하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평범한 찌질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배우 박정민에게 끈끈한 동지애를 품게 해주며, 마치 내 일이든 듯 그의 일을 열렬히, 어느 분야에서든 승승장구하기를 끊임없이 응원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찌질하게 '연습'이라는 땀을 흘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의 응원 덕분에 나도 구차하지만 구차하지 않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쓸만한 인간이라는 걸, 이 책이 가르쳐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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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바닥
앤디 앤드루스 지음, 김은경 옮김 / 홍익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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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찾는 '기회'라는 보물창고는 멀리 있지 않다.

숨을 한번 크게 쉬고,

현재 발을 딛고 서 있는 곳 아래로 내려다보라.

'지금'이라는 시간과 '현재'라는 공간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바로 거기가 당신이 도전을 시작할 '수영장의 바닥'이다(115).

성경에 '다말'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오른 인물이지요. 남자들의 이름만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견고한 벽의 한 귀퉁이를 뚫어내고 여인의 이름이 족보에 오른다는 건, 성경시대에나 지금이나 사건 중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 이유가 기괴합니다. 여인의 행동은 영웅적이라기보다는 풍기문란에 더 가까워보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남편이 죽고, 두 번째 남편마저 잃은 이 불운한 여인은 남편을 둘이나 잡아먹은 불길한 여인으로 낙인이 찍혀 자신의 불행을 삼키며 조용히 늙어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법대로 하면 세 번째 결혼을 가능했으나, 시아버지는 이 불길한 여인을 내치려는 속셈으로 거짓된 약속으로 근신을 명했고, 여인은 기약 없는 강제 자숙모드에 들어갔습니다. 이 여인의 인생은 이미 끝장난 것이나 다름 없었고, 다말이라는 이름은 잊혀져 갈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 시아버지를 상대로 엄청난 음모를 꾸미지요. 창녀로 변장을 해 시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낸 뒤, 임신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어이없을 만큼 무모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남편 없는 여인이, 그것도 자숙모드 중인 여인이 임신을 한다는 것은 명예가 실추되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임신이 발각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끌어내 불에 태워버리려 했습니다. 여인은 자기 목숨을 걸고 이 일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 여인의 행동을 그리 높이 평가하여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르는 영예를 안겨주었을까요? 성경은 아무도 관심이 없고,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았던 자신의 권리를 용감하게 주장하며 모험한 강행한 이 여인의 행동이 "옳다"고 인정합니다. 자신의 박복한 운명을 탓하며 덧없이 늙어가는 대신,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돌파한 여인의 도전에 빛나는 화관을 씌워준 것입니다.

<수영장의 바닥>은 '다말' 이야기처럼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뚫어내는 돌파력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수영장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힘이 아니라, 수영장 바닥으로 내려갈 용기를 일깨워준다는 것이 독특합니다. 패배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외치는 책들은 많습니다. 익숙한 방식에 구속되어 다른 기술을 찾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틀을 깨라고 외치는 책들도 많습니다. <수영장의 바닥>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다르게 들려왔습니다. 원칙이나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외부세계가 나를 가두는 '틀'을 깨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한 한계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다말'이라는 성경 인물을 떠올린 건, 이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다말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인습이나 이미 일어난 불행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이고 규정짓고 있는 다말 자신의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이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도전과 모험 안에 얼마나 위험하고 과감한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수영장의 바닥>을 대충 읽으면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자기계발서들과 비슷하게 읽힙니다. 표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전혀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단순한 변화이며, 그것은 작은 생각 하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수영장의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힘이 아니라, 수영장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도전과 모험을 말하고 있는가를 가만히 꼽씹어보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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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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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작가수첩

나는 나를 치유해야 한다.

당신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48).

몰래 학대 당하는 아이들이 왜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 비밀은 공포에 가까웠는데,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정말로 내 말을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가 나에게 정말로 잘해는 주는 것처럼 보인다면, 거짓말쟁이나 모함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상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도 대응책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어찌나 어슬프고 미성숙했는지, 나는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 괜한 일에 심하게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 '이응준의 작가수첩', 이 책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글을 썼어야 했던 것이라고. 내 상처로 글을 썼다면, 상처를 상처로 되갚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았을 텐데라고 말이다. 작가는 "늘 괴로운 사람이 늘 새로운 글을 쓸 것이다"(45)라고 예언적인 말을 남겼는데, 어쩌면 그 말 뜻을 할 것도 같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작가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고통, 괴로움, 상처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의 희망을 나의 고통 위에 기록"한 것이라 하였으므로(13).

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늘 '직업윤리'라고 답하곤 하였다(112).

그의 책 <국가의 사생활>, <밤의 첼로>를 읽었었다. 광적이면서도 격렬한 불꽃 같았던 그의 문체를 쉽사리 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응준'이라는 이름이 더 강렬하게 각인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이응준'이라는 문인의 이름을 잊지 못하게 된 것은, 신경숙 작가의 표절을 고발하며 한국문단의 타락을 한탄하고 괴로워했던 그의 신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왜 "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늘 '직업윤리'라고 대답"하는지, 그는 왜 "직업윤리를 지키지 않거나 그것이 뭔지도 모르는 자는, 대체로 쓰레기와 악마 사이에 존재한다"(112-113)고 호소하는지, '직업윤리'라는 네 단어에 압축된 의미를 어쩐지 알 것만 같다. 나는 늘 잘살고 싶었는데, 잘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단어에서 답을 찾은 것만 같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실 단순했던 거다.

인간은 이별의 동물이고,

나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다(38)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어내려 했던가?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란 질문에 단순하지만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답을 얻고자 했던가.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던가? 시인이자 소설가로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았나? 읽어볼테면 읽어보라고 쿨하게 던져준 일기장을 열어 보았나?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작가 '이응준'이라는 사람을 읽게 한다. 글은 고통에서 나오고, 고통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의 삶을 알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즐거운 것, 즐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친 듯이 경쟁하는 사람들 속에서, 무서운 것, 슬픈 것, 끔찍한 것, 어두운 것, 무거운 것, 죽어가는 것, 이별하는 것, 견디는 것, 부끄러운 것을 말하니, 이게 바로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작가들이 치르는 그 고통스럽고 고요한 전쟁이 인간(사회)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더' 믿게 되었다. 그렇다. 인생을 다 던져 치열하게 생각하는 글과 책은 무서운 것이다.

글과 책

책이 얼마나 무서운 물건인지 모르는 사람은

혁명 같은 것을 논할 자격이 없다.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사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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