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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한국의 명품문화
하중호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6월
평점 :
"전통과 문화는 계승하는 자의 것이다."
요즘 뉴스를 통해 비춰지는 대한민국의 자아상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무슨 유행처럼 번지고, 20대의 꽃다운 베트남 신부가 결혼한지 7일만에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되었다는 보도가 국민을 경악케 하고 있습니다. 생활은 불안하고,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는 투명하지 못하고, 교육은 대안이 없고, 사회가 온통 진흙탕 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때에 숨통을 좀 트여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삼양미디어에서 펴낸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사리즈 중 하나인 <한국의 명품문화>입니다. <한국의 명품문화>는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을 찾아주고, 높여주는 책입니다. 우리에게도 세계에 뒤지지 않은 명품문화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대한민국의 축구가 원정 경기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한 것만큼이나, 시원하고 유쾌했습니다.
저자이신 하중호 교수님은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의 명품문화>는 한 편 한 편이 칼럼처럼 읽힙니다. 총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명품문화(유산)', '인성을 키워주는 한국의 명품예절', '품격을 높이는 인사와 호칭 문화', ''자랑스런 한국의 세시풍속', '자랑스러런 명품 효, 제사문화' 뿐만 아니라, '고쳐야 할 의식과 문화들'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재밌었던 것은 한류, 붉은악마, 김치, ondol(온돌), 한글과 같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우수한 우리 문화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비판과 반성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빨리빨리 문화'마저 자랑스런 한국인의 명품문화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빨리빨리 문화'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해줄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45-47). 빨리빨리 문화는 첨단시대에 오히려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인터넷 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빨리빨리 문화의 덕이며, 가전제품 등 수출품도 A/S가 빨라 유럽 등 세계시장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속도의 경제학, 스피드 경영의 측면에서 서구 기업들이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생각했던 '빨리빨리 문화'도 이렇게 적용을 하니 국제 사회의 강력한 경쟁력으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생각의 전환'이라는 것이 놀라운 마법처럼 느끼지는 순간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속도 중시의 문화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무형 자산이다. 우리는 고유문화에서 경쟁 우위의 자산을 발굴하고, 우리의 DNA 속에 내재돼 있는 여러 장점들을 제대로 살려내야 할 때이다"(46-47).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것을 놓고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명품 한국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되, 우리에게 있는 좋은 것을 좋게 볼 줄 아는 시각이 '먼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 것에 대한 칭찬 일색은 아닙니다. 6장에서 다루고 있는 '고쳐야 할 의식과 문화들'말고도, 한 예로 '에티켓으로 빛난 루브르박물관'(71-73) 편을 보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다시 되찾아야 할, 우리 것이 무엇인지 비판적인 시각으로 조명해줍니다.
<한국의 명품문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우리의 것 중에 가장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의 밸런타인데이, 경칩'(169-171)입니다. 연인에게 사랑을 전하는 서양의 발렌타이처럼 우리나라에도 은밀하게나마 연인의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만물이 깨어난다는 경칩이면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행을 은밀히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수나무와 암나무가 따로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랑이 오가서 열매를 맺게 해주므로 순결한 사랑의 상징이며,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는 것은 천 년을 이어가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였을 것이다"(171). 참으로 멋스럽고 낭만적인 풍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콤하지만 쉽게 녹아내리는 초콜릿 사랑이 아니라, 조상들의 슬기가 담긴 순결하고 단단한 은행나무 사랑의 정신을 다시 살려내고 싶습니다.
저자는 '한국분이냐 한국놈이냐'(247-249)는 글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과제를 던집니다. "이제 후일 세계가 우리를 한국분으로 부를 것인지, 그늘진 한국놈으로 부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249). 이 책을 읽으며 '그래,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 책이 우리에게 건강한 자아상을 그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못난 모습만 너무 떠뜰어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태교하는 엄마들처럼,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말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꿈꿔서, 건강한 대한민국의 내일을 출산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앞서 말한 '빨리빨리 문화'나 '신사임당에서 비롯된 현모양처' 등 비판이 따라붙을 수 저자의 독특한 해석도 들어 있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명품문화>는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은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 재밌고 유익합니다.