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바닥
앤디 앤드루스 지음, 김은경 옮김 / 홍익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이 찾는 '기회'라는 보물창고는 멀리 있지 않다.

숨을 한번 크게 쉬고,

현재 발을 딛고 서 있는 곳 아래로 내려다보라.

'지금'이라는 시간과 '현재'라는 공간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바로 거기가 당신이 도전을 시작할 '수영장의 바닥'이다(115).

성경에 '다말'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오른 인물이지요. 남자들의 이름만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견고한 벽의 한 귀퉁이를 뚫어내고 여인의 이름이 족보에 오른다는 건, 성경시대에나 지금이나 사건 중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 이유가 기괴합니다. 여인의 행동은 영웅적이라기보다는 풍기문란에 더 가까워보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남편이 죽고, 두 번째 남편마저 잃은 이 불운한 여인은 남편을 둘이나 잡아먹은 불길한 여인으로 낙인이 찍혀 자신의 불행을 삼키며 조용히 늙어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법대로 하면 세 번째 결혼을 가능했으나, 시아버지는 이 불길한 여인을 내치려는 속셈으로 거짓된 약속으로 근신을 명했고, 여인은 기약 없는 강제 자숙모드에 들어갔습니다. 이 여인의 인생은 이미 끝장난 것이나 다름 없었고, 다말이라는 이름은 잊혀져 갈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 시아버지를 상대로 엄청난 음모를 꾸미지요. 창녀로 변장을 해 시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낸 뒤, 임신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어이없을 만큼 무모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남편 없는 여인이, 그것도 자숙모드 중인 여인이 임신을 한다는 것은 명예가 실추되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임신이 발각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끌어내 불에 태워버리려 했습니다. 여인은 자기 목숨을 걸고 이 일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 여인의 행동을 그리 높이 평가하여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르는 영예를 안겨주었을까요? 성경은 아무도 관심이 없고,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았던 자신의 권리를 용감하게 주장하며 모험한 강행한 이 여인의 행동이 "옳다"고 인정합니다. 자신의 박복한 운명을 탓하며 덧없이 늙어가는 대신,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돌파한 여인의 도전에 빛나는 화관을 씌워준 것입니다.

<수영장의 바닥>은 '다말' 이야기처럼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뚫어내는 돌파력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수영장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힘이 아니라, 수영장 바닥으로 내려갈 용기를 일깨워준다는 것이 독특합니다. 패배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외치는 책들은 많습니다. 익숙한 방식에 구속되어 다른 기술을 찾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틀을 깨라고 외치는 책들도 많습니다. <수영장의 바닥>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다르게 들려왔습니다. 원칙이나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외부세계가 나를 가두는 '틀'을 깨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한 한계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다말'이라는 성경 인물을 떠올린 건, 이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다말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인습이나 이미 일어난 불행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이고 규정짓고 있는 다말 자신의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이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도전과 모험 안에 얼마나 위험하고 과감한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수영장의 바닥>을 대충 읽으면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자기계발서들과 비슷하게 읽힙니다. 표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전혀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단순한 변화이며, 그것은 작은 생각 하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수영장의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힘이 아니라, 수영장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도전과 모험을 말하고 있는가를 가만히 꼽씹어보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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