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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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공중에 걸쳐 있는 돌’이라는 의미의 ’스톤헨지(stonehenge)’는 선사 시대의 거석기념물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유적이라고 한다. 수천 년 세월에 더러는 금 가고, 닳고, 쓰러지고, 떠러는 사라지기도 했으나 불완전하게 남아 있는 모습만으로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고(두산산백과사전 제공). 세계 최대의 환상열석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어쩌자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런 유적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까. 여행 서적을 통해서라도 한 번쯤은 접해봤을 법도 한데, 아마도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 변명 아닌 변명이라도 하고 싶다.

 

<스톤헨지>는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유적"이라는 스톤헨지의 비밀을 순전히 작가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대서사시이다. 500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지만, ’오늘날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이라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극적이고 감동적인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선사한다. 대서사시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모든 것은 ’이방인이 온 해’에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대폭풍이 있던 그날 한 이방인이 라사린의 땅에 들어왔고, 옛 신전에서 ’슬라올의 금’을 남긴 채 렌가의 손에 죽었다. 라사린 부족들은 태양의 신 슬라올이 금을 자신들에게 보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복 형 렌가가 이방인을 죽이고 그 금을 차지하려고 했던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반은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지가 마이, 아린, 슬라올, 라하나를 숭배하던 시절, 신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던 시절, 삶은 얼마나 소박했던가. 그러다 금이 찾아왔고, 금과 함께 세상을 바꾸겠다는 카마반의 야심도 태어났다"(559).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그 금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언제나 희생을 요구하는 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라사린의 족장 헨갈은 전쟁을 싫어했다. "삶이란 곡식을 심는 것이지 칼로 찌르는 것이 아니다"(38)라고 입버릇 처럼 말하곤 했다. 더구나 같은 언어로 말하고 같은 신을 섬기는 사촌지간인 이웃 부족들과 싸우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라사린의 평화는 언제나 위협 받았다. 서로 약탈을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헨갈은 영웅심을 경계하라고 했지만, 라사린에는 영웅이 필요했다. "영웅이 없으면 부족민들에게는 고난만이 있을 테니까"(86). 

 

’스톤헨지’라는 거대한 역사 유물은 이러한 바탕 위에 건설된다. 신이 지배하고, 영웅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소박한 삶이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던 라사린 부족에 슬라올이 금이 찾아온 뒤로 모든 것이 변했다. 평화는 깨지고, 살인과 약탈과 배신과 음모와 모욕과 복수가 가득한 세상이 된다. 헨갈의 아들 렌가는 전쟁으로 이웃 부족들을 점령하여 위대한 라사린을 세우길 원하는 전쟁 지도자였다. 그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동생 사반을 노예로 만들고 족장 자리에 오른다. 그의 동생 카마반은 불구로 태어난 ’비틀린 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버려졌지만, 곧 강력한 마법사가 된다. 카마반은 위대한 신전을 건설하여 세상을 바로세우려는 꿈을 꾼다. 전사를 꿈꾸었던 막내 사반은 형제들 중 가장 야망이 작았다. 그러나 사반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카마반의 이상에 감화되어 ’파괴하는 자 대신 건설하는 자’가 되었다. <스톤헨지>의 역자는 "렌가는 양육강식의 원시적 권력을, 카마반은 종교의 힘을, 사반은 합리적인 사고와 과학을 대표한다"(582)고 해석한다.

 

렌가가 꿈꾸었던 세상, 카마반이 꿈꾸었던 세상, 사반이 꿈꾸었던 세상은 모두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신전을 원했다. ’이 땅의 어떤 신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전, 신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신전, 죽은 자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신전. 죽은 자들을 슬라올에게 되돌릴 수 있는 신전.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신전’을 꿈꾸었다. 그러나 모두가 신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결국 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위한 일이었다. 살해와 약탈과 전쟁으로 세상 정복을 꿈꾸었던 렌가는 신전을 이용하려 했고, 겨울과 질병을 없애고 우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카마반은 광적으로 위대한 신전에 집착했다. 그 스스로 신으로 생각했던 카마반 역시 결국 신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신전을 짓고자 했던 것이다.

 

 

"아무도 렌가의 전투는 기억하지 않겠지만, 카살로의 패배조차 잊겠지만, 사람들은 내 신전을 언제나 바라보게 될 거야"(565).

 

전적으로 신과 관계된 일이었지만, 전적으로 전혀 신과 관계가 없었던 신전, 스톤헨지! 드디어 스톤헨지가 완성되었지만 삶의 고난은 사라지지 않았다. 겨울도 질병도 우는 아이도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낮은 바깥쪽 제방 옆에 서서 장대하고, 깨끗하고, 평온하고, 수수께끼로 가득 찬 신전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사반을 칭송했다"(566). 그러나 사반은 "지구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신전을 건설했고, 자신이 위대한 신전을 건설했다는 것을 알고,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인간이 그곳에서 신을 섬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돌아보지 않았다"(579). 라사린의 새로운 족장으로서 물고기 덫을 수리해야 하고, 땅을 갈아엎어야 하고, 씨앗을 뿌려야 하고, 분쟁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반의 예언대로, 모두 잊혀지고 ’스톤헨지’만 남았다. 오늘 우리에게 남아 있는 스톤헨지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톤헨지는 우리에게 수수께끼로 남았고, 우리는 여전히 땅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며, 분쟁을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다. 장구한 역사(문화)는 위대한 신전, 강력한 영웅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가는 우리 삶에는 "삶이란 곡식을 심는 것이지 칼로 찌르는 것이 아니다"(38)라고 믿는 평화를 사랑하는 지도자 한 사람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나약해보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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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한국의 명품문화
하중호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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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문화는 계승하는 자의 것이다."

 
요즘 뉴스를 통해 비춰지는 대한민국의 자아상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무슨 유행처럼 번지고, 20대의 꽃다운 베트남 신부가 결혼한지 7일만에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되었다는 보도가 국민을 경악케 하고 있습니다. 생활은 불안하고,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는 투명하지 못하고, 교육은 대안이 없고, 사회가 온통 진흙탕 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때에 숨통을 좀 트여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삼양미디어에서 펴낸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사리즈 중 하나인 <한국의 명품문화>입니다. <한국의 명품문화>는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을 찾아주고, 높여주는 책입니다. 우리에게도 세계에 뒤지지 않은 명품문화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대한민국의 축구가 원정 경기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한 것만큼이나, 시원하고 유쾌했습니다.

저자이신 하중호 교수님은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의 명품문화>는 한 편 한 편이 칼럼처럼 읽힙니다. 총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명품문화(유산)', '인성을 키워주는 한국의 명품예절', '품격을 높이는 인사와 호칭 문화', ''자랑스런 한국의 세시풍속', '자랑스러런 명품 효, 제사문화' 뿐만 아니라, '고쳐야 할 의식과 문화들'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재밌었던 것은 한류, 붉은악마, 김치, ondol(온돌), 한글과 같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우수한 우리 문화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비판과 반성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빨리빨리 문화'마저 자랑스런 한국인의 명품문화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빨리빨리 문화'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해줄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45-47). 빨리빨리 문화는 첨단시대에 오히려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인터넷 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빨리빨리 문화의 덕이며, 가전제품 등 수출품도 A/S가 빨라 유럽 등 세계시장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속도의 경제학, 스피드 경영의 측면에서 서구 기업들이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생각했던 '빨리빨리 문화'도 이렇게 적용을 하니 국제 사회의 강력한 경쟁력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생각의 전환'이라는 것이 놀라운 마법처럼 느끼지는 순간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속도 중시의 문화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무형 자산이다. 우리는 고유문화에서 경쟁 우위의 자산을 발굴하고, 우리의 DNA 속에 내재돼 있는 여러 장점들을 제대로 살려내야 할 때이다"(46-47).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것을 놓고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명품 한국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되, 우리에게 있는 좋은 것을 좋게 볼 줄 아는 시각이 '먼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 것에 대한 칭찬 일색은 아닙니다. 6장에서 다루고 있는 '고쳐야 할 의식과 문화들'말고도, 한 예로 '에티켓으로 빛난 루브르박물관'(71-73) 편을 보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다시 되찾아야 할, 우리 것이 무엇인지 비판적인 시각으로 조명해줍니다.

<한국의 명품문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우리의 것 중에 가장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의 밸런타인데이, 경칩'(169-171)입니다. 연인에게 사랑을 전하는 서양의 발렌타이처럼 우리나라에도 은밀하게나마 연인의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만물이 깨어난다는 경칩이면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행을 은밀히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수나무와 암나무가 따로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랑이 오가서 열매를 맺게 해주므로 순결한 사랑의 상징이며,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는 것은 천 년을 이어가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였을 것이다"(171). 참으로 멋스럽고 낭만적인 풍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콤하지만 쉽게 녹아내리는 초콜릿 사랑이 아니라, 조상들의 슬기가 담긴 순결하고 단단한 은행나무 사랑의 정신을 다시 살려내고 싶습니다.

저자는 '한국분이냐 한국놈이냐'(247-249)는 글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과제를 던집니다. "이제 후일 세계가 우리를 한국분으로 부를 것인지, 그늘진 한국놈으로 부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249). 이 책을 읽으며 '그래,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 책이 우리에게 건강한 자아상을 그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못난 모습만 너무 떠뜰어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태교하는 엄마들처럼,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말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꿈꿔서, 건강한 대한민국의 내일을 출산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앞서 말한 '빨리빨리 문화'나 '신사임당에서 비롯된 현모양처' 등 비판이 따라붙을 수 저자의 독특한 해석도 들어 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명품문화>는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은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 재밌고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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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탄생 - 예술가의 창조력을 일깨운 뮤즈 이야기
유경희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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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술가의 창조력을 일깨운 뮤즈 이야기,

잔인했던 것은 그들의 삶이었을까, 예술성이었을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습관처럼 차와 음악을 찾게 되는 것처럼, 내 인생의 사랑이라고 하면 당연하다는 듯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아이는 사람이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우린 곧 친한 친구가 되었지만, 그 아이를 향한 특별한 감정을 나는 말하지 못했다. 고백하고 나면 우정이 깨질까봐, 어색해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이를 만나고부터 내게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다. 밤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자꾸 무엇인가를 끄적이고 싶은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부치지 않을 편지를 밤새 쓰기도 했고, 한낮에 몇 번이나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그 교실에서의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나는 60명이 넘는 반 친구 전체에게 편지를 써서 나눠주었다. 깜짝 놀라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꺼는? 내꺼는?"이라고 외치는 그 아이. 편지를 건네며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너에게 편지를 주고 싶어서 다른 친구들의 것까지 다 쓴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좀 우습기도 한데, 왜 그때는 그렇게 "사랑해"라는 한마디가 미치도록 하고 싶었을까.

<예술가의 탄생>을 읽으며 그때의 일이 떠올랐던 것은, "세기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매혹적인 뮤즈는 무엇일까?"를 묻는 이 책의 테제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는 그들만의 특별한 '뮤즈'가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 책은 탐구를 시작한다. (예술가의 예술적 행위에 견주기에는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무엇으로든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감정의 파도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내 심장에 몰아닥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어떤 충동적인 힘이 나로 하여금 반 친구 모두에게 편지를 쓰게 만들었던 것처럼, <예술가의 탄생>은 세기의 예술가들을 추동했던 매혹적인 '뮤즈'의 실체를 포착하기 위해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입체적으로 읽어냈다.

"나는 이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발상과 영감의 근원, 상상력의 원천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밝혀내고 싶었다"(8).

저자는 이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그들의 예술창작의 근원과 그 메커니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그들로 하여금 창조하게 만드는 충동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그들은 왜 창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그들의 상상력과 영감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들의 유년시절, 부모와의 관계는 어땠을까?
그들은 누구와(어떤 것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었던 것일까?

"나는 예술가들의 창작 욕망에 불을 붙이고 고무하는, 즉 상상력과 영감을 고취하는 존재는 그 무엇이든 뮤즈라는 이름을 붙였다"(8). (*뮤즈(Muse)는 제우스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와 동침하여 낳은 아홉 자매로, 올림포스 신전에서 아폴론을 도와 음악을 연주하는 등 예술을 담당하게 된 여신들을 일컫는다)

저자는 이 책에 담은 13명의 예술가가 저자의 삶과 예술의 창조적 근원, 즉 저자 자신의 뮤즈이자 멘토라고 고백한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이름의 뮤즈'로 묶인 요코 오노, 구스타프 클림트, 조지아 오키프, 갈라, '아픔이라는 이름의 뮤즈'로 묶인 앙이 드 툴루즈-로트레크, 프리다 칼로,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잭슨 폴록, '꿈이라는 이름의 뮤즈'로 묶인 폴 고갱,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폴 세잔 등 이 책에 등장하는 13인의 예술가는 저자 마음으로 '고른' 예술가라는 뜻이다.

<예술가의 탄생>은 한마디로 격정적인 삶의 이야기이다. 예술가의 뮤즈 이야기는 곧 예술가의 삶의 이야기였다. <예술가의 탄생>을 읽으니, 예술가의 삶도 그 근원은 우리의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의 영감이 부럽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예술적 광기가 그들의 삶을 더 도전적이고, 더 격정적이고, 더 파괴적이고, 더 병적인 삶으로 몰아갔는지 모른다. 잔인했던 것은 그들의 삶이었을까, 예술이었을까.

존재했으나 사용되지는 않는 사어처럼, 잘 알려진 것이든 알려지지 않은 것이든 작품을 남기고 사라진 예술가의 삶은 이미 굳어진 화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탄생>이 내게 특별했던 이유는 그것을 읽어내는 저자의 거친(!) 생철학 때문이었다. 예술과 삶의 일치를 꿈꾸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술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이질적인, 그야말로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타자 혹은 마이너리티로서의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9).

그리고 현대의 예술을 이렇게 비판한다. "예술가를 보려면 그 작품을 들여다보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현대야말로, 인간이 배제된 예술이 잘 포장되어 전시장과 시장에 나오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더욱 더 예술가다운 예술가가 절실히 그리운 시대이다"(5).

<예술가의 탄생>이 선택한 13인 예술가의 이야기를 읽으니, 그들의 삶은 마치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 존재를 불태워야지만 폭발력을 갖게 되는 예술의 잔인성, 그 잔인한 불꽃에 모든 것을 던져 예술가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이야말로 신에게 선택받은 선구자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예술작품보다 예술가의 삶에 더 관심이 많은 나와 같은 독자라면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유명한 예술작품을 읽어낼 수 있는 예술적 지식과 통찰력까지 덤으로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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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
짐 갈로우 지음, 오세민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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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이다."


짐 갈로우 목사님의 책은 처음이다. 솔직히 이름도 처음 들었다. 그러나 <언약>을 읽고 나니, 이분의 저서를 찾아 읽고 싶어졌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번역본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은데, 앞으로도 이분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기를 바래본다.

한 세미나에서 '언약 맺는 의식의 단계'를 듣고 "마치 내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는 짐 갈로우 목사님은 이후 '언약'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언약'의 전문가, '언약'의 대가라고 할만 하다. 그러나 그의 책 <언약>은 신학교에서 배우는 '언약 신학'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언약>은 잘 정돈된 신학 이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영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기회가 된다면, 교회 교육 과정 중에 '언약'을 주제로 한 성경연구반을 개설하여 많은 성도와 이 책을 함께 읽고 함께 나누고 싶다. <언약>에 담긴 깊은 영적 진리와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흥분이 지금 내 안에 있다. 

 
 




짐 갈로우 목사님은 언약이 삶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단언한다! 또한 언약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라고 선언한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약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언약이 그처럼 중요할까? '언약'이라고 불리는 든든한 근거를 기초로 구원, 거룩, 치유, 예배, 구속, 성화 등에 대해 알아나갔다는 짐 갈로우 목사님은 "단연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당신은 '언약 맺는 의식'의 단계들을 서서히 살펴보고 인류 역사 속에서 그것의 역할과 상황을 이해하면서, 전에는 모호했던 많은 성경 구절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언약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었다"(14).

이 책은 성경의 일곱 언약(에덴 언약,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 중에서 피의 언약으로 불리는 아브라함 언약에 특히 주목한다(20). 고대 중동 지방에서 흔하게 행해졌던 '언약 맺는 단계' 10가지를 통해 아브라함 언약에 숨은 영적 교훈을 깨우쳐준다. 연약 맺는 10가지 단계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단계, 의복 교환
두 번째 단계, 벨트의 교환
세 번째 단계, 무기의 교환
네 번째 단계, 산 제물
다섯 번째 단계, 죽음의 걸음
여섯 번째 단계, 몸의 표시
일곱 번째 단계, 축복과 저주의 선언
여덟 번째 단계, 언약 음식
아홉 번째 단계, 이름의 교환
열 번째 단계, 장자의 교환

이중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의식은 다섯 번째 단계인 '죽음의 걸음'이다. 희생 동물을 반으로 쪼개어 맞대어 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며 언약을 맺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아홉 가지 단계나 더 있다는 것도 새롭고, 그것이 새 언약과 관계되고 있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아홉 번째 단계인 '이름의 교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꿔주실 때에 그들의 이름 안에 하나님의 숨 또는 임재를 뜻하는(35) 'H'를 넣어주셨다"는 해석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33-36). 처음으로 접하는 놀라운 해석이다!

이 10가지 언약 의식은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영적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0가지 언약의 단계에서 살펴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고, 위대한 역사인지 생생하게 전달된다. 예를 들면, "세 번째 단계는 무기의 교환이다. 이것은 적들의 교환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적(사탄)을 건네받았고, 그분은 우리의 적은(죽음)을 건네받으셨다"(70). 얼마나 생생하고도 가슴 벅찬 은혜인가! 

 




"왜 '언약'이 그처럼 중요한 용어인가? '언약'은 당신과 내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설명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21).

'언약'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일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파트너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것은 성도의 삶에 현재적으로 역사하는 관계이고, 사랑이며, 능력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의 파트너로서 위대한 언약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언약의 권위를 가져야 하며, 행사해야 한다! <언약>은 그 권위와 권위를 올바로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의 말을 듣고 사가랴는 "임신이 일어날 수 없는 이유 또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유를 분명히 말했다(153). 그때 천사가 취한 조치는 무엇인가? "너의 입을 막아야만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153).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언약>은 살아 역사하는 은혜를 담고 있다. 왜 언약을 이해할 때,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지,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지 이 한 권의 책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언약>, 참으로 소중한 책이고, 모두와 나누고 싶은 영적 진리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신학적인 주제로서의 '언약'이 아니라, 살아있는 능력으로서의 '언약'을 깨달으니 가슴이 뛴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의 파트너'라는 정체성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삼각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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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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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했던 역사의 흙탕물이, 우리 사회의 흙탕물이 제법 가라앉은 느낌이다. 이제야 겨우 그 속이 들여다 보이니 말이다. 휘저으려 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써주시는 문인 덕분에 감았던 눈을 다시 뜬다. 

황석영의 <강남몽>은 '강남 형성사'이다. 총5장으로 구성된 <강남몽>은 다섯 인물들의 물고 물리는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통해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구축되어 왔는지 압축하여 보여준다. 화류계 출신의 '강남 사모님' 박선녀, 박선녀를 둘째 부인으로 둔 기업가 김진,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벌며 잠시 박선녀와 만났던 심남수, 박선녀가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의 동업자였던 조직폭력배 홍양태, 대성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박선녀 옆에 매몰되어 있던 백화점 직원 임정아. 

뛰어난 미모와 사업수완으로 부유한 상류층 사회에 진출한 박선녀, 일제시대 정탐꾼 노릇을 시작으로 권력에 빌붙어 영악한 처세로 성공의 기회를 잡아왔던 김진, 사기에 가까운 부동산 투기로 한몫 챙긴 뒤 고국을 떠나 대학교수가 되어 돌아온 심남수, 가진 것은 주먹뿐이어서 가진 자의 '개'가 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으나 결국 죽은 개처럼 버림받은 홍양태, 그리고 강남의 밑바닥을 떠바치고 있는 노동자 임정아. 진짜 강남 사람은 박선녀, 김진, 심남수이고, 홍양태와 임정아는 강남을 맴도는 주변인인 셈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강남夢> 또한 내 것처럼 살려는 발버둥, 그것에 다름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밟고 올라섰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밟혔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남夢>을 읽으며, 감겼던 눈이 가장 크게 떠졌던 부분은 '제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라는 제목의 김진의 생애사였다. 사실 소설이 아니라 역사 해설자의 설명 같은 서술이 다소 지루했지만, 이렇게 선명한 근대사를 어디서도 읽은 기억이 없을 만큼 충격적이기도 했다. 과거 청산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무기력해진 마음이지만, 최소한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이제라도 제대로 말해져야 하리라. 

<강남夢>은 무너져내린 강남의 백화점을 통해 무너진 '강남夢'을 형상화 한다. 이것은 과거의 되새김이 아니라, 무너져내린 백화점을 목격하고도 여전한 꿈속에서 헤매는 오늘 우리에 대한 심판 예고처럼 들린다. 부러움의 대상일지는 모르지만, '희망'이 되지는 못하는 강남. 그들을 손가락질 하는 우리조차도 은근히 강남(게으른 부자)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 한참 좋아했던 노래가 하나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의 노래였는데, <강남夢>을 읽으니 그 노래의 몇 소절이 떠오른다. "나의 사랑아 이제 네 눈을 떠봐요.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아 보아요. 네가 올라있는 그들은 너의 사랑. 이제 내려와 모두 함께 노래불러. 네가 추구하던 세상에 허황된 것, 허공에 쌓아진 시기와 질투의 탑을 뿐." 남한의 자본주의 형성사, 강남 형성사을 직접 목도하며, 뜨거운 삶을 살아낸 이 시대의 거장 황석영 작가가, <강남夢>을 통해 함께 부르고 싶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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