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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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작가수첩

나는 나를 치유해야 한다.

당신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48).

몰래 학대 당하는 아이들이 왜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 비밀은 공포에 가까웠는데,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정말로 내 말을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가 나에게 정말로 잘해는 주는 것처럼 보인다면, 거짓말쟁이나 모함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상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도 대응책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어찌나 어슬프고 미성숙했는지, 나는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 괜한 일에 심하게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 '이응준의 작가수첩', 이 책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글을 썼어야 했던 것이라고. 내 상처로 글을 썼다면, 상처를 상처로 되갚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았을 텐데라고 말이다. 작가는 "늘 괴로운 사람이 늘 새로운 글을 쓸 것이다"(45)라고 예언적인 말을 남겼는데, 어쩌면 그 말 뜻을 할 것도 같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작가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고통, 괴로움, 상처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의 희망을 나의 고통 위에 기록"한 것이라 하였으므로(13).

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늘 '직업윤리'라고 답하곤 하였다(112).

그의 책 <국가의 사생활>, <밤의 첼로>를 읽었었다. 광적이면서도 격렬한 불꽃 같았던 그의 문체를 쉽사리 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응준'이라는 이름이 더 강렬하게 각인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이응준'이라는 문인의 이름을 잊지 못하게 된 것은, 신경숙 작가의 표절을 고발하며 한국문단의 타락을 한탄하고 괴로워했던 그의 신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왜 "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늘 '직업윤리'라고 대답"하는지, 그는 왜 "직업윤리를 지키지 않거나 그것이 뭔지도 모르는 자는, 대체로 쓰레기와 악마 사이에 존재한다"(112-113)고 호소하는지, '직업윤리'라는 네 단어에 압축된 의미를 어쩐지 알 것만 같다. 나는 늘 잘살고 싶었는데, 잘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단어에서 답을 찾은 것만 같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실 단순했던 거다.

인간은 이별의 동물이고,

나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다(38)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어내려 했던가?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란 질문에 단순하지만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답을 얻고자 했던가.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던가? 시인이자 소설가로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았나? 읽어볼테면 읽어보라고 쿨하게 던져준 일기장을 열어 보았나?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작가 '이응준'이라는 사람을 읽게 한다. 글은 고통에서 나오고, 고통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의 삶을 알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즐거운 것, 즐기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친 듯이 경쟁하는 사람들 속에서, 무서운 것, 슬픈 것, 끔찍한 것, 어두운 것, 무거운 것, 죽어가는 것, 이별하는 것, 견디는 것, 부끄러운 것을 말하니, 이게 바로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작가들이 치르는 그 고통스럽고 고요한 전쟁이 인간(사회)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더' 믿게 되었다. 그렇다. 인생을 다 던져 치열하게 생각하는 글과 책은 무서운 것이다.

글과 책

책이 얼마나 무서운 물건인지 모르는 사람은

혁명 같은 것을 논할 자격이 없다.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사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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